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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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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있는데 옆 좌석에는 중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 아이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내장된 동영상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어쩌면 그 아이는 지금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근 독립된 자신의 방으로 착각했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가 처음 보는  그 아이를 중학교 1학년이라고 인정했던 이유는 너무 서둘러 중학생이 되는 바람에 미처 버리고 오지 못한 초등학교 시절의 장난기가 그의 얼굴에 두서너 개 붙어 있었고, 코밑에는 이제 막 자란 듯한 콧수염이 어린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드폰을 끼고 있었지만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나는 좀처럼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사적인 의식 세계를 침범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였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어깨를 살며시 두들겼다.  그리고 평소에 내는 목소리의 한 옥타브쯤 낮춘 낮은 목소리로 컴퓨터의 소리 좀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동전을 구걸하는 어느 거리의 노숙자를 보는 시선으로 내 얼굴 어디쯤에 한동안 머물다가 적선이라도 하는 양 소리를 줄여주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미처 다 하지 못한 :감광석 에세이>이다.  나처럼 감수성이 메마른 사람조차 어쩌다 그의 노래를 들을라치면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의 고요를 떠올리게 된다. 오늘 내가 저질렀던 한 아이와의 작은 풍파를 생각하면(이런 일은 내게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지만) 가수 김광석은 지구가 아닌 딴 세상에 살다 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우리가 겪는 세상은 이토록 거친 곳인데, 그 거칠고 험한 모습을 은행에 비치된 파쇄기처럼 곱고 잔잔하게 뽑아내려면 그의 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튼 김광석의 노래는 입자가 곱다.  나는 오늘 그 고움의 기원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  가수로서의 그의 목소리에서 비롯된 듯도 하고, 지난했던 그의 삶에서 비롯된 듯도 하고, 급기야는 그가 바라보았던 세상에서 비롯된 듯도 하다고 생각하였다.  세상의 거친 풍경을 그 작은 체구로 그렇게 곱게 갈아내려면 그는 어지간히도 힘에 부쳤으리라.  오선지에 나붓나붓 그려지는 음표들이 적잖이 힘겨웠으리라.

 

<미처 다 하지 못한 :감광석 에세이>는 그 힘겨움의 무게를 짐작하게 했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남겼던 일기와 메모, 편지, 노랫말 등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때 묻은 운동화는 끝없이 삶을 밟아가고 있다.'고 썼던 어느 날의 기록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읽는다.

 

"나도 서른을 넘어설 무렵 심한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이십 대에 가졌던 기대나 가능성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지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허무가 몰려왔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서른은 인생의 전환점이자 처음으로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p.100 ~ p.101)

 

가수로서의 김광석이 있기 전, 그러니까 이 책의 1부에 실린 그의 기록들에서 음악에 대한 열망과 궁핍했던 생활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고, 먹고, 사랑하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삶의 질료들은 비슷할지라도 완성되는 그 이미지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고, 환영과 같은 그 이미지에 따라 우리는 서로의 삶을 평가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는 어느 쪽이었을까?

 

"하루의 아침을 바쁘게 시작하여 하릴없는 오후를 지나 멍청한 내 눈 위에 눈이 내렸다.  땅으로 내리는지 하늘로 오르는지 분간하기 힘든 눈이 자꾸 흩날리며 세상을 촉촉이 적셨다.  예전엔 그래도 여기저기 조금이나마 하얗게 쌓이더니 오늘 눈은 전혀 쌓일 기미조차 없이 땅에 닿는 순간 물로 변했다.  눈답지 않은 눈, 별 싱거운 눈.  나 같은 눈이 땅으로 내리는지 하늘로 오르는지 자꾸 흩날리며 아무 생각 없는 무료한 오후 한때를 스쳤다."    (p.39)

 

2부에서는 그의 대학 시절과 큰형님의 죽음으로 인해 짧아졌던 군 시절, 딸을 자신의 손으로 받았던 경험, [사랑했지만]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등병의 편지] 등의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딸이 태어나고 바빠진 일정 속에서 그는 몹시 힘들어 했었던 듯하다.  마흔이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던 그는, 환갑 때는 연애를 하고 싶다던 그는 그 나이에 이르지도 못한 채 너무도 쉽게 우리 곁을 떠났다.

 

"내 딸이 태어날 때 처음 본 얼굴은 의사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딸을 직접 받아냈기 때문이다.  의사는 출근 전이었고 간호사는 무슨 준비하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내가 아이를 받아냈다.  아주 놀라웠다.  아!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그 놀라운 광경은 괴기영화보다 더했다.  참 신기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게."    (p.126)

 

3부의 소제목은 "꽃이 지네 눈물같이 -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래로 화하지 못한 노랫말들을 모은 것이다.  언젠가는 노래가 되어 그의 목소리로 되살아났을 그 노랫말들은 쓸쓸하다 못해 슬프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는 버려진 운동화처럼 그렇게 어색하다.

 

"산허리 돌면 굽이쳐 나를 부르고

 시냇가에 구르던 돌처럼 나도 구르고

 내가 나인지도 모르고 굽은 길만 탓했지

 내가 나인지도 모르고 모르고 모르고"    (p.239  '하늘을 쳐다보며' 중에서)

 

문학이든 음악이든 삶의 저 깊은 심연에서 건져올린 듯한 것들에는 깊은 울림이 있게 마련이다.  비록 그런 삶을 사는 당사자는 외롭고 쓸쓸할지라도 그 글을 읽고, 그 노래를 듣는 우리들은 행복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추억하면서 세상의 풍파를 잊는다.  아름다움은 결국 누군가를 사랑함이다.  사랑이 깊었던 가수, 김광석이 그리운 이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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