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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워지곤 한다.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어 보이는 요즘의 아이들이 내 얘기를 들으면 '그게 뭐 부끄러워 할 얘기예요.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이야기 아닌가요?'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책에 빠져 살았던 학창 시절이 때로는 부끄럽게 여겨지니 말이다.

 

초등학교를 포함하여 중,고등학교 시절, 어쩌면 대학 시절까지의 내 삶은 책과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책이 전부였던 생활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은 그런 나를 늘 대견해 했고, 자신의 아이들과 비교하며 부러워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미처 몰랐을 수도 있는 시시껄렁한 지식을 말할라치면 친구들은 모두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 탓인지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졸업 이후에도 간혹) 줄곧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도맡아야 했었다.

 

무엇 하나 변변한 것 없이 가난하기만 했던 나였기에 누군가의 인정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책에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의 고민을 상담할 때마다 괜스레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밥맛'이고 '왕재수'일 수도 있었던 나에게  보여준 친구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는 또래 집단에서의 내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때 약간의 오만과 허세를 부렸을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기고만장했던 내가 독서의 '무용론(無用論)'에 대하여 '그럴지도......'하면서 수긍 아닌 수긍을 하게 된 계기는 강원도의 한 사찰에서 만났던 스님 때문이었다.  스님은 내게 다짜고짜 정말 필요한 책이 아니면 독서를 자제하라고 권했다.  그 시간에 명상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독서를 권하면 권했지 독서를 자제하라는 말은 여지껏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책을 고르는 데 어느 정도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세이집 <책으로 가는 문>을 읽으며 나는 그때의 일을 생각했다.  나는 사실 누구로부터의 독서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었고,  책을 살 돈도 없었으므로 눈에 띄는 책이면 가리지 않고 읽었었다.  이 책의 저자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이자 세계인이 예찬하는 ‘상상력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던 세계 명작 50권을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추천한 책마다 짤막한 독후감을 덧붙여 놓았는데,『어린 왕자』 『삼총사』 『서유기』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저는 『이와나미 소년문고 50권』소책자를 쓸 때 한 독자를 염두에 두고 ㅆ섰습니다.  어느 초등학생 친구입니다.  그가 읽는다면 뜻이 전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실은 지금 그 소년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추천했거든요.  굉장한 집중력이 있는 아이인데,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제가 일하는 곳에 놀러 오곤 했습니다.   ---(중략)--- 그런 그 아이가 지금은 도서관의 책을 굉장한 기세로 닥치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건너뛰면서 대충 읽는 것이 아니라 내용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설픈 것을 추천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건 승부의 세계입니다."    (p.133)

 

2010년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었다고 하는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즐겨 읽어온 소년문고 가운데 손수 50권을 골라 세 달에 걸쳐 다시 읽으며 차분히 정리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의 2부에서 자신의 독서 체험을 소개하며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서 느끼는 독서 경험을 술회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심심할 틈이 없는 요즘의 세대에게도 책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쇠퇴했다 해도 여전히 인쇄물이 쏟아지고, 강요하는 듯한 텔레비전과 게임과 만화가 아이들 영혼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명 같은 음악도 흘러넘칩니다.  이만큼만이라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겠지요.  아무리 그렇게 해도 허사일 때가 올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156)

 

저자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의 관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기술이나 문명의 발달은 육체적 편리 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악영향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 원천적으로 생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인간의 영혼보다는 육체적 편리를 중시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가까운 미래에 황무지와 같이 황폐화된 영혼의 소유자들이 우리가 사는 지구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나의 아들도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럴 때 나는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떠올라 피식 웃곤 한다.  그렇다고 아내나 나나 '이 책 읽어라.  저 책 읽어라.'하고 간섭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내는 가뜩이나 나쁜 아들의 시력을 염려하여 책을 읽는 것을 가끔씩 말리는 편이다.  요즘 아들은 아르센 뤼팽의 소설에 빠져 있다.  저자가 말했 듯이 독서의 경험을 통해 아들도 자신에게 중요한  한 권의 책을 만날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p.141)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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