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 백신을 맞았다. 시간일 갈수록 열이 조금씩 오르고, 팔이 뻐근해오고 있다.

 

드러누워 생각해 보니 여름휴가가 없었던 나에게 이번 추석은 정말 오랜만에 긴 휴식이었고, 별다른 일정 없이 책상, 침대, 쇼파를 뒹굴며 소일한 보람되게 긴 연휴였다.

 

연휴동안 읽다가 방치해둔 몇 권의 책들을 세이브해서 읽었어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아울러, 새로운 책도 읽어 낼 정도로 여유가 많았던 기억에 남을 추석이었다.

 

특히, 기억이 남는 3편의 책과 영화에 대해 간략히 리뷰 하고자 한다.

 

1. 영화 <제르미날>를 보다

 

요즘 북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작가는 에밀 졸라 라고 생각한다.

 

<패주>의 코브라자세부터 시작해서 목로주점의 페이퍼 들, 그리고 다른 여러 작품들에 대한 설명과 특히, 팔스타프님의 졸라에 대한 해박하신 리뷰와 댓글까지.

 

추석연휴 대비해서 한권 두권 모은 책들이 이젠 종합선물세트가 되어가는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 동네서점을 돌았다.

 

팔스타프님의 소개를 거칠게 요약하면 졸라의 졸라 원톱은 <목로주점>인데, 여기 딸린 4남매가 <작품>, <인간짐승>, <제르미날>, <나나>라는 것이다.

 

다섯 작품 중 아무거나 걸리면 읽는다는 마음으로 서점을 헤멧으나 찾을 수 없었다. 우리 동네는 졸라를 졸라 사랑하거나, 졸라 관심이 없는 동네라는 결론만 내리고 돌아섰다.

 

아쉬운 마음에 책값만큼의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오거서님께서 찾아주신 <제르미날>을 보았다.

 

작품의 스토리는 사실 단순하다. 산업혁명기 즈음의 비참한 광산노동자에 대한 이야기 이다. 오래된 영화(1993)라서 화질이나 스케일, 전반적인 배우들의 연기도 솔직히 어설픈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 가난한 광산노동자의 의식주 등 삶에 대한 적나라한 사실적인 묘사, 거대한 자본의 메커니즘으로 상징되는 광산과 거기서 자본에 착취당하는 광산 노동자의 처참한 노동 현실,


특히나 최소한의 인권보장이나 그러한 의식도 찾기 힘든 여성과 아동 노동의 비참함. 그리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성매매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2차 착취라는 참혹한 삶과 죽음.

 

둘째, 피눈물 흘리는 노동자의 삶에 착취라는 빨대를 꽂고 그들만의 리그로 배불리는 자본가의 삶과 참을 수 없는 자본이라는 존재의 잔인한 속성.

 

셋째, 비참한 노동 현실 앞에서의 강한 연대투쟁파업, 그리고 봉기라는 노동권 실현 과정에서 직면하는 광산노동자의 고뇌와 분노.


그리고 오랜 파업으로 생존권의 위협앞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노동현장으로 복귀하는 또 다른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두 집단의 현실적인 갈등.

 

이 세가지 관점을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제르미날>을 읽기 전에 한번쯤 볼만하다고 생각된다.

 

미미님이 말씀하신 잔인한 장면이란게 궁박한 환경에 직면에 자본가에게 성 착취를 당한 여성들의 통렬하고 상징적인 복수를 의미한 것이었나?











 

2.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를 읽다.











 

이 책은 참 무겁다. 문제 설정에 내 던져진 독자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게 두 발을 땅에 붙이고 몸이 굳어버려서 좌우로 고개만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책의 내용은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작가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겪은 상황을 제시하고, 2부에서는 이 상황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엮은 것으로 구성된다.

 

책의 내용을 알라딘 책소개를 중심으로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치의 죄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 폴란드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어가던 나치 장교가 어느 유대인(작가)을 병실로 불러 자신이 유대인 수백명을 집에 가두고 불 태웠으며, 뛰쳐나오는 사람에게 총을 난사했다고 고백하며 간절하게 용서를 청했다.

(간과해서 안되는 사실은 나치장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작가를 유대집단의 대표로 간주하고 유대집단 전체에 용서를 구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고뇌에 휩싸인다


나치는 자기 어머니 등 일가친척을 죽이는 등 하느님도 용서 못 할 죄를 저지른 반면, 나치 장교는 지금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죽어가면서 간절하게 구원의 용서를 갈구하고 있다. 작가는 그에게 용서라는 최후의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작가는 용서해야 할 많은 이유들과 용서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 특히나 참회에는 마땅히 용서로 화답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유대인을 대표해서 사죄할 자격이 있는가?”를 중심으로 용서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를 갈등하고 드디어 ㅇㅇ으로 결단을 내린다.

 

이 책은 사죄의 의미와 자격, 용서의 전제 조건, 집단적 죄의식의 문제, 용서하는 자의 자격여부, 예루살램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의 적용범위 등 심도 있게 고민해 볼 주제가 정말 깊고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책의 제목에서 언급된 용서에 대한 고찰이다.

 

아직까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 구체적으로 적시하기 어렵지만, 나는 용서라는 단어보다는 우선적으로 분노와 인내라는 단어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이해, 부탁, 양해 등의 수준을 넘어서 용서라는 행위(특히나, 용서의 대상이 집단 살인에 대한 것이라면)가 어떤 형태로든 등장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인내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나의 분노를 야기했던, 내가 이성적으로 사고를 통해 참된 용서를 하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너무 어렵다. 분노를 잠재우고 인내를 끌어내야 하는가? 아니면, 인내를 인내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발시켜야 하는가?

 

진정한 용서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 상황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깊이 있게 고민하며 읽을수록 이 문제는 내가 배웠던 윤리나 도덕, 동서양의 철학,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한 종교가 제시하는 이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에세이 형식의 문제제기 부분을 끝내고 이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파트를 읽고 있는데, 의견을 제시한 한사람 한사람의 깊은 고뇌와 같은 대답이지만 섬세하게 다른 결들이 느껴져서 아껴서 읽는 중이다.

 

하지만, 결단하기 너무 어려운 문제라는 공허만 결론만이 머리를 짖누르고 있다.

 

3. <케테콜비츠전 전시회>를 회상하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 <제르미날><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를 머릿속에 굴리며 산책하던 중 문득 내가 사랑하는 미술가 한명이 축복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녀의 이름은 케테콜비츠이다.

 

케테콜비츠는 가난으로 인한 처참한 민중의 삶, 자본가의 착취와 성난 민중의 분노와 봉기, 2차 대전에서 자식을 잃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아픔과 이를 인내하는 판화와 조각을 주요 작품소재로 삼고 있다.

 

책에서 도판으로 봐왔던 그녀의 작품이 2015년 서울의 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을 오전에 접하고, 오후에 휴가쓰고 기차에 올랐던 가슴뛰던 추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한점 한점 보고 있으면, 분노의 피가 끓어 오른다

한편으로는 조각칼로 가슴깊이 파내는 듯한 아픔을 느낄 수도 있다

전시회 관람 말미에는 이 모든 분노와 아픔을 절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연민과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신적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연민과 구원을 강하게 표현했다면, 케테콜비츠의 피에타는 인간의 어머니의 자식에 연민을 넘어 분노와 아픔을 처절하게 절제하는 인간적인 피에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케테콜비츠 전시회 도록을 천천히 살펴보니, 영화 <제르미날>에서 민중의 삶과 분노와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서의 용서의 전제로서 분노를 참는자의 고뇌와 아픔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아 앞으로 읽어 나갈 두권의 책에 더더욱 깊은 애정과 기대를 갖게 된다.

 

이제 감정적인 워밍업은 끝난것다. 이 깊은 애정과 기대를 담아서 읽지 않고 꽂혀있는 책들을 뒤로한 채 <제르미날> 주문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내일은 하루 당겨진 은혜로운 월급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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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0-08 1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막시무스님 당선축하드려요! 오늘 한잔 아니 여러잔 하셔야죠!ㅎㅎㅎㅎ♥

mini74 2021-10-08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되실 줄 알았습니다.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1-10-08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막시무스님 👍👍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0-08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서니데이 2021-10-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하라 2021-10-08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1-10-08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모나리자 2021-10-08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막시무스님~
연휴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막시무스 2021-10-10 2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 금요일 오후 계획없이 몇몇 동료들과 여름같은 가을, 가을같은 여름이 함께하는 캠핑을 떠났다가 이제 막 복귀했습니다.ㅎ 자연과 알콜이 어울어진 2박3일이었네요!ㅎ

당선작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요, 남은 연휴 모두들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십시요!ㅎ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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