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새해가 밝았다는 들뜬 목소리를 엊그제 들은 것만 같은데 벌써 11월! 

이제 달력은 단 두 장을 남기고 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하는 다짐을 하며...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직은 어린 내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남기고 있는 것이다.  새삼 느끼는 것은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 그리고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책이 어쩌면 나의 부족한 면을 가려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역경은 소리없이 찾아든다.  그러나 그 험난한 과정을 겪어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할 때 자신의 곁에 남는 것이야말로 가장 알짜배기가 아닐까?  우리가 역경을 경험하는 것은 그런 알짜배기를 선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독자로부터 언제나 극과극의 평을 듣게 된다.  같은 작가의 작푼인데 매번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럴만도 하다.  동양인, 특히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는 그 책이 담고 있는 주제의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이번 작품은 어떤 평을 듣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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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1-0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완료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보안문제로 사무실의 컴퓨터로는 블로그 접속을 일체 금한다는 회사 방침이 하달된 까닭에 그렇지 않아도 게으른 블로거였던 나는 블로그 접속이 더더욱 뜸해졌다.
기계치에 가까운 나는 그 흔한 스마트폰도, 태블릿 PC도 사용하지 않으니 업무 시간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  점심시간에 잠시의 짬이라도 나면, 잘 아는 후배가 운영하는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 들르거나 그도저도 어렵다 싶으면 근처의 도서관을 찾는다.

어제는 여유있게 점심을 먹고 블로그에 서평도 올릴겸 해서 후배의 커피숍을 찾았다.
후배가 타준 원두 커피를 홀짝이며 독수리 타법으로 느릿느릿 서평을 쓰고 있는데 보다 못한 후배가 한마디 한다.
"형, 그러지 말고 우리 커피숍에 타자 잘 치는 알바 한 명을 붙여 줘.  그러면 형이 커피 마시러 와서 말로 불러주면 되잖아.  형이 없을 때는 커피 서빙도 하고.  그러면 형도 느긋하게 커피 마실 수 있어서 좋고 나도 형 덕분에 바쁘지 않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냐?   물론 월급은 돈 잘 버는 형이 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뒤질새라, "그동안 나도 너한테 공짜 커피도 많이 얻어 먹었고, 앞으로는 여기 컴퓨터도 자주 써야 하니 그렇게 해." 하고 농을 쳤더니 후배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던지 반색을 한다.
후배는 감격한 듯, "진짜지, 형?"하며 당장이라도 알바를 붙일 기세였다.
"오늘은 니가 괜한 신소리로 바쁜 나를 붙잡았으니 커피값은 없다."하며 돌아서려는데 그래도 커피값은 주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우는 소리를 한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부서에 새로 배정된 신입사원과는 변변한 회식자리도 마련하지 못했었기에 내심 미안했던지라 오늘 저녁에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했더니 부서원들 모두가 좋아라 했다.  술을 못하는 나는 낮에 후배와의 일도 있고 해서 퇴근길에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부서 회식이 있으니 바쁘지 않으면 회식자리에 나와 내가 마실 술을 대신 마셔줄 수 없겠냐고 했더니 두 말 않고 나오겠단다.  직장 동료들과는 거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니 후배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이미 다들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후배와 신입사원을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고 숙소로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왔다.
내 돈으로 술을 산 것은 아니지만 후배의 입에 기름칠을 해두었으니 당분간은 공짜 커피도 눈치가 보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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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직장에서의 대화 주제는 하루 종일 서울시장 선거였었다.
같이 근무하는 직장 동료들 대부분은 서울 시민도 아니요, 누가 시장으로 당선된들 그들의 삶에 큰 변화가 올 것도 아닌데 다들 한목소리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을 화제로 올렸고, 마치 자신의 예측이 당선에 크게 한 몫이라도 한 것처럼 마냥 들뜬 표정이었다.  물론,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도 없지 않았다.  격앙된 목소리로 떠드는 찬성측 다수파에 밀려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말이다.

언론에서는 어제 오늘 연이어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세대간의 갈등이 표심을 갈랐다는 분석이었다.  그동안 우리 정치권은 지역 및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통한 국민들의 분열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곤 해왔다.  한동안 아무 탈 없이 그런 분열과 갈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손쉽게 유지할 수 있었는데 무소속의 비정치권 인물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고 보니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분열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세대간 갈등이 주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소통의 부재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그 주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근 1년여 동안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그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벽은 다름 아닌 가정 내에서 대화의 단절과 수직적 위계질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가난할수록 가족간의 대화는 줄어들게 마련이고, 아이들의 부모는 자신이 겪은 지난한 세월을 생각할 때 지금의 상황은 그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겪었던 힘든 삶을 강요하는 듯한 말을 자주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령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는 식이다.

어느 책에선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크나 큰 언어 폭력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단 한번도 부모 세대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아이에게 자신만큼 참고 인내하라는 무언의 압력, 자신들이 힘들게 키웠으니 꼭 보답하라는 식의 강압적 의사표시는 아이들을 얼마나 좌절하게 만들까?  시쳇말로 '본전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본전 생각'이라는 말이 가장 흔하게 쓰여지는 곳은 군대에서다.
이등병 때 고참들로부터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병사는 그가 왕고참이 되자마자 후임병들에게 똑 같이 되갚아 주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같이 자신은 그보다 훨씬 어렵게 군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듯 한마디 던지는 말이 "본전 생각이 난다."는 표현이다.  군에서 구타와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고 자행되는 것은 이런 '본전 생각'에 기인하는 복수심이다.

기존의 정치권이나 연세 지긋한 노인분들이 혹시 이런 '본전 생각'으로 젊은 세대를 괴롭힘으로써 권위를 살리려는 발상이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어렵게 살아왔고, 힘든 세월 속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을 키워왔다고 할지라도 '본전 생각'에 그들로부터 존경을 강요하거나 섬김을 받으려는 태도는 지극히 치졸하다.  그럴수록 오히려 자신들의 모습만 초라해질 뿐이다.  존경과 권위는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이지 강요하거나 쥐어 짠다고 억지로 생기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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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에세이 분야의 신간 평가단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책을 선택하고, 혹시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 선정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또는 언제쯤 책이 오려나 하는 기다림을 생각할 때,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마치 처음으로 사랑에 눈 뜬 소년의 마음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러나 유명세에는 항상 숨겨진 가시가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오래된 속담처럼 혹시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은 평소 좋아하던 에릭 호퍼의 저서 <맹신자들>이 번역되어 출간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종교를 인식하는 그들의 시각이 자못 궁금하다. 

 

 

 

 

일전에 현각스님의 저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현각스님의 추천사를 읽게 된 것과 그분과의 미약한 인연이 나의 마음을 동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이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점이다.  그들의 공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는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라면 서정윤 시인의 시 <홀로서기>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암울했던 시대상황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시인의 감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이제는 시인도 많이 늙었겠지만 그때의 추억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  시인의 산문집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가을과 닮아있지 않을까? 

 

 

  

잡지 보그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과 책의 제목은 일견 불협화음처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삶이 바쁘고 고단할수록 시의 행간에 펼쳐진 무한의 여백에서 한껏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소망은 깊어만 간다.  내게 허락된 이 짧은 사색의 계절은 저자의 가난한 사치에 어서 빨리 동참하라고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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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운동을 다녀온 후 아침을 먹기 전에 분리수거를 했다.
쇼핑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쓰레기는 끊임없이 나온다.  마치 우리집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온통 쓰레기만 안고 사는 것처럼.  운동을 나갔을 때는 몰랐는데 땀이 식으면서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잔뜩 찌푸린 하늘과 나른한 휴일의 느낌이 비대칭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분리수거를 할 때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날씨 탓인지 오늘은 그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분리수거 한다면 재활용이 가능한 사건들은 몇이나 될까? 하고 말이다.
말없이 내 곁을 지키는 시간은 온갖 허섭스레기 같은 사건들을 일일이 분리수거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렇게나 내팽겨친 사건들을 다시 기억할 때를 위해 가지런히 정리하고, 어떤 것은 잘 다려 구김을 펴고 빳빳하게 풀까지 먹여 새것처럼 두는가 하면, 때로는 길바닥에 내던져도 아무도 집어 갈 사람이 없을 만한 잡동사니를 누군가의 눈에 띌새라 서둘러 폐기처분하기도 하고...  이 모든 일들은 고스란히 나와 동행하는 시간의 몫이다.

그 불쌍한 시간에게 하루쯤 휴가를 주고 싶다.
나는 아무 일도 계획하거나 저지르지 않고 나무처럼 고요히 지낼 수 있노라고 말하며 안심시키고 싶다.  설령 시간이 눈감은 그 사이에 내 삶에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네 책임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왠지 나이가 들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만 같다.  오늘처럼 흐린 휴일에는 숨도 쉬지 말고, 시간도 멈춘 영원 같은 하루를 맞고 싶은 것이다.

연휴를 즐기려는 행락 차량들이 하나둘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빡빡한 시간과 빈틈없는 약속 위를 질주하기 위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시간은 지금쯤 안녕한 것일까?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고 싶어서 일단정지 표시판도 무섭게 외면하는 차량들이 아파트를 벗어나고 있다.  그들의 여행 목적지 어딘가에 멈추어 서면 자신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시간쯤이면 피곤에 지친 그들의 시간도 그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것일까?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어느 날 문득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져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침을 먹으라는 아내의 호통이 아파트 몇 층 위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의 시간도 오늘 하루 편안히 쉬기는 글렀다.  나보다 먼저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시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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