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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는 숙명적으로 피상적인 현실과 삶의 뒤켠에 존재하는 진리의 중간쯤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진리탐구에 깊숙이 개입해서도 안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여기에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컨대 소설가가 일반 회사원처럼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일정한 룰을 따른다면 대다수의 일반인과 하등 다를 게 없게 되고 그런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다 보면 보편적 인간의 삶을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소설가의 입장에서 더 이상 그의(또는 그녀의) 글은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은 그저 그런 글이 되고 만다.  어쨌든 숲 속에서는 숲을 볼 수 없으므로.  나는 가급적 전업작가가 아닌, 소설가를 마치 부업처럼 생각하는 작가의 글을 읽지 않으려 한다.  가급적이 아니라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진리탐구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리탐구는 목숨을 걸 만큼 매력적인 일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은 될 지언정 진리는 보편적 인간에게 쾌락이나 친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만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그는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극단적 두려움 또는 공포를 과감히 극복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가 굳이 보편적 인간의 공포를 소설의 소재로 삼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돈에 초연하거나 득도한 소설가가 아니고서는.

 

가끔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나는 이것 또한 적당한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소설을 흉내낸 자전적 에세이 또는 보편성이 결여된 미숙한 소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구도자가 아니고서는 '나'란 존재는 결코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너희들'의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을 관찰하여 자신만의 이야기 틀에 담아내는 사람이므로 관찰자의 입장에 서지 못하는 이야기는 소설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좋은 소설이 될 리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소설가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소설가에 의해 씌어진 수필이나 산문집은 그닥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면 설령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큰 기대를 품고 어느 소설가의 산문집이나 수필을 읽는다면 열이면 열 만족보다는 실망할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렇고 그런 신변잡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겠거니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면 '그래도 생각보다는 좋았다.'는 평을 할 수 있겠다.  이것은 가수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니 소설가를 탓할 일은 절대 아니다.  역으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색이나 무릎을 칠만한 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엮어낸 소설가라면 그는 이미 소설가가 아닌 수필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읽었다.  책의 내용은 나의 생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달리기광'으로 정평이 난 사람이니 달리기에 관한 내용이 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달리기 이외에 작가의 유년시절, 빵집 아들로서의 명절 대목, 부모님의 숨말하기, 서울 삼청동에 살았던 시절의 에피소드 등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 도중에 불쑥불쑥 달리기와 관련된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이제는 어엿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치고는 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이 리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기하자면 김연수는 소설가이지 수필가가 아니다.

 

"살아 본 바에 따르면 삶에는 인과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까지 많은 경험을 해 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젊어서 그런지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인과관계란, 노력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즉석복권과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그 보답이 즉각적으로 내게 찾아온다."   (P.295)

 

나는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와 뜻하는 바를 공감하며 읽었지만 다 그랬던 것도 아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등산이 마치 막걸리나 마시기 위한 핑곗거리 또는 등산을 가장한 여자 후리기로 묘사한 대목에서는 매일 아침 산을 오르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술도 마시지 못하고 여자를 꼬시는 능력도  없지만 산은 누구보다 좋아한다.  반면에 작가와 내가 생각이 일치했던 것은 "사람이 너무 좋은 게 콤플렉스"라는 대목이었다.  살다 보면 사람 좋다는 말이 칭찬만은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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