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산업의 멸망
김인성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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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IT 강국'일까? 한 때 전세계가 한국이 'IT 강국'임을 인정하였다. 2000년 전후에 한국은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속도를 바탕으로 반도체와 IT산업 점유율, 초고속통신망, 인터넷 가입자, 온라인 시장, PC 보급율, 창업과 취업과 기술력 등에서 가장 앞서나갔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몇 년 만에 사라졌다. 
스마트 폰과 SNS, 디지털 방송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IT산업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IT 산업은 가장 노동 착취 분야이고, 하도급 불공정 거래 분야이고, 소비자 약탈 구조이며 활력은 커녕 독점과 폐쇄성으로 질식당하고 있다. '웹(Web) 2.0' 시대를 거치면서 전세계가 도전과 실험으로 새로운 영역과 기술, 시장과 콘텐츠를 창출하는 가운데 한국의 IT 분야는 '웹2.0'의 시대정신이자 방향성이고 사업방식인 '개방, 공유, 참여'을 내버리고 탐욕스러운 독점과 이윤에 안주하였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폐쇄와 독점으로 얼룩진 한국 IT산업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이 책은 ‘IT 강국’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한국 IT산업의 진실을 파헤치고 폐쇄와 독점으로 얼룩진 업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IT 붐’이 일어났던 초창기부터 업계 최전선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해온 저자는 "진보는 IT에 있다"라는 화두를 가지고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TV에 걸쳐서 새로운 흐름에 뒤처진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터넷 업체는 국내시장 독점을 위해 세계 표준을 무시하여 스스로 수출을 포기했고, 이동통신사들은 음성통화로 얻는 이익을 위해 신기술 개척을 포기했다. IPTV 사업자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일부러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근간에는 IT산업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버린 정부와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아이러브스쿨과 사이월드의 아이디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변형되어 한국시장을 급속하게 장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IT산업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기존 재벌들의 못된 사업태도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버렸다.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기업행위가 아니라 천박하고도 부도덕한 '장사치'로 전락한 것이다.

IT분야 칼럼리스트이자 저자인 김인성은, 잘못된 정책과, 얽혀있는 각종 이해관계, 폐쇄적 구도가 소비자의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며, 마케팅과 판매에만 급급해 IT현장에 주목하지 못하는 국내 산업 동향이 결국 IT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모바일 업계와 IPTV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분석과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한국의 희망적 미래와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는 한국 인터넷 환경을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촌스러움’으로 규정한다. MS 윈도우에서만 가능한 전자상거래의 이면에는 보안 프로그램을 둘러싼 이권이 얽혀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인터넷 실명제’로 언론의 자유를 통제했고 실명제에 발이 묶인 인터넷 서비스는 해외 진출을 포기했다. 부당한 규제에 반발해야 할 포털은 오히려 권력에 순응하며 광고 수익을 위해 자사 데이터를 우선하는 불공정한 검색 기준을 적용하고, 내부 데이터 축적을 위해 사용자의 콘텐츠 무단 이용을 부추겼다. 

"한국의 인터넷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글 같은 검색 전문 사이트가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콘텐츠 생산자와 사이트들이 성장하여 새로운 비지니스가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왜 불법복제를 막아야 할까요? 왜 창작자를 우대해주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까요? 
인터넷 시대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모바일과 TV 분야는 또 어떤가. 순수 국산 원천기술인 ‘와이브로’를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국내 통신사들이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설비투자를 미루며 국산 기술을 죽이고 있다. 또한 이익을 위해서는 고객을 이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비용을 가입비 및 기본료로 다 회수했음에도 여전히 가입비와 기본료를 받고 있다. 또한 비용이 들지 않는 문자메시지 등에 요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최근까지는 자유로운 무선인터넷 사용을 막기 위해서 사용자 환경을 일부러 제한했다. 휴대폰 제조사는 해외와 다른 기준을 적용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스펙 다운'한 제품을 오히려 더 비싸게 판매했다.
미래를 주도할 기술로 불리는 스마트TV의 일종인 ‘IPTV’에도 문제가 많다. IPTV 사업자들은 HD영상을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HD에 한참 못 미치는 화질의 영상을 전송하고 있다. 열린 TV인 스마트TV에서 IPTV 사업자들은 시청자에게 자신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만 보기를 강요하고 있다. 또한 ‘망 중립성’이라는 네트워크의 기본 원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면서 망을 독점하고 있다. 물론 기업들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근간에는 IT 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 정부가 있다. 참여정부가 망치기 시작한 IT산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확실하게' 끝장내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은 정액제라서 컴퓨터로 무엇을 하든 추가비용을 받지 않둣이 무선인터넷이나 이동형인터넷(핸드폰) 등도 정액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핸드폰 문자를 주고받는 데는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20원씩이나 받는 것은 통신회사의 어마어마한 폭리라는 것과 음성통화에 이토록 비싼 시간당 요금을 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동통신 업체들이 당장의 이익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앞선 우리의 기술을 사장시켜 국제경쟁력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깨달아야 합니다.(정부는 방조하고 있고 무능하죠)"

"이동통신사들은 초기 설비투자비 회수를 위해 받던 기본료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설비투자에 들어간 돈은 이미 다 회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료를 없애지 않고 있으며 이 돈은 그대로 통신사의 수익이 되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전 세계시장에서 호평받는 국내 제조사의 휴대폰에서 통신사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능을 제거한 소위 '스펙 다운' 제품만을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끈 LG의 풀터치폰인 '아레나폰'. 그러나 국내에 출시되면서 무선랜, 3.5파이 이어폰단자와 GPS를 제거했으며 동영상플레이 기능을 삭제하고 8GB 내장메모리를 0.03GB로 줄이고 LCD 사양까지 낮추었습니다."

"통신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용자들이 어떤 불편을 겪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160바이트의 문자메시지 국제규격 표준을 80~90바이트로 제한한 후 그 이상의 메시지는 독자규격의 MMS을 이용하여 추가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4G이동통신 규격으로 와이브로를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와이브로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LTE와 함께 4G표준으로 동시채택이 유력시되고 있으며 막대한 설비투자를 통해서 이미 상용서비스를 실시중. 장비개발도 완료했고 운영노하우도 있기때문에 해외수출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책이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왜곡된 한국 IT산업 구조가 '웹2.0' 시대에 부응하여 이제라도 '개방과 표준'을 중요시한다면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의 표준을 지킬 때 수출의 활로가 열릴 것이며 구글 같은 공정한 검색 사이트가 나와서 포털 외부의 사이트들이 자생할 수 있어야 인터넷 생태계도 활성화할 것이다. 이동통신사는 와이브로에 적극 투자하여 새로운 표준을 주도해야 하며 휴대폰 제조사는 국내 소비자에게 질 좋고 싼 제품을 제공하여야 한다. IPTV 사업자들은 망을 개방하고 콘텐츠 제작자와 상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한 스마트TV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콘텐츠 마켓, 플랫폼까지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의 노력만으로 한국 IT산업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예전의 ‘IT 839’ 같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일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비자는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며 기업과 정부가 옳은 길로 가도록 지속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국산품 애용'과 '애국심'으로 한국 기업을 감싸기만 했을 때, 그들이 결국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기업, 정부, 소비자의 노력이 없다면 머지않아 한국 IT산업은 일부 대기업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차라리 당분간은 애플과 구글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 말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진보는 IT에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전자상거래 시스템과 무선인터넷 요금에 변화가 일어났듯이 우리도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혁신은 한국 사회를 이끄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한국 IT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개방과 표준'이고, 폐쇄된 IT 환경을 개방하고 더 나아가 세계의 표준을 이끌 수 있어야 한국 IT산업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진보가 IT'에 있다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저자가 오랫동안 IT업계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IT업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결국 이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것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 역시 잘 알것이다. 난 저자의 주장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IT가 뜻하는 '개방과 공유, 협력과 참여'를 의미한다고 본다.

"아이폰으로 인해 통신사들의 경쟁이 가열되어 드디어 데이터 완전무료요금제가  출시되었으나 사용료는 아직도 비쌉니다. 사용자들은 통신사들을 압박하여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대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스카이프 같은 인터넷전화를 와이퍼이뿐만 아니라 3G에서도 쓸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 책은 막연하게 독점기업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팜플렛이 아니다. 저자가 정부부처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깨우쳐줄 뿐 아니라 정부부처가 앞으로 어떻게 정책방향을 잡아야할 지 안내해주고 있다. 독점기업들 역시 국내의 독점,착취이윤에 만족하다가 해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해 업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방향도 제시한다. 저자는 기업이나 자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향해 다가가는 경영자들과 주주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내가 무관심했던 산업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한국 정보통신산업(ICT :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에 대한 깊숙한 식견과 탁월한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막연하게 특정산업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가족, 지인, 시민들 모두에게 밀접한 인터넷과 통신비, 일자리 분야라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할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

지난 5월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 사태는 정치와 잔보정당에 대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처음 알게 해주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 역시 저자인 김인성 교수가 통합진보당 2차 진상조사위에서 온라인분과를 담당하여 제출한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와 김인성 교수는 이번에 알게된 많은 양심적인 전문가, 실력있는 전문가, 이성적이고 용감한 지식인 중에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 2012년 8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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