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충남 공주의 한 교회 수양관에 차량이 돌진하여 1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치는 큰 사고가 있었다. 사상자 대부분이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한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이 사고를 두고 고소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 많이 놀랐다. 어떻게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안타까워하기는커녕 그런 생각이 먼저 들 수 있었을까? 북한 아이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하더라도 딱하게 여겼을 텐데 말이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밑바탕에는 일부 개신교 관계자의 극단적인 편가름이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시복식 행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톨릭과 교황 제도에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 단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광화문 광장 근처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집회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로마 카톨릭은 정식종교가 아니라 이단이며 이들에게 광화문 광장을 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고 너무 예우를 해주는 것"이란다.

 

게다가 어제는 개신교 단체에서 그토록 싫어한다는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내한공연도 있었다. 다행히도(?) 반대집회가 열렸던 것은 아니지만 공연이 있기 오래 전부터 SNS를 통한 대대적인 반대운동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일부 개신교 관계자의 돌발 행동은 이제 그 도를 넘어선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 가시화된 반유대주의적 움직임과 맞물려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12년 유럽연합(EU)이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6%가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하지 않던가.

 

사실 집단 이기주의와 폐쇄성은 양날의 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내부적으로는 조직원의 결속을 다지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외부적으로는 다른 구성원과의 소통을 차단하여 외부 조직으로부터 소외되고 때로는 분노와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극단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략은 주로 권력 쟁취를 제1의 목표로 삼는 정당에서 선호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 개신교 집단에서도 같은 방법을 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본다.

 

어찌 보면 정당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복지보다는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는 것이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대선 이전에 새누리당이 내세웠던 복지와 관련된 여러 공약이나 경제 민주화 공약들은 정권을 잡자마자 헌신짝처럼 내팽겨쳤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지지세력에게는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장 시급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얻기보다는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 우선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영심을 품게 마련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희생(막걸리나 고무신, 또는 기초 연금을 받지 못한)으로 국가의 정체성(반공 이데올로기)을 세웠다는 허황된 착각을 하게 된다. 즉 대(국가)를 위해 소(복지)를 희생했다는 뿌듯함마저 품게 된다는 얘기다. 비록 오늘 당장 한 끼의 식사도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아니라고 우길지 모르지만 인간의 심리 저변에는 누구나 허영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야당도 그와 같은 정당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될 것이 아니냐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이데올로기는 반공이념인데 그것은 이미 새누리당이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야당에게는 그들만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복지 이데올로기가 있지 않느냐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복지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없다. 물론 통합진보당은 그들만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데 문제가 있다.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이데올로기를 누가 선점하느냐의 문제는 선거의 성패와 직결된다. 경제나 복지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개신교 집단도 그와 같은 방법론을 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예컨대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같은 극단적 구호는 외부에서 바라볼 때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개신교 신도들에게는 조직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신도 개개인에게 이데올로기와 같은 대의명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은 적어도 종교에 있어서는 그 한계에 이른 듯하다. 외부 세력의 반감이 날로 심해지고 그에 맞설 수 있는 특별한 대비책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낙관적인 상황은 전국민을 개신교 신자로 받아들임으로써 반대세력을 없애는 것인데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인지... 개신교 신자의 점진적인 감소추세에 있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는 외부 세력과 소통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게 상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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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1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톨릭 신자로서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반대집회를 연다는게 참....
전 개신교도 불교도 다 존중하는데 말입니다.

꼼쥐 2014-08-25 22:31   좋아요 0 | URL
저도 세례를 받았으니 카톨릭 신자이기는 하지만 불교든 이슬람교든 배척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아요. 종교 때문에 평화를 깬다는 것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 사람들 생각은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