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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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공포는 호기심을 부풀리는 습성이 있다. 예컨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에 마을 인근의 한 기업에서 매주 지역주민을 위한 영화상영이 있었다. 마을 아이들은 왕복 한 시간도 넘는 길을 걸어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시작된 영화는 늘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나곤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이들은 어린 아이들을 가운데에 두고 대열의 앞쪽과 뒤쪽에는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를 세웠다. 그렇게 줄나래비를 서서 걷는 산길은 유난히 무서웠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자 했던 결심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호기심만 점점 부풀어 올랐고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면 묵묵히 걷는 형들과 캄캄한 어둠만이 내 발끝을 좇고 있었다.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갔고 비례하여 호기심도 커져만 갔다. 마음 한켠에서는 공포와 호기심이 셀 수도 없이 다투었고 끝내 이기는 쪽은 언제나 호기심이었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인간의 잔인성에 있다. 잔인성의 강도가 더하면 더할수록 공포심도 증가하지만 결국, 가슴 속에서는 외면했던 시선을 돌리게 할 호기심도 시나브로 함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비록 역사적 진실 앞에서 치를 떨지라도 그 실체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편하게 잠들 수조차 없다. 공포와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 마을 형들의 뒤꽁무니를 번번이 따라 나섰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주 대하기 싫은 어둠 저편의 공포를, 실체를 확인하고자 하는 내면의 호기심이 끝내 삼켜버린 듯한 결과물.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나는 이 소설이 갖는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그날의 실체와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었었다. 그러나 외면하고자 했던 처음의 결심은 나의 호기심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소설은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동호는 누나와 함께 문간채에 세들어 살던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동호는 결국 진압군에 의해 도청에서 살해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정대의 이야기는 죽어 혼령이 된 사자(死者)의 말이다. 군인들이 트럭에 실어 날랐던 시신은 탑처럼 쌓이고 정대의 혼령은 갈 곳을 잃고 헤맨다.

 

"가장 먼저 탑을 이뤘던 몸들이 가장 먼저 썩어, 빈 데 없이 흰 구더기가 들끓었어. 내 얼굴이 거뭇거뭇 썩어가 이목구비가 문드러지는 걸, 윤곽선이 무너져 누구도 더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되어가는 걸 나는 묵묵히 지켜봤어." (p.59)

 

당시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끔찍하다.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 남은 자들의 죽음보다 더 지독한 삶의 모습들을 작가는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다. 가뭇없이 사라져 가는 역사의 진실들을 30년도 더 지난 이 시점에서 겨우 바라보는 나 자신의 비겁과 발포를 명령했던 살인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가 나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에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 있었던 김은숙, 봉제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후 광주의 어느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 상무관에 합류한 임선주,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진수, 그리고 막내 아들을 잃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호의 어머니... 김은숙은 대학을 포기하고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자신이 담당하던 원고의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 서대문 경찰서로 끌려가 뺨을 맞는 은숙, 5.18 직후 경찰에 연행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던 선주.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p.166 ~ p.167)

 

도청에 진입했던 진압군에 의해 연행되었던 김진수도 갖은 고문을 받고 출소한 후 결국 자살하였다.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들을 세밀하게 기록했던 작가 역시 공정성을 잃고 이따금 호흡이 가빠졌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씀으로써 살아 남은 자의 비겁을 용서 받았을까? 인간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잃은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내란수괴와 반란수괴로 재판을 받았던 전두환을 유엔 전범재판소에 세우지 않았던 까닭을. 전쟁 범죄자보다 더 잔인했던 그를 국내법으로 잠시 재판정에 세우고 형식적인 형을 선고하고 쉽게 풀어줬던 이유를 말이다. 한때 고문 기술자로 불렸던 이근안은 "고문은 애국이고, 신문은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미친 놈들과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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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돌이 2014-08-11 15:35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이달의 당선작^^

꼼쥐 2014-08-12 18: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남희돌이 님 ^^

조금 부끄럽네요. 잘 쓰지도 못한 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