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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나는 '십년병'에 걸렸다. 얼마나 생뚱맞은 병명인가? 그 '십년병'이란 게 증상이 어찌나 고약하던지 시도 때도 없이 울적해지고, 하릴없는 사람처럼 서성이게 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시선을 모으지도 못한다. 서른에도 그랬고, 마흔에도 그랬다. 이건 순전히 내 탓이 아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주기에 나 자신도 세뇌되다시피 물든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어려서부터 뼛속까지 깊게 병이 든 것을.
마흔이 넘으면서부터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노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깊은 수심에 빠져 한숨을 내쉬곤 했다. 딱히 대책도 없으면서(어쩌면 처음부터 대책은 숫제 없었거나 익히 알고있으면서도 모른체 했을 터였다) 일부러 지어낸 고민을 두고 두어 시간 술잔을 기울였다. 그럴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결론처럼 내놓는 말이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 뭐'한다. 얼씨구나 '농사나'라니. 그들에게 농사는 태어날 때부터 뚝 떨어진 기술이거나 언젠가 책 속에서 읽었던 어줍잖은 낭만이렷다. 하기사 그런 낭만은 언제나 별보다 더 먼 거리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닿을 수 없는 먼 것이라도 한번쯤 욕심을 내는 일이야 뭐 어떨까.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다 버리고 시골로 내려간 사람들을 보면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사실 우리네 같은 도시내기들은 '도시'라는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돈 때문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의료나 문화 때문에...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죽을 때까지 도시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기에 넋두리 삼아 내뱉는 말 속의 시골은 어릴 적의 추억이나 닿을 수 없는 희망의 동의어 쯤으로 들린다.
장석주의 <마흔의 서재>는 나의 꿈처럼,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의 꿈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러움만 쌓인다. 호수와 버드나무 군락이 내려다보이고 고라니와 족제비가 수시로 출몰하는 산자락 아래 고추밭을 밀고 집을 짓고, 삽살개를 키우며 산다는 작가는 도시내기에게는 꿈이요, 로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텃밭에는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와 앵두나무를 심고, 뜰에는 모란과 작약과 영산홍을 심었으며, 해마다 대나무를 구해다 심고,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기르며 수련을 키웠다니... 그렇게 열세 번의 가을을 보내며 마음공부 삼아 노자와 장자를 읽고, 물을 바라보며 시를 쓰고, 오솔길도 걸으며 명상을 하고...
지천명의 작가는 마흔이 되는 후배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고 살아갈 날들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책 속에서 지혜를 찾으라는 뜻이다. 3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매일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작가에게 독서는 삶이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였을 터였다. 그러나 돈과 실용을 찾는 마흔의 현대인은 인생의 청맹과니요, 삶의 천둥벌거숭이가 아닐 수 없다. 작가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삶은 이제 겨우 반을 지나쳤을 뿐이다. 남은 날들을 후회없이 살아가기 위해 마흔엔 그 어느 때보다도 서재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그 지적 공간에서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구에게 시를 쓰고, 무엇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책을 통하여 일생의 멘토를 찾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사색 속에 자신을 유배하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찾고 목표에 집중하며 늘 깨어있는 삶. 누군가를 탓하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며, 가진 것을 나누고,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가꾸는 노력. 작가의 당부는 끝이 없을 듯하다.
"예술가들은 고요와 고독을 좋아하는 족속들이다. 관습에 길들여진 '개'들의 세상에서 끝끝내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늑대'로서 살아가는 자들이 예술가이다. 그들은 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단독자의 삶을 꾸리고, 그런 삶의 태도를 하나의 본질로 고착시키는 재능을 보인다. 그들은 무리에서 내쳐지는 것을 감사하고 불행을 지복으로 삼는다. 우리가 배워야 헐 것은 무리에 감염되지 않는 것, 오히려 단독자로서 무리를 감염시키는 바로 그 재능이다." (P.309)
내가 매 십 년마다 '십년병'을 앓았듯, 나는 내가 속한 무리에게서 삶을 배우고 감염되었고, 내가 아닌 그 누구로서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앓이'에서 벗어나려 한다. 나를 비우고 그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 한다. 텅 빈 고요가 삶의 궁극으로 이어져 있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