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몸이 아플 때가 아닐까 한다.
가족들이 늘 곁에 있을 때는 그들로부터 받았던 작은 배려들이 그렇게 고마운 것인 줄 알지 못한다.  시간 맞춰 약을 먹으라며 약봉지와 함께 물잔을 날라 주는 것, 약을 다 먹을 때까지 곁을 지키며 따뜻한 손으로 이마를 만져주는 것, 혹시 찬바람이라도 들어올까 이불깃을 여며주는 것 등 그 살뜰하고 소소한 몸짓이 없다고 생각할 때 더럭 겁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괜한 상상으로 두려움을 키우기도 한다.  '내가 이러다 혹시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거나 '혹시 중병에 걸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면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 이런저런 상상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제 저녁 퇴근길에 내가 몸이 안 좋으니 하루 쉬자는 말을 아이들 모두에게 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녁도 거른 채 홀로 썰렁한 방에 누워있으려니 처량한 생각도 들고 집 생각도 간절했다.
그렇게 누워 깜박 잠이 들었나본데, 초인종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평소에 하루의 반쯤은 텅텅 비어있는 집인지라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런데 이런 늦은 시각에 연락도 없이 찾아오다니...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다. 
'경비 아저씨가 택배를 전해주러 오셨나? '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놀랍게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여학생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학생의 손에는 노란 양은냄비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아프신 것 같아 우리가 죽을 끓였어요.  맛은 장담할 수 없어요.  인터넷 뒤져서 처음 해 본 거라서..." 하며 웃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데 간신히 눌러 참았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식기 전에 어서 먹어보라며 호들갑이었다.
아이들이 끓인 흰 죽 몇 숟가락을 간신히 넘기는 사이 아이들은 약은 먹었느냐, 병원은 다녀왔냐, 많이 아프면 출근을 하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둥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으로 적막강산 같던 집안을 갑자기 하이톤의 목소리로 가득채웠다.
아이들은 그렇게 나를 억지로 눕힌 채 한시간여를 재잘대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가르치는 아이들 중 한명의 졸업식이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작은 선물이라도 전해주었을텐데...  
다음날 나는 아이들 덕분에 간신히 줄근할 수 있었고, 일주일의 마지막 날을 탈없이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을 연속으로 쉬겠다 할 수 없어 아이들을 불러 자습을 시켰다.
지금도 여전히 온몸에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잔기침에 고생을 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명약을 먹은 나는 다음주 월요일이면 환한 얼굴로 그 아이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얘들아, 너희들이 끓인 죽은 조금 짜긴 했지만 정성만은 최고였단다.  그리고 쑥스러워 말은 못했다만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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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2-1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그동안의 고마움과 애정 표현을 확실하게 했군요.
사랑의 죽 드시고 몸도 어서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꼼쥐 2011-02-13 21:46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욱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더군요. 저야 그저 소일거리로 생각하고 하는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제게 보여준 정성은 그게 아니어서...
주말동안 집에서 푹 쉬었더니 이제는 많이 좋아졌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