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실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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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다시 말하면'이라고 운을 떼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설명에 대한 나의 이해가 무척이나 절실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책이나 그런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요. 너무 전문적이어서 전문가인 누군가의 설명이 따로 필요하다거나, 설명이 부족하여 저자의 별도 설명이 필요하다거나, 나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책은 한낱 문자 텍스트에 불과할 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책을 먼저 읽고 이해한 또 다른 누군가의 긴 설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별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책도 더러 있는 법이지요. 예컨대 리 차일드의 소설이 그런 부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분량은 다소 늘어나겠지만 순간순간의 세세한 설명과 묘사가 덧붙여지는 까닭에 나처럼 어눌하고 어리벙벙한 사람도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처는 길이 왼쪽으로 굽어지는 지점이 다가오는 걸 봤다. 100미터쯤 앞이었다. 큰 도로와 비스듬한 각도로 만난 그곳은 마지못해 그런다는 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런 후 계속 뻗은 길은 사과농장을 관통했다. 그는 그쪽으로 계속 걸었다. 절반쯤 갔을 때 거대한 견인 트럭이 지나갈 수 있도록 풀밭인 갓길로 올라서야 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그 트럭은 밝은 빨간색에 흠집 하나 없이 깔끔했다."  (p.202)


내가 중학생이던 무렵 무협지에 한동안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무협지라는 게 말이죠 모든 무협지에 양념처럼 자주 등장하는 기본 단어들과 지명들만 알면 무협지는 그야말로 유아용 만화책에 버금갈 만큼 쉽디쉬운 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협지에 빠져든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게 부정적이고 시큰둥하게만 보였던 남자 중학생의 눈에 무협지는 자신의 무료한 시간을 채워줄 꽤나 괜찮은 도구였던 셈입니다. 리 차일드의 소설은 어쩌면 중학생 시절 내가 읽었던 무협지의 재판이거나 서양판 무협지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와 같은 소설을 탐닉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지만 나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인 걸 어쩌겠습니까.


"그는 총을 겨눴다. 그녀는 쏟아지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그걸 뚜렷하게 봤다. 그녀는 시청했던 TV 드라마들에 나온 그 총의 브랜드를 알아봤다. 글록. 확실했다. 상자 모양으로 오밀조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앞부분의 총신은 새틴으로 마무리돼 있었다. 정밀한 부품. 가격이 1천 달러는 돼 보였다.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패트리샤 마리 선드스트롬, 25세, 칼리지 2년 재학, 제재소 노동자. 술집에서 만난 감자 농사꾼하고 짧은 기간 행복했다. 평생 예상했던 것보다 더 행복했다. 그녀가 알던 행복보다 더 행복했다. 그를 다시 보고 싶었다. 딱 한 번 더."  (p.513)


리 차일드가 쓴 잭 리처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주인공 잭 리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입니다. 어떤 무협지의 주인공도 정의의 반대편에 선 자에게 쓰러지거나 무릎을 꿇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10호실>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잭 리처는 메인에서 샌디에이고로 가던 도중 낯익은 지명에 이끌려 잠시 샛길로 빠지게 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스탠 리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그곳은 바로 뉴햄프셔의 래코니아였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잭 리처는 원치 않았던 사건에 이리저리 휘말리게 되지만 헌병으로 복무했던 그의 화려한 경력과 녹슬지 않은 실력 덕분에 위험천만한 상황을 가뿐하게 넘어서곤 합니다.


'희망은 최선을 기대하며 품는 것이고 계획은 최악을 대비해서 세우는 것이다.'  (p.176)


대부분의 잭 리처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작가의 좌우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인들을 상대함에 있어 무자비한 면모를 보여주는 잭 리처의 활약은 모든 걸 법과 제도에 의지하는 현대의 독자들에겐 한 줄기 청량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의 리뷰를 마침에 있어 한 가지 개인적인 소원을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자유를 사랑하고 틈만 나면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는 한 사람, 비록 겉으로는 정의의 사도인 양 행세하지만 세상의 모든 악이란 악은 모두 제 손아귀에서 주무르는 듯한 그 사람을 잭 리처가 나타나 소설에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년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사라질 듯합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눅눅한 습기가 묻어 들어오는 걸 보면 다음 주에도 장마가 이어질 듯합니다. 현실처럼 눅눅하고 어둑어둑한 장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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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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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의 애독자가 된 계기는 아마도 시인의 산문집 <마음사전> 덕분이지 싶다. 시인이 정리한 단어들의 의미는 단어 자체의 실질적인 의미를 넘어 시인 자신의 체험과 느낌에서 비롯된 섬세한 감정까지 담아낸 정밀한 사전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매 쪽을 넘길 때마다 감탄을 쏟아내며 읽었다. 시인의 감성과 시선은 이토록 정밀하고 흠잡을 데 없이 적확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이어졌었다. 이와 같은 느낌은 다른 독자들도 대부분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인이 쓴 다른 작품들을 모두 읽었던 것은 물론 시인이 나왔던 유튜브 동영상도 빼놓지 않고 보게 되었다. 시인이 진즉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스토커로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금니 깨물기> 역시 그 연장선상의 일환이었다.


"나는 엄마를 보고 배웠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늘상 주먹을 꽉 쥐며 생각해왔다. 지키려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겨우 얻게 된 것들과 꼭 얻고 싶었던 것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써 엄마처럼은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p.24)


책에 등장하는 여러 꼭지의 산문 중 나는 첫 꼭지인 '엄마를 끝낸 엄마'를 읽으면서 주책없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남존여비의 가부장제 질서가 지배하던 시절에 태어난 시인은 엄마로부터 오빠와 자신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경험하며 성장했고, 이러한 차별이 엄마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들을 거의 다 망각하고 25년 전에 죽고 없는 오빠와 아빠에 대한 기억만 온전히 간직하게 되었을 때, 시인은 자신만 홀로 엄마를 엄마로 기억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엄마에 대한 해묵은 감정을 잊어버리기로 했단다. 요양원에 입소하기로 한 전날 밤, 처음으로 엄마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잤다는 시인은 코로나 시국에 요양원에 입소한 엄마의 모습을 마치 남의 일인 양 아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해서 이제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이 없다. 가끔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엄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자문하면, 그 무엇인가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유가 텅 빈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리움일 뿐이다. 그런 그리움을 엄마를 향해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한다."  (p.20~p.21)


어느 유튜브에서 보았던 시인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중간 지점에서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딱 부러지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어려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깍쟁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고 자랐음직한 시인의 겉모습과 태도를 보면서 나는 내심 시인 역시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했었다. 조금의 빈틈이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는, 야물딱진 시인의 성격은 그녀가 쓴 여러 책의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곤 한다.


"장소라는 말과 공간이라는 말은 엄연히 구별된다. 장소는 시간이 부여해준 가치와 역사가 부여해준 이야기를 함께 담은, 고유한 이름이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영위하는 한 개인의 양태들이 냄새처럼 고스란히 밴 곳이기도 하다. 장소는 유일하고 공간은 보편이다. 장소는 변화를 겪고 공간은 그대로다. 장소는 파괴되지 않지만 공간은 파괴될 수 있다."  (p.61)


이 세상에 자신의 주장을 온전히 남기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시인이 아니라는 걸 나는 김소연 시인을 통해 배운다. 그 목소리가 작든 크든 상관없이, 어쩌면 옳고 그름을 구별할 필요도 없이 오직 자신의 내부에서 뻗어 나오는 하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자만이 시인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음을... 그리하여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겯는 어느 날 비로소 계관을 쓴 시인이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문장이 아니라 맥락이, 맥락이 아니라 노래 비슷한 것이, 노래가 아니라 울먹임이, 울먹임이 아니라 불꽃이, 불꽃이 아니라 잿더미가 비로소 백지 위에 하얗게 쌓인다. 시는 온갖 실의와 실패를 겪어가며 끝장을 본, 한 줌 재인 셈이다."  (p.74~p.75)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때로 어금니를 깨물고 버텨야 할 만큼 힘들고 고달픈 일이겠으나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게 하나의 시였고, 동화였고, 지워지지 않는 전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시인도 아마 그런 시절을 살아왔을 터, 때로는 어금니를 깨무는 것으로도 모자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바들바들 떨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언제나 그런 아득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이라는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현실이라는 아득함에 시간이라는 조미료를 솔솔 뿌려 추억이라는 이름의 짙은 사랑을 어렵게 찾아내곤 한다. 인간이란 어쩌면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순간에 이미 사라져 버린 어떤 소중한 것을 그리워하는 미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고, 다른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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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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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일상을 쉼 없이 살다 보면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처럼 자연을 닮은 맑고 투명한 글이 가득한 책 한 권쯤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우리의 육체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순수함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에 대한 향수도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 편의 시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가슴 절절한 한 편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한 편의 에세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책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이들에게 내린 천형(天刑)! 순수함으로부터의 도피를 도통 용납하지 않는 시대 부적응자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이러한 운명을 나는 독서 애호가 중 한 명으로서 기꺼이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려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서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p.108~P.109)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크리스티앙 보뱅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겠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의 순수함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어느 날 아침 문득 들었다면 그의 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와 같은 생각의 저변에는 보뱅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사유와 자연을 닮은 서정성에 기반하고 있다. 그것은 상업적 작품에만 몰두하는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의 얕은 지식과 일회성의 사유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비교불가의 위로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울림이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전해지는 저릿저릿한 느낌과 원시에 가까운 순수로의 무모한 회귀. 고해성사를 하듯 나는 보뱅의 글을 읽는다.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p.47)


짧은 서문과 아홉 편의 텍스트를 모아 엮은 보뱅의 산문집 <작은 파티 드레스>는 제목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에세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난해함이나 기이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문장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일상의 황폐함에서 오는 순수함으로부터의 거리일 수도 있다. 일상의 피로에 찌들 대로 찌든 우리네 삶이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는 동안 우리의 영혼 역시 자연의 순수함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오고야 말았던 게 아닐까.


"객관적인 눈으로 차분히 행하는 독서가 완벽한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가 핵심에 이르는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는 책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지 못한다. 책에 담겨 있고 당신의 눈과 삶의 저변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반짝이는 진실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 당신의 눈 속, 삶의 저변. 즉 근원에 가 닿는 또 다른 독서만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신 안에 자리한 책의 뿌리로 직접 가 닿는 독서,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독서."  (p.48)


힘들고 팍팍한 현실 탓인지 내 영혼에서도 서걱거리는 모래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게다가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 역시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험서나 자기 계발서 등 실용서 위주의 독서만 할 뿐 문학서적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장마가 코앞인데 현실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영하의 찬바람이 부는 듯한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라고 썼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가난한 삶과 그로부터 오는 고통을 통하여 글도 쓸 수 있고, 자신의 고통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마치 꿈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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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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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이라는 중력에 갇혀 평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나 색깔에 따라 체감하는 중력의 크기는 제각각 다르다. 심지어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각자가 느끼는 마음의 중력은 서로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다. 성장 배경을 비롯한 마음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운동에는 언제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현실을 향해 이끌리는 구심력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꿈과 낭만 혹은 무관심 등과 같은 원심력이 늘 존재하게 마련이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우리가 마음속의 구심력과 원심력 중 어느 한편으로 극단적으로 기울었을 때,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문제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  (p.227~p.228)


소설은 주인공인 안진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딱히 불행할 것도 없지만 별 볼일 없는 25살의 어른이 된 안진진. 그녀의 가족 구성원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며 가산을 탕진하더니 이제는 장기 가출로 생사마저 불분명한 아버지, 제대 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건달질을 일삼으며 조폭 두목을 꿈꾸고 있는 동생 진모, 어쩔 수 없이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전사가 된 엄마. 자신의 인생에 양감이 없음에 늘 우울해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며 자신의 인생에 온 생애를 다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시작된 다짐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두 남자 중 한 명을 결혼 상대자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강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p.195)


주인공이 그렇게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9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결혼과 동시에 달라진 엄마와 이모의 극단적인 삶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우절인 4월 1일 한날한시에 태어난 엄마와 이모는 거짓말처럼 4월 1일 만우절에 합동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운명은 그때부터 정 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량처럼 술과 낭만을 찾아 밖으로만 맴돌고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던 안진진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이모부는 세상의 중심이 오직 자신의 가족인 성실한 가장이었다. 게다가 성장 과정에서 작고 큰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진진과 동생 진모에 비해 사촌인 주리와 주혁은 말썽 한 번 없이 반듯하게 성장하여 미국 유학길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이모는 가슴에 늘 채울 수 없는 휑한 빈자리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주인공인 안진진을 찾았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173)


안진진이 예비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두 남자도 성격과 외모 등 모든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김장우에 비해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하는 나영규.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낭만적인 기질이 강했던 안진진은 나영규보다 김장우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러던 와중에 동생인 진모가 구속된다. 죄목은 살인미수. 그가 사귀던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를 진모가 자신의 조직원과 함께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였다. 한동안 평안한 날들을 보내던 엄마는 진모의 구명운동에 전력을 다한다. 김장우에게 마음이 기울었던 주인공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나영규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별을 결심했지만 치매와 중풍으로 반송장이 된 채 집에 돌아온 아버지로 인해 이별 통보는 무기한 연기되고 만다.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 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p.268)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은 소설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 일어난다. 마냥 행복한 듯 보였던 이모. 이모는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에 '모든 불행을 떠안은 것 같아 늘 불안해 보이던 엄마의 삶이 부러웠다’고 썼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불행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동동거리며 종종걸음을 쳐야만 했던 엄마. 크게 걱정할 것이 없어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늘 우아하고 멋진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듯 보였던 이모. 그러나 삶의 이면에는 타인이 알 수 없는 마음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p94~p.95)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현실의 구심력이 우리의 팔목을 비틀 때마다 꿈과 이상을 좇아 저 멀리 달아나고도 싶고, 세상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현실을 향해 빠르게 젖어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처럼 현실이라는 마음속의 중력을 가볍게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이 주는 익숙함과 안온함에 나른한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그 중간에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이 존재할 뿐이다. 뭔가 궁리를 하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려는 노력이 없다면 삶이란 다만 관에 누운 채 무덤에 묻히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생각이 없는 조용한 삶을 간절히 원하는 건 과연 어떤 연유인지...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27)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귓가에 쟁쟁한 오후.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저절로 손그늘을 만들게 되는 초여름의 휴일 오후를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벗어날 것인가 아니면 강하게 빨려 들어갈 것인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주인공의 각성은 께느른하게 번지는 오수(午睡)의 유혹에 삼켜진 지 오래.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꺼풀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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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감사해
김혜자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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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나 경험 탓이겠지만 연예인의 저작을 잘 읽지 않는다. 잘 읽지 않는다기보다 거의 읽지 않는 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인기를 등에 업은 연예인이 자신의 과거를 왜곡, 윤색하여 홍보용이나 돈벌이용으로 책을 출간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책에 대한 지나친 경외심을 지닌 까닭에 책을 깔보는 듯한 그와 같은 행위가 마음에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나는 그동안 일부를 전부인 양 오해하는 일반화의 오류 속에서 나 스스로를 묶어두었음을 깨닫는다. 김혜자의 에세이 <생에 감사해>를 읽어가면서 나는 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고, 고집스레 지켜왔던 나의 편견과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뒤에서 희생한 다른 이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없습니다. 내가 남편에게도 잘했고,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좋은 엄마였고, 그리고 연기도 빼어나게 잘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배우로서 살아온 것 말고는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여자였습니다."  (p.221)


평생 동안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매진했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저마다의 확신과 철학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연예계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나는 그것을 간과했었고, 그들의 화려한 삶 뒤에 숨겨진 갖은 구설과 도덕적 결함과 텅 빈 허무를 지레 짐작했었다. 말하자면 나는 모든 연예인의 삶이 껍데기뿐인 공허한 것이라고 내 멋대로 재단했던 것이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이처럼 연예인을 뭉뚱그려서 경시하는 데는 전통적인 유교 제도에서 기인한 바가 크겠지만 반상의 계급구조가 사라진 현대에 있어서 그보다는 연예인에 대한 질투와 시기의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픈 오스카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몸이 성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며칠을 살더라도 얼마만큼 가득 차게 사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삶은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240)


사실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예능이나 스포츠에 열광하지도 않는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 정신을 놓고 빠져들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텔레비전과는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는 내가 '김.혜.자'라는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는 까닭은 지난 60년간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배역을 맡으면 '그 사람'이 되어야만 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수십, 수백 번 몸부림치며 연기했다는 그녀의 고백처럼 어떤 배역이든 혼신의 힘을 다했던 그녀의 연기에 매료되지 않을 이가 과연 누구이겠는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 까닭 없이 우울하고 절망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았습니다. 책을 통해서도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은 부조리 연극의 배우들입니다. 단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절망감과 우울증 속에서도 스스로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인간입니다."  (p.56)


자살을 꿈꾸며 수면제를 사 모으던 한 소녀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웃고 울리는 국민 배우가 되고 인기 스타의 자리를 유지한 채 수십 년을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누구나 매 순간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기적을 창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러나 정작 기적을 만드는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을 일구는 일련의 과정임을 깨닫는다면 현실의 생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배우 김혜자는 여러 가상의 삶을 현실로 살아보면서 그 모든 게 기적임을 본인 스스로의 삶 속에서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끝나는 날까지 단정하게 살리라' 책상 위에 있는 달력에 써놓고 생활한다는 그녀는 우리의 이미지 속에서는 언제나 훌륭한 배우이자 연기자로만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은 한 가정의 주부이자 생활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미처 알지 못했을 내밀한 이야기부터 배우로 살아오면서 그녀가 맡았던 여러 배역과 감독들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 등 배우 김혜자의 삶 전반에 대해 들려주는 이 책은 내가 생각하던 어느 연예인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배우라는 직업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었던 장인(匠人) 김혜자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해준 그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김혜자의 고백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는 이 책은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으로 읽힐지도 모른다. 인생의 황혼녘에 선 대배우 김혜자의 삶이 편안하고 길게 이어질 수 있기를 한 사람의 팬으로서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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