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이 된 지인과 우연히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연단에 선 강사와 한 명의 방청객으로, 조명을 받는 연주자와 어둠 속에 묻힌
관객으로, 또는 TV 화면에 존재하는 출연자와 존재하지 않는 시청자로서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은 낯선 이의 방문처럼
어색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아닌 각자의 개별적인 영역에서 살아왔던 시간의 장막으로 인해 한때 우리가 알고 지냈던 과거 기억의 출현은 느닷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뜨거운 감자가 손에 쥐어진 것처럼 우리를 한동안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대게 합니다.
그때의 어색함이란 부러움이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시기나 질투의 느낌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개별적인 삶은 어떤 층위를 구분하여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단절된 시간에서 오는 생경한 느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모호한 관계, 시간의 양적 변화를 어쩔 수 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부담 등으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현재라는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배치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 뿐입니다.
찰나에 그친 눈빛 교환과 그것만으로도 서로를 확인하는 데 부족하지 않았던 감지, 그리고 어찌할 바 모르는 시선의 흔들림. '어떻게
지내냐?' 는 물음과 '그저 그렇지 뭐' 하는 대답은 어색함을 경감시켜보려 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간의 암전마저
더해져 서로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동안 이어지지 않았던 시간의 간극을 애써 메워보려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색한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려는 발길을 애써 붙잡으며 우리는 말합니다.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
그 '언제'는 허공에서만 맴돌 뿐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음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됩니다.
모임이 잦은 요즘, 거리에는 눈송이처럼 빈말만 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