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곁다리처럼 소문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흔하다는 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그쳤던 이야기가 산골 무지렁이조차 다 아는 흔해빠진 이야기로 변하는 순간, 어디선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새로운 모의와 작당이 시작된다. 조미료처럼 약간의 거짓이 가미되고 밋밋하던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춘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 때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산처럼 부풀려진 이야기는 이제 99%의 거짓과 그 출발조차 파악할 수 없는 1%의 사실로 구성된다. 가난하던 흥부가 제비의 도움을 받아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건 이제 대중이 확신하는 어이없는 사실이 되고 만다. 어떤 이야기가 수 차례, 혹은 수십 차례 부풀려지는 동안 과거의 이야기꾼도 현재의 이야기꾼(극우 유튜버)도 돈과 명예를 얻게 된다. 그리고 거짓에 거짓을 보태던 그들 역시 자신이 했던 과거의 거짓을 마치 사실인 양 믿게 된다. 시나브로 자신이 허언증 환자가 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야기꾼과 자신들이 듣고 잇는 이야기가 어느 허언증 환자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지 못하는 다수의 대중.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자주 지나치면서 어느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건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비난하고픈 사람들에게 '부정선거'라는 테마는 조선시대의 가난한 민중들을 유혹했던 '벼락부자'의 꿈만큼이나 솔깃한 주제였는지도 모른다.


돈만 준다면 인당수의 제물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설화 속 어느 여인과 돈만 준다면 어떠한 거짓과 선동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현대의 극우 유튜버는 무척이나 닮아 있다. 그 이야기를 퍼 나르는 구독자들의 행태도 조선 후기 대중을 사로잡았던 설화나 민담이 퍼져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어쩌면 흥부 이야기를 들었던 조선시대의 가난한 민초들 역시 그것이 사실인 양 오인하여 처마 밑의 제비집에서 애꿎은 제비를 땅으로 내동댕이친 후 부러진 제비다리를 살뜰히 고쳐주었을지도 모른다. 근거도 없는 어느 유튜버의 확신에 찬 부정선거 의혹을 들었던 한 인간이 까닭도 없이 계엄령을 선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좀비화 과정은 지능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횟수의 반복이 진행되었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린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의 지능이 하나같이 다 수준 이하에 머문다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돈과 명예를 추종하는 어느 유튜버의 이야기를 마치 설화나 민담을 듣는 것처럼 수없이 반복하여 들었을 뿐이다.


나는 지금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소담출판사)>를 읽고 있다. 이 책을 반복하여 읽고 나면 나도 어쩌면 사람은 본디 탐욕과 이기심이 아닌 사랑과 선의에 따라 살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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