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물이나 서비스의 가격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사실 소비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쓰던 물건을 쉽게 버리거나 기분에 따라 쉽게 구매하지도 않는 까닭에 이렇다 할 과소비는 없는 편이지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지불해야 할 가격이 적정한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나의 경우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아마도 터무니없이 비싼 바가지 가격을 걱정하는 일반 소비자와는 다르게 나는 제품의 생산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너무 저렴한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타인보다 정이 많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시길...

 

이와 같은 습관은 아마도 먹거리를 제외한 일반 소비의 많은 부분을 책이 차지하는 데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의 구매가 끊을 수 없는 취미생활이기도 하지만 나날이 쪼그라드는 출판시장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그리고 그 한 권의 책이 내 수중에 들어올 때까지 거쳤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현재 물가에 비해 책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저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출판계에 몸을 담고 있거나 가까운 사람이 그쪽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한 권의 책이 전 생애에 걸친 삶의 결과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삶 전체에서 얻은 깨달음을 만 원 남짓한 돈으로 퉁친다는 게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박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예컨대 고인이 되신 전시륜 님은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이라는 책 1권을 출간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많은 우여곡절 끝에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소중한 책을 고작 만 원 남짓한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면서 내가 할 일은 다했노라 고개를 빳빳이 든다는 게 인간답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주변에선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지요. 어떤 이는 '공정 가격'이라고 합디다만 나는 그런 어려운 용어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들려주는 삶의 의미를 어떻게 만 원, 2만 원 따져가며 셈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물건을 구매하거나 타인의 손을 빌릴 때 우리는 적어도 그 속에 숨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셈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공정이고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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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3-1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무명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저도 참 좋아했던 책이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었는데요.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꼼쥐 2022-03-19 21:35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 님도 ‘어느 무명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을 좋아하셨군요. 참 귀한 책인데 다락방 님의 공감 댓글을 읽고 나니 저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ㅎ

새파랑 2022-03-1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글을 보니 책값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혼신을 다해 썼을 이야기인데 함부러 셈하는 것도 어쩌며 실례일수도 있겠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인거 같아요 ^^

꼼쥐 2022-03-19 21:38   좋아요 1 | URL
더러는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책도 만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책은 작가의 노력에 비해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는 정말 싼 편이라고 생각해요. 밥 한 끼의 값으로 한 사람의 지적 재산을 모두 살 수 있다는 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