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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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과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부시가 당선되었다. 부시는 보수파가 아니라 우파 내지 극우파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당시 대선의 결과는 20세기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51개 주 중에서 갠자스 등 전반적으로 '가난하다'고 평가받는 미 본토 중서부 지역에서 부시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잘 사는 지역인 본토 좌우 주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다. 
캔자스 주 출신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저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캔자스 등 미국 중서부 지역은 20세기ㅡ초반부터 1960~70년대까지 진보적, 좌파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2000년 대선 결과가 나타난 이유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의 고향인 캔자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걸까? 책의 제목인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역자와 출판사가 한국어로 번역하고 출간하면서 마케팅을 위해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과 2004년 공화당 부시 정권의 탄생은 클린턴 정부 시절 잠시 주춤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욱 확대, 심화되도록 하였고 결국 2008년 미국민들에게 서브프라임을 시발로 하는 경제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부시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 뿐만 아니라 부자감세와 기업 이익 증대로 이어졌고 미국 내 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그렇다면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러나 캔자스를 비롯한 낙후된 지역이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부자들의 정당 공화당을 지지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우파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정치조작의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자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토마스 프랭크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여러 풍경들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민중의 착란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 책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발간되었는데, 당시 토마스 프랭크가 걱정스럽게 짐작했던 부시의 승리도 적중했다. 이 책은 발간된 후 장기간"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획기적으로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애국심에 불타는 건장한 공장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면서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다.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진다.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은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중서부 도시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공업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낸다. 그곳이 바로 캔자스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자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여러 풍경들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민중의 단순화, 우익화를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 책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발간되었는데, 당시 토마스 프랭크가 걱정스럽게 짐작했던 부시의 승리도 적중했다. 이 책은 발간된 후 장기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획기적으로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하다.

저자는 ‘두 개의 미국’ 담론을 통해 공화당으로 상징되는 '빨간색 미국'의 특성이 어떻게 조작되었고 그것이 결국 어떻게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본래 캔자스는 미국 내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도시가 있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좌파 운동이었던 민중주의가 전역을 휩쓴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이 보수의 중심으로 돌변한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보수화로 치닫는 미국 정치의 단면을 짚어준다 그리고 미국 내에 기독교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현실의 경제적 문제가 은폐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수 정치가와 자본가는 기독교적 가치를 역설하면서 당면한 현안에 빗겨가는 전략을 취하는데, 이것이 민중들에게 그대로 먹혀들여간다는 것이다. 결국 민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규제 철폐와 민영화를 비롯한 여러 자유방임 정책에 속수무책이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미국과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 내 보수 기독교 집단의 정치개입과 정치선동 역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자는 보수 우파를 진정으로 신앙심 깊은 보통 민중과 기회주의자로 나눈다. 보수 우파에게 순교는 애국심과 동일 선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보수 우파 지도자들의 명백한 위선적 언행에 대한 일반 보수주의자들의 무관심은 보수대반동이 보여주는 놀라운 문화적 현상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보수 반동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행동은 기업을 위할 뿐이다. 가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보수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전통적 가치들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기본적 특징이다. (중략) ‘레이건은 자신을 전통 가치의 수호자라고 자처했지만... 그가 정말로 주목한 것은 20세기의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 뉴딜정책의 폐기였다."

2000년 미국에서 보수대반동을 일으켰던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과거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 중도파와 달리 '네오콘(NeoCon)'이라 부르는 기독교 우파였다. 이들은 중도파와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파조차 민주당의 하수인으로 매도할 정도로 극우적 성향을 띤다. 보수대반동은 이런 기독교 우파들의 '문화전쟁'을 바탕으로 격렬하게 진행되는데, 그들의 문화전쟁은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와 같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현상에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킨다. 떠들썩한 그들의 주장 속에서 민중들의 삶과 지역의 피폐함이 경제구조와 그에 따른 계급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은폐하게 만든다.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목을 조르는 규제 철폐와 노동 유연화를 비롯한 자유방임 정책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기독교 우파의 문화전쟁은 격렬하게 진행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 내에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연방대법원에 십계명 비석을 세운다거나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실제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에 그들이 주도하는 문화전쟁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건 가치의 실현이라기보다 민중의 도덕적, 종교적 감정을 정치적 분노로 만들어 선거에서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문화전쟁으로 얻은 것은 단지 보수 우파의 정치적 승리일 뿐이며 그것은 부자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안겨줄 뿐이다.
캔자스의 문화전쟁에서 분수령을 이룬 것은 위치토에서 일어났던 낙태 반대 운동인 1991년 ‘자비의 여름Summer of Mercy’이었다.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캔자스는 급격하게 우경화되고 보수 반동의 기운이 맹렬하게 힘을 갖게 된다. 보수 반동의 문화전쟁은 미국 내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낙태 문제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낙태 반대를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헤프닝들은 광기를 동반하기도 하면서 시끌법썩하게 진행되며 기독교 우파의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반드시 부자들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많은 것을 내놓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풀뿌리들이 많다. 이들의 적극적 활동은 결국 공화당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자신들이 비판했던 대부분 기업가인 공화당 중도파에게 실질적 이익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저자는 심각하게 지적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단시간에 지금처럼 보수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뉴딜 정책 이후 미국에서 보수 우파의 입지는 좁아졌는데 대중의 지지를 잃고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된 보수 우파가 다시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뉴딜 이후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1960년대부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보수 기독교와 '가치의 연합'을 구축하는 데 적어도 한 세대의 시간을 보냈다. 공화당은 보수 교회의 가치에 편승해 기독교 신자를 공화당 유권자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독교 보수세력을 끌어들인 것은 보수의 큰 소득이었다. 최근 보수대반동 상황의 문화전쟁이 효과적으로 수행되어 구호만 난무한 가치의 문제가 전면으로 이슈화되고 현안이 되어야 할 보다 실질적인 경제 문제가 뒤로 처지게 되어 보수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선거결과가 발생했다. 2000년 대선의 승리는 실로 그들이 갈망했던 뉴딜의 완전한 폐기가 가까워지고,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제대로 성과를 맺는 사건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보수 우파의 집요한 노력에 비해 민주당과 미국 내 진보세력은 여러 면에서 안이했고 실책을 범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특히 1996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클린턴과 민주당이 선택한 '삼각화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전략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층을 버리고 일부 중도 성향의 보수파와 지식인들을 포섭하려고 했다. 삼각화 전략은 오히려 민주당이 스스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은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부자들에게 유리한 경제노선으로 돌아서고 자신들조차 경제 문제를 정치 의제화하지 못한 것은 크나큰 오류였다. 저자는 민주당이 비록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지적대로 민주당의 오판은 2000년, 2004년 대선의 패배로 이어졌다.

"좌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자신들이 잘났다고 만족해하는 동안 우파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부지런히 그 일에 몰두했다. 보수주의 ‘운동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주목하라... 위치토의 코크 일가가 운영하는 것과 같은 재단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돈은 최고 수준의 정치 투쟁에 흘러들어가고 자유시장 경제학을 가르치는 대학과 잡지, 그리고 버넌 L. 스미스와 같은 사상가들을 매수한다. 그리고 후버 연구소나 미국기업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들은 앤 쿨터나 디네시 드소우자 같은 우파 전문가 집단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책을 쓰고 언론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또 그들을 지원하는 전문 로비스트 집단과 몇몇 잡지와 신문들, 그리고 출판사 한두 곳도 있다. 그리고 밑으로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웃들을 조직하고 심지어 보수 반동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기 집까지 저당 잡히는 마크 기첸과 팀 골바, 케이 오코너와 같은 헌신적인 풀뿌리 조직가들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정치를 돌아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는 지난 4월 11일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와 관련해서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번 총선거는 2008년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현 집권 여당인 보수세력의 경제 정책 실패와 각종 비리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당의 승리를 점쳤다. 게다가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민운동 세력과 통합하고 진보정당과 연대하여 야권후보 단일화도 이루어냈다. 그러나 결과는 야당의 패배였고 다가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도 야권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2012년 한국의 총선 지도는 2000년 미국의 대선지도처럼 빨갛게 변해버렸다. 한국의 정치상황이 저자가 분석한 미국적 상황과 온전한 비교가 가능할 수 없을 테지만, 보수진영의 교묘하고 집요한 정치 조작술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핵심적 현안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 문제를 전면으로 부상시켜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한다거나, 삽시간에 당명까지 바꾸어 탈바꿈하는 보수의 놀라운 힘에서 미국 보수집단과 한국 보수집단의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미국 보수진영의 '문화전쟁'은 한국 보수진영의 '이념전쟁'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낙후된 지역에서 보수정당인 공화당에 더 많은 표를 던지듯 한국사회의 적지 않은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지역주의 투표 형태를 감안하더라도...)
 
결국 이 책은 "정치란 결국 민심의 마음을 어떻게 얻는가"가 관건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보수정당의 뛰어난 정치 조작술과 자기 계급적 이해와 상관없는 투표행위와 관련해서 우리의 정치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보수우익 진영처럼 비열한 꼼수를 쓰고 계급적 이해관계를 벗어던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수우익 진영의 그러한 방법과 전략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원칙적이고도 유연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정치 상항에서 생각해보면,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이 새누리당의 이념적 공세와 언론조작을 극복하고 좀 더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 사회적 약자 편에 굳건히 서야 함을 의미한다.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놀아나지 않고 민주진보세력이 연대의 위력을 공고히하면서 유권자들의 마음과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인상적인 문장 :

- 보수 반동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행동은 기업을 위할 뿐이다. 가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보수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전통적 가치들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기본적 특징이다. (중략) "레이건은 자신을 ‘전통 가치’의 수호자라고 자처했지만 (중략) 그가 정말로 주목한 것은 20세기의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 뉴딜정책의 폐기였다." (p.16)

-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을 선동해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익만 주는 반란을 경험했다. 우리가 캔자스에서 본 것은 이런 수수게끼 같은 현상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오늘날도 엄청나게 많은 성난 노동자들이 오만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그들은 특권층의 후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은 리우드에 사는 상류층들이 보내는 작은 호의를 비웃고 있다. 그들은 미션힐스의 대저택들 앞을 지나면서 조기를 게양한다. 그들은 백만장자들이 떠는 동안 자신들의 끔찍한 요구 사항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결국 “우리는 당신들의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여기에 있다”라는 말이다. (p.142)

- 기업계는 인류가 자유시장 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어떤 주장도 결국에는 (중략) 인간의 오만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이용한다. (중략) 공화당은 그 지긋지긋한 박사들과 그들의 훌륭한 연구, 그리고 그들의 정부기관들을 비난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을 규합할 때 여러 가지 합리적이고 심지어 고결하기까지 한 반지성주의 전통들을 강요했다. 그러한 반지성주의의 첫 번째 주자가 바로 개신교 복음주의다. (중략) 보수주의자들은 20세기의 모든 개혁 노력을 인간이 자유시장의 또 다른 이름인 하느님이 부여한 불변의 질서를 억누르고 자기 멋대로 바꾸려는 강제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p.243~245)

- 텔레비전과 영화가 우리의 삶과 상상력을 지배하는 미국에서 자유주의가 우리를 지배한다고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략) 그러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문화사업도 기본적으로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있는 것이지 민주당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이러한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보수 반동 세력을 뒷받침하는 힘의 원천이다. (p.287~288)

[ 2012년 7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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