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 무한경쟁시대의 착한 대안, 협동조합 기업
스테파노 자마니 & 베라 자마니 지음, 송성호 옮김, 김현대 감수 / 북돋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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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몬드라곤> 시리즈 두 권 이후 다시 읽는 협동조합 이야기...
<몬드라곤> 시리즈가 <몬드라곤>이 스페인에서 어떻게 태동하고 성장하고 위기를 극복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다룬 책이라면, 이 책은 서구사회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어떤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자랐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협동조합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도 협동조합의 경제학적 접근과 지배구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몬드라곤> 시리즈가 스페인의 고유한 사회문화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서구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근대사회의 형성 시점이 늦었던 스페인은 협동조합의 태동 역시 중부 유럽보다 늦었다.

<몬드라곤> 시리즈는 스페인의 특정 지역인 바스크에서 특출한 인물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열정과 집념으로 '몬드라곤'이라는 구체적 협동조합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 시작한 협동조합이 금융, 서비스, 농업, 유통, 연구개발, 대학까지 이어지고 그룹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요즘 세계 최대의 기업이 우스울 정도였다. 협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과 발전동력이 이름 그대로 자조와 협동임을, 그리고 그 구체적인 결과가 '해고 없는' 기업,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조직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사회문화적인 밑바탕에 자조와 협동이라는 관념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과 협동조합 방식의 기업에 뛰어들기 위해 조합의 주체들이 오랜 시간 협동조합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내 주변에서 유행처럼 불어오는 협동조합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경우 자조와 협동, 배려와 합의와 같은 문화보다 조급함과 성공신화, 무한경쟁과 시험, 투쟁과 편가르기를 익숙하게 접했고 그 속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우리사회 저변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문화, 신자유주의를 부분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책은 <몬드라곤>과 달리 협동조합 전반에 대한 현황과 유형,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념과 철학, 발전역사, 지배구조 등을 알려준다. 협동조합의 원리가 무엇이고, 세계의 협동조합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협동조합이 번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 간의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해 성장해온 기업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논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주식회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물론 저자가 주식회사라는 제도와 형태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 기업'은 무한경쟁, 승자독식, 양극화 등 '1%의 탐욕'이 빚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대안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는가 하면 우리 국회 역시 2011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해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의 물꼬를 텄다.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으로 경제 효율의 단순 논리를 뛰어넘는다"

"협동조합은, 다른 사람의 재산에 손대지 않는다. 강탈하지 않는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비밀 결사를 만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아도 된다. 폭력에 빠지지 않는다.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다칠 일이 없다. 공짜로 받거나 특혜를 구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와 거래하지 않고, 근면한 사람과의 신뢰를 깨지 않는다. 구걸하거나 비열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자조와 자립이다.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으로 정당한 자기 몫을 누린다."(협동조합의 역사, 1906)

우리는 보통 기업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주식회사를 떠올린다. 농협마저도 기업이란 느낌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생경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저자인 자마니 부부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볼로냐는 경제 활동의 40%가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협동조합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 성장해온 기업 형태이며, 특정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론적으로 협동조합은 어찌 보면 두 얼굴의 야누스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차원이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기업이다. 동시에,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경제 주체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직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협동조합은 설명하기도 접근하기도 어렵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몬드라곤> 시리즈를 읽은 후 깊은 인상을 받고 비지니스를 생각할 때마다 협동조합 방식을 생각하기는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지만...ㅋ)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지만, 저자는 사실 협동조합은 오히려 주식회사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기업은 산업혁명 시기에 생겨났지만, 서로 연대하고 가난을 배려하는 문화는 그 수 세기 전부터 있었다. 중세 사회에서는 상인과 장인 같은 생산 계층이 모여 각자의 이해를 협력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길드와 상인회의소 조직을 만들었다. 생산 계급에 속하지 못하거나 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병원, 보육원, 공공대부기관, 빈민보호소 같은 조직도 세웠다. 이런 조직들은 시장의 관계망 속에 운영되면서도, 어떤 구성원도 배제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었다. 상장 회사 같은 '자본주의' 기업 형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였다.
사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동네에서 민중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던 '두레'나 '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말살시켜 버렸지만...ㅠ

협동조합은 오늘날에도 활발히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을 수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총 8억 명에 이른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로 이들 국가에서는 국민 절반이 조합원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일본이 꼽히고, 놀랍게도 미국 역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조합원이다. 모든 경제 부문으로 협동조합이 진출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협동조합이 왕성한 부문은 농업 및 식품 가공, 소매업, 그리고 은행 및 보험 쪽이다.
뉴질랜드 경제를 끌어가는 최대 기업, 폰테라(낙농)와 제스프리(키위)도 협동조합이다. 리오넬 메시의 FC바르셀로나, 미국 언론의 대표주자 AP통신, 캘리포니아 오렌지의 대명사 선키스트, 프랑스 최대은행 크레디 아크리콜, 이런 세계적 기업들도 협동조합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협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는 나라가 뛰어난 경제 발전과 복지 수준을 동시에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조직 형태로 폄하 받아왔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라는 두 가지 기업 형태를 효율성 측면에서 비교하는 것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관점은 모든 인간을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로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다른 가치와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나아가,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오히려 저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협동조합이 가진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사회의 민주화이다. 생산 현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의 민주화를 강화하고 지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이 책에서는 '정부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화된다면, 기업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는 똑같이 정당화된다'라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말을 소개한다. 민주적 원칙이 오직 정치에서만 적용되는 한, 그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일 수가 없다. 좋은 사회라면, 시민이자 유권자로서는 민주적이고,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는 비민주적인 그렇게 당황스러운 분열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2012년은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지난 6월(?)에 서울시청 앞 시민과장에서는 우리나라 협동조합들이 모두 모여 며칠 동안 기념식과 행사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국회를 통과한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2012년 12월부터는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법제도가 미비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협동조합 설립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새로이 제정된 법은 그 내용이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는 물꼬를 트는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전혀 다른 접근과 방법으로 우리들이 간혹 꿈꾸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실험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과 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뢰, 협조, 상호주의, 공평함, 민주주의, 양질의 고용, 자율적인 삶 등...

[ 2012년 8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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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재발견 - 소셜미디어, 대한민국 정치의 판을 바꾸다!
유창선 지음 / 지식프레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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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경제형편 상 밥벌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오래도록 치과를 다니면서 몸도 불편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적극적 관심을 보여온 정치사회 부분에서도 이렇다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4.11 총선에서 야권은 단일화를 하고서도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고 통합진보당은 13석이라는 역대 최대 성적을 올리고 나서 '내분과 당권투쟁'이라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날씨도 점점 더워져 체력도 말이 아니고...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명의 '괜찮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유창선씨다. 과거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잘 몰랐는데 유창선씨는 나름 괜찮은 정치(시사)평론가였다.


5월 2일 통합진보당 조준호 전대표가 언론에 터트린 '비례투표 부실,부정선거 사태'가 의혹을 넘어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 일방적으로 도배되면서 사실로 '규정'되어 버렸고 하루아침에 통합잔보당이 '부정선거당'이 되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을 이어가면서 그나마 존재하는 정당들 중에서 중산층, 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고군부투해온 진보정당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진보당 내에서도 스스로 '자학'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정파간 극단적 대립과 사생결단의 당권투쟁이 벌어지고 진보 미디어는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카더라'라는 당내 정보를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진보정당 중 또 다른 하나인 진보신당과 소위 진보지식인이라는 인사들까지 합세하여 통합진보당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데 일조했다. 그 과정에는 조금의 애정도 자그마한 신뢰도 느낄 수 없었다.
유창선씨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달을 때 제3자적 시각으로 냉정함을 가지고 정치평론을 진행한 편이다. 대립하는 양측 입장에서는 그의 평론 내용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유창선씨의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그의 글을 몇 차례 읽었음에도 그의 평소 철학과 의견이 궁금하여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는 이 책 <정치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사회가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시대'를 맞아 기존의 정치지형이 변화되고 있음을 애기하려고 했다. 그는 2009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소셜미디어 시대'로 접어들었고,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킹메이커는 SNS라고 결론을 내린다. 즉 그는 SNS를 통해 한국정치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SNS가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뉴미디어로서의 기술적 가치를 넘어, 이제 시대적인 흐름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SNS가 유통하는 정보를 숙의가 덜 된 여론으로 폄하하거나 그 가치를 논하는 일은 '더 이상 쓸모없는 소모전'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SNS가 촉발시킨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나 튀지니지의 재스민 혁명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증명하는 사례들임을 제시한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치러졌던 분당을 보궐선거나 10.26 서울시장 선거는 결국 SNS의 영향력이 당락을 좌우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래서 각 정당들도 선거철만 되면 SNS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올해 치러진 4.11 총선에서는 상대적으로 SNS의 영향력이 기대만큼 폭발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이 역시 스마트폰의 보급률 등을 감안해 지역별로 살펴보자면 결국 "수도권에서의 SNS 영향력은 막강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바야흐로 SNS가 대세를 결정짓는 소셜선거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SNS의 핵심은 바로 ‘소통’이다. 소통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인터넷 미디어는 SNS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권력의 억압과 통제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SNS에 열광했다. SNS에서의 정보는 단지 여론을 형성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결국 오프라인의 시민행동으로까지 촛불처럼 타오르며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권력은 더 이상 올드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으로서 여론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소통’의 문제이다. 이제 소통하지 않으려는 지도자와 정치가는 결코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는 단순히 집권 여당과 보수, 권력에 지배당하는 올드미디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나아가 진보의 소통 방법,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소통을 가로막는 SNS 사용자들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SNS와 소통을 기본 주제로 하면서도 한국 정치의 주요 현안과 인물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평가한다. 왜 시민들이 그토록 '나꼼수'에 열광했고 '나꼼수 현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꼼수'의 4.11 총선 출마를 어떻게 볼 지, 보수와 미디어와 종편과 SNS의 관계에 대해, 5월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올해의 주요 정치인인 안철수 리더쉽, 문재인과 안철수, 소통 부재의 리더쉽 박근혜,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고 있는 '빠'의 정치문화에 분석하고 비판한다. 특히 가장 소통에 능해야 하는 진보가 기성 정치권 만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던진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지도 신뢰도 끊어진 통합진보당의 참화'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뼈아프다. 그는 현재의 재앙이 '4.11 총선을 앞둔 졸속통합의 과정에서 이미 잉태한 것'이고 이번 사태가 '서로 다른 정치문화가 낳은 충돌'이라고 규정하면서 합리적인 절차와 해법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뢰와 의리의 회복이 혁신의 첫 걸음'이라고 제안했지만 이 책이 발간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그의 제안은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 속에서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저자 유창선은 현재 날카로운 시선, 속 시원한 비평으로 유명한 정치평론계의 스타 논객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블로그(www.yuchangseon.com)와 트위터(changseon), 페이스북, 인터넷 개인방송(afreeca.com/sisatv)을 넘나들며 온라인 공간에서 전방위적 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1인 미디어의 선봉장을 스스로 자처했고 이 책은 그런 그가 SNS 시대의 대한민국 정치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MB정권이 들어서기 이전, 그는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섭렵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던 정치평론계의 스타 논객이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과오와 오류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의 펜을 들이댔다. 하지만 MB 정부의 블랙에 걸려 마이크를 빼앗긴 불운의 평론가가 되었다. MB 정부가 들어선 뒤 KBS에서 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퇴출당한 저자는 마이크를 빼앗기며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위기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글하지 않고 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1인 미디어 개척자로서 빼앗긴 마이크를 되찾으며, 그는 여전히 대중들 속에서 재야 평론가로서의 발언을 지속해 왔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글 하나로 하루 방문자가 60만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며 파워 블로거 반열에 올랐고, 2010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 부문 대상, 아프리카 TV의 베스트 BJ 등 거침없는 미디어 활동을 통해 지금은 5만 팔로워 군단을 거느린 논객이 되었다. 비록 지상파 방송은 아니어도 그는 SNS를 통해 수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치 뉴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SNS의 현장 한복판에서 그동안 미디어의 혁명과 변화를 직접 체감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미디어 시대의 우리나라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유권자들과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어떻게 SNS에 대해 어떤 태도와 노력을 해야할 지 분명하게 애기해 주고 있다.


- 기억나는 문장 :


"나는 방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인 만큼, 할 말은 하되 어느 편에 속하지 말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불문율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노력은 정권이나 그 하수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유창선이라는 사람은 MB 정부와 코드가 다르고, 따라서 정부를 비판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 껄끄러웠던가 보다. 자신들 편이 아니면 방송에 나올 수 없다는 야만적 폭력이었다. 도대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근거조차 없이 마이크를 빼앗고 한 사람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폭력이 어떻게 버젓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인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현실이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자신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을 막기 위해 책을 불태우는 분서갱유를 했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방송을 장악하고 마이크를 빼앗는 일을 저질렀다. 나의, 아니 우리의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p.26)


"나꼼수 같은 방송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배려할 이유도 없다. 나꼼수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안 들으면 그만이다. 팟캐스트에 일부러 들어가서 다운로드 받지 않으면 나꼼수를 들을 일이 없다. 원하는 사람만 듣게 되어 있는 것이 팟캐스트 방송이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들으면 되는 일이다. 구태여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게까지 마음에 들 방송을 만들 책임은 없다. 자기들이 언제 나꼼수 방송에 스튜디오라도 한 번 빌려준 적이 있는가. 그들은 나꼼수의 공정성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이는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이다. 나꼼수의 내용이 편파적이더라도 그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요즘 세상에 가카만 깐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가카를 찬미하는 미디어가 보호받듯이, 가카를 까대는 미디어도 당당하게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 그것이 곧 표현의 자유이다."(p.64)


"왜 그럴까. 보수는 태어날 때부터 SNS에 둔감하게 태어난 것일까.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존재하는 SNS 능력의 격차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SNS의 환경 자체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우선 한국에서 SNS가 급성장한 배경을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SNS는 기존의 올드미디어에 대한 불신 위에서 성장하였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언론의 편파성과 불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대안 미디어로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바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같은 SNS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언론에 비판적인 진보층이 SNS의 중심을 이루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2011년 9월 한국광고주협회가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SNS 이용자 가운데는 진보적 성향이 보수적 성향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p.151)


"안철수의 말은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가 편을 가르고 싸우는 한국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양자 사이의 소통과 상호 보완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안 교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 혹은 지식인들이 한국 사회의 이념적 대립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소통 혹은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 왔다. 그러나 그 같은 문제 제기는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우리의 정치 환경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성적인 대화와 소통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치의 중요한 고비마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이념적 대결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보수는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색깔론까지 들먹이며 진보를 공격해 왔다. 이에 진보 또한 방어적 차원에서 맞공격을 하곤 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화해가 불가능한 적대적인 세력으로 늘 자리해 왔다."(p.214)

 

"노빠(노무현), 유빠(유시민), 박빠(박근혜), 황빠(황우석), 나꼼수빠,... 우리사회에서 '빠'라는 문화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의 무오류성에서 기반한다. '그'는 언제나 옳고, 설혹 잘못이 있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아닌 대결을 벌이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반대편과 같은 사람들로 간주한다.
그러나 세상에 무오류의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바른 방향을 추구하는 정치인이라 해도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항상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은 것이라 해도 모든 것을 눈감아 주고 우리끼리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식의 사고로는 국민을 이해시킬 수 없다.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
'빠' 문화 현상은 이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빠' 문화적 사고에서는 저편과 이 편만이 있을 뿐이고,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여러 다야한 입장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편이 아니면 곧 저쪽 편으로 간주하는 것이 '빠' 문화적 사고이다. 아무리 우리가 함께 지지했던 인물이라 해도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옳은 자세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조차도 저쪽 편만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식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하는 것은 이분법적 폭력일 뿐이다."(p.243)


[ 2012년 7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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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죽었다 한마당 글집 3
에버레트 라이머 지음, 김석원 옮김 / 한마당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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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1970년대에 미국에서 발간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 주장이고 그 사이에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주장에 많은 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70년대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자가 말하는 70년대의 학교제도의 현실이 지금도 계속되어서 그런지 그것은 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두 가지 모두가 원인인 것 같다.
 
저자가 "학교는 죽었다"라고 책의 제목을 선정한 이유는 타당해 보인다. "오늘날의 학교는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높은 수준에 이를수록 통치하고 지배하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학교는 국가에 봉사하는 자질을 길들인다. 마치 중세의 국가와도 같은 존재가 된 학교는 모든 가치와 규범을 규정하는 사회의 재판소가 되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학교는 이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하느님의 뜻과는 달리 말을 잘 듣고 잘 보인 자에게는 좋은 선물, 즉 튼튼한 동앗줄을 내려주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나쁜 선물, 즉 썩은 동앗줄을 내려주는 교회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런 의미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해주고 전인적인 인간으로 키워준다는 본래의 사명을 상실한 학교는 이제 죽었다." 이 글에서 중세 종교 관련한 내용만 빼면 21세기 학교제도애 대해 비판하는 글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저자는 당시의 학교를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기술, 즉 테크놀로지가 거대한 물결이 되어 미국사회를 뒤덮어버린 상황에서 학교는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서 권력을 갖는 사람들이 이 지배관계를 통해 이득을 얻게 보장해주며, 더구나 학생들이 이 지배 관계를 거부할 줄 모르도록 무능력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학교는 초급과정에서 고등과정까지 모두를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아 그 학교제도와 운영과정이 옳고 그르고 혹은 그 경쟁이 가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제쳐두도록 만든다. 그는 사람들이 교육에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테크놀로지의 노예 혹은 테크놀로질는 이름에 의하여 다른 것들의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유인을 만들기 위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제도를 거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교육에 대한 개념 규정이야말로 지금도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과 희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 곳인가? 저자는 그것을 1. 학생을 보호하는 기능, 2. 사회적 역할의 선별(사회계층화 작업) 기능, 3. 이론이나 원리 혹은 사상을 주입시키는 기능, 4. 기술과 지식을 개발시키는 통상적인 교육기능이라고 분류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회 통제를 위한 효율적인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그런 학교의 역할이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남을 지적한다. 그는 학교제도가 개인에게끼치는 가장 큰 해악을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재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리 다른 사람에 의하여 결정되어 버리고, 모든 배움을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배우게 된다.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학교애서 가르치는 것밖에 없으며,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누군가가 학교에서 틀림없이 자기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는 믿음이 주입된다. 아이들은 학교가 제공하는 가치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가치관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배우게 되고. 그리하여 체제 속에서 별다른 마찰 없이 지내는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 즉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를 입학 전보다 퇴행시키게 되는 것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주입시키는가? 저자는 70년대에 미국 정부가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가치, 신화 혹은 이데올로기가 기회평등, 자유, 진보, 능률임을 지적하고 이 가치 또는 이데올로기의 이면에 강요된 불평등의 현실, 지배와 억압이 증대되는 현실, 빈부격차의 현실, 여론조작의 현실을 감추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저자는 학교의 제도화와 독점화가 산업사회의 운영논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명한다.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필요한 소비물자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건전하거나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생활을 향상시킨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사람들이 상품화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면서 이렇게 훈련될수록 점점 더 자신의 환경을 자신이 형성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그의 노력과 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행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구입하는데 모두 소비되고 말며, 개인의 생활 환경이란 자신의 소비양식에 수반되는 부산물로서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이반 일리히, <제도 혁명에의 호소> 중에서)
그는 인간의 욕구가 제도적으로 충족되게 됨에 따라  그 제도들은 그의 생산물을 한정하며 그것을 향유하는 것도 통제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기존제도는 점차로 1. 팔요를 충족시켜주는 재화나 서비스를 규정하고(학교의 경우 교육 Education을 학교활동 Schooling으로 대체), 2. 이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이러한 규정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며(사람들은 교육을 학교활동과 동알시하도록 유인된다), 3. 필요로 하는 사람 중에 일부분은 그 생산물을 향유할 수 없도록 배제해 버리며(어느 수준에 이르면 학교는 단지 일부의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게 된다), 4.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자원을 매점매석한다(학교는 교육에 유용한 자원을 독점한다). 그는 이렇게 일반화시킨 것은 교육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 여행 등 다른 여러 가지 인간의 욕구에 대해 모두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제도를 '지배적 제도'라 규정하고 이렇게 제도를 인간사회 전 영역에 확대시키는 이유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교제도는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지배적 제도'의 공통점은 한 단체 또는 개인에게 상대방에 비해 우위를 확보해 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우위가 지속되면 이 제도에 따른 가격을 계속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저자는 '민주적인 제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민주적인 제도는 "다른 사람에게 우위를 제공한다거나 사람들이 그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 않으면서, 복지기관어럼 서비스를 제공하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제도다. 그것은 산업사회의 생산체제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조직망의 형태를 취한다. 그는 이러한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교육의 경우 교육자원과 교육인력을 재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민주적 교육제도란 교육자원은 교육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교육재정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하며 기존의 학교시설과 교육인력은 학생들과의 네트워크와 유기적인 연결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도록 한다. 

한국에서 당장 학교제도를 해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고 해체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학교제도가 지난 20세기부터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자율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지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8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보이지 않는 세력과 제도를 통해 '내 인생이 아닌 남을 위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경계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2012년 7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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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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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과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부시가 당선되었다. 부시는 보수파가 아니라 우파 내지 극우파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당시 대선의 결과는 20세기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51개 주 중에서 갠자스 등 전반적으로 '가난하다'고 평가받는 미 본토 중서부 지역에서 부시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잘 사는 지역인 본토 좌우 주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다. 
캔자스 주 출신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저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캔자스 등 미국 중서부 지역은 20세기ㅡ초반부터 1960~70년대까지 진보적, 좌파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2000년 대선 결과가 나타난 이유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의 고향인 캔자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걸까? 책의 제목인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역자와 출판사가 한국어로 번역하고 출간하면서 마케팅을 위해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과 2004년 공화당 부시 정권의 탄생은 클린턴 정부 시절 잠시 주춤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욱 확대, 심화되도록 하였고 결국 2008년 미국민들에게 서브프라임을 시발로 하는 경제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부시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 뿐만 아니라 부자감세와 기업 이익 증대로 이어졌고 미국 내 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그렇다면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러나 캔자스를 비롯한 낙후된 지역이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부자들의 정당 공화당을 지지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우파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정치조작의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자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토마스 프랭크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여러 풍경들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민중의 착란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 책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발간되었는데, 당시 토마스 프랭크가 걱정스럽게 짐작했던 부시의 승리도 적중했다. 이 책은 발간된 후 장기간"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획기적으로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애국심에 불타는 건장한 공장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면서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다.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진다.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은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중서부 도시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공업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낸다. 그곳이 바로 캔자스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자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여러 풍경들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민중의 단순화, 우익화를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 책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발간되었는데, 당시 토마스 프랭크가 걱정스럽게 짐작했던 부시의 승리도 적중했다. 이 책은 발간된 후 장기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획기적으로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하다.

저자는 ‘두 개의 미국’ 담론을 통해 공화당으로 상징되는 '빨간색 미국'의 특성이 어떻게 조작되었고 그것이 결국 어떻게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본래 캔자스는 미국 내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도시가 있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좌파 운동이었던 민중주의가 전역을 휩쓴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이 보수의 중심으로 돌변한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보수화로 치닫는 미국 정치의 단면을 짚어준다 그리고 미국 내에 기독교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현실의 경제적 문제가 은폐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수 정치가와 자본가는 기독교적 가치를 역설하면서 당면한 현안에 빗겨가는 전략을 취하는데, 이것이 민중들에게 그대로 먹혀들여간다는 것이다. 결국 민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규제 철폐와 민영화를 비롯한 여러 자유방임 정책에 속수무책이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미국과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 내 보수 기독교 집단의 정치개입과 정치선동 역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자는 보수 우파를 진정으로 신앙심 깊은 보통 민중과 기회주의자로 나눈다. 보수 우파에게 순교는 애국심과 동일 선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보수 우파 지도자들의 명백한 위선적 언행에 대한 일반 보수주의자들의 무관심은 보수대반동이 보여주는 놀라운 문화적 현상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보수 반동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행동은 기업을 위할 뿐이다. 가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보수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전통적 가치들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기본적 특징이다. (중략) ‘레이건은 자신을 전통 가치의 수호자라고 자처했지만... 그가 정말로 주목한 것은 20세기의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 뉴딜정책의 폐기였다."

2000년 미국에서 보수대반동을 일으켰던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과거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 중도파와 달리 '네오콘(NeoCon)'이라 부르는 기독교 우파였다. 이들은 중도파와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파조차 민주당의 하수인으로 매도할 정도로 극우적 성향을 띤다. 보수대반동은 이런 기독교 우파들의 '문화전쟁'을 바탕으로 격렬하게 진행되는데, 그들의 문화전쟁은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와 같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현상에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킨다. 떠들썩한 그들의 주장 속에서 민중들의 삶과 지역의 피폐함이 경제구조와 그에 따른 계급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은폐하게 만든다.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목을 조르는 규제 철폐와 노동 유연화를 비롯한 자유방임 정책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기독교 우파의 문화전쟁은 격렬하게 진행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 내에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연방대법원에 십계명 비석을 세운다거나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실제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에 그들이 주도하는 문화전쟁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건 가치의 실현이라기보다 민중의 도덕적, 종교적 감정을 정치적 분노로 만들어 선거에서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문화전쟁으로 얻은 것은 단지 보수 우파의 정치적 승리일 뿐이며 그것은 부자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안겨줄 뿐이다.
캔자스의 문화전쟁에서 분수령을 이룬 것은 위치토에서 일어났던 낙태 반대 운동인 1991년 ‘자비의 여름Summer of Mercy’이었다.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캔자스는 급격하게 우경화되고 보수 반동의 기운이 맹렬하게 힘을 갖게 된다. 보수 반동의 문화전쟁은 미국 내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낙태 문제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낙태 반대를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헤프닝들은 광기를 동반하기도 하면서 시끌법썩하게 진행되며 기독교 우파의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반드시 부자들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많은 것을 내놓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풀뿌리들이 많다. 이들의 적극적 활동은 결국 공화당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자신들이 비판했던 대부분 기업가인 공화당 중도파에게 실질적 이익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저자는 심각하게 지적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단시간에 지금처럼 보수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뉴딜 정책 이후 미국에서 보수 우파의 입지는 좁아졌는데 대중의 지지를 잃고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된 보수 우파가 다시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뉴딜 이후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1960년대부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보수 기독교와 '가치의 연합'을 구축하는 데 적어도 한 세대의 시간을 보냈다. 공화당은 보수 교회의 가치에 편승해 기독교 신자를 공화당 유권자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독교 보수세력을 끌어들인 것은 보수의 큰 소득이었다. 최근 보수대반동 상황의 문화전쟁이 효과적으로 수행되어 구호만 난무한 가치의 문제가 전면으로 이슈화되고 현안이 되어야 할 보다 실질적인 경제 문제가 뒤로 처지게 되어 보수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선거결과가 발생했다. 2000년 대선의 승리는 실로 그들이 갈망했던 뉴딜의 완전한 폐기가 가까워지고,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제대로 성과를 맺는 사건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보수 우파의 집요한 노력에 비해 민주당과 미국 내 진보세력은 여러 면에서 안이했고 실책을 범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특히 1996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클린턴과 민주당이 선택한 '삼각화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전략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층을 버리고 일부 중도 성향의 보수파와 지식인들을 포섭하려고 했다. 삼각화 전략은 오히려 민주당이 스스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은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부자들에게 유리한 경제노선으로 돌아서고 자신들조차 경제 문제를 정치 의제화하지 못한 것은 크나큰 오류였다. 저자는 민주당이 비록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지적대로 민주당의 오판은 2000년, 2004년 대선의 패배로 이어졌다.

"좌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자신들이 잘났다고 만족해하는 동안 우파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부지런히 그 일에 몰두했다. 보수주의 ‘운동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주목하라... 위치토의 코크 일가가 운영하는 것과 같은 재단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돈은 최고 수준의 정치 투쟁에 흘러들어가고 자유시장 경제학을 가르치는 대학과 잡지, 그리고 버넌 L. 스미스와 같은 사상가들을 매수한다. 그리고 후버 연구소나 미국기업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들은 앤 쿨터나 디네시 드소우자 같은 우파 전문가 집단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책을 쓰고 언론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또 그들을 지원하는 전문 로비스트 집단과 몇몇 잡지와 신문들, 그리고 출판사 한두 곳도 있다. 그리고 밑으로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웃들을 조직하고 심지어 보수 반동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기 집까지 저당 잡히는 마크 기첸과 팀 골바, 케이 오코너와 같은 헌신적인 풀뿌리 조직가들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정치를 돌아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는 지난 4월 11일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와 관련해서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번 총선거는 2008년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현 집권 여당인 보수세력의 경제 정책 실패와 각종 비리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당의 승리를 점쳤다. 게다가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민운동 세력과 통합하고 진보정당과 연대하여 야권후보 단일화도 이루어냈다. 그러나 결과는 야당의 패배였고 다가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도 야권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2012년 한국의 총선 지도는 2000년 미국의 대선지도처럼 빨갛게 변해버렸다. 한국의 정치상황이 저자가 분석한 미국적 상황과 온전한 비교가 가능할 수 없을 테지만, 보수진영의 교묘하고 집요한 정치 조작술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핵심적 현안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 문제를 전면으로 부상시켜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한다거나, 삽시간에 당명까지 바꾸어 탈바꿈하는 보수의 놀라운 힘에서 미국 보수집단과 한국 보수집단의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미국 보수진영의 '문화전쟁'은 한국 보수진영의 '이념전쟁'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낙후된 지역에서 보수정당인 공화당에 더 많은 표를 던지듯 한국사회의 적지 않은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지역주의 투표 형태를 감안하더라도...)
 
결국 이 책은 "정치란 결국 민심의 마음을 어떻게 얻는가"가 관건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보수정당의 뛰어난 정치 조작술과 자기 계급적 이해와 상관없는 투표행위와 관련해서 우리의 정치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보수우익 진영처럼 비열한 꼼수를 쓰고 계급적 이해관계를 벗어던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수우익 진영의 그러한 방법과 전략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원칙적이고도 유연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정치 상항에서 생각해보면,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이 새누리당의 이념적 공세와 언론조작을 극복하고 좀 더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 사회적 약자 편에 굳건히 서야 함을 의미한다.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놀아나지 않고 민주진보세력이 연대의 위력을 공고히하면서 유권자들의 마음과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인상적인 문장 :

- 보수 반동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행동은 기업을 위할 뿐이다. 가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보수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전통적 가치들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기본적 특징이다. (중략) "레이건은 자신을 ‘전통 가치’의 수호자라고 자처했지만 (중략) 그가 정말로 주목한 것은 20세기의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 뉴딜정책의 폐기였다." (p.16)

-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을 선동해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익만 주는 반란을 경험했다. 우리가 캔자스에서 본 것은 이런 수수게끼 같은 현상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오늘날도 엄청나게 많은 성난 노동자들이 오만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그들은 특권층의 후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은 리우드에 사는 상류층들이 보내는 작은 호의를 비웃고 있다. 그들은 미션힐스의 대저택들 앞을 지나면서 조기를 게양한다. 그들은 백만장자들이 떠는 동안 자신들의 끔찍한 요구 사항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결국 “우리는 당신들의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여기에 있다”라는 말이다. (p.142)

- 기업계는 인류가 자유시장 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어떤 주장도 결국에는 (중략) 인간의 오만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이용한다. (중략) 공화당은 그 지긋지긋한 박사들과 그들의 훌륭한 연구, 그리고 그들의 정부기관들을 비난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을 규합할 때 여러 가지 합리적이고 심지어 고결하기까지 한 반지성주의 전통들을 강요했다. 그러한 반지성주의의 첫 번째 주자가 바로 개신교 복음주의다. (중략) 보수주의자들은 20세기의 모든 개혁 노력을 인간이 자유시장의 또 다른 이름인 하느님이 부여한 불변의 질서를 억누르고 자기 멋대로 바꾸려는 강제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p.243~245)

- 텔레비전과 영화가 우리의 삶과 상상력을 지배하는 미국에서 자유주의가 우리를 지배한다고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략) 그러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문화사업도 기본적으로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있는 것이지 민주당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이러한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보수 반동 세력을 뒷받침하는 힘의 원천이다. (p.287~288)

[ 2012년 7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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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8
정진상 지음 / 책세상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강준만 교수(<입시전쟁잔혹사>), 김경근 교수(<대학서열깨기>), 김동훈 교수(<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김상봉 교수(<학벌사회>)와 비슷하다. 우리 사회에서 단 한 번의 수능시험 성적과 그에 따라 배정되는 대학 졸업장은 일종의 '신분 증명서'다. 한 단계라도 높은 신분증을 취득하기 위해 오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시 지옥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고, 적지 않은 학생들은 '낙오자'로 분류되어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격리당한다.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어 무한 경쟁의 장이 되고, 대학은 또 다른 시험 준비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 책은 이러한 교육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채제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학벌주의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하며, 지역 국립대학의 학구별 통합, 전문대학원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 책의 구상은 대입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대학을 평준화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자는 것으로,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두껍지 않은 책 속애 왜 대학서열채제가 문제인지 핵심적인 사항을 정리한 후 곧바로 몇 가지 교육문제 개혁안을 비교, 검토하면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개혁은을 실천할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국랍대 통합네트워크(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공통적인 질문과 우려에 대하여 설명한다. 보통 문제제기하는 내용들은 대학 경쟁력, 엘리트 교육, 대학서열채제 변동, 대학의 자율성, 전문대학 문제, 정부의 실행의지 등이다.

저자가 제시한 '국립대 농합네트워크(안)'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소개하면,
1. 대학과 대학원 제도
1)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한다.
2) 대학의 공교육체제로서의 전환이라는 원칙에 따라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한다.
3) 서울대학교는 따로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는 대신 학부 강의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4) 학부 과정은 4년으로 하되 1기 과정 2년에는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 계열, 두 계열만 두고 2기 과정 2년은 학부제로 운영한다.
5) 법대, 사범대, 경영대, 의치대, 한의대, 수의대, 약대 등 전문직을 위한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이 과정들을 전문대학원으로 설치한다.
6) 지역의 국립대학들을 현재의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학구별로 통합하고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한다.
7) 대학원은 일반 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구분한다. 학문을 위한 일반 대학원은 학구별 특성화를 유도한다.
8) 전문 직업을 위한 전문대학원은 학구별로 인구 비율에 따라 입학 정원을 조정한다.

2. 학부 입학제도
1) 신입생 선발의 단위는 대학별, 학과별이 아니라 전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총정원으로 한다.
2) 대학 입학 자격은 인문사회계와 자연계 두 계열로만 나눈다.
3) 대학 입학 자격은 고교내신성적과 계열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총 입학 정원 계열별로 부여한다.
4) 계열별 대학 입학 정원 중 30%는 별도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
5) 현행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이를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대체한다.
6)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한 학생들은 먼저 1,2,3 지망으로 대학(캠퍼스)을 지원해 배정받고, 정원이 초과되어 대학을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추첨을 통해 배정받는다.
7) 학부 2기 과정의 각 학부(인문학부,사회과학부,자연과학부,공학부,농학부,해양학부,가정학부등)는 학부 1기 과정 이수자 중에서 무시험 전형으로 진입생을 선발한다.

3. 대학원 입학제도
1) 일반 대학원은 학부 과정의 성적을 중심으로 한 서류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2) 일반 대학원의 각 학과는 신입생 선발에서 다른 대학(캠퍼스) 출신 학생에게 50% 범위 내에서 우선권을 부여한다.
3) 일반 대학원의 특성화를 위해, 위의 원칙 아래서 각 대학원의 전공 학과에 최대한 자율적인 신입생 선발권을 부여한다.
4) 전문대학원은 학부 과정 이수자 중에서 학부 과정 성적(50% 반영)과 별도의 선발시험 점수(50%)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5) 전문대학원은 지역 균형 인재등용 제도의 취지에 따라 동일 학구의 학부 출신에게 우선권(80%)를 부여한다.

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운영
1) 대학 학적과 관계없이 모든 졸업생에게 동일한 '국립대학 학위'를 수여해, 졸업장이 아니라 성적표가 사회적 평가 기준이 되도록 한다.
2)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내의 어떤 대학(캠퍼스)에서도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한다.(상대평가제 도입으로 과열지망 방지)
3) 서울대학교는 학부 과정 강의를 개설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 대학의 엄격한 학사관리가 필수적이다.
5) 대학평준화로 인한 학생들 사이의 실력 차이에서 오는 교육의 수월성 문제는 동일한 교과목에 대해 수준별로 복수 강의를 편성함으로써 해소한다.
6) 대학 공교육체계의 원칙 아래,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단계적으로 인하애 결국 무상 교육으로 전환한다.
7) 국립학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신입생 통합 선발을 제외한 모든 학사를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8) 대학에 학사 관리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사립대학이 교육의 공공성 실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9) 교수임용제도를 개선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속한 대학 교수들의 상호교환제도를 확충한다.

5. 부대적 제도 개혁
1) 공공부분애소부터 지역균형인재등용제도 도입 ? 고시제도의 개혁
2) 사립학교제도의 개혁(사학의 공공성 확보, 대학운영의 민주화, 부패방지의 제도화)
3) 조세제도의 개혁(부차적, 단계적)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지난 2004년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위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범국민교육연대'를 발족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정책대안으로 정부와 정치권, 시민들에게 제시했다.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과 교육부는 이를 무시하고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무한입시경쟁과 사교육 팽창, 고교평준화 위협, 대학경쟁력 상실로 이어졌으며 참여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2007년 12월 국가권력은 10년 만에 기득권에게로 넘어갔다.(물론 교육문제 해결 실패가 대선 실패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위에 제시된 교육개혁안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의 교육부분에서 크게 변화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곽노현, 김상곤 등 진보교육감의 활약은 가장 핵심적인 과제해결에서 취약하다)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5개 분야의 교육개혁안이 올해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부분에서의 논의를 촉발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차기 정권에서 단계적으로 실현된다면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통해 초,중,고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쓸데없는 사교육이 대폭 사라질 것이며 대학생들이 무모하게 고시시험에 매달리는 현실이 상당부분 극복될 것이라 믿는다. 즉 졸업장이 아니라 능력과 자질을 통해 인정받는 사회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최근 민주통합당에서 대선 정책공약을 수립하기 위해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대학개혁과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민주통합당 내의 누가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당의 정책안은 조금 어설펐고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당하면서 여론에서 사라졌다. 민주통합당의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의 세부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라는 취지와 목표는 동일했다.
지난 민주통합당의 공청회는 제목도 다르고 구체적인 정책내용도 다르지만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정책대안이 8년 만에 민주통합당에서 '국공립대 연합체제'라는 이름으로 고개를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당시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민주통합당(과거 열린우리당)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질병임을 동의하여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려고 준비 중인 것이다. (그동안 교육개혁운동을 끈질기게 진행해온 분들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낄만 할 것도 같다.)
민주통합당의 교육개혁안이 비록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한 발을 뗀 것이라 인정하고 그들의 정책이 좀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교육개혁안이 되도록 주변에서 격려하고 채찍질 했으면 좋겠다. 교육개혁은 우리의 아이들의 앞날이 달린 문제이니까...
진보적인 인사로 알려진 서울대의 모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에 한국의 착취-피착취 구조와 권위주의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교육개혁보다 우선순위라면서 교육개혁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개혁, 최저생계를 위한 최저임금투쟁, 안정적인 고용을 위한 비정규직 투쟁, 공정한 법집행을 위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모두 중요하듯이 교육개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과제이자 아이들을 위한 절대절명의 과제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2004년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문재인 현대통령 후보이고, 참여정부 국무총리는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이고, 2005년부터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김진표 전원내대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 같은데 아직 교육문제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이해찬 두 사람의 교육부분 공약도 불투명하다. 과거의 실패와 과오를 깨닫지 못하면 미래에 또 다시 오류를 반복할텐데...
 
[ 2012년 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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