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문제로 사무실의 컴퓨터로는 블로그 접속을 일체 금한다는 회사 방침이 하달된 까닭에 그렇지 않아도 게으른 블로거였던 나는 블로그 접속이 더더욱 뜸해졌다.
기계치에 가까운 나는 그 흔한 스마트폰도, 태블릿 PC도 사용하지 않으니 업무 시간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  점심시간에 잠시의 짬이라도 나면, 잘 아는 후배가 운영하는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 들르거나 그도저도 어렵다 싶으면 근처의 도서관을 찾는다.

어제는 여유있게 점심을 먹고 블로그에 서평도 올릴겸 해서 후배의 커피숍을 찾았다.
후배가 타준 원두 커피를 홀짝이며 독수리 타법으로 느릿느릿 서평을 쓰고 있는데 보다 못한 후배가 한마디 한다.
"형, 그러지 말고 우리 커피숍에 타자 잘 치는 알바 한 명을 붙여 줘.  그러면 형이 커피 마시러 와서 말로 불러주면 되잖아.  형이 없을 때는 커피 서빙도 하고.  그러면 형도 느긋하게 커피 마실 수 있어서 좋고 나도 형 덕분에 바쁘지 않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냐?   물론 월급은 돈 잘 버는 형이 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뒤질새라, "그동안 나도 너한테 공짜 커피도 많이 얻어 먹었고, 앞으로는 여기 컴퓨터도 자주 써야 하니 그렇게 해." 하고 농을 쳤더니 후배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던지 반색을 한다.
후배는 감격한 듯, "진짜지, 형?"하며 당장이라도 알바를 붙일 기세였다.
"오늘은 니가 괜한 신소리로 바쁜 나를 붙잡았으니 커피값은 없다."하며 돌아서려는데 그래도 커피값은 주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우는 소리를 한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부서에 새로 배정된 신입사원과는 변변한 회식자리도 마련하지 못했었기에 내심 미안했던지라 오늘 저녁에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했더니 부서원들 모두가 좋아라 했다.  술을 못하는 나는 낮에 후배와의 일도 있고 해서 퇴근길에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부서 회식이 있으니 바쁘지 않으면 회식자리에 나와 내가 마실 술을 대신 마셔줄 수 없겠냐고 했더니 두 말 않고 나오겠단다.  직장 동료들과는 거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니 후배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이미 다들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후배와 신입사원을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고 숙소로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왔다.
내 돈으로 술을 산 것은 아니지만 후배의 입에 기름칠을 해두었으니 당분간은 공짜 커피도 눈치가 보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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