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힘 - 2012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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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김대중 죽이기>를 출간하여 김대중 전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2002년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을 출간하여 노무현 전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일조했던 강준만 교수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이 책을 발간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따라서 올해 대통령 선거에 크게 민감한 나로서는 이 책을 사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강준만 교수의 시대상황 인식과 명석한 분석을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강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분석하고자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중요한 언론 매체와 책 등을 인용하여 분석하는 방식은 국내의 웬간한 학자들은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뉴스클리핑'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뉴스나 자료를 정리할 것이라고 예상은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건 해본 사람은 안다.
더군다나 1년 넘는 정보를 토대로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와 해설, 사설, 칼럼 등을 모으고 골라내고 분석, 비판, 재구성하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닦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안철수 지지 선언과 함께 본격적인 대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안철수 자질론, 진보와 보수 진영의 안철수 비판론, 정권 교체론과 박근혜 대세론 등 가장 뜨거운 화두들을 거침없는 문체로 비평한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을 이유로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라고 단언한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지난 세월 한국 사회는 ‘대통령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수행해온 셈인데, 과연 그 결과가 무엇이었느냐"고 되묻는다. 지난 한국정치사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엮임한 정치인들의 사례와 결과는 대다수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란 무엇인가? 그런 '연줄의 예술'이다. '안철수 비토론'의 주요 논거 중 하나는 그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인데, 이를 뒤집에 말하면 안철수는 연줄 부패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연줄 부패,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안철수의 청교도적 기질이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지긋지긋한 연줄 부패를 끊기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청교도적 기질을 지닌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닐까?"
세계 10위권 규모의 민주 국가 운운하며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제기한 주장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한국의 ‘포장마차 정당론’을 언급하며, 컴퓨터 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심하면 때려 부수고 다시 만드는 정당 정치를 펼치면서 세계 10위권 규모 민주 국가라는 기준으로 한국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격한다. 야권의 박근혜 비판론에 대해선 비판의 주된 화두가 고작 ‘독재자의 딸이냐’며, 이는 콘텐츠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라고 강조한다.
 
2012년의 시대정신을 ‘증오의 종언’으로 규정한 강준만은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과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정서에 이의를 제기한다. 증오가 정치의 주요 동력과 콘텐츠가 되고 시종일관 진영 논리의 포로가 돼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증오 시대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안철수야말로 증오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게 강준만 교수의 결론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안철수식 문제의식의 예를 들면서, 저자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폭넓게 공유되고 있음에도 "진영 논리에 빠져서 보수언론에서 선점해서 다루니까 우리가 외면해버리거나 무방비로 안 다루고 놔뒀던 영역"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말한다. 안철수의 강점은 기존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증오' 또는 '진영논리'는 진보세력 사이에서도 뿌리가 깊다. 중도적인 시각을 가진 정치세력이나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진보세력은 진보정당 사이에서, 진보정당 내부에서, 진보정당 바깥에서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적' 만큼의 증오와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는 그런 문제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안철수는 증오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적임자다. 안철수는 “우리 정치권은 승자 독식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국 증오의 악순환에 빠진다”며 “여나 야, 누가 이기든 국민의 절반이 절망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 절반을 적으로 돌리고,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는 낡은 프레임과 낡은 체제로는 아무런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 관련 발언은 거의 모두 이런 문제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둘째, 안철수는 ‘공정 국가’ 실현을 위한 적임자다. 공정 국가는 시장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공정한 시장을 지향하는 국가다. 시장 논리를 배격하는 기존 진보적 틀은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름답긴 하지만, 5천만 한국인을 먹여 살릴 수 없다. 안철수는 시장주의자이면서도 오래전부터 지겨울 정도로 경제 민주화의 가치라 할 정의, 공정, 공생을 강조해왔다. 말로는 누군 그런 말 못하느냐고 일축하기엔 그의 지나온 삶이 그 정신의 실천에 지독할 정도로 충실했다.
셋째, 안철수는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다. 스마트폰 혁명과 SNS혁명이 잘 말해주듯이 인류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맞고 있다. 이 변화를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한국의 선진국 진입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안철수는 디지털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하면 우리가 좀 더 잘되겠지”라는 판단 기준 대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실천해온 사람이다. 그는 안철수가 전 분야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을 잘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인 태도에서 민주통합당이 부정적이다. 특히 지난 4.11 총선을 전후하여 민주통합당이 '사실상 승리'라며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까웠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40%를 넘는 지지는 역으로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노무현의 FTA는 '착한 FTA'이고, 이명박의 FTA는 '나쁜 FTA'란 말인가? 이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이후로도 수개월 동안 지속됐는데, 나는 이 주제로 열린 TV토론을 몇 차례 시청하면서 새삼 '당파성은 무엇인가?'로 시작해 '인간은 무엇인가?'로까지 나아간 의문에 빠져들곤 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4.11 총선에서 야권의 참패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을까?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구호도 그런 불신에 일조한 것은 아닐까?(중략)
민주당은 4.11 총선을 오직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전략으로 임한 셈인게, 그 결과는 비참했다. 이젠 생각이 달라졌을까? 아니다. 변한 건 없다. 환상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게 아니다."
 
나꼼수 모델과 팬덤정치에 대한 강 교수의 비판도 수긍할 만 하다. "나꼼수 모델로 정권 교체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모델은 우리 편엔 너그럽고 상대편에겐 엄격한 '응징 모델'인데, 우리 편을 제외한 다수 유권자들은 그런 게임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인이다 역사가인 액턴(Lord Acton)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고 했다. 진영 논리도 마찬가지다. 진영 논리는 부패하며, 절대 진영 논리는 절대 부패한다. 물론 진영 논리는 초기엔 큰일을 해낼 수 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규합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꼼수가 바로 그 일을 해낸 산증인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진영 논리의 부패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균형 감각을 갖추어야 할 때다. 그래야 다수 무당파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게 가능하다. 우리 편의 마스터베이션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룰 순 없다. 그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 세상의 이치다."
정치인에 대한 팬덤정치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커질 때 유권자들은 진영논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향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친노 정치인들(문재인,이해찬,문성근,유시민등)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
 
안철수는 ‘진보의 구세주’인가, ‘정의의 신기루’인가? 안철수는 ‘진보의 구세주’도 아니고 ‘정의의 신기루’도 아니라는 사실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저자는 안철수 현상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좀 더 미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민주정권, 특히 노무현 정권이 만든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는 무엇인가? 저자는 그 뿌리가 그동안 한국 정치가 보여준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와 편 가르기, 진영 논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시대는 타협을 모르는 ‘증오 시대’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개판이 된 현실을 성토하거나 그렇게 개판을 만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옳을지는 몰라도 현명한 일은 아닐 터. 이제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우연인지 아닌지 마침 그 중심에 안철수가 있다."
정치 양극화와 편 가르기에 대한 역사적 원인과 책임의 상당 부분은 보수정당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진보 진영 역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집권 시기에 걸쳐 지난 15년 동안 그것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기간 동안 민주통합당은 '수권능력'과 '대안의 정책'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신뢰받기 보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부정과 부실에 대한 반사이익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지율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나는 안철수 현상이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에 실망한 다수의 유권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같이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안철수 원장으로 야권단일화를 이루어 정권교체를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야권의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대화와 타협, 진보적인 정책, 공명정대한 인사와 정부운영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바란다. 또한 그 동안 야권은 뼈를 깍는 내부 혁신과 물갈이를 통해 진정한 정책정당, 대중정당, 진성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5년은 무지 짧다.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개혁이 마무리되려면 앞으로 2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 2012년 8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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