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 2012년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나?
김인성.이병창.김영종 외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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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뒤로 현재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소위 '신당권파'에 의한 ‘비례대표후보 일괄사퇴’라는 주장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과연 이석기와 김재연은 한국 진보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마땅한 정치적 패륜아들인가. 한 정당의 비례대표 선거를 둘러싼 절차상의 문제를 종북몰이로까지 확대하는 이념공세는 온당한 것인가?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금 통진당 사태의 진상과 해법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 책은 통진당 사태의 진실에 대하여, 주류 언론들이 전하고 있지 않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들은 이번 통진당 사건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검증 가능한 사실들을 제시하여 가리고자 한다. 그리고 진실 규명의 목소리는 묵살한 채, 한 정파를 처음부터 마녀로 규정하고 잔인하게 사냥해대고 있는 다른 정파들, 언론들, 지식인들은 과연 어떤 의도와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언론은 외면하고 국민은 알지 못하는 충격적인 진실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최초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을 함께 만든 저자들-이병창 교수, 김인성 교수, 김준식 작가, 김영종 자가, 이시우 시인, 김갑수, 최진섭, 김대규 등-은 대부분 통합진보당 당원이나 당직자도, 소위 '구당권파'도 아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던 '우호적 지자자'였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 사태가 '묻지마 부정과 무조건 사퇴'로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 처음부터 또는 중간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양심적인 사람들이다. 기초적인 사실과 진실을 가리려 하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부정한 세력'으로 낙인찍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각자 진실을 찾다가 함께한 이들이다.
 
지난 5월 2일 조준호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선거 진상조사위원장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뒤, 거의 모든 언론과 지식인이 좌우 가리지 않고 ‘국민의 눈높이’와 ‘종북’을 내세우며 소위 '구당권파'를 질책했다. 유명 언론인 중엔 유창선 박사만이 국민의 눈높이도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라며 진실 규명을 강조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 뿐 아니라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프레시안 등 소위 '진보 언론'에서도 사실의 진위나, 당사자의 해명을 생략한 채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짐짓 결론을 내린고 초점을 맞춘 후, 조준호 전대표와 박무 전조사위원, 심상정 전대표와 유시민 전대표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 유창선 박사는 5월 16일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통합진보당 내분이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한겨레, 경향을 비롯한 진보언론들의 책임도 컸음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이들은 조준호 보고서가 나오자 화들짝 놀란 나머지, 팩트에 관한 기본적인 검증과 확인은 제쳐놓고 당권파-비당권파 간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이 언론 본연의 책무인 사실에 대한 검증과 확인에 노력했다면, 내 판단으로는 잘못된 판단과 오해들은 상당부분 해소되었을 것이고, 통합진보당 내부 갈등이 이 지경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왜 언론들은 사건 초기에 중요한 의혹과 팩트를 제대로 취재하지 않았는지, 2차 진상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주요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집중취재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강조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아래의 사항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문제제기는 아주 단순하게 시작했다. "애초에 통합지보당에서 1차 진상조사위가 결성된 첫 번째 이유는 윤금순과 참여계 오옥만 후보의 부정 시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으나, 조준호 보고서에는 이들에 대한 조사는 아예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언론들은 부실한 보고서에 기초해 의혹만 제기할 뿐 윤금순과 오옥만 부정사건을 심층취재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 점이 궁금하지 않았나? 2차 진상조사위의 김동한 위원장이 “법학자의 양심에 기초해서 봤을 때 이번 조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철저히 보장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는데, 기자들은 왜 이 점을 파고들지 않았나? 만약 2차 진상조사위가 구당권파에게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위원장이 이에 반발해 사퇴했다면, 언론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조준호 보고서 발표 뒤에 언론들이 부정선거 의혹사례라며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던 대부분의 기사들(주민번호 뒷자리가 같은 당원 무더기 발견, 소스코드 열린 뒤 이석기 당선자 득표율 수직상승, 뭉텅이 투표용지 발견, 이석기 득표 60%가 IP 중복투표 등)은 모두 허위 보도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정보도를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에서 외부인으로서 제2차 진상조사위원회 온라인 조사를 외주용역 받아 분석한 김인성 교수는 자신의 분석팀이 일주일간 밤을 세워 분석한 기술검증보고서가 정파적인 입장에 의해 '다수결'로 폐기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IT분야의 법의학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 시스템(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고, 지역의 건설업자가 자기 이권 챙겨 줄 국회의원을 만들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2차 진상조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나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병차 교수, 김준식 작가, 김영종작가는 각각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제3자의 시각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누구나 생각하는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와 사실관계를 통합진보당 몇몇 인사가 의혹으로 포장하여 언론플레이하고, 소위 진보 언로과 진보 지식인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나는 지금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 스스로 그토록 무서워하던 나치의 논리에 그대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이병창 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 사건은 진보진영, 특히 구당권파에 극도로 불리한 언론지형을 이용하여 당권을 탈취하고 진보를 제 입맛에 맞춰 재편성하려는 세력의 정치공작형 쿠데타였다.”(김준식 소설가)
“이정희는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내린 침묵의 형벌 기간에 사력을 다해 마주해야 할 것이다. 광야에서 홀로 분투한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세상을 향한 재생의 장소라는 걸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이런 사명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김영종 작가)
 
페이스북 아이디 '나미꾸'와 김갑수, 김대규, 이시우, 김귀옥은 언론인 유창선의 진실에 대한 외침을 전하고(나미꾸), 조중동과 경쟁하다 조중동의 선정주의를 닮아가는 진봄체를 비판하고(김갑수), 이버 사태에서 확인된 강남좌파식 진보 지식인들의 허상을 드러내 보이고(김대규), 진보진영 내에 존재하는 배제전략과 종북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이시우,김귀옥)
이외에 책 속에는 시민운동가 김경아씨의 사회로 김갑수 작가와 양동주 정치평론가, 그리고 김준식 소설가가 참가한 좌담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 김갑수 작가는 이번 사태의 밑바다에 진보진영에 내재해 있는 '국가주의'와 '반공주의'의 뿌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양동주 평론가는 통합진보당의 정치공학적 판단과 과정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우경화가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준식 작가는 준비부족과 탐욕을 워인으로 지목했다. 좌담회에서는 소위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허구성을 폭로했다. 이념적 경직성을 가지고 사상의 자유도 지키지 못하면서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자유주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통합진보당 향후 전망에 대해 '함께 가기엔 너무 상처가 크고 서로의 이념적 조직적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조속히 서로간에 분리한 후, 통합진보당이 독자후보를 걸고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도덕이 진보의 특성이라고?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라. 제목에 아예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가 들어가 있는 글이에요. 진보의 특성은 능력이다. 보수야마로 도덕이다. 진보가 도덕을 지나치게 내세우니까 새누리당이 하면 봐주고 민주당이 하면 조금 욕하고 지니보당이 하면 많이 욕하고, 이렇게 되지요."(김갑수 작가)
 
 
김영종 작가는 이번 통진당 사태를 통해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개막'한다고 평가한다. 이번 사태로 소위 가짜 진보와 진짜 진보가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사실 작가의 평가에 쉽게 동의되지는 않는다. 지난 2008년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마타도어 때에도 이번에 입에 거품을 물었던 대부분의 진보 언론과 진보 지식인도 진실과 상관없이 덩달아 노 전대통령을 씹었고, 노 전대통령이 자살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진보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정희에 대해 왜 그렇게 마타도어를 일삼았는지 이유를 추론하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이정희 이전과 이후의 진보 정치인들은 크게 나뉠 수 있기 때문이고, 작가가 말한 '콤플렉스'와 '계급투쟁'에 대해 충분하 가능한 평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만한 지식인은 오만한 부자보다 민중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지 않고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사실관계나 진실, 부실이나 부정의혹을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보면 요즘에도 5월 당시의 언론 보도와 이미지에 의해 선입견에 사로잡힌 채 '총체적 부정선거'나 '모두가 부정'이라는 주장이 남아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마타도어를 겪고서도, 조봉암의 진보당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장준하씨의 사인에 대한 진실규명을 외치면서도, 용산참사와 천안함의 진실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언론 보도만 믿고 주류측의 주장만 신뢰하고 소수의 목소리, 타인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 정파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이 나중에 자신들에게 가져올 폐해가 엄청날텐데...
 
이 책을 덮고 나서 몇 가지를 확신하였고 다른 몇 가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의 통합진보당이 진실과 범죄자 척결에 대한 합의 없이 적당히 화합하고 단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서로에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적당한 화합이나 타협은 결국 통합진보당의 뿌리와 근거까지 말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과 원칙'에 근거하여 당내 분쟁이나 분열방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 구 민노당 주요 당직자들은 당원들과 지지대중들에게 섣부른 3주체 통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이정희 전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 순위 조정 등 통합지도부로서 적절하지 못하게 처신하였고 5.2 사태 이후 조속하게 당내 합의와 적절한 수습을 견인해내지 못한 부분, 5.12 중앙위 폭력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도 공개적, 조직적으로 다시 한 번 사과해야 한다. 당원들, 일반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 당원들의 자주성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제도와 운영방식, 당직자들의 관료주의와 비밀주의, 통합진보당 전체에서 나타나는 소통과 공감의 부족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참여계와 인천연합 계열의 당직자와 당원들에게 그리고 주류 언론 보도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진보 지식인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선거 부정 범죄'는 지금처럼 진영논리나 정파다툼, 분당이나 신당창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파나 신당의 존립근거를 없애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선투쟁이나 혁신-재창당과 별개로 구체적인 범죄행위와 '범죄자 색출과 척결'을 각오해야 한다. '정파적인 시각'을 거두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의 후과는 2008년 민노당 분당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자신들에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 2012년 8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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