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 2012년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나?
김인성.이병창.김영종 외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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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뒤로 현재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소위 '신당권파'에 의한 ‘비례대표후보 일괄사퇴’라는 주장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과연 이석기와 김재연은 한국 진보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마땅한 정치적 패륜아들인가. 한 정당의 비례대표 선거를 둘러싼 절차상의 문제를 종북몰이로까지 확대하는 이념공세는 온당한 것인가?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금 통진당 사태의 진상과 해법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 책은 통진당 사태의 진실에 대하여, 주류 언론들이 전하고 있지 않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들은 이번 통진당 사건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검증 가능한 사실들을 제시하여 가리고자 한다. 그리고 진실 규명의 목소리는 묵살한 채, 한 정파를 처음부터 마녀로 규정하고 잔인하게 사냥해대고 있는 다른 정파들, 언론들, 지식인들은 과연 어떤 의도와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언론은 외면하고 국민은 알지 못하는 충격적인 진실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최초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을 함께 만든 저자들-이병창 교수, 김인성 교수, 김준식 작가, 김영종 자가, 이시우 시인, 김갑수, 최진섭, 김대규 등-은 대부분 통합진보당 당원이나 당직자도, 소위 '구당권파'도 아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던 '우호적 지자자'였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 사태가 '묻지마 부정과 무조건 사퇴'로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 처음부터 또는 중간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양심적인 사람들이다. 기초적인 사실과 진실을 가리려 하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부정한 세력'으로 낙인찍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각자 진실을 찾다가 함께한 이들이다.
 
지난 5월 2일 조준호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선거 진상조사위원장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뒤, 거의 모든 언론과 지식인이 좌우 가리지 않고 ‘국민의 눈높이’와 ‘종북’을 내세우며 소위 '구당권파'를 질책했다. 유명 언론인 중엔 유창선 박사만이 국민의 눈높이도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라며 진실 규명을 강조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 뿐 아니라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프레시안 등 소위 '진보 언론'에서도 사실의 진위나, 당사자의 해명을 생략한 채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짐짓 결론을 내린고 초점을 맞춘 후, 조준호 전대표와 박무 전조사위원, 심상정 전대표와 유시민 전대표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 유창선 박사는 5월 16일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통합진보당 내분이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한겨레, 경향을 비롯한 진보언론들의 책임도 컸음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이들은 조준호 보고서가 나오자 화들짝 놀란 나머지, 팩트에 관한 기본적인 검증과 확인은 제쳐놓고 당권파-비당권파 간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이 언론 본연의 책무인 사실에 대한 검증과 확인에 노력했다면, 내 판단으로는 잘못된 판단과 오해들은 상당부분 해소되었을 것이고, 통합진보당 내부 갈등이 이 지경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왜 언론들은 사건 초기에 중요한 의혹과 팩트를 제대로 취재하지 않았는지, 2차 진상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주요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집중취재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강조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아래의 사항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문제제기는 아주 단순하게 시작했다. "애초에 통합지보당에서 1차 진상조사위가 결성된 첫 번째 이유는 윤금순과 참여계 오옥만 후보의 부정 시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으나, 조준호 보고서에는 이들에 대한 조사는 아예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언론들은 부실한 보고서에 기초해 의혹만 제기할 뿐 윤금순과 오옥만 부정사건을 심층취재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 점이 궁금하지 않았나? 2차 진상조사위의 김동한 위원장이 “법학자의 양심에 기초해서 봤을 때 이번 조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철저히 보장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는데, 기자들은 왜 이 점을 파고들지 않았나? 만약 2차 진상조사위가 구당권파에게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위원장이 이에 반발해 사퇴했다면, 언론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조준호 보고서 발표 뒤에 언론들이 부정선거 의혹사례라며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던 대부분의 기사들(주민번호 뒷자리가 같은 당원 무더기 발견, 소스코드 열린 뒤 이석기 당선자 득표율 수직상승, 뭉텅이 투표용지 발견, 이석기 득표 60%가 IP 중복투표 등)은 모두 허위 보도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정보도를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에서 외부인으로서 제2차 진상조사위원회 온라인 조사를 외주용역 받아 분석한 김인성 교수는 자신의 분석팀이 일주일간 밤을 세워 분석한 기술검증보고서가 정파적인 입장에 의해 '다수결'로 폐기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IT분야의 법의학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 시스템(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고, 지역의 건설업자가 자기 이권 챙겨 줄 국회의원을 만들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2차 진상조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나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병차 교수, 김준식 작가, 김영종작가는 각각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제3자의 시각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누구나 생각하는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와 사실관계를 통합진보당 몇몇 인사가 의혹으로 포장하여 언론플레이하고, 소위 진보 언로과 진보 지식인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나는 지금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 스스로 그토록 무서워하던 나치의 논리에 그대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이병창 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 사건은 진보진영, 특히 구당권파에 극도로 불리한 언론지형을 이용하여 당권을 탈취하고 진보를 제 입맛에 맞춰 재편성하려는 세력의 정치공작형 쿠데타였다.”(김준식 소설가)
“이정희는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내린 침묵의 형벌 기간에 사력을 다해 마주해야 할 것이다. 광야에서 홀로 분투한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세상을 향한 재생의 장소라는 걸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이런 사명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김영종 작가)
 
페이스북 아이디 '나미꾸'와 김갑수, 김대규, 이시우, 김귀옥은 언론인 유창선의 진실에 대한 외침을 전하고(나미꾸), 조중동과 경쟁하다 조중동의 선정주의를 닮아가는 진봄체를 비판하고(김갑수), 이버 사태에서 확인된 강남좌파식 진보 지식인들의 허상을 드러내 보이고(김대규), 진보진영 내에 존재하는 배제전략과 종북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이시우,김귀옥)
이외에 책 속에는 시민운동가 김경아씨의 사회로 김갑수 작가와 양동주 정치평론가, 그리고 김준식 소설가가 참가한 좌담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 김갑수 작가는 이번 사태의 밑바다에 진보진영에 내재해 있는 '국가주의'와 '반공주의'의 뿌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양동주 평론가는 통합진보당의 정치공학적 판단과 과정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우경화가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준식 작가는 준비부족과 탐욕을 워인으로 지목했다. 좌담회에서는 소위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허구성을 폭로했다. 이념적 경직성을 가지고 사상의 자유도 지키지 못하면서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자유주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통합진보당 향후 전망에 대해 '함께 가기엔 너무 상처가 크고 서로의 이념적 조직적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조속히 서로간에 분리한 후, 통합진보당이 독자후보를 걸고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도덕이 진보의 특성이라고?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라. 제목에 아예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가 들어가 있는 글이에요. 진보의 특성은 능력이다. 보수야마로 도덕이다. 진보가 도덕을 지나치게 내세우니까 새누리당이 하면 봐주고 민주당이 하면 조금 욕하고 지니보당이 하면 많이 욕하고, 이렇게 되지요."(김갑수 작가)
 
 
김영종 작가는 이번 통진당 사태를 통해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개막'한다고 평가한다. 이번 사태로 소위 가짜 진보와 진짜 진보가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사실 작가의 평가에 쉽게 동의되지는 않는다. 지난 2008년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마타도어 때에도 이번에 입에 거품을 물었던 대부분의 진보 언론과 진보 지식인도 진실과 상관없이 덩달아 노 전대통령을 씹었고, 노 전대통령이 자살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진보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정희에 대해 왜 그렇게 마타도어를 일삼았는지 이유를 추론하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이정희 이전과 이후의 진보 정치인들은 크게 나뉠 수 있기 때문이고, 작가가 말한 '콤플렉스'와 '계급투쟁'에 대해 충분하 가능한 평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만한 지식인은 오만한 부자보다 민중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지 않고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사실관계나 진실, 부실이나 부정의혹을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보면 요즘에도 5월 당시의 언론 보도와 이미지에 의해 선입견에 사로잡힌 채 '총체적 부정선거'나 '모두가 부정'이라는 주장이 남아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마타도어를 겪고서도, 조봉암의 진보당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장준하씨의 사인에 대한 진실규명을 외치면서도, 용산참사와 천안함의 진실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언론 보도만 믿고 주류측의 주장만 신뢰하고 소수의 목소리, 타인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 정파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이 나중에 자신들에게 가져올 폐해가 엄청날텐데...
 
이 책을 덮고 나서 몇 가지를 확신하였고 다른 몇 가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의 통합진보당이 진실과 범죄자 척결에 대한 합의 없이 적당히 화합하고 단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서로에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적당한 화합이나 타협은 결국 통합진보당의 뿌리와 근거까지 말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과 원칙'에 근거하여 당내 분쟁이나 분열방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 구 민노당 주요 당직자들은 당원들과 지지대중들에게 섣부른 3주체 통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이정희 전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 순위 조정 등 통합지도부로서 적절하지 못하게 처신하였고 5.2 사태 이후 조속하게 당내 합의와 적절한 수습을 견인해내지 못한 부분, 5.12 중앙위 폭력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도 공개적, 조직적으로 다시 한 번 사과해야 한다. 당원들, 일반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 당원들의 자주성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제도와 운영방식, 당직자들의 관료주의와 비밀주의, 통합진보당 전체에서 나타나는 소통과 공감의 부족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참여계와 인천연합 계열의 당직자와 당원들에게 그리고 주류 언론 보도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진보 지식인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선거 부정 범죄'는 지금처럼 진영논리나 정파다툼, 분당이나 신당창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파나 신당의 존립근거를 없애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선투쟁이나 혁신-재창당과 별개로 구체적인 범죄행위와 '범죄자 색출과 척결'을 각오해야 한다. '정파적인 시각'을 거두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의 후과는 2008년 민노당 분당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자신들에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 2012년 8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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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산업의 멸망
김인성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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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IT 강국'일까? 한 때 전세계가 한국이 'IT 강국'임을 인정하였다. 2000년 전후에 한국은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속도를 바탕으로 반도체와 IT산업 점유율, 초고속통신망, 인터넷 가입자, 온라인 시장, PC 보급율, 창업과 취업과 기술력 등에서 가장 앞서나갔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몇 년 만에 사라졌다. 
스마트 폰과 SNS, 디지털 방송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IT산업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IT 산업은 가장 노동 착취 분야이고, 하도급 불공정 거래 분야이고, 소비자 약탈 구조이며 활력은 커녕 독점과 폐쇄성으로 질식당하고 있다. '웹(Web) 2.0' 시대를 거치면서 전세계가 도전과 실험으로 새로운 영역과 기술, 시장과 콘텐츠를 창출하는 가운데 한국의 IT 분야는 '웹2.0'의 시대정신이자 방향성이고 사업방식인 '개방, 공유, 참여'을 내버리고 탐욕스러운 독점과 이윤에 안주하였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폐쇄와 독점으로 얼룩진 한국 IT산업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이 책은 ‘IT 강국’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한국 IT산업의 진실을 파헤치고 폐쇄와 독점으로 얼룩진 업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IT 붐’이 일어났던 초창기부터 업계 최전선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해온 저자는 "진보는 IT에 있다"라는 화두를 가지고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TV에 걸쳐서 새로운 흐름에 뒤처진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터넷 업체는 국내시장 독점을 위해 세계 표준을 무시하여 스스로 수출을 포기했고, 이동통신사들은 음성통화로 얻는 이익을 위해 신기술 개척을 포기했다. IPTV 사업자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일부러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근간에는 IT산업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버린 정부와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아이러브스쿨과 사이월드의 아이디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변형되어 한국시장을 급속하게 장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IT산업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기존 재벌들의 못된 사업태도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버렸다.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기업행위가 아니라 천박하고도 부도덕한 '장사치'로 전락한 것이다.

IT분야 칼럼리스트이자 저자인 김인성은, 잘못된 정책과, 얽혀있는 각종 이해관계, 폐쇄적 구도가 소비자의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며, 마케팅과 판매에만 급급해 IT현장에 주목하지 못하는 국내 산업 동향이 결국 IT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모바일 업계와 IPTV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분석과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한국의 희망적 미래와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는 한국 인터넷 환경을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촌스러움’으로 규정한다. MS 윈도우에서만 가능한 전자상거래의 이면에는 보안 프로그램을 둘러싼 이권이 얽혀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인터넷 실명제’로 언론의 자유를 통제했고 실명제에 발이 묶인 인터넷 서비스는 해외 진출을 포기했다. 부당한 규제에 반발해야 할 포털은 오히려 권력에 순응하며 광고 수익을 위해 자사 데이터를 우선하는 불공정한 검색 기준을 적용하고, 내부 데이터 축적을 위해 사용자의 콘텐츠 무단 이용을 부추겼다. 

"한국의 인터넷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글 같은 검색 전문 사이트가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콘텐츠 생산자와 사이트들이 성장하여 새로운 비지니스가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왜 불법복제를 막아야 할까요? 왜 창작자를 우대해주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까요? 
인터넷 시대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모바일과 TV 분야는 또 어떤가. 순수 국산 원천기술인 ‘와이브로’를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국내 통신사들이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설비투자를 미루며 국산 기술을 죽이고 있다. 또한 이익을 위해서는 고객을 이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비용을 가입비 및 기본료로 다 회수했음에도 여전히 가입비와 기본료를 받고 있다. 또한 비용이 들지 않는 문자메시지 등에 요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최근까지는 자유로운 무선인터넷 사용을 막기 위해서 사용자 환경을 일부러 제한했다. 휴대폰 제조사는 해외와 다른 기준을 적용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스펙 다운'한 제품을 오히려 더 비싸게 판매했다.
미래를 주도할 기술로 불리는 스마트TV의 일종인 ‘IPTV’에도 문제가 많다. IPTV 사업자들은 HD영상을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HD에 한참 못 미치는 화질의 영상을 전송하고 있다. 열린 TV인 스마트TV에서 IPTV 사업자들은 시청자에게 자신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만 보기를 강요하고 있다. 또한 ‘망 중립성’이라는 네트워크의 기본 원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면서 망을 독점하고 있다. 물론 기업들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근간에는 IT 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 정부가 있다. 참여정부가 망치기 시작한 IT산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확실하게' 끝장내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은 정액제라서 컴퓨터로 무엇을 하든 추가비용을 받지 않둣이 무선인터넷이나 이동형인터넷(핸드폰) 등도 정액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핸드폰 문자를 주고받는 데는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20원씩이나 받는 것은 통신회사의 어마어마한 폭리라는 것과 음성통화에 이토록 비싼 시간당 요금을 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동통신 업체들이 당장의 이익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앞선 우리의 기술을 사장시켜 국제경쟁력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깨달아야 합니다.(정부는 방조하고 있고 무능하죠)"

"이동통신사들은 초기 설비투자비 회수를 위해 받던 기본료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돈은 이미 다 회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료를 없애지 않고 있으며 이 돈은 그대로 통신사의 수익이 되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전 세계시장에서 호평받는 국내 제조사의 휴대폰에서 통신사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능을 제거한 소위 '스펙 다운' 제품만을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끈 LG의 풀터치폰인 '아레나폰'. 그러나 국내에 출시되면서 무선랜, 3.5파이 이어폰단자와 GPS를 제거했으며 동영상플레이 기능을 삭제하고 8GB 내장메모리를 0.03GB로 줄이고 LCD 사양까지 낮추었습니다."

"통신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용자들이 어떤 불편을 겪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160바이트의 문자메시지 국제규격 표준을 80~90바이트로 제한한 후 그 이상의 메시지는 독자규격의 MMS을 이용하여 추가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4G이동통신 규격으로 와이브로를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와이브로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LTE와 함께 4G표준으로 동시채택이 유력시되고 있으며 막대한 설비투자를 통해서 이미 상용서비스를 실시중. 장비개발도 완료했고 운영노하우도 있기때문에 해외수출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책이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왜곡된 한국 IT산업 구조가 '웹2.0' 시대에 부응하여 이제라도 '개방과 표준'을 중요시한다면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의 표준을 지킬 때 수출의 활로가 열릴 것이며 구글 같은 공정한 검색 사이트가 나와서 포털 외부의 사이트들이 자생할 수 있어야 인터넷 생태계도 활성화할 것이다. 이동통신사는 와이브로에 적극 투자하여 새로운 표준을 주도해야 하며 휴대폰 제조사는 국내 소비자에게 질 좋고 싼 제품을 제공하여야 한다. IPTV 사업자들은 망을 개방하고 콘텐츠 제작자와 상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한 스마트TV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콘텐츠 마켓, 플랫폼까지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의 노력만으로 한국 IT산업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예전의 ‘IT 839’ 같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일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비자는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며 기업과 정부가 옳은 길로 가도록 지속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국산품 애용'과 '애국심'으로 한국 기업을 감싸기만 했을 때, 그들이 결국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기업, 정부, 소비자의 노력이 없다면 머지않아 한국 IT산업은 일부 대기업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차라리 당분간은 애플과 구글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 말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진보는 IT에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전자상거래 시스템과 무선인터넷 요금에 변화가 일어났듯이 우리도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혁신은 한국 사회를 이끄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한국 IT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개방과 표준'이고, 폐쇄된 IT 환경을 개방하고 더 나아가 세계의 표준을 이끌 수 있어야 한국 IT산업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진보가 IT'에 있다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저자가 오랫동안 IT업계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IT업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결국 이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것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 역시 잘 알것이다. 난 저자의 주장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IT가 뜻하는 '개방과 공유, 협력과 참여'를 의미한다고 본다.

"아이폰으로 인해 통신사들의 경쟁이 가열되어 드디어 데이터 완전무료요금제가  출시되었으나 사용료는 아직도 비쌉니다. 사용자들은 통신사들을 압박하여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대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스카이프 같은 인터넷전화를 와이퍼이뿐만 아니라 3G에서도 쓸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 책은 막연하게 독점기업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팜플렛이 아니다. 저자가 정부부처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깨우쳐줄 뿐 아니라 정부부처가 앞으로 어떻게 정책방향을 잡아야할 지 안내해주고 있다. 독점기업들 역시 국내의 독점,착취이윤에 만족하다가 해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해 업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방향도 제시한다. 저자는 기업이나 자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향해 다가가는 경영자들과 주주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내가 무관심했던 산업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한국 정보통신산업(ICT :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에 대한 깊숙한 식견과 탁월한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막연하게 특정산업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가족, 지인, 시민들 모두에게 밀접한 인터넷과 통신비, 일자리 분야라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할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

지난 5월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 사태는 정치와 잔보정당에 대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처음 알게 해주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 역시 저자인 김인성 교수가 통합진보당 2차 진상조사위에서 온라인분과를 담당하여 제출한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와 김인성 교수는 이번에 알게된 많은 양심적인 전문가, 실력있는 전문가, 이성적이고 용감한 지식인 중에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 2012년 8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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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교육 전문가나 학계의 석학, 박사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26년 동안 재직한 현직 교사가 발간한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학교, 교육 이야기보다 생동감이 있고 구체적이다. 저자 존 개토는 삼십 년 가까이 미국의 심장부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심지어 뉴욕 시, 뉴욕 주 ‘올해의 교사’ 상을 연거푸 받았다. 학교제도에 대한 직격탄에 가까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공교롭게도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연설하기 위해 저자가 밤을 새워 쓴 것들이다.
저자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현재 우리 제도교육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이반 일리히가 출간한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를 저자가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교육 철학은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저자는 주로 미국의 학교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도교육은 우리나라가 지난 일 세기 동안 받아온 학교교육의 뿌리이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 국민 통합을 위해 미국이 프러시아에서 빌려온 학교제도를 미국과 일본이 모방하고 그것을 그대로 우리 교육에 이식하면서 서구의 근대교육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교육 문제의 진짜 뿌리는 거기, 즉 서구 교육제도에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가능성을 매장당한 채 그저 밥벌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현실은 근대화 과정을 거친 국가들이라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겪는 비극인 셈이다.
 
"아이들과 교육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들과 여러 해 동안 씨름해 오면서 저는 국가 독점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교육제도는 그 핵심적 신화들이 까발려지고 버려지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제가 가르쳐 온 것은 이 교육제도를 지탱하는 신화들, 계급제도에 근거한 경제체제를 떠받드는 신화들을 뒷받침해 주는 보이지 않는 교과서였던 것입니다.(p.22)"

 

저자는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돈으로 12년간 학교에서 하는 몹쓸 짓 7가지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혼란, 교실에 가두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신감, 숨을 곳이 없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학교의 필요성으로 제기하는 읽고 쓰기나 덧셈 뺄셈에 대해 학교의 기능을 비판한다. 실제 아이들이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가정에서 10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의욕만 있다면 가르쳐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배우려는 마음이 식기 전에 가르쳐 주는 것"이 요령이라는 것..(실제 미국에서는 의무교육 전에 2%에 불과하던 문맹률이 1990도에 9%까지 증가했다고...헉!)
따라서 저자는 학교의 숨겨진 교육과정이 사실은 ‘바보 만들기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학교교육을 더 많이, 더 잘 받은 엘리트일수록 실제로는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고 살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엇에 봉사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물신의 제단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 말은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마약, 자살, 이혼, 폭력, 잔인성 등이 유행하는 현상, 그리고 미국에서 사회계층이 계급으로 굳어지는 현상도 모두 중앙통제의 강황에서 파생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비인간화되고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의 의미가 퇴화되는 것입니다. 대형 의무교육기관이 이런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이 기관들은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p.38)"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어디 있을까? 저자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세계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독려적인 학습방법, 지역사회에서의 봉사활동, 모험과 경험, 충분한 개인 시간과 혼자 있기, 온갖 종류의 견학과 견습.. 저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진정한 학교제도의 개혁을 위한 강력하고 값싸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손상받은 아이들과 손상받은 사회를 회복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의 개념을 열어젖혀 가정을 교육의 주된 동력원으로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리키는 그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니다. 돈이 더 필요한 길도 아니다. 교육 예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맞닥뜨린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답을 찾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말 잘 듣는 아이를 길러내기 위한 근대 학교의 근본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전미 가정교육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월 현재 미국 홈스쿨링 인구는 약 204만명, 전체 학생의 3.8%에 달한다.)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내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지표로 삼을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있는 장소,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정신적 풍요로움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어떤 것들이고, 사람이 살고 죽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p.118)
 
우리나라도 교육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한입시경쟁과 학벌독점만능주의, 대학서열화, 사교육 광풍 등 '교육제도 내부'의 문제만을 들여다 볼 뿐이다. 무한입시경쟁과 학벌독점만능이 한국보다 심하지 않은 미국 제도교육이 저자의 주장처럼 100년간의 국가독점교육체제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사회문제로 발전된 것이라면 우리 역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2012년 8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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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힘 - 2012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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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김대중 죽이기>를 출간하여 김대중 전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2002년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을 출간하여 노무현 전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일조했던 강준만 교수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이 책을 발간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따라서 올해 대통령 선거에 크게 민감한 나로서는 이 책을 사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강준만 교수의 시대상황 인식과 명석한 분석을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강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분석하고자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중요한 언론 매체와 책 등을 인용하여 분석하는 방식은 국내의 웬간한 학자들은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뉴스클리핑'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뉴스나 자료를 정리할 것이라고 예상은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건 해본 사람은 안다.
더군다나 1년 넘는 정보를 토대로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와 해설, 사설, 칼럼 등을 모으고 골라내고 분석, 비판, 재구성하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닦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안철수 지지 선언과 함께 본격적인 대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안철수 자질론, 진보와 보수 진영의 안철수 비판론, 정권 교체론과 박근혜 대세론 등 가장 뜨거운 화두들을 거침없는 문체로 비평한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을 이유로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라고 단언한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지난 세월 한국 사회는 ‘대통령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수행해온 셈인데, 과연 그 결과가 무엇이었느냐"고 되묻는다. 지난 한국정치사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엮임한 정치인들의 사례와 결과는 대다수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란 무엇인가? 그런 '연줄의 예술'이다. '안철수 비토론'의 주요 논거 중 하나는 그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인데, 이를 뒤집에 말하면 안철수는 연줄 부패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연줄 부패,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안철수의 청교도적 기질이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지긋지긋한 연줄 부패를 끊기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청교도적 기질을 지닌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닐까?"
세계 10위권 규모의 민주 국가 운운하며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제기한 주장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한국의 ‘포장마차 정당론’을 언급하며, 컴퓨터 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심하면 때려 부수고 다시 만드는 정당 정치를 펼치면서 세계 10위권 규모 민주 국가라는 기준으로 한국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격한다. 야권의 박근혜 비판론에 대해선 비판의 주된 화두가 고작 ‘독재자의 딸이냐’며, 이는 콘텐츠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라고 강조한다.
 
2012년의 시대정신을 ‘증오의 종언’으로 규정한 강준만은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과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정서에 이의를 제기한다. 증오가 정치의 주요 동력과 콘텐츠가 되고 시종일관 진영 논리의 포로가 돼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증오 시대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안철수야말로 증오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게 강준만 교수의 결론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안철수식 문제의식의 예를 들면서, 저자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폭넓게 공유되고 있음에도 "진영 논리에 빠져서 보수언론에서 선점해서 다루니까 우리가 외면해버리거나 무방비로 안 다루고 놔뒀던 영역"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말한다. 안철수의 강점은 기존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증오' 또는 '진영논리'는 진보세력 사이에서도 뿌리가 깊다. 중도적인 시각을 가진 정치세력이나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진보세력은 진보정당 사이에서, 진보정당 내부에서, 진보정당 바깥에서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적' 만큼의 증오와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는 그런 문제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안철수는 증오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적임자다. 안철수는 “우리 정치권은 승자 독식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국 증오의 악순환에 빠진다”며 “여나 야, 누가 이기든 국민의 절반이 절망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 절반을 적으로 돌리고,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는 낡은 프레임과 낡은 체제로는 아무런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 관련 발언은 거의 모두 이런 문제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둘째, 안철수는 ‘공정 국가’ 실현을 위한 적임자다. 공정 국가는 시장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공정한 시장을 지향하는 국가다. 시장 논리를 배격하는 기존 진보적 틀은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름답긴 하지만, 5천만 한국인을 먹여 살릴 수 없다. 안철수는 시장주의자이면서도 오래전부터 지겨울 정도로 경제 민주화의 가치라 할 정의, 공정, 공생을 강조해왔다. 말로는 누군 그런 말 못하느냐고 일축하기엔 그의 지나온 삶이 그 정신의 실천에 지독할 정도로 충실했다.
셋째, 안철수는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다. 스마트폰 혁명과 SNS혁명이 잘 말해주듯이 인류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맞고 있다. 이 변화를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한국의 선진국 진입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안철수는 디지털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하면 우리가 좀 더 잘되겠지”라는 판단 기준 대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실천해온 사람이다. 그는 안철수가 전 분야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을 잘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인 태도에서 민주통합당이 부정적이다. 특히 지난 4.11 총선을 전후하여 민주통합당이 '사실상 승리'라며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까웠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40%를 넘는 지지는 역으로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노무현의 FTA는 '착한 FTA'이고, 이명박의 FTA는 '나쁜 FTA'란 말인가? 이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이후로도 수개월 동안 지속됐는데, 나는 이 주제로 열린 TV토론을 몇 차례 시청하면서 새삼 '당파성은 무엇인가?'로 시작해 '인간은 무엇인가?'로까지 나아간 의문에 빠져들곤 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4.11 총선에서 야권의 참패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을까?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구호도 그런 불신에 일조한 것은 아닐까?(중략)
민주당은 4.11 총선을 오직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전략으로 임한 셈인게, 그 결과는 비참했다. 이젠 생각이 달라졌을까? 아니다. 변한 건 없다. 환상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게 아니다."
 
나꼼수 모델과 팬덤정치에 대한 강 교수의 비판도 수긍할 만 하다. "나꼼수 모델로 정권 교체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모델은 우리 편엔 너그럽고 상대편에겐 엄격한 '응징 모델'인데, 우리 편을 제외한 다수 유권자들은 그런 게임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인이다 역사가인 액턴(Lord Acton)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고 했다. 진영 논리도 마찬가지다. 진영 논리는 부패하며, 절대 진영 논리는 절대 부패한다. 물론 진영 논리는 초기엔 큰일을 해낼 수 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규합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꼼수가 바로 그 일을 해낸 산증인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진영 논리의 부패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균형 감각을 갖추어야 할 때다. 그래야 다수 무당파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게 가능하다. 우리 편의 마스터베이션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룰 순 없다. 그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 세상의 이치다."
정치인에 대한 팬덤정치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커질 때 유권자들은 진영논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향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친노 정치인들(문재인,이해찬,문성근,유시민등)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
 
안철수는 ‘진보의 구세주’인가, ‘정의의 신기루’인가? 안철수는 ‘진보의 구세주’도 아니고 ‘정의의 신기루’도 아니라는 사실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저자는 안철수 현상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좀 더 미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민주정권, 특히 노무현 정권이 만든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는 무엇인가? 저자는 그 뿌리가 그동안 한국 정치가 보여준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와 편 가르기, 진영 논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시대는 타협을 모르는 ‘증오 시대’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개판이 된 현실을 성토하거나 그렇게 개판을 만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옳을지는 몰라도 현명한 일은 아닐 터. 이제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우연인지 아닌지 마침 그 중심에 안철수가 있다."
정치 양극화와 편 가르기에 대한 역사적 원인과 책임의 상당 부분은 보수정당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진보 진영 역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집권 시기에 걸쳐 지난 15년 동안 그것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기간 동안 민주통합당은 '수권능력'과 '대안의 정책'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신뢰받기 보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부정과 부실에 대한 반사이익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지율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나는 안철수 현상이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에 실망한 다수의 유권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같이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안철수 원장으로 야권단일화를 이루어 정권교체를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야권의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대화와 타협, 진보적인 정책, 공명정대한 인사와 정부운영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바란다. 또한 그 동안 야권은 뼈를 깍는 내부 혁신과 물갈이를 통해 진정한 정책정당, 대중정당, 진성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5년은 무지 짧다.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개혁이 마무리되려면 앞으로 2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 2012년 8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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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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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어느날 칠순의 노모께서 <안철수의 생각>을 구해달라고 말하셨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정치적 발언이나 정치인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묻지 않고 한 권 사다 드렸습니다. 며칠 전, 함께 식사한 후에 책을 읽은 소감을 여쭈어 보았더니 어머님 왈 "안철수씨가 책 내용대로만 하면 우리나라가 정말 좋아지겠구나"하십니다...^^
 
사실 저도 안철수 원장을 잘 모릅니다.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의사 노릇하다가 밤을 세워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했고, 안철수연구소라는 기업을 창업하여 어려운 한국 경제조건에서 수 많은 도전을 물리치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컴퓨터를 사용하는 개인들에게 무상으로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베포했다. 회사 경영을 어느 정도 안정화시킨 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유학을 갔다와서 연구개발과 후진 양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재벌기업 등 국내 기득권자들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며 일자리 창출과 창업에 대한 의욕이 크다. 청년학생들의 어려운 처지와 조건에 마음 아파하며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작년 이 맘 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생각을 하다가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현 시장과 전격적으로 단일화했다. 선거 후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올해 대선 후보로 부각되었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저는 기존 정치권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느 정도까지는 '어떻게 할 것이다' 또는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예상도 합니다. 제 생각에,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민주통합당과 그 당의 후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변할 수 없듯이, 정당도 쉽게 변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이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를 통해 '혁신'과 '재창당'을 외쳤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심하게, 또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역시 민주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세를 불리고 모바일 투표로 당 대표를 선출하면서 개혁과 혁신을 외쳤지만, 지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에게 참패해습니다. 그리고 왜 패배했는지, 뭘 잘못했는지, 패배이기나 한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오로지 '정권 교체'만을 온 세상의 '정의'와 '혁신'인 것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은 특유의 '분열'로 자중지란에 빠졌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기존 정치구조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박근혜씨나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민주통합당이나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최악'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민주통합당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보다 삼성 등 재벌 기득권을 덜 보호해줄 것이고, 시민들의 헌법 상 자유를 조금 더 확보해줄 것이고, 국가자산을 국내외 금융자본들에게 덜 매각할 것이고, 4대강 같은 수준의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이고, 출산율과 자살율은 조금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씨에게 패배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참여정부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민주통합당 후보에 의한 정권교체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렵습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대통령 후보, 대다수 국회의원과 정당원에게는 정치철학도, 정치도덕도, 일관된 신뢰도, 진정성도, 진심어린 정책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안철수 원장은 일찍 정치에 발을 내딛지 않았기에 알려진 게 많지 않습니다. 아니 언론이나 유권자들이 지금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안 원장은 최근까지 대통령 후보 출마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대선 출마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기존 정치권 인사들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언론과 유권자들이 헷갈려 합니다. 그래서 저도 잘 모릅니다. 물론 많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안철수 원장은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출마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저는 일단 안 원장의 이야기 그대로를 적힌 그대로 믿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여러 가지 경로로 접한 안 원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뒤바꾼 적이 없었고, 거짓말을 했다고 드러난 적이 없으며 자신의 말을 지키려고 최대한 노력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었던 이 책의 내용과 안 원장의 향후 발언이 달라지거나 달라지면 그 때가서 비판하고 비난할 생각입니다.
 
책 속에서 안 원장은 자신의 대통령 후보 출마 여부가 스스로의 선택이나 결단이 아니라 야권의 상황과 유권자와의 소통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습니다.("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 역시 지금까지 안 원장의 행보가 그런 맥락에서 이어져왔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안 원장이 출마해야 하는 조건이 더 굳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잇단 실정과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절실함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고, 박근혜 후보와 대선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비판하고 비도덕성을 비난하되, 미래를 향한 희망과 대안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안 원장이 2013년 이후 체제를 '구체제와 미래가치의 충돌'로 묘사하는데 동의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태도, 성장과 효율성만 앞세워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를 방치, 청년들이 기회를 잃고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현실을 도외시, 사회갈등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시키는 정치시스템, 계층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 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 정신을 정의함에 있어 안 원장에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구체제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지적한 것에는 공감이 되지만, 안 원장 자신이 작년 인터뷰에서 말한 '역사인식'이 반영되지 않아 조금은 실망이다. 당장의 현실에서는 야당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갈등하는 정치시스템'이 부각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그 근원에는 친일파-군사독재-민간독재-자본독재로 이어지는 부패하고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반역사적 정치집단과 기득권층이 반공이데올로기와 성장이데올로기로 국민들을 억눌러 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시대 정신에 대한 규정과 해석에 필요했다고 봅니다.
안 원장이 정당후보가 아니라거나 안 원장의 '정치경험 부족'에 비판에 대해 저는 가소롭게 생각합니다. 한국정치의 특성은 정치경험이 많을 수록 더 부패하고, 더 연고주의적이고, 더 패권주의적이고, 더 재벌친화적이고, 더 관료주의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는 박원순 시장처럼 비정당 후보가 적합할 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같은 정당 내 권력구조와 운영방식에서는 어느 누구도 기존의 무능하고 비효율적이고 소통 없는 운영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험 부족'은 현재 서울시장 직을 수행하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 충분한 답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박원순 시장은 선거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지만, 박 시장이 민주통합당에 끌려다니거나 의존하거나 연고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원장이 생각하는 '새로운 리더쉽'에 대해 저 역시 크게 공감합니다. 소통, 공감, 통합의 리더쉽... 인터넷과 SNS는 21세기가 소통, 공감, 통합과 더불어 개방, 공유, 참여의 시대임을 말해줍니다. 박원순 시장도 이미 강조했고 지금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리더쉽에 있어서는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통합당 역시 아직 멀었고 통합진보당 역시 지금까지 당원들이나 유권자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안 원장을 지지하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원장의 '새로운 시대'와 리더쉽에 개방, 공유, 참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로 아쉽고 조금은 불안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 명칭은 '참여정부'고 소통과 통합, 개방과 공유를 외쳤지만 지독하게도 '그들만의 리그'였고 개방도 참여도 배제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이다. 현재의 정치적 조건에서 안 원장이 '청춘콘서트' 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5천만에 달하는 국민들과 소통하려면 틀과 방식에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 원장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미래 가치'는 그는 "복지, 정의, 평화"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평화 위에 세우는 공정한 복지국가'입니다. 그는 자살률과 출산율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는 지금 주거, 보육, 건강, 노후 등 민생의 기본적인 영역에서 광범위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각자 불안하다 보니 자기만 생각하는,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개개인의 경쟁력이나 책임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기본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서 불안을 해소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번 대선 과정에서 사회적 복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이 불붙어야 합니다. '복지를 해야 전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안 원장을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자리잡는 것만으로도 이 책과 안 원장의 활동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출마하던 하지 않던,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그렇지 않던...
안 원장이 복지, 정의, 평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정책들은 대부분 현재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들도 제시하는 공약입니다. 책 속의 분야별 정책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불만이고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부분은 외교부분, 교육과 표현의자유,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분입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치인들과 행정관료들의 외교력은 참으로 창피한 수준입니다. 아니 한반도의 외교력 부족은 조선 왕조 탄생시점인 14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14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한반도의 외교는 '사대주의'와 '굴종주의'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유전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안 원장이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안 원장이 그 이외에 외교철학이나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고 조금 불안합니다. 적어도 '국내의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자주외교, 자국이익 중심 외교, 평등외교' 정도는 밝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원장이 말한대로, '교육 자체만 개혁하는 것으로' 크게 바꾸기 어렵고 사회적인 구조개혁이 동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무한경쟁 대입제도는 '학벌과 불평등의 대물림 구조'로 정착한지 오래되었고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개혁이 등한시되어서는 교사, 학부모들이 전인교육에 '공감'하고 '협력'하고 '풍토를 바꾸어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사회구조개혁은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 밖에 없고 그 사이에 학생들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자살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있을지...? 일단 현실 속에서 학생들의 지옥으로 존재하는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을 그치게 하려면 전면적인 대학평준화를 시도하던지, 적어도 국공립대학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수능을 자격고사로 대체하여 '시험성적이 의해 1등에서 꼴찌까지 일렬로 세우는 방식'을 없애야 하지 않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 부분에 대해 안 원장은 앞으로도 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 개혁을 추진하는 이들과 많은 소통과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책 속에서 '표현의자유' 부분은 교과서 수준의 답변에 그치고 있습니다. 언론이 권력화되어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고 여론을 조작하려고 하는 문제에 대한 진단과 의견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여론이 특정 정치, 이념 집단에 의해 또는 자본력에 의해 왜곡되는 현실은 분명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 부분도 안 원장이 깊이 고민하지 않은 분야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은 교육 부분에서부터 건강, 일자리, 취업, 편견 등 광범위하게 차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폭력이나 아동학대, 장애인이나 노인 차별 등은 '옴부즈맨' 같은 제도를 두어서 강제수준을 높이는 등 제도적, 구조적, 행정적으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권후보들의 주장들을 ?어보면 생각나는 것이 정책 내용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 의지'와 '실천 능력'일 것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도 대선 공약은 나름 괜찮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운영에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하여 결국 '좌회전 깜박이 켜고 우회전'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안 원장의 경우 참여정부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안 원장이 기존 민주정부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저를 비롯하여 많은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와 행정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는 굳이 안 원장이 아닌 어떤 대통령이 나타나더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몇 가지 부분을 제외하고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일 문제가 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안 원장의 '생각'은 저로서는 합격점입니다.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삼아 광범위한 동의와 합의를 이루어내로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할 것이며, 정부의 시책으로 실천할 것이냐는 이 책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제시한 '소통, 공감, 합의, 존중'이 정치와 행정의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지 몹시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컨대, 안 원장의 '생각'은 한 마디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제일주의,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방치항 채 밀어붙인 개발정책,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정치지형, 사회전체적으로 만연해진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을 극복하고 실패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때 중장기적으로 사회 전체가 균등하게 발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10여년 동안 그러한 생각들을 우리사회 여러 곳에서 지적해 왔으나 정치권과 기득권층이 억눌러 왔고, 이제 바야흐로 안 원장을 통해서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런 노력 없이 50% 가까운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고 그간의 과정을 모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 속의 문장 :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합니다. 결과를 잘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의 진보정권은 성과도 있었지만 아쉬움이 큰 게 사실입니다."
"제가 총선에서 적극적으로 야당을 편들지 못했던 이유는 후보 공천이 국민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 정당 내부 계파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 사장에서의 경쟁에는 공정한 기회와 규칙이 보장돼어야 하고요."
"부자가 되어야 복지를 하는게 아니라 복지를 해야 부자가 됩니다."
"또 복지와 정의는 평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으니, 남북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평화체제도 구축하는 과제도 절실합니다."

"지금 제 생각은 장애인이나 극빈층 등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 대상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강화하고, 동시에 지금부터 보육, 교육, 건강, 주거 등 민생의 핵심 영역에서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시스템을 사회적 하?와 재정 여건에 맞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사회적 지출이 가장 낮고, 조세제도와 소득이전 제도들이 사회적 재분배와 빈곤 해결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작고, 이원적 노동시장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소득격차가 큰 불평등을 낳고 있습니다."
"거시적 정책의 초점이 일자리 중심이어야 하고, 내수산업, 서비스산업,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수급개선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강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그리고 임금 피크제 도입"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의 제도화 필요" "최저 임금 인상 : 단계적으로 평균임금의 50%로" "법치주의는 약한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동자와 기업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계부채는 금융만의 문제가 아니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일자리 사정과 높은 주거비용, 사교육비 부담, 낮은 복지 수준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는 데도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2012년 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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