일곱 봉지 속의 지혜 - 행복을 찾아서 떠난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앤서니 드 멜로 지음, 진우기 옮김 / 양문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어떤 집에 자신이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여자 아이와 자신의 일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빠가 살고 있었어.  그 오빠가 능력이 부족했다면 부모도 꾸지람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능력은 있으면서도 언제나 게으름을 피우는 아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도 철이 없는 오빠는 자신만 나무라는 부모에게 늘 불만이었지.  만약 네가 그 부모의 입장이라면 오빠에게 그것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떤 꾸중도 하지 않고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내 말이 끝나자 그 학생은 "당연히 나무라야겠죠."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이어 "너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그 오빠가 바로 너야."라고 말하자 그 학생은 움찔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무명(無明), 즉 무지(無知)라고 해.  알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나 싶지만 그 무지로 인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끝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커다란 죄가 되는 거야.  그리고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죄는 아마 게으름이 아닐까 싶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니? "

그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첫째 아이보다는 둘째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로부터의 지나친 관심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첫 아이의 탄생과 함께 초보 엄마, 초보 아빠가 되는 까닭이다.  아이도 그렇지만 부모도 아이에게 모르고 한 행동이기 때문에 다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1913년 인도 고아에서 태어나 1987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저술과 강의를 통해 영적 가르침에 대한 값진 유산을 남겼던 앤서니 드 멜로 신부님.  내가 신부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깨어나십시오>였다.  어떤 강요나 현학적인 지식으로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도 않았고,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문장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알게 했다.  그 후 나는 신부님의 팬이 되었다.  예수회 사제였지만 카톨릭이라는 종교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신부님은 이 책에서 지구촌 구석구석의 오래 된 민담과 잠언, 격언과 일화들을 모아 자신의 생각을 곁들였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초보 엄마, 초보 아빠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않으려면 꾸준히 배우는 길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듯하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실수연발이고 언젠가 내가 마지막 제자를 받을 즈음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고대 인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쥐가 한 마리 살았는데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늘 벌벌 떨곤 했다.  보다 못한 마술사가 그를 불쌍히 여겨 고양이로 만들어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개가 무서워 쩔쩔 맸다.  마술사는 다시 한번 마술을 부려 그를 개로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이젠 표범을 무서워했다.  마술사는 또다시 그를 표범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번엔 사냥꾼을 무서워하는 게 아닌가?  이젠 마술사도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 수밖에 없었다.  표범을 원래의 쥐 모습으로 되돌려놓고 마술사는 말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쓴들 네놈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어.  겉을 아무리 바꾸어도 네 마음속에서 너 자신의 모습은 늘 쥐일 뿐이야."

겉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해서 내면의 모습까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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