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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 무한경쟁시대의 착한 대안, 협동조합 기업
스테파노 자마니 & 베라 자마니 지음, 송성호 옮김, 김현대 감수 / 북돋움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몬드라곤> 시리즈 두 권 이후 다시 읽는 협동조합 이야기...
<몬드라곤> 시리즈가 <몬드라곤>이 스페인에서 어떻게 태동하고 성장하고 위기를 극복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다룬 책이라면, 이 책은 서구사회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어떤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자랐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협동조합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도 협동조합의 경제학적 접근과 지배구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몬드라곤> 시리즈가 스페인의 고유한 사회문화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서구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협동조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근대사회의 형성 시점이 늦었던 스페인은 협동조합의 태동 역시 중부 유럽보다 늦었다.
<몬드라곤> 시리즈는 스페인의 특정 지역인 바스크에서 특출한 인물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열정과 집념으로 '몬드라곤'이라는 구체적 협동조합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 시작한 협동조합이 금융, 서비스, 농업, 유통, 연구개발, 대학까지 이어지고 그룹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요즘 세계 최대의 기업이 우스울 정도였다. 협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과 발전동력이 이름 그대로 자조와 협동임을, 그리고 그 구체적인 결과가 '해고 없는' 기업,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조직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사회문화적인 밑바탕에 자조와 협동이라는 관념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과 협동조합 방식의 기업에 뛰어들기 위해 조합의 주체들이 오랜 시간 협동조합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내 주변에서 유행처럼 불어오는 협동조합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경우 자조와 협동, 배려와 합의와 같은 문화보다 조급함과 성공신화, 무한경쟁과 시험, 투쟁과 편가르기를 익숙하게 접했고 그 속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우리사회 저변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문화, 신자유주의를 부분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책은 <몬드라곤>과 달리 협동조합 전반에 대한 현황과 유형,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념과 철학, 발전역사, 지배구조 등을 알려준다. 협동조합의 원리가 무엇이고, 세계의 협동조합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협동조합이 번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 간의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해 성장해온 기업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논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주식회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물론 저자가 주식회사라는 제도와 형태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 기업'은 무한경쟁, 승자독식, 양극화 등 '1%의 탐욕'이 빚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대안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는가 하면 우리 국회 역시 2011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해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의 물꼬를 텄다.
"신뢰에서 나오는 협동으로 경제 효율의 단순 논리를 뛰어넘는다"
"협동조합은, 다른 사람의 재산에 손대지 않는다. 강탈하지 않는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비밀 결사를 만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아도 된다. 폭력에 빠지지 않는다.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다칠 일이 없다. 공짜로 받거나 특혜를 구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와 거래하지 않고, 근면한 사람과의 신뢰를 깨지 않는다. 구걸하거나 비열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자조와 자립이다.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으로 정당한 자기 몫을 누린다."(협동조합의 역사, 1906)
우리는 보통 기업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주식회사를 떠올린다. 농협마저도 기업이란 느낌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생경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저자인 자마니 부부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볼로냐는 경제 활동의 40%가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협동조합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전제로 탄생, 성장해온 기업 형태이며, 특정분야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론적으로 협동조합은 어찌 보면 두 얼굴의 야누스이다.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차원이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기업이다. 동시에,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경제 주체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직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협동조합은 설명하기도 접근하기도 어렵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몬드라곤> 시리즈를 읽은 후 깊은 인상을 받고 비지니스를 생각할 때마다 협동조합 방식을 생각하기는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지만...ㅋ)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지만, 저자는 사실 협동조합은 오히려 주식회사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기업은 산업혁명 시기에 생겨났지만, 서로 연대하고 가난을 배려하는 문화는 그 수 세기 전부터 있었다. 중세 사회에서는 상인과 장인 같은 생산 계층이 모여 각자의 이해를 협력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길드와 상인회의소 조직을 만들었다. 생산 계급에 속하지 못하거나 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병원, 보육원, 공공대부기관, 빈민보호소 같은 조직도 세웠다. 이런 조직들은 시장의 관계망 속에 운영되면서도, 어떤 구성원도 배제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생활과 조화를 이루었다. 상장 회사 같은 '자본주의' 기업 형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였다.
사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동네에서 민중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던 '두레'나 '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말살시켜 버렸지만...ㅠ
협동조합은 오늘날에도 활발히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을 수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총 8억 명에 이른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캐나다로 이들 국가에서는 국민 절반이 조합원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일본이 꼽히고, 놀랍게도 미국 역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조합원이다. 모든 경제 부문으로 협동조합이 진출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협동조합이 왕성한 부문은 농업 및 식품 가공, 소매업, 그리고 은행 및 보험 쪽이다.
뉴질랜드 경제를 끌어가는 최대 기업, 폰테라(낙농)와 제스프리(키위)도 협동조합이다. 리오넬 메시의 FC바르셀로나, 미국 언론의 대표주자 AP통신, 캘리포니아 오렌지의 대명사 선키스트, 프랑스 최대은행 크레디 아크리콜, 이런 세계적 기업들도 협동조합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협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는 나라가 뛰어난 경제 발전과 복지 수준을 동시에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조직 형태로 폄하 받아왔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라는 두 가지 기업 형태를 효율성 측면에서 비교하는 것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관점은 모든 인간을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로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다른 가치와 신념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나아가,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오히려 저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협동조합이 가진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사회의 민주화이다. 생산 현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의 민주화를 강화하고 지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이 책에서는 '정부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화된다면, 기업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는 똑같이 정당화된다'라는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말을 소개한다. 민주적 원칙이 오직 정치에서만 적용되는 한, 그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일 수가 없다. 좋은 사회라면, 시민이자 유권자로서는 민주적이고,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는 비민주적인 그렇게 당황스러운 분열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2012년은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지난 6월(?)에 서울시청 앞 시민과장에서는 우리나라 협동조합들이 모두 모여 며칠 동안 기념식과 행사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국회를 통과한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2012년 12월부터는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법제도가 미비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협동조합 설립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새로이 제정된 법은 그 내용이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는 물꼬를 트는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전혀 다른 접근과 방법으로 우리들이 간혹 꿈꾸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실험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과 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뢰, 협조, 상호주의, 공평함, 민주주의, 양질의 고용, 자율적인 삶 등...
[ 2012년 8월 0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