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자기 고백적으로 흘러 가장 선호하지 않은 시점이 1인칭이지만 성장소설을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인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1인칭으로 전자책 500페이지 가량을 어떻게 쓸 수 있지, 시점이 워낙 제한 되서 이야기를 장악하지 못할텐데, 혹시나 했던 말 무한반복인가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기우일뿐, 이야기의 속도감과 흥미가 유투브를 이겼다. 작가의 이야기 솜씨가 보통 아니다.
사건의 개요는, 주인공이 흠모하는 이웃집 소녀 린다가 강간을 당한 후의 그녀와 관련된 주인공의 성장담과 루이지애나 배턴루지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는 용의자를 찾는 것이지만, 줄기의 여러 가닥은 사춘기 소년의 고민, 불안, 아버지의 부재, 따스함, 의심, 어둠등,
한 소년이 제대로 된 성인으로 성장할 있었던 요소들이 잘 뻗어 있었다.
성장소설은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에서 어른의 세계(사회)혹은 어른들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무 걱정 없이 십대를 보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런 가정이 몇 프로나 될까?
아마 우리 대부분의 십대 시절은 부모님 싸움을 바라보며 무력감으로 지켜보고 힘들어하지 않었을까!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십대의 인생을 지켜줄 수 있는 버팀목을 만나는 건 축복이다.
The way, way back이라는 성장영화에서 새아빠와 갈등하고 있던 소년은 오웬이라는 어른을 만나 위기의 순간을 버틸 수 있었고, 오웬이 그 소년을 위해 한 행동은 단 한가지, 그의 편에 서 주었다는 것이다. 그 와의 추억이 그를 반사회적 성인이 아닌 오웬같은 아픈 청춘을 위로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날 것이다.
십대의 혼돈을 지키는 것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버팀목은 음악일 수도, 상상의 친구일수도, 몽상일수도, 운동일 수도, 책일 수도 있다. 앨리스처럼 다른 세계로 빠져들어 가 은신하고 기대며 정체성을 찾을 때, 우리는 좀 더 제대로 된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마이 선샤인 어웨이,는 주인공 소년이 자신의 상처, 린다를 위해 뭔가를 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굴욕적인 결과를 얻기를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뭔지를 깨닫고 이십대를 맞이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삼십년을 조명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나며 미국의 80년대와 90년대 남부의 조용하고 목가적인 중산층의 시대 배경을 중심으로, 이십대 초반에 보았던 딱 케빈은 7살,12살 그 분위기라서 낯설지 않었고 작가의 시점이 또한 따스하면서 감정적이어서 부담감 없이 읽었다.
덧 : 어제는 이 책의 재미에 빠져 즐겨보던 정치유튜브조차 못 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