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재발견 - 소셜미디어, 대한민국 정치의 판을 바꾸다!
유창선 지음 / 지식프레임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3개월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경제형편 상 밥벌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오래도록 치과를 다니면서 몸도 불편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적극적 관심을 보여온 정치사회 부분에서도 이렇다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4.11 총선에서 야권은 단일화를 하고서도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고 통합진보당은 13석이라는 역대 최대 성적을 올리고 나서 '내분과 당권투쟁'이라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날씨도 점점 더워져 체력도 말이 아니고...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명의 '괜찮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유창선씨다. 과거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잘 몰랐는데 유창선씨는 나름 괜찮은 정치(시사)평론가였다.


5월 2일 통합진보당 조준호 전대표가 언론에 터트린 '비례투표 부실,부정선거 사태'가 의혹을 넘어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 일방적으로 도배되면서 사실로 '규정'되어 버렸고 하루아침에 통합잔보당이 '부정선거당'이 되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을 이어가면서 그나마 존재하는 정당들 중에서 중산층, 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고군부투해온 진보정당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진보당 내에서도 스스로 '자학'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정파간 극단적 대립과 사생결단의 당권투쟁이 벌어지고 진보 미디어는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카더라'라는 당내 정보를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진보정당 중 또 다른 하나인 진보신당과 소위 진보지식인이라는 인사들까지 합세하여 통합진보당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데 일조했다. 그 과정에는 조금의 애정도 자그마한 신뢰도 느낄 수 없었다.
유창선씨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달을 때 제3자적 시각으로 냉정함을 가지고 정치평론을 진행한 편이다. 대립하는 양측 입장에서는 그의 평론 내용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유창선씨의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그의 글을 몇 차례 읽었음에도 그의 평소 철학과 의견이 궁금하여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는 이 책 <정치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사회가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시대'를 맞아 기존의 정치지형이 변화되고 있음을 애기하려고 했다. 그는 2009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소셜미디어 시대'로 접어들었고,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킹메이커는 SNS라고 결론을 내린다. 즉 그는 SNS를 통해 한국정치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SNS가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뉴미디어로서의 기술적 가치를 넘어, 이제 시대적인 흐름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SNS가 유통하는 정보를 숙의가 덜 된 여론으로 폄하하거나 그 가치를 논하는 일은 '더 이상 쓸모없는 소모전'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SNS가 촉발시킨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나 튀지니지의 재스민 혁명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증명하는 사례들임을 제시한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치러졌던 분당을 보궐선거나 10.26 서울시장 선거는 결국 SNS의 영향력이 당락을 좌우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래서 각 정당들도 선거철만 되면 SNS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올해 치러진 4.11 총선에서는 상대적으로 SNS의 영향력이 기대만큼 폭발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이 역시 스마트폰의 보급률 등을 감안해 지역별로 살펴보자면 결국 "수도권에서의 SNS 영향력은 막강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바야흐로 SNS가 대세를 결정짓는 소셜선거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SNS의 핵심은 바로 ‘소통’이다. 소통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인터넷 미디어는 SNS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권력의 억압과 통제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SNS에 열광했다. SNS에서의 정보는 단지 여론을 형성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결국 오프라인의 시민행동으로까지 촛불처럼 타오르며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권력은 더 이상 올드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으로서 여론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소통’의 문제이다. 이제 소통하지 않으려는 지도자와 정치가는 결코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는 단순히 집권 여당과 보수, 권력에 지배당하는 올드미디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나아가 진보의 소통 방법,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소통을 가로막는 SNS 사용자들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SNS와 소통을 기본 주제로 하면서도 한국 정치의 주요 현안과 인물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평가한다. 왜 시민들이 그토록 '나꼼수'에 열광했고 '나꼼수 현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꼼수'의 4.11 총선 출마를 어떻게 볼 지, 보수와 미디어와 종편과 SNS의 관계에 대해, 5월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올해의 주요 정치인인 안철수 리더쉽, 문재인과 안철수, 소통 부재의 리더쉽 박근혜,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고 있는 '빠'의 정치문화에 분석하고 비판한다. 특히 가장 소통에 능해야 하는 진보가 기성 정치권 만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던진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지도 신뢰도 끊어진 통합진보당의 참화'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뼈아프다. 그는 현재의 재앙이 '4.11 총선을 앞둔 졸속통합의 과정에서 이미 잉태한 것'이고 이번 사태가 '서로 다른 정치문화가 낳은 충돌'이라고 규정하면서 합리적인 절차와 해법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뢰와 의리의 회복이 혁신의 첫 걸음'이라고 제안했지만 이 책이 발간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그의 제안은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 속에서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저자 유창선은 현재 날카로운 시선, 속 시원한 비평으로 유명한 정치평론계의 스타 논객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블로그(www.yuchangseon.com)와 트위터(changseon), 페이스북, 인터넷 개인방송(afreeca.com/sisatv)을 넘나들며 온라인 공간에서 전방위적 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1인 미디어의 선봉장을 스스로 자처했고 이 책은 그런 그가 SNS 시대의 대한민국 정치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MB정권이 들어서기 이전, 그는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섭렵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던 정치평론계의 스타 논객이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과오와 오류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의 펜을 들이댔다. 하지만 MB 정부의 블랙에 걸려 마이크를 빼앗긴 불운의 평론가가 되었다. MB 정부가 들어선 뒤 KBS에서 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퇴출당한 저자는 마이크를 빼앗기며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위기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글하지 않고 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1인 미디어 개척자로서 빼앗긴 마이크를 되찾으며, 그는 여전히 대중들 속에서 재야 평론가로서의 발언을 지속해 왔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글 하나로 하루 방문자가 60만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며 파워 블로거 반열에 올랐고, 2010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 부문 대상, 아프리카 TV의 베스트 BJ 등 거침없는 미디어 활동을 통해 지금은 5만 팔로워 군단을 거느린 논객이 되었다. 비록 지상파 방송은 아니어도 그는 SNS를 통해 수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치 뉴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SNS의 현장 한복판에서 그동안 미디어의 혁명과 변화를 직접 체감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미디어 시대의 우리나라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유권자들과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어떻게 SNS에 대해 어떤 태도와 노력을 해야할 지 분명하게 애기해 주고 있다.


- 기억나는 문장 :


"나는 방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인 만큼, 할 말은 하되 어느 편에 속하지 말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불문율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노력은 정권이나 그 하수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유창선이라는 사람은 MB 정부와 코드가 다르고, 따라서 정부를 비판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 껄끄러웠던가 보다. 자신들 편이 아니면 방송에 나올 수 없다는 야만적 폭력이었다. 도대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근거조차 없이 마이크를 빼앗고 한 사람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폭력이 어떻게 버젓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인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현실이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자신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을 막기 위해 책을 불태우는 분서갱유를 했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방송을 장악하고 마이크를 빼앗는 일을 저질렀다. 나의, 아니 우리의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p.26)


"나꼼수 같은 방송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배려할 이유도 없다. 나꼼수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안 들으면 그만이다. 팟캐스트에 일부러 들어가서 다운로드 받지 않으면 나꼼수를 들을 일이 없다. 원하는 사람만 듣게 되어 있는 것이 팟캐스트 방송이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들으면 되는 일이다. 구태여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게까지 마음에 들 방송을 만들 책임은 없다. 자기들이 언제 나꼼수 방송에 스튜디오라도 한 번 빌려준 적이 있는가. 그들은 나꼼수의 공정성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이는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이다. 나꼼수의 내용이 편파적이더라도 그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요즘 세상에 가카만 깐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가카를 찬미하는 미디어가 보호받듯이, 가카를 까대는 미디어도 당당하게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 그것이 곧 표현의 자유이다."(p.64)


"왜 그럴까. 보수는 태어날 때부터 SNS에 둔감하게 태어난 것일까.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존재하는 SNS 능력의 격차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SNS의 환경 자체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우선 한국에서 SNS가 급성장한 배경을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SNS는 기존의 올드미디어에 대한 불신 위에서 성장하였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언론의 편파성과 불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대안 미디어로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바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같은 SNS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언론에 비판적인 진보층이 SNS의 중심을 이루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2011년 9월 한국광고주협회가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SNS 이용자 가운데는 진보적 성향이 보수적 성향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p.151)


"안철수의 말은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가 편을 가르고 싸우는 한국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양자 사이의 소통과 상호 보완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안 교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 혹은 지식인들이 한국 사회의 이념적 대립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소통 혹은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 왔다. 그러나 그 같은 문제 제기는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우리의 정치 환경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성적인 대화와 소통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치의 중요한 고비마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이념적 대결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보수는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색깔론까지 들먹이며 진보를 공격해 왔다. 이에 진보 또한 방어적 차원에서 맞공격을 하곤 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화해가 불가능한 적대적인 세력으로 늘 자리해 왔다."(p.214)

 

"노빠(노무현), 유빠(유시민), 박빠(박근혜), 황빠(황우석), 나꼼수빠,... 우리사회에서 '빠'라는 문화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의 무오류성에서 기반한다. '그'는 언제나 옳고, 설혹 잘못이 있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아닌 대결을 벌이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반대편과 같은 사람들로 간주한다.
그러나 세상에 무오류의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바른 방향을 추구하는 정치인이라 해도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항상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은 것이라 해도 모든 것을 눈감아 주고 우리끼리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식의 사고로는 국민을 이해시킬 수 없다.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
'빠' 문화 현상은 이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빠' 문화적 사고에서는 저편과 이 편만이 있을 뿐이고,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여러 다야한 입장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편이 아니면 곧 저쪽 편으로 간주하는 것이 '빠' 문화적 사고이다. 아무리 우리가 함께 지지했던 인물이라 해도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옳은 자세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조차도 저쪽 편만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식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하는 것은 이분법적 폭력일 뿐이다."(p.243)


[ 2012년 7월 30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