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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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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책자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의 취향이란 워낙에 다양하고, 나와 취향이 유사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여행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어디가 좋다든지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좋다든지 하는 말들이 나에게도 적용될 확률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나 예상밖에 일어난 사건들이나 장소들과 함께 한다.

그럼에도 간혹 여행 관련 서적에 끌릴때가 있다.
누구나 새로운 곳, 낯선 곳에의 막연한 동경이 있게 마련이고, 막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여행에 관련된 서적에 손이가곤 한다.

그렇게 읽은 여행관련 서적 중에서 지금까지 인상 깊었던 것은 몇 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책들의 공통점이라면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 아니라 나름의 주제를 가진 여행이라는 점이다.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 혹은 더불어 숲,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이건 특정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등, 책을 읽으며 감동받게 되는 것은 그곳이 어떤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을 여행하는 그들의 태도,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책들과는 약간 다르게 한 도시에 대해 '아! 가고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 책이 한권 있었다.
'책 한권을 들고 파리를 가다'
사실 유럽이라는 곳이 궁금하긴 했지만 특별히 파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책을 읽는 순간 여행이 가고 싶다가 아니라 파리가 가고싶다라고 생각했다

막 혁명이 끝난 중국에서 빅토르 위고의 "93년"이란 책을 들고 시민혁명의 중심도시였던 파리를 찾은 부부. 그들이 혁명의 흔적을 찾아 떠난 파리여행은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리란 곳이 어떤 곳인지 강한 호기심을 마음에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파리에 관한 책이라면 그 한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파리는 깊다'란 이 책을 보았을때 이 책을 통해 파리에 대한 새로움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보다는 혁명의 도시 파리가 나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인 유혹이었고, 또한 이미 그 이후로 파리로의 여행을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읽은 이 책은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었다. 우선은 저자 자신이 한 두번 파리를 다녀오고 쓴 글이 아니라 그곳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살았고, 여행했던 도시였기 때문에 그가 알고있는 깊은 파리에 대해 알려주려고 노력한 흔적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고, 나름의 주제(예를 들면 예술 혹은 파리의 까페 등)를 가지고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접근을 해주기도 했기 때문인데, 그런 점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점때문에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예술의 파리가 중심이긴 했지만, 다양한 파리의 모습을 언급하느라 주제가 분산된 느낌이었고 특히나 파리의 레스토랑 같은 편은 앞선 예술의 파리부분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여느 여행책자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예술이든 까페문화든 음식이든 짧은 여행에서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주제를 다 다루면서 다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파리에 좀 더 집중했다면 훨씬 더 알찬 책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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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승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오동명 지음 / 생각비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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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위인전을 싫어한다고 했다. 비범하기만 한 인물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랄까? 나는 위인전을 좋아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 반대자들의 모함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지키는 그들은 만화 속 슈퍼히어로와 같이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도 시작부터 흠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들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작은 비밀하나 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런 그들이 휠씬 더 멋있어 보일 것 같은 생각…

27년이라는 시간 동안을 대구에서만 자란 나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절대로 영웅이 될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첫 선거는 노태우 전대통령을 당선시킨 바로 그 선거이고, 그 때 기억나는 풍경은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선거개표방송을 지켜보며 노전대통령의 당선을 환호하고 김대중이 당선되어 적화통일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이야기하던 그런 풍경이다. 그 후로도 선거때마다 김대중이 당선되면 우리나라는 적화통일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들어왔고, 그 말을 사실로 믿었든 아니든 그런 분위기에서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기는 정말이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학생이 되고, 진보적이라고 하는 책들도 좀 읽게 되고, 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래저래 주워들은 정치이야기도 생기고 하면서 정권교체며 진보며 하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게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그 때 나는 김대중이라는 이름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 이름에 투표를 하면서도 어릴 적 귀에 못박히게 들어왔던 빨갱이란 단어는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나서도 나는 내내 주변에서 그를 욕하는 소리를 들어야했고, 어느새 머리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영원히 ‘김대중’이란 인물을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한참을 고민해야했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나에게 불편함었고, 어떠한 호기심도 유발하지 않는 무관심의 대상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면서 작가의 서문을 읽다가 영웅의 “똥누는” 모습을 얘기하는 유쾌함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리고 난생처음 정치인, 빨갱이, 혹은 영웅 김대중이 아닌 그냥 인간 김대중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품하고 졸고 딴곳을 바라보기도 하는 그의 사진들을 통해 그의 이름앞에 놓인 수식어를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길지 않은 그의 말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듯한 짧은 문장들. 수많은 시련들을 겪은 한 인간의 고통스런 삶의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 짧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문장들…
나는 여전히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호의적일 수 없다. 그 오랜 세뇌의 시간을 뛰어넘을 만큼 난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에 대해 정치적으로 어떠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다. 저자처럼 그에게 대중의 곁으로 오라고 요구할 생각도 없다. 다만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내고, 그가 말한대로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한 한 사람의 인생의 선배로서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난생처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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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비판은 불만과는 전혀 다르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불만은 증오로 가는 길일 수 있지만 비판은 진정한 사랑으로 가는 길목에 항상 있다.

비록 고난 속에 살더라도 자기 양심에 충실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그 고난의 가치를 세상이 알아줄 때 그는 더욱 행복하다.

불행의 연쇄반응을 막는 경계와 노력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고 양식적인 자보다 악하고 부정한 자가 성공하는 사회기풍 속에 양심과 전통성이 파괴되고 기회주의자와 출세주의자가 판을 쳐온 현실을 봅니다. 온 세상이 모두 도덕적으로 타락하더라도 나만은 끝까지 도덕을 고수하겠다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 입니다.

한 송이의 꽃에 있어서도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를 새삼 생각하니 하물며 뜻이 통하는 인간 사이에서야,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수많은 시련에서 얻은 것이라면 사랑입니다. 어느 누구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넘어지면 끊임없이 일어나 새 출발해야 한다. 인생은 종착지가 없는 도상의 나그네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것은 자기가 원치 않는 사람, 심지어 증오한 자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되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였다면 나는 철저한 패배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느냐가 목표였다면 그래도 보람 있는 인생이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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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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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있는 사물들] 이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인생에서 의미가 있는 사물들은 뭐가 있는가 떠올려보았다. 그닥 물건이라는 것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끝에 찾아낸 것은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한 권의 책과 성인이 된 후에 엄마에게서 받은 편지 한 통.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아마도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일지도 모른 어린 시절의 한 권의 책과(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책 읽는 여자를 동경하게 되었고, 은연중에 나도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었던 것 같다.), 스무살이 넘도록 떨쳐내지 못했던 나만의 트라우마를 한웅큼의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게 해준 내 어머니의 편지 한 통. 그것이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물의 전부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물들에 대해 한 편의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내내 나에게 영향을 끼쳤을 그 사물들에 대해 얼마만큼의 사유를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이 책의 각 에세이들은 저자들이 자신에게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떠올렸던 생각과 유사한 느낌의 글도 있고, 또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 저자 본인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사물이 아니라 어떤 사유를 위한 실마리가 되어주었던 사물에 대한 이야기, 의 글도 있다.
어떤 글은 마음을 건드리는 잔잔한 에세이로 다가왔고, 또 어떤 글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물론 그런 생소한 이야기들은 내가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읽어내려가야 하는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한 가지 사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유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어떤 사물에 대해 우리가 사유를 하기 시작할 때 그 사물은 전혀 다른 의미로 그 사유를 시작한 사람에게 다가온다. 또는 어떤 사물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때, 그 사물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한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 준다. 단순한 물건으로서가 아닌 생각의 재료로서의 사물, 내 주변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우리는 흔히 사물을 실용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것, 필수품이나 헛된 사치품으로 여긴다. 반면 사물을 정서적인 삶의 동반자라든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로 생각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의미 있는 사물이라는 개념은 이런 두 개의 낯선 접근법을 합한 것으로, 우리와 사물 사이에서 생각과 느낌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물들을 통해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사물들을 사랑한다.

대개의 사물은 저자의 인생에 들어오게 된 특정한 순간과 환경으로 인해 강한 흡인력을 지니게 된다.

의미 있는 사물을 통해 우리는 현실 안에서 철학을 접하게 된다.

첼로: 나는 그 어떤 이유보다도 집중하고 명상하고 안정을 얻기 위해 지금도 첼로를 연주한다. 첼로는 아직까지도 내게 복잡성을 가늠하는 척도, 한 인간이 무엇을 얼마나 터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남아있다. 첼로 연주는 아직까지도 내가 최선을 다하는 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첼로는 나와 가장 가까워서 내가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는 사물이자, 나를 처음 음악의 세계로 이끈 힘과 감정들로 다시금 다가가기 위해 의지하는 매개체이다.

자료보관소: 큐레이터와 함께했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실제 세계에서 디지털 세계로 전환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고양시킨 르코르뷔지에의 실제 도면과 디지털 도면을 통해 큐레이터가 어찌 그리 단시간에 머릿속에서 자료보관소의 정서를 잊을 수 있는지,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는 소중함을 어찌 그리 쉽게 디지털의 힘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매듭: 매듭 실험실을 통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매듭을 만들면서 나는 연속과 분리, 결합과 이탈에 대해 의도적으로 사고하는 데 있어 평범한 사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배웠다. 또 흥미로운 사물 하나로 수학에 대한 직관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5학년 때는 수학적인 과제에 그렇게 적극적이었던 한 소녀가 훗날 전형적인 수학 공포증에 굴복하고 만 현실을 목격하고 나니, 교육학 전반에서 다양한 학습 방식을 권장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별: 여름날 저녁이면 나는 ‘옆터’에 가서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내 눈은 춤추듯 이 별 저 별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관심을 끈 것은 별들이 아니었다. 별들 사이에, 별들 주위에, 별들 너머에 있는 공간이었다. 일고여덟 살 어린 나이부터 나는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 수많은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밤하늘의 별들이 내게 영감을 주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자극했듯이, 나 역시 사람들이 무언가에 사로잡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새로운 사물을 만들고 싶다.

키보드: 만약 음악을 듣지 못하거나 연주할 수 없다면 인생에 더 이상 낙이 없을 것이다. 나는 키보드에 놓인 손가락들을 통해 언어나 음악과 연관된 사물에 다가가는 방식을 제일 좋아한다.
전문작가로서 그리고 먼 길을 걸어온 피아노 연주자로서, 키보드가 없었더라도 내가 세운 목표를 얼마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업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면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더욱이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온종일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고 글을 쓰거나 연주하기를 마음속 깊이 원하고, 즐기고, 심지어 사랑한다는 것을.

불사조 슈퍼히어로: 엄마가 돌아가신 후 며칠 동안 나를 만화책으로 이끈 감정은 향수였다. 향수, 그것을 가리켜 누군가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고픈 애절한 바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지금 나의 열망을 과거와 연결해주는 유토피아 판타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게 만화책이란 집으로 돌아가는 연휴에 엄마가 만들어준 남부식 야채 요리처럼 위로를 주는 대상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부터인가, 성인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만화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죽음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만화책을 펼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별의 상처와 상처의 회복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은 사진들: 화재가 난 집을 복구하면서 나는 오랜 교훈을 새삼 실감했다. 모든 종이가 남길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특히 사진은 우리 다음 세대의 가족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후손들이 가문의 과거를 보다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증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밀대: 밀가루 묻은 손으로 밀대를 잡고 질감과 무게를 느끼면서, 나는 이 밀대를 통해 탄생한 수백 개가 넘는 파이와 쿠키를 생각한다. 밀대는 나를 과거로 되돌리는 동시에 미래에 기억될 추억을 끊임없이 남겨준다. 이제 밀대는 시간을 초월한 사물이다.
기억을 깨우는 사물의 힘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서는 치유의 마법을 발휘한다. 우리는 사물을 창조하고 다시 그 사물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다락방의 그림: 예술의 목적은 ‘의미있는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림은 일시적일지언정 상대에게 자신의 주체가 되어줄 것을, 작품의 의미를 창조하는 주체가 되어줄 것을 간구한다.

여행가방: 가방은 내게 할머니를 되돌려주었다.

노란 우비: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를 자주 보호해준 건 비오는 날 학교에 갈 때마다 비에 젖지 않게 해주는, 눈이 부시도록 밝고 노란 우비였다.
우비 덕분에 나는 바깥세상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했지만, 그로 인해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없었다.
어렸을 적 내 우비처럼 과학과 예술을 통해 자연의 질서에 몰입하는 동시에 자연의 혼돈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수첩: 잃어버린 내 수첩은 외부의 정보 기관, 다시 말하면 세포 대신 종이로 이루어진 내 뇌의 일부였다.

노트북: 그러므로 내가 컴퓨터에 특이한 열정을 품게 된 계기도 실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어려서 우연히 기계를 통해 낭만적인 경험을 했던 나는 컴퓨터를 볼 때마다 사랑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멜버른 열차: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관차는 내게 더 넓은 세상을 뜻하는 움직이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나가는 급행열차를 보면 저 반대편의 세상이 떠오른다. 열차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

신디사이저; 나는 천천히 신디사이저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고독으로부터 벗어났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학교로 돌아갈 준비도 했다. 과거에 홀로 신디사이저와 보낸 시간은 나에게 있어 통과의례와 같았다.

토끼 인형 머레이: 마지막으로 머레이는 나 자신에 대해 알려준 선생님이다. 머레이를 보면서 내가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얼마나 쉽게 허무는지 깨닫는다. 우리가 뜨거운 감정을 미리 안전하게 경험하고 사회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무대는 다름 아닌 상상력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월드북 백과사전: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나의 번역자이자 귀감이었고 또한 등불이었다.
나는 월드북처럼, 환자에 대한 나의 애정을 말하지 않는다. 내 도움을 구하러 온 이를 잠잠하게 했던 경험들의 이미지와 단어를 찾아 월드북처럼 조용히, 의미있게 다가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실패할 때-내 영혼의 책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팔찌: 나는 여성 선조들과 동맹자의 기운을 느끼고 싶을 때, 오래된 나바호 족의 커프팔찌를 찾는다.
이 팔찌는 이걸 만든 사람의 정신, 그리고 불, 물 땅, 하늘이라는 요소들을 기리는 익명의 기념물이다.
우리가 이렇게 팔찌를 교환한 것은 서로의 아름다운 장신구가 탐났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충심의 표현이자, 공통점을 지닌 세 여성의 교차점에 형태와 실체를 부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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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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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읽는 책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읽은 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해 책들에 관한 책을 종종 읽곤 한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들에 관한 책에서 반가움 보다는 실망감을 많이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형식으로만 따지면, 꼭 읽어야 할 책 **권 하는 식의 의무감과 노무현이란 화제의 키워드 들이 만들어낸 어찌보면 지극히 유행을 따르는 듯한 이 책은 그래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읽어본 책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우선 이 책이 책들에 대한 리뷰형식이라기 보단 책에 대한 토론에 가까운 형식이었고(노무현 전대통령과 책의 인연-->강사의 전반적인 강의-->질문-->책요약으로 구성된 형식은 참 맘에 들었다), 일부 강사들의 경우에는 예외였지만 전반적으로는 너무 "노무현"이란 키워드에 집착하지 않아 정치색에 대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진보성향의 사람만을 타겟층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노무현"에 너무 집착하는 듯한 일부 강사의 강의 내용은 아쉽게 느껴진다.) 

10명의 강사가 10권에 책에 대해 강의하는 형식이었으므로, 책의 내용이나 강사의 강의내용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읽었던 책에 대해서는 좀 더 명료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었고, 또 실제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던 분들의 입장에서 한 설명이라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그 글들을 바라볼 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읽지 못했지만 메모 해두었던 몇 권의 책들에 대해서는 강사의 관점과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어 더 재밌게 읽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끝까지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고자했던, 그리고 진보적 지식인이고자 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짠하기도 했고, 진정한 진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진보에 대한 희망을 느껴보기도 했고 그러한 과정들이 흥미로왔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런 의미는 다른 책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감동케 했던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책읽기의 대한 열정, 왜 책을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대답 바로 그것이었다.
대통령의 유작이 된 '진보의 미래'를 중심으로 엮어진 10권(후반부의 2권은 조금 다른 관점이긴 하지만)의 책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실패한 대통령이란 말을 들어야했던 정권말기부터 이어진 그의 책읽기에서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책읽기란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 책을 읽을 수 조차 없었을때 그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던 것이 아니였던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 두고 읽었던 책의 목록들을 하나씩 되새겨본다.
그 책들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의미들도 하나씩 되새겨본다.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삶과 밑줄을 치며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는 그의 남겨진 책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여백투성의 내 삶과 이미 읽었음에도 깨끗하기만 내 책들을 바라보며 내 삶과 나의 책읽기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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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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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어릴적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가 하는 시간이면 무서워서 이불을 덮어쓰고서도 뭔가 궁금하여힐끔힐끔 보게되던 귀신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처녀귀신이었다. 저마다 다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같아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늘어뜨린채 피를 흘리며 처녀귀신이 나타나는 장면에선 항상 이불을 꽁꽁 싸 매었던 기억이 여전하다. 각 나라마다 귀신이야기가 존재하고, 대표적인 귀신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왜 우리나라에선 하필 ‘처녀귀신’이 그런 이야기들의 대표가 되었을까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 '처녀귀신'이라는 공포의 표상은 언제부터 형성되었으며 사람들은 왜 그들을 무서워하면서도 자꾸만 불러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 답변이다.

귀신은 당대 사회의 소외된 인물, 사회적 약자이고, 한국 귀신의 전형이 처녀귀신이라는 것은 ‘처녀’야 말로 한국 사회의 약자, 억압받는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제때에 표현되지 못한 감정, 발설되지 못한 내면은 귀신이라는 충격적 존재로 나타나고 이러한 귀신이야기가 공포를 주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의 세계가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의 모방으로 그려졌으며 현실을 모방한 귀신이야기는 결국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상 저승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며 나와 상관없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녀귀신 이야기를 만들고  즐겨온 전통은 그들에 관한 사회적 책임과 죄의식이 공통의 문화적 과제로 사유되어왔음을 뜻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의 모순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귀신 이야기는 불멸의 공포 장르, 비극의 파토스로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귀신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한,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준열한 비판 정신 또한 살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 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약자, 소외된 자를 불러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 또 그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에 영향을 주고자 하고 있는가? 책에서 귀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회가 소외시키고 배제시킨 대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발설하는 증표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귀신이야기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현실은 그러한 고민 자체가 없어져버린 서글픈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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