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실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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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다시 말하면'이라고 운을 떼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설명에 대한 나의 이해가 무척이나 절실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책이나 그런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요. 너무 전문적이어서 전문가인 누군가의 설명이 따로 필요하다거나, 설명이 부족하여 저자의 별도 설명이 필요하다거나, 나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책은 한낱 문자 텍스트에 불과할 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책을 먼저 읽고 이해한 또 다른 누군가의 긴 설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별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책도 더러 있는 법이지요. 예컨대 리 차일드의 소설이 그런 부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분량은 다소 늘어나겠지만 순간순간의 세세한 설명과 묘사가 덧붙여지는 까닭에 나처럼 어눌하고 어리벙벙한 사람도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처는 길이 왼쪽으로 굽어지는 지점이 다가오는 걸 봤다. 100미터쯤 앞이었다. 큰 도로와 비스듬한 각도로 만난 그곳은 마지못해 그런다는 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런 후 계속 뻗은 길은 사과농장을 관통했다. 그는 그쪽으로 계속 걸었다. 절반쯤 갔을 때 거대한 견인 트럭이 지나갈 수 있도록 풀밭인 갓길로 올라서야 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그 트럭은 밝은 빨간색에 흠집 하나 없이 깔끔했다."  (p.202)


내가 중학생이던 무렵 무협지에 한동안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무협지라는 게 말이죠 모든 무협지에 양념처럼 자주 등장하는 기본 단어들과 지명들만 알면 무협지는 그야말로 유아용 만화책에 버금갈 만큼 쉽디쉬운 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협지에 빠져든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게 부정적이고 시큰둥하게만 보였던 남자 중학생의 눈에 무협지는 자신의 무료한 시간을 채워줄 꽤나 괜찮은 도구였던 셈입니다. 리 차일드의 소설은 어쩌면 중학생 시절 내가 읽었던 무협지의 재판이거나 서양판 무협지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와 같은 소설을 탐닉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지만 나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인 걸 어쩌겠습니까.


"그는 총을 겨눴다. 그녀는 쏟아지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그걸 뚜렷하게 봤다. 그녀는 시청했던 TV 드라마들에 나온 그 총의 브랜드를 알아봤다. 글록. 확실했다. 상자 모양으로 오밀조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앞부분의 총신은 새틴으로 마무리돼 있었다. 정밀한 부품. 가격이 1천 달러는 돼 보였다.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패트리샤 마리 선드스트롬, 25세, 칼리지 2년 재학, 제재소 노동자. 술집에서 만난 감자 농사꾼하고 짧은 기간 행복했다. 평생 예상했던 것보다 더 행복했다. 그녀가 알던 행복보다 더 행복했다. 그를 다시 보고 싶었다. 딱 한 번 더."  (p.513)


리 차일드가 쓴 잭 리처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주인공 잭 리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입니다. 어떤 무협지의 주인공도 정의의 반대편에 선 자에게 쓰러지거나 무릎을 꿇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10호실>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잭 리처는 메인에서 샌디에이고로 가던 도중 낯익은 지명에 이끌려 잠시 샛길로 빠지게 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스탠 리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그곳은 바로 뉴햄프셔의 래코니아였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잭 리처는 원치 않았던 사건에 이리저리 휘말리게 되지만 헌병으로 복무했던 그의 화려한 경력과 녹슬지 않은 실력 덕분에 위험천만한 상황을 가뿐하게 넘어서곤 합니다.


'희망은 최선을 기대하며 품는 것이고 계획은 최악을 대비해서 세우는 것이다.'  (p.176)


대부분의 잭 리처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작가의 좌우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인들을 상대함에 있어 무자비한 면모를 보여주는 잭 리처의 활약은 모든 걸 법과 제도에 의지하는 현대의 독자들에겐 한 줄기 청량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의 리뷰를 마침에 있어 한 가지 개인적인 소원을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자유를 사랑하고 틈만 나면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는 한 사람, 비록 겉으로는 정의의 사도인 양 행세하지만 세상의 모든 악이란 악은 모두 제 손아귀에서 주무르는 듯한 그 사람을 잭 리처가 나타나 소설에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년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사라질 듯합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눅눅한 습기가 묻어 들어오는 걸 보면 다음 주에도 장마가 이어질 듯합니다. 현실처럼 눅눅하고 어둑어둑한 장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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