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가 타인을 의심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는 걸 확인한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여기에 어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는 누군가의 선의를 먼저 의심부터 했었고 속으로는 내심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속이려 들어.'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민첩함이랄까, 영민함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치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지 않을 셜록 홈즈의 머리와 LTE급의 눈치를 지닌 듯 행동했던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경계하기는커녕 똑똑하다거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경향이 있어 온 듯합니다. 그런 추세는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왔고 타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순진하다거나 시대에 한참이나 뒤처진 사람쯤으로 치부하기도 하지요. 그것은 내가 속한 이 사회로부터 배운 일종의 학습효과였습니다.

 

어제는 위안부 협상에 대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한일간의 실무자급 협의가 있었던가 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협상 결과물을 두고 정부는 국익을 위해 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평하곤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꼼수 정치, 거짓 논리에 당해 왔었습니다. 그렇게 학습된 결과는 이제 개인간의 극심한 불신으로까지 확대되었고 말이지요. 사드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또는 미국의 주장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정부의 모습을 '국익'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함으로써 국민을 한껏 우롱합니다. 국민의 안전은 뒷전인 채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리기 위함이었을까요? 어제는 하루 종일 유명 연예인의 열애 기사가 전 국민의 눈과 귀를 흐려 놓았습니다.

 

꼼수나 임시변통의 처세가 단기적으로는 국익에 부합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칙이 없는 꼼수의 정치는 결국 제 나라의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타국으로부터의 불신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오늘의 바깥 풍경은 마치 가을의 한낮인 양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대기중의 습도를 3할쯤 걷어낸 듯한 모습입니다.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뜨겁지만 말입니다. 계절은 시나브로 가을로 향해 가고 있나 봅니다. 여름을 견뎌온 모두들, 폭삭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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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8-1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의 글쓰기특강>에서 ˝글쓰기는 무릇 용기있어야 한다˝는 구절을 읽었어요. 지금 읽고 있는 무라카미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중에서는 ˝설령 네거티브라고 해도 분명한 반응을 이끌어내는게 더 좋을 것이다˝란 구절도 저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장이구요. 꼼쥐님의 이 글은 제목부터가 너무 멋지네요~특히나 아무렇게나 규칙없이 굴곡져 있는 퍼즐이 결국엔 빈틈없이 짜맞추어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듯이, 글을 마무리짓는 능력도 한편의 시처럼 멋져요~
이거 적다보니 꼼쥐님의 글에 대해 제 멋대로의 잣대로 평하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 오해는 말아주시구요^^항상 고정적인 독자라 또 한번 배우고 간다는 팬심을 담았을 뿐입니다♡

꼼쥐 2016-08-13 14:24   좋아요 1 | URL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남겨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사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글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때로는 블로그에 올린 자신의 글이 부끄러워 약간의 수정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읽는 느낌은 많이 달라지더군요. 전업작가라면 아마도 자신의 글을 끝없이 고치고 또 고치고 하겠지요. 저는 성격이 급해서 한 번에 후다닥 쓰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니 글솜씨라고 할 것도 없는 글이 늘 그모양으로 발전이 없나 봅니다.

2016-08-11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