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 / 민들레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교육 전문가나 학계의 석학, 박사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26년 동안 재직한 현직 교사가 발간한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학교, 교육 이야기보다 생동감이 있고 구체적이다. 저자 존 개토는 삼십 년 가까이 미국의 심장부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심지어 뉴욕 시, 뉴욕 주 ‘올해의 교사’ 상을 연거푸 받았다. 학교제도에 대한 직격탄에 가까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공교롭게도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연설하기 위해 저자가 밤을 새워 쓴 것들이다.
저자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현재 우리 제도교육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이반 일리히가 출간한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를 저자가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교육 철학은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저자는 주로 미국의 학교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도교육은 우리나라가 지난 일 세기 동안 받아온 학교교육의 뿌리이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 국민 통합을 위해 미국이 프러시아에서 빌려온 학교제도를 미국과 일본이 모방하고 그것을 그대로 우리 교육에 이식하면서 서구의 근대교육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교육 문제의 진짜 뿌리는 거기, 즉 서구 교육제도에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가능성을 매장당한 채 그저 밥벌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현실은 근대화 과정을 거친 국가들이라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겪는 비극인 셈이다.
 
"아이들과 교육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들과 여러 해 동안 씨름해 오면서 저는 국가 독점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교육제도는 그 핵심적 신화들이 까발려지고 버려지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제가 가르쳐 온 것은 이 교육제도를 지탱하는 신화들, 계급제도에 근거한 경제체제를 떠받드는 신화들을 뒷받침해 주는 보이지 않는 교과서였던 것입니다.(p.22)"

 

저자는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돈으로 12년간 학교에서 하는 몹쓸 짓 7가지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혼란, 교실에 가두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신감, 숨을 곳이 없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학교의 필요성으로 제기하는 읽고 쓰기나 덧셈 뺄셈에 대해 학교의 기능을 비판한다. 실제 아이들이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가정에서 10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의욕만 있다면 가르쳐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배우려는 마음이 식기 전에 가르쳐 주는 것"이 요령이라는 것..(실제 미국에서는 의무교육 전에 2%에 불과하던 문맹률이 1990도에 9%까지 증가했다고...헉!)
따라서 저자는 학교의 숨겨진 교육과정이 사실은 ‘바보 만들기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학교교육을 더 많이, 더 잘 받은 엘리트일수록 실제로는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고 살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엇에 봉사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물신의 제단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 말은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마약, 자살, 이혼, 폭력, 잔인성 등이 유행하는 현상, 그리고 미국에서 사회계층이 계급으로 굳어지는 현상도 모두 중앙통제의 강황에서 파생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비인간화되고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의 의미가 퇴화되는 것입니다. 대형 의무교육기관이 이런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이 기관들은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p.38)"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어디 있을까? 저자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세계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독려적인 학습방법, 지역사회에서의 봉사활동, 모험과 경험, 충분한 개인 시간과 혼자 있기, 온갖 종류의 견학과 견습.. 저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진정한 학교제도의 개혁을 위한 강력하고 값싸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손상받은 아이들과 손상받은 사회를 회복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의 개념을 열어젖혀 가정을 교육의 주된 동력원으로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리키는 그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니다. 돈이 더 필요한 길도 아니다. 교육 예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맞닥뜨린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답을 찾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말 잘 듣는 아이를 길러내기 위한 근대 학교의 근본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전미 가정교육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월 현재 미국 홈스쿨링 인구는 약 204만명, 전체 학생의 3.8%에 달한다.)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내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지표로 삼을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있는 장소,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정신적 풍요로움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어떤 것들이고, 사람이 살고 죽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p.118)
 
우리나라도 교육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한입시경쟁과 학벌독점만능주의, 대학서열화, 사교육 광풍 등 '교육제도 내부'의 문제만을 들여다 볼 뿐이다. 무한입시경쟁과 학벌독점만능이 한국보다 심하지 않은 미국 제도교육이 저자의 주장처럼 100년간의 국가독점교육체제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사회문제로 발전된 것이라면 우리 역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2012년 8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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