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8
정진상 지음 / 책세상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강준만 교수(<입시전쟁잔혹사>), 김경근 교수(<대학서열깨기>), 김동훈 교수(<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김상봉 교수(<학벌사회>)와 비슷하다. 우리 사회에서 단 한 번의 수능시험 성적과 그에 따라 배정되는 대학 졸업장은 일종의 '신분 증명서'다. 한 단계라도 높은 신분증을 취득하기 위해 오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시 지옥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고, 적지 않은 학생들은 '낙오자'로 분류되어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격리당한다.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어 무한 경쟁의 장이 되고, 대학은 또 다른 시험 준비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 책은 이러한 교육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채제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학벌주의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하며, 지역 국립대학의 학구별 통합, 전문대학원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 책의 구상은 대입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대학을 평준화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자는 것으로,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두껍지 않은 책 속애 왜 대학서열채제가 문제인지 핵심적인 사항을 정리한 후 곧바로 몇 가지 교육문제 개혁안을 비교, 검토하면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개혁은을 실천할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국랍대 통합네트워크(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공통적인 질문과 우려에 대하여 설명한다. 보통 문제제기하는 내용들은 대학 경쟁력, 엘리트 교육, 대학서열채제 변동, 대학의 자율성, 전문대학 문제, 정부의 실행의지 등이다.

저자가 제시한 '국립대 농합네트워크(안)'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소개하면,
1. 대학과 대학원 제도
1)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한다.
2) 대학의 공교육체제로서의 전환이라는 원칙에 따라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한다.
3) 서울대학교는 따로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는 대신 학부 강의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4) 학부 과정은 4년으로 하되 1기 과정 2년에는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 계열, 두 계열만 두고 2기 과정 2년은 학부제로 운영한다.
5) 법대, 사범대, 경영대, 의치대, 한의대, 수의대, 약대 등 전문직을 위한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이 과정들을 전문대학원으로 설치한다.
6) 지역의 국립대학들을 현재의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학구별로 통합하고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한다.
7) 대학원은 일반 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구분한다. 학문을 위한 일반 대학원은 학구별 특성화를 유도한다.
8) 전문 직업을 위한 전문대학원은 학구별로 인구 비율에 따라 입학 정원을 조정한다.

2. 학부 입학제도
1) 신입생 선발의 단위는 대학별, 학과별이 아니라 전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총정원으로 한다.
2) 대학 입학 자격은 인문사회계와 자연계 두 계열로만 나눈다.
3) 대학 입학 자격은 고교내신성적과 계열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총 입학 정원 계열별로 부여한다.
4) 계열별 대학 입학 정원 중 30%는 별도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
5) 현행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이를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대체한다.
6)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한 학생들은 먼저 1,2,3 지망으로 대학(캠퍼스)을 지원해 배정받고, 정원이 초과되어 대학을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추첨을 통해 배정받는다.
7) 학부 2기 과정의 각 학부(인문학부,사회과학부,자연과학부,공학부,농학부,해양학부,가정학부등)는 학부 1기 과정 이수자 중에서 무시험 전형으로 진입생을 선발한다.

3. 대학원 입학제도
1) 일반 대학원은 학부 과정의 성적을 중심으로 한 서류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2) 일반 대학원의 각 학과는 신입생 선발에서 다른 대학(캠퍼스) 출신 학생에게 50% 범위 내에서 우선권을 부여한다.
3) 일반 대학원의 특성화를 위해, 위의 원칙 아래서 각 대학원의 전공 학과에 최대한 자율적인 신입생 선발권을 부여한다.
4) 전문대학원은 학부 과정 이수자 중에서 학부 과정 성적(50% 반영)과 별도의 선발시험 점수(50%)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5) 전문대학원은 지역 균형 인재등용 제도의 취지에 따라 동일 학구의 학부 출신에게 우선권(80%)를 부여한다.

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운영
1) 대학 학적과 관계없이 모든 졸업생에게 동일한 '국립대학 학위'를 수여해, 졸업장이 아니라 성적표가 사회적 평가 기준이 되도록 한다.
2)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내의 어떤 대학(캠퍼스)에서도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한다.(상대평가제 도입으로 과열지망 방지)
3) 서울대학교는 학부 과정 강의를 개설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 대학의 엄격한 학사관리가 필수적이다.
5) 대학평준화로 인한 학생들 사이의 실력 차이에서 오는 교육의 수월성 문제는 동일한 교과목에 대해 수준별로 복수 강의를 편성함으로써 해소한다.
6) 대학 공교육체계의 원칙 아래,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단계적으로 인하애 결국 무상 교육으로 전환한다.
7) 국립학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신입생 통합 선발을 제외한 모든 학사를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8) 대학에 학사 관리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사립대학이 교육의 공공성 실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9) 교수임용제도를 개선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속한 대학 교수들의 상호교환제도를 확충한다.

5. 부대적 제도 개혁
1) 공공부분애소부터 지역균형인재등용제도 도입 ? 고시제도의 개혁
2) 사립학교제도의 개혁(사학의 공공성 확보, 대학운영의 민주화, 부패방지의 제도화)
3) 조세제도의 개혁(부차적, 단계적)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지난 2004년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위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범국민교육연대'를 발족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정책대안으로 정부와 정치권, 시민들에게 제시했다.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과 교육부는 이를 무시하고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무한입시경쟁과 사교육 팽창, 고교평준화 위협, 대학경쟁력 상실로 이어졌으며 참여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2007년 12월 국가권력은 10년 만에 기득권에게로 넘어갔다.(물론 교육문제 해결 실패가 대선 실패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위에 제시된 교육개혁안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의 교육부분에서 크게 변화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곽노현, 김상곤 등 진보교육감의 활약은 가장 핵심적인 과제해결에서 취약하다)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5개 분야의 교육개혁안이 올해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부분에서의 논의를 촉발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차기 정권에서 단계적으로 실현된다면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통해 초,중,고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쓸데없는 사교육이 대폭 사라질 것이며 대학생들이 무모하게 고시시험에 매달리는 현실이 상당부분 극복될 것이라 믿는다. 즉 졸업장이 아니라 능력과 자질을 통해 인정받는 사회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최근 민주통합당에서 대선 정책공약을 수립하기 위해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대학개혁과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민주통합당 내의 누가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당의 정책안은 조금 어설펐고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당하면서 여론에서 사라졌다. 민주통합당의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의 세부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라는 취지와 목표는 동일했다.
지난 민주통합당의 공청회는 제목도 다르고 구체적인 정책내용도 다르지만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정책대안이 8년 만에 민주통합당에서 '국공립대 연합체제'라는 이름으로 고개를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당시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민주통합당(과거 열린우리당)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질병임을 동의하여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려고 준비 중인 것이다. (그동안 교육개혁운동을 끈질기게 진행해온 분들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낄만 할 것도 같다.)
민주통합당의 교육개혁안이 비록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한 발을 뗀 것이라 인정하고 그들의 정책이 좀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교육개혁안이 되도록 주변에서 격려하고 채찍질 했으면 좋겠다. 교육개혁은 우리의 아이들의 앞날이 달린 문제이니까...
진보적인 인사로 알려진 서울대의 모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에 한국의 착취-피착취 구조와 권위주의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교육개혁보다 우선순위라면서 교육개혁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개혁, 최저생계를 위한 최저임금투쟁, 안정적인 고용을 위한 비정규직 투쟁, 공정한 법집행을 위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모두 중요하듯이 교육개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과제이자 아이들을 위한 절대절명의 과제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2004년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문재인 현대통령 후보이고, 참여정부 국무총리는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이고, 2005년부터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김진표 전원내대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 같은데 아직 교육문제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이해찬 두 사람의 교육부분 공약도 불투명하다. 과거의 실패와 과오를 깨닫지 못하면 미래에 또 다시 오류를 반복할텐데...
 
[ 2012년 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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