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엄동에 서둘러 봄이 오려는지 행복을 담뿍 담은 책들이 배달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매년 연초에 습관처럼 읽던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지키지 못할 약속에 넌더리가 나고, 내 나약한 의지에 지치고, 무엇보다 내일 당장 부자로 만들어 줄 듯한 환상에 많이도 속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런 환상을 믿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막의 언덕에 구름처럼 올라앉은 오아시스를 믿지 않는 일이다. 책을 통하여 행복의 곁불을 쬐는 일이 그렇게 연초의 큰 행사처럼 굳어진 것은 아주 오래 된 습관처럼 요란하지도, 그렇다고 적막하지도 않은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기약도 없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리고 빈 속에 들이키는 첫잔의 소주처럼 짜르르한 전율이 빈 가슴을 후볐다. 나는 한 사설이 끝날 때마다 안주 삼아 추억을 삼켰다. 내가 지리산을 처음 가본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고, 대학생이면 으레 금서 목록에 오른 서적을 한두 권쯤 읽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인듯 느꼈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 모두가 그랬다. 학교에는 연일 대자보가 나붙고, 매화가 피는 교정에는 시샘하듯 최루탄 가스가 뽀얗게 퍼졌었다. 저항이 순수함의 다른 표현인 양 나는 그렇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다. 그리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친구들 몇몇과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때 보았던 지리산의 녹음은그 산에 숨어들었던 빨치산의 배고픔보다 푸르렀었고 섬진강의 유려한 물줄기는 세월따라 옅어지는 기억의 빛깔처럼 고왔다. 공지영 작가도 이제 나이를 먹나보다. 큰 것보단 작은 것이, 부자의 영화보단 가난한 일상이, 한낮의 태양보단 지는 낙조가 더 살갑고 아름답게 보이나보다. 봄인듯 느끼던 역사가 12월 엄동으로 변한 것이 서럽고, 삭풍을 등지려 찾아든 지리산 골짜기에서 스러지는 행복의 곁불을 쬐는 사람들이 그리운가보다. 나는 작가의 걸쭉한 입담과 슬픈 너스레에 멋모르고 한참을 웃다가 알 수 없는 아련함에 눈물을 흘렸다. 작가는 거꾸로 흐르는 역사를 향해 작은 행복을 담은 생명의 화염병을 던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여린 힘으로 그렇게 일깨우고 싶었나보다.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향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소리치고 싶었나보다. "악양. 그것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은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그것은 느림을 찬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름...... 공연 도중에 소주가 나누어지고 구수한 돼지고기 냄새 퍼지는...... 그런 악양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