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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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은 눅진하게 퍼지듯 다가오지 않고, 가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찌르듯 덮쳐온다. 그러므로 솔향을 맡는 이는 누구나 고즈넉함에 기대어 소나무와 대화할 준비가 되었음을, 조용히 마음으로 다가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마음의 문을 열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내음을 먼저 맡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조용조용 서로를 탐구하며 가까워졌던 게 아닐까. 그러므로 냄새는, 아니 향기는 마음보다 먼저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전조처럼. 혹은 징후처럼.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적일 수가 없어서 카드에 의존한다. 그래서 점을 치는 게임이나 수맥 찾는 막대기 같은 것을 좋아한다. 길을 찾아줘. 금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려줘. 나도 전에 영화에서 본 방법을 써본 적이 있다. 책 한 권을 집어 아무 쪽이나 펼친 다음(『오만과 편견』이 내가 가장 많이 쓴 책이다. 엘리자베스 베넷의 분별력에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손으로 짚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단어를 예언이나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책점'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점술법이다."  (p.356)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는 독특한 여행기이자 도시를 빈둥거리며 구경하는 플라뇌즈로서의 도시 비평서이기도 하다. 엘킨의 여행은 우리를 파리, 런던, 도쿄 등의 풍경 속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것보다도 더 생생하게 이 도시들의 속살을 보여준다. 작가는 책에서 때로는 관광객이었다가, 또 때로는 동네 주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민자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엘킨의 숨김없고 솔직한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것도 이처럼 낯선 느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호텔 방에 있다. 낯선 도시에서 보내는 첫날밤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 도시, 뉴욕에서. 빙하 위의 동굴에 비할 만큼 에어컨이 세게 나오는 방에서 담요를 둘둘 말고 있다.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는 것 같지만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할 용기가 없다. 누군가가 올라오면 팁을 얼마나 줘야 할까? 팁도 없이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줘서 호구로 보이느니 차라리 추운 게 나을 것 같다."  (p.395)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연코 선택 1순위에 올려놓을 듯한 이 책은 사실 하나의 장점이 더 있다.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의 두께가 그것이다. 책에 빠져들 만하면 금세 책이 끝나버리는 불합리한 책의 두께가 늘 불만이었다면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주목한 여성 산책자들은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걷기와 사색을 통해 자기가 관찰한 삶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고 새로 만들어낸' 예술가들이라고 극찬하며 그들의 작품을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다.


"울프는 거리에서 이야기를 캐냈고 자기가 관찰한 사람들, 걷고 물건을 사고 일하고 멈추어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을 채웠다. 특히 여자들.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묘사하면서 울프는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소설은 반대편 구석의 늙은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아니면 상점의 젊은 여자. "나는 나폴레옹의 150번째 전기나, Z교수가 심혈을 기울이는 키츠가 밀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70번째 연구보다는, 그 여자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p.129)


2022년의 설 명절은 가만가만한 냄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분주함 속에 내재된 불안이라고 해야 할까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위협과 그 위협을 더는 용납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반감이 만들어낸 거친 시간이었다. 사랑한다는 건 그와 같이 치솟는 감정을 가만가만 누르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묵묵히 인정하는 침묵의 울음이 아니었을까. 다만 이리저리 공간만 바삐 달라졌을 뿐 '언제'라는 시간에서 다시 또 '언제'라는 시간으로 되돌아온 나는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읽었고, 잔설이 남은 아파트 화단을 먼 시선으로 보고 있다. 멀리서 다가오는 솔향. 뭔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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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 되는 일이 없을 때 읽으면 용기가 되는 이야기
하주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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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는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이 성공담이나 성공 노하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렇다. 오히려 저자 자신의 실패담이나 실패로부터 깨우친 것을 책으로 엮었을 때,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은 소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학 장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쁨보다는 슬픔,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 성공보다는 실패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에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기저에는 우리 삶의 근본 원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듯 보인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삶은 실패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인간적 성숙을 이룬 영웅담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조차도 실패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실패담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다른 분야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인 까닭에 다른 여러 분야의 측면에서는 역시 실패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본인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성공한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까닭에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기준은 자신의 삶을 다른 어떤 것과 견주어 비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자신의 삶에 무리한 욕심을 낸 까닭에 이 분야에 조금, 저 분야에 또 조금의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것은 실패담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이의 삶을 기웃대지만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쉽게 말하는 '할 수 없는 이유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유들'로 바꾸어 가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니까. 언젠가 희망 없이 털썩 주저앉아 있을 때 내 이야기를 떠올리며 의지와 희망으로 툭툭 털고 일어난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p.19 '프롤로그' 중에서)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를 쓴 하주현 역시 다른 이의 삶을 기웃대거나 자신이 선택한 삶을 후회하지 않은 채 오직 외길을 향해 달려온 케이스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삶을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스스로는 극구 부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혹은 저자 스스로가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실패담이 되고 만다.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하는 비교의 기준(예컨대 재산이나 명성, 권력 등)으로 보더라도 그녀의 삶은 특별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에는 쥐도 많았다. 그것도 슈퍼 사이즈의 쥐! 이곳 바퀴벌레와 쥐는 모두 슈퍼 사이즈였다. 새벽에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일어나면 쥐가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당당해서 오히려 쥐가 사는 집에 내가 얹혀사는 기분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그리는 밝은 뉴욕의 뒤에는 늘 어둠이 깔려 있었다."  (p.129)


저자의 이력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코넬 대학교에서 호텔과 레스토랑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포시즌스 호텔 뉴욕, 리츠칼튼 호텔 서울, 미국 플로리다, 펜타곤 시티, 호주 시드니와 미슐랭 3스타 쉐프들의 레스토랑 뉴욕 다니엘, 르 버나딘,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프랑스 식료품 브랜드 포숑의 한국 디렉터, 2015년 신세계 그룹 신세계 푸드 외식 팀 영업팀장과 레스케이프 호텔 식음 팀장을 거쳤다고 하니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녀의 출신 배경이 '금수저'려니 착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국내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 기업을 아우르며 말단 직원에서부터 임원, 그리고 조그만 베이커리의 오너까지 차근차근 성장했다. 다양한 위치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 다시 지나간 시간이 주어진다면 좀 더 잘 준비해서 더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내 인생을 뒤로 되돌릴 순 없다. 대신 후배들이 지나간 나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들의 방식대로 젊음과 열정적인 삶을 잘 써내려 가길 바란다.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p.226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하주현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기적처럼 일구어낸 작은 성취들을 기록한 이 책,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는 자기계발서라기엔 다분히 문학적이며 가독력이 높고, 삶에 지친 이들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선 수준 높은 자기계발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저자의 삶 역시 누구나가 넘볼 수 있는 평범한 분야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결코 저자의 성취를 폄훼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노력이나 열정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섞인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삶이 이룩한 성취가 어떻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다른 분야를 기웃대지만 않는다면 그러한 삶을 사는 모든 이의 삶이 성공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저자 하주현의 삶이 성공담이듯 나와 우리 모두의 삶이 성공담으로 평가될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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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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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어깨가 움츠러드는 긴장감에 휩싸이곤 한다. 책으로 출간되어 읽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락된 일기이든 개인의 사적 비밀이 담긴, 책상 서랍에 꽁꽁 숨겨둔 비밀 일기이든 가리지 않고 일기라는 이름이 달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학창 시절, 형이나 누나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다 들켜서 죽지 않을 만큼 혼쭐이 났던 경험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주눅 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내용 위주로 후다닥 읽는 것은 물론 한두 줄의 중요 문장만 머릿속에 기억한 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지런히 두고 조용히 물러나는 걸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황정은 작가의 『일기日記』를 책으로 읽으면서도 나는 내내 주변의 눈치를 살폈고, 금방이라도 누군가 내 방문을 왈칵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책을 읽었으면서도 말이다. 이러한 긴장감으로 인해 눈을 통해 들어온 문장은 뇌를 통해 쉽게 이해되거나 기억되지 않았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몰래 훔쳐 읽는 것만 같았고, 꽁꽁 숨겨둬야 할 이야기들을 나만 알고 있는 듯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나와 동거인의 나이를 잘 세지 않는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p.32)

 

내가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아마도 <百의 그림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의 나는 박민규 작가의 <핑퐁>이나 <카스테라>, 천명관 작가의 <고래>처럼 문체가 특이하거나 창의성이 뛰어난 작품들에 열광하고 있던 터라 황정은 작가의 <百의 그림자> 역시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디디의 우산>이나 <연년세세>도 출간과 동시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황정은이라는 이름 석자만 기억할 뿐 그녀에 대해 도통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소설 잘 쓰는 작가일 뿐.

 

첫 장인「일기日記」와 그다음 장인 「일 년一年」은 파주로 이사한 작가의 달라진 일상과 코로나19로 인한 주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의중앙선 너머로 호수공원이 보이는, 직선거리로는 15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어 1킬로미터를 걸어야 호수공원의 일부인 소리천에 다다를 수 있는 곳이란다. 작가는 원고노동자로서 몸을 관리하기 위해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는 등 몸을 지키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쓰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며 집앞 공터인 '반달터'를 지켜보았고, 우주를 상상하기도 하고, '명命을 지닌 존재들의' 안녕을 빌기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p.41)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과 「민요상 책꽂이」에는 어린 조카들에 대한 이야기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빨강머리 앤」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평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목포행木浦行」은 2017년 이후 매년 목포신항을 방문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산보」는 작가가 돌보는 화분들과 걷기에 관한 이야기를, 쿠키를 먹는 것처러 읽을 수 있는 일기를 목적하고 썼다는 「쿠키 일기」, 그리고 「고사리를 말리려고」와 「흔痕」에는 작가의 과거가 담겨 있다. 작가의 아픈 과거를 읽다 보면 공감할 수 잇는 아픔 한 자락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일기日記'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p.197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살금살금 겨울비가 내렸다. 점심을 먹고 조심스레 빗길을 걸었다. 먼짓내가 사라진 가까운 공원의 풍경을 눈에 넣으며 나는 누군가의 아픔을 생각했고,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게 썩 나쁜 일은 아니라며 자위했다. 누군가 다녀갔는지 허공에서 보행을 하는 운동기구는 주인을 잃고 한동안 흔들렸다. 살금살금 비가 내렸고, 조용조용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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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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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 하면 많은 사람들이 1순위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교회의 몰락'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개신교의 몰락일 수도 있고, 목사로 지칭되는 개신교의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그들의 세속화에 대한 염증쯤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그와 같은 현상이 유독 대한민국에서 크게 불거졌던 데는 공동체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일상화된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이 크게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교회를 중심으로 외부인에 대한 배타성과 그들만의 폐쇄성이 상존하는 교회의 태도가 코로나 시국에 무척이나 이기적으로 보였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테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 온라인 예배를 강조했던 정부 방침을 무시하면서 대면 예배를 강행했던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대규모 확진자가 연일 발생했던 것은 물론 그와 같은 사태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주변의 상인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주민들도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으니 교회를 좋게 볼 수만은 없었던 게 사실. 지금 당장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안녕을 도외시한 일부 교회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싶다. '교회는 다 그렇다'는 식의 일반화는 건전한 교회마저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마저 약화시킨다. 하기야 황금만능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팽배한 21세기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신의 권능보다는 돈의 위력이 이를 완전히 대체하였다는 시각이 우세한데 종교가 무슨 필요이고, 믿음이 뭔 소용이겠나.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고, 절대자를 찾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믿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함께 그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는 더욱 절실해지지 않았을까.

 

"희망과 기대감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 삶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내일의 천국을 이야기하는 종교가 지금 우리의 삶이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가 헛된 희망과 거짓된 기대로 과대 포장한 선물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종교인들이 스스로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불안한 인간 존재에게 신실하고 진실한 말과 행동으로써 희망의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p.15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에서)

 

<라틴어 수업>으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한동일의 신작 에세이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어쩌면 성직자 신분인 저자가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참회의 기록인 동시에 자신과 종교가 다른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공존의 악수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20, 30대의 탈脫종교 현상은 종교 인구의 고령화와 전체 종교 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통계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 마당에 종교인이 나서서 자신들이 믿는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옳지 않다고 한다거나 비종교인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종교는 어쩌면 설 자리를 잃고 소멸할지도 모른다. 한동일 저자 역시 그와 같은 긴박한 심정에서 이 책을 구상했을 터, 저자의 경험과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낸 이 책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고통은 인간 사회가 만들어 온 구조적인 문제가 그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 탓에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사라진 사회에서 이웃끼리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나 내가 믿는 종교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나와 종교가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비난하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그를 구제해야 할 죄인으로 보며 다가가지 않아야 합니다."  (p.242)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예루살렘에서 한 달간 머물렀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도 하고,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코로나 정국을 통과하면서 종교인이 취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자유'에만 큰 방점을 찍고 행동한다면 사회나 이웃과 불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을 믿고 그 뜻을 따라 살고자 한다면, 나와 내가 속한 종교 공동체의 행동이 이웃에게 고통을 주거나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더 나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p.137)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한 저자의 말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곱씹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비단 믿는 자들에 대하여 던지는 말은 아니었을 터,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의 그와 같은 거룩한 모습을 여러 번 반복하여 보면 볼수록 돈과 신이 경쟁하는 작금의 사태는 조금씩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믿는 자들이 나서서 희망이 없는 시대에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종교 무용론이 발붙일 자리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냉담자가 냉담을 풀고 성당의 주일 미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믿는 자들의 올바른 태도일 터, 중언부언 변명 같지 않은 변명으로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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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 책 속의 한 줄을 통한 백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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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혹은 하나의 이미지가 발목을 붙잡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혹은 문장이 또는 이미지가 지나온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게 만들고 뜨겁기만 하던 열정을 한순간에 얼어붙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이토록 달려왔던 것인가?' 하는 회의가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차올라 손가락 하나 굼적거리기 싫어지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가. 차갑게 식은 가슴은 무엇으로 데울 수 있을까.

 

"우리는 항상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삶의 일부다. 당신의 상황에 책임이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불행을 책임질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다. 왜냐면 살면서 맞닥뜨리는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건 언제나 당신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평가할 기준을 선택하는 건 언제나 당신이다."  (p.189 '마크멘슨, <신경 끄기의 기술>)

 

인문학자 김태현의 저서 <백 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은 14개의 파트에 그에 알맞은 다양한 책의 명구를 옮겨 적어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한 명언집이다. 저자가 나눈 파트의 소제목만 찬찬히 살펴보아도 삶의 갈림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고민과 갈등의 순간들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Part 1. '좀 더 느리게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 Part 2. '버림을 통해 채움을 얻는 방법', Part 3.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책 속의 한 줄들', Part 4. '픽션으로 세상을 보다', Part 5. '역사도 인생도 똑같이 반복한다', Part 6. '미래를 움직이는 인문학', Part 7. '꿈과 목표는 어떻게 인생을 바꾸나', Part 8. '나의 시간을 내가 지배하는 법', Part 9. '미래와 미경험의 세계를 도전하는 힘', Part 10. '인생의 안목과 센스를 기르는 방법', Part 11. '인간관계에도 정답이 있다면', Part 12. '0.1% 탁월한 사람들의 인사이트', Part 13. '돈의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부자들의 비밀', Part 14. '천재들은 어떻게 사고하는가'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이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부(冨)를 염두에 두고 책의 구성을 꾀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돈 문제는 재무관리가 아닌 역사와 심리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장 크게 성공한 투자자, 가장 크게 파산한 투자자 모두를 만나고 깨달은 한 가지는 진정으로 부를 이해하고 부를 얻고 싶다면 인간의 심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312 '모건하우절, <돈의 심리학>')

 

목차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저자의 관심이 오직 '돈과 성공'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나 어떻게 하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든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 등 우리의 삶 전반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저자 스스가 읽었던 책 속에서 찾은 명쾌한 해답들을 독자들에게 펼쳐 보임으로써 삶이 처음인 우리 모두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고 하겠다.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멀어진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호감을 갖고, 당신에게 자꾸만 다가서고자 하는 건, 당신 또한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P.279 '레일라운즈 <사람을 얻는 기술>')

 

사실 이와 같은 책 속 명언이나 아포리즘을 모아 엮은 책은 독자들에게 그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 하나의 문장만 발췌한 것이기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이 그 많은 책을 일삼아 읽는다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이처럼 한 권의 책에서 여러 사상가나 인문학자, 성공한 사업가 등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경구 혹은 지침을 통해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삶의 정수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더없이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갖는다는 것, 아니 나이가 든 까닭에 젊은이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품는다는 건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바른 자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전보다 육체적으로 쇠약해졌다는 이유로 우리들 각자는 시나브로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현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이미지가 나의 발목을 잡는 장애 요인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를 북돋우는 원동력이 될 수만 있다면 휴일 하루를 반납한 채 기꺼이 이 한 권의 책을 읽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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