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작가 이문열을 생각할 때면 짠한 생각이 먼저 든다. 보수에도 물론 여러 갈래가 있어서 그는 그 중 가장 야만적인 보수에 속한다고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전한 보수를 지향하는 일반적인 보수주의자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에게는 분명 '아무런 억압 없이 자신의 의견이나 사상, 주장 따위를 외부에 나타낼 수 있는 자유', 즉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근거도 없는 논리의 비약이나 의도적인 폄훼조차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는 그런 경우조차 종종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2003년에는 한나라당의 공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2016년 12월 2일자 조선일보에 '보수여 죽어라, 죽기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촛불집회를 북한의 '아리랑 축전'에 비유함으로써 구설수에 올랐다. 그의 표현은 이러했다.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분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일본 경도제대를 졸업하고 남로당 간부로 역임했던 이문열 작가의 아버지 이원철을 감안할 때 그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권력 앞에 비굴할 정도의 절대 충성을 보여야 했을런지도 모른다. 6·25가 발발했던 당시 서울대 농대 관리자였던 이원철은 9·28 서울수복 당시 만삭의 아내와 어린 4남매, 그리고 늙은 어머니를 남한에 남겨둔 채 월북하여 북한의 농업연구소에서 육종학자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이문열 작가에게 북한은 자신의 아버지를 품어준,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는 더욱 광적으로 북한을 비난하고, 남한 정권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야 했을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가엾지 않겠는가.

 

"죽기 좋은 계절이다. 참으로 많은 죽음이 요구되고 하루라도 빨리 그 실현이 앞당겨지기를 요란하게 기다리는 시절이다."로 시작되는 그의 칼럼은 사실 별 의미도 없다. 부친의 월북으로 인해 박정희 정권에서 받았을 연좌제의 피해를 막아내기 위해 또는 어떤 수세미로도 지워지지 않는 빨갱이 낙인을 지우기 위해 그동안 그는 발악을 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광신적인 충성서약이 그를 반공의 망령에 덧씌워진 채 살아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영혼이 없이 껍데기만 남은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그에게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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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6-12-0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픔을 해학으로 받아낸 이문구와는 참 대비되는 인간입니다. ㅠㅠ

꼼쥐 2016-12-05 15:32   좋아요 1 | URL
이문열이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말은 이제 거둬야 할 것 같습니다. 창피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