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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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읽은 현대 소설... 사실 박범신 작가는 잘 모른다. 작가의 작품을 한 편도 읽은 기억이 없다. 5월 경에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 <은교>와 <건축학 개론> 등을 주말에 한꺼번에 봤다. 영화 <은교>는 SNS에서 외설 논란이 일던 때였다. 영화를 직접 관람하고 나니 SNS의 논란이 약간 무색해졌다. 영화를 보지 않고 논란에 가담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은교>와 <건축학 개론>은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봐야지 하다가 시간을 놓쳤다.
그러다가 지역 시민단체 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를 고르던 중 누군가 <은교>를 추천했고, 나도 적극 동의하여 책으로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IPTV로 영화를 다시 한 번 보았다. 박범신 작가의 작품도 시간이 되면 꾸준히 읽어야겠다. 작품 속에 인상 깊은 표현들이 많았다.
 
"소나무숲 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숲은 하루가 다르게 쓸쓸해졌고, 쓸쓸한 숲이 나의 주인인 것처럼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내 마음을 다 차지했다. 산기슭을 타고 내려온 어둠이 내 집의 허리를 뱀처럼 쓰윽 휘감고 나면, 세상엔 원근도 없고, 내 모든 지나간 삶도 쓰윽, 지워졌다."
 
영화 <은교>와 소설 <은교>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크게 차이가 없다. 그동안 보통 소설 작품을 영화화할 때 줄거리나 주인공의 성격을 바꾸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대신 영화와 소설에서 느껴지는 주제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범신 작가는 이 작품을 <촐라체>, <고산자>와 더불어 '갈망(渴望) 3부작'으로 설명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情恨)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감히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작가가 작품 속에 녹이려 애쓴 '갈망'은 소설 속에서는 어느 정도 느껴지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다지 느낄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영화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저물어 가는 석양과 같은 처지에서 느끼는 이적요 시인의 외로움,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걸친 채 하루하루 연명하는 서지우 작가, 정을 주고 받을 데 없이 청소년 시절을 방황하는 고교생 은교. '갈망'의 원인이 '외로움'일 수도 있겠지만...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 한다."
 
영화와 소설은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소설에서는 세 명의 화자와 두 개의 시제가 등장한다. 세 명의 화자는 변호사와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 작가다. 두 개의 시제는 변호사의 현재 시점과 이적요 및 서지우의 과거 시제다.(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이 되었다. Q변호사는 이적요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막상 노트를 읽고 나자 공개가 망설여진다. 노트에는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인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베스트셀러 <심장>의 작가 서지우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던 것. 또한 <심장>을 비롯한 서지우의 작품은 전부 이적요가 썼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영화에서는 서지우가 질투와 우려로 인하여 소설 <은교>를 몰래 훔쳐 잡지에 발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적요기념관 설립이 한창인 지금, 그 노트가 공개된다면 문단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노트를 공개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Q변호사는 은교를 만나고, 놀랍게도 서지우 역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을 듣는다. 은교에게서 서지우의 기록이 담긴 디스켓을 받은 Q변호사는,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디스켓을 통해 그들에게서 벌어졌던 일들을 알게 된다.
 
"질투심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며, 맹목적 잔인성을 갖는다. 질투심이 꼭 정열의 증거는 아니다."

 

시인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자신을 '할아부지'라고 부르며, 유리창을 뽀드득 소리 나게 닦는 은교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청춘'을 실감한다. 고고하게 은둔하면서 문단을 좌지우지 하고자 했던 그는 '청춘'과 '사랑'이 없었던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하고 가짜라는 격한 감정에 빠진다. 한편, 선의로 은교에게 작은 도움을 주다가 서지우는 은교를 바라보는 이적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은교에 대한 집착이 커져갔다. 정에 넘치던 사제지간이었던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싸고 조금씩 긴장이 흐르기 시작하고, 열등감과 질투, 모욕이 뒤섞인 채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서지우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이적요는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갔다.
 
이 작품을 읽는 사람에 따라 통속적인 삼류 연애소설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0~20년 전이였다면, 내가 작가의 '갈망'이라는 설명을 무시하고 '사랑'이나 '질투'로 받아들였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갈망'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많이 공감이 된다. 작품 속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엉켜 있는 사랑이 실타래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연애소설에 국한시킬 수 없는 까닭이 들어 있다.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인가.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 질투란 무엇인가. 남자들에게 여자란 나이가 없는 것이듯, 여자에게 또한 남자란 나이가 없는 것이듯, 작가가 계속해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던져진 질문에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몸을 빌려 살아가고 살아내고 죽어가고 죽음으로 작가가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망'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은 주인공 이적요 시인의 '젊음과 늙음'에 대한 소회였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조금 더 직설적이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에 대해 얻어진 상이 아닌 것처럼,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에 대해 받는 벌이 아니다."

 

[ 2012년 9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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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람의 길 - 上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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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 번 꼭 읽어봐야지"하고 벼르던 '사서삼경' 중에서 <논어(論語)>에 이어 <孟子>까지 읽었다. 모두가 세미나 팀 덕분이다. 혼자 읽고 해석하면 인터넷을 뒤지면서 끙끙 앓았을텐데,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세미나에서 질문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니 내 생각이나 해석과 다른 의견도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 더군다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맹자>에 대한 번역과 해설은 머리 속에 팍팍 꽂힌다. 대단한 재야학자라 할 수 있다.
도올은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맹자>라는 텍스트를 21세기 한국어, 그리고 한국인의 일상적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재구성해놓았다. 그 재구성이란 결국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이는 맹자라는 인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을 위해서는 맹자가 산 BC 4세기 전국시대의 상황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 작업은 <맹자>라는 텍스트 하나의 해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도올은 <논어>, <사기>, <전국책>, <국어>, <상군서>, <관자>, <열자>, <장자>, <회남자>, <한비자>, <순자>, <여씨춘추>, <묵자> 등의 고전을 <맹자>와 더불어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폭 넓게 공부할 수 있다.  
 
맹자는 BC 372년에 태어나 BC 289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40세 전후부터 약 15년간 전국의 난맥상을 한 몸에 체현하면서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의한 통일을 이룩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말하는 '왕도의 통일'은 진시황의 무력통일이 아니었다. 도덕에 의한 자발적 통일이었는데, 맹자의 이상이 실현되었다면 중국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맹자는 현실적으로 패도(覇道)에 파묻히고 말았지만 자기가 추구했던 왕도의 이상을 제자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책으로 남겼다. 전국시대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부분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보다도 <맹자>의 내용이 훨씬 더 정확하다.
 
"흉년이 들어 사람이 죽어가는데, 개 돼지가 사람이 먹어야 할 것을 먹고 있는데도 그것을 단속하지 않고, 길거리에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는데도 진휼곡식창고를 열 생각을 아니 하고, 사람이 죽으면 말하기를, '내 잘못이 아니야! 세월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야!' 라고만 말한다면, 이것은 칼로 사람을 찔러죽이고 나서,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칼이 잘못한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세월에게 죄를 묻지 아니 하시고 근원적인 왕도정치 개혁을 당장에라도 행하신다면 천하의 백성이 몰려들게 될 것이외다."(p.115)
 
"항산(恒産,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서도 항심(恒心, 항상스러운 도덕적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선비(교양을 갖춘 사士)만이 가능하다. 그렇지 아니한 일반백성 대중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항심고 없어지고 맙니다."(p.164)
 
<맹자> 속에 살아 숨쉬는 실제 맹자는, 우리세대가 중,고등학교 재학시 국어, 고전, 국사 시간에 '수박 겉?기'로 배운 맹자와 전혀 다르다. 그리고 맹자의 사상은 공자를 이어받으면서 공자와도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맹자>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본주의' 또는 '민본주의'라 할 수 있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제후국 군주들에게 민생경제를 토대로 왕도정치를 실현해야 만이 소국(小國)이라 하더라도 국가의 안위를 도모할 수 있고 나아가 천하를 통일할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는 민심을 거스르고 패악을 일삼는 군주는 '군주'가 아니라 '도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도적은 권좌에서 ?아낼 수 있다는 '혁명'을 주장했다. 우리도 인류의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혁명사상을 서구의 역사와 텍스트에서만 찾아보려는 미망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일컫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일컫습니다. 잔적(殘賊)의 인간은 '한 또라이 새끼'라고 일컫지 임금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왕이 한 또라이 새끼 주(紂)를 주살(誅殺)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나이다."(p.198)
 
"민(民)이 가장 귀한 것이요, 그 다음이 사직의 하느님이다. 군(君 제후국 군주)은 가장 무게가 없는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뭇 백성 구민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天子)가 되는 것이요,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요, 제후의 신임을 얻는 자가 대부(大夫)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후가 무도하여 그 국가 사직을 위태롭게 만든다면, 그 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그리고 또한 사직 제사 지내는데 쓰는 희생을 살찌우게 하고, 제기에 담는 정성도 정결하게 하고, 또한 제사도 때에 맞추어 거르지 아니하고 정성을 다했는데도, 한발이나 수해가 계속된다면 그 사직의 하느님을 갈아치워야 한다. 그러나 민은 갈아치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역대 군주들에게 <맹자>라는 서물이 탄압을 받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군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민중에 의해서 옹립되어야 한다는 존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공맹사상은 우리가 국사 시간이나 여러가지 책에서 귀동냥 하듯이 봉건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다만 조선시대 등 과거 학자들이 공맹의 텍스트를 통치자의 입맛에 맞도록 해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올은 "인류역사에서 순결한 도덕주의, 진정한 인문주의는 모두 맹자에 근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양의 도덕은 결국 신화적, 종교적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21세기, 도덕의 회복을 외친다면 누구든지 <맹자>를 읽어야 한다. <맹자>는 일방적인 말씀의 모음집이 아니라 치열한 쌍방적 대화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기록 속에는 맹자와 그 제자들의 투쟁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맹자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눈물, 회한과 절규가 절절이 배어있다.
조선왕조는 '맹자'로 흥기하였고 <맹자>로 유지되었다. 고려 말, 삼봉 정도전은 <맹자>를 읽음으로써 새로운 혁명왕조의 구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민본(民本)을 부르짖는 <맹자>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유별나게 <맹자>를 사랑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교육(敎育). 호연지기(浩然之氣), 대장부(大丈夫), 사단(四端), 인정(仁政), 학교(學校), 선생(先生), 인의(仁義), 혁명(革命) 등의 어휘들은 한국인의 일상적 가치의 기저가 되었다. 맹자는 군주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백성이 왕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백성에게 예속된다고 확언한다. "백성의 갈망을 구현하지 못하는 왕은 하시고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자에는 민주주의 제도는 없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요즈음의 선거제도보다 더 치열한 형태로 표출되어 있다. 한국인의 대의(大義)를 존중하는 지사적 기질, 권력에 불복하는 혁명적 기질은 모두 맹자에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위엄의 원형이 모두 <맹자> 속에 들어가 있다.
 
이 책 <맹자>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번역과 해석으로 인하여 더 가치가 빛난다. 특히 <맹자>라는 텍스트를 기초로 21세기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지적하고 질타하는 내용은 바로 옆에서 도올 선생의 '호된 소리'가 들리는 듯 한다. 예를 들어 전국시대에 소국이었던 등나라의 군주가 대국들 사이에서 끼어 어떻게 외교적 처세를 해야 할까를 묻는 질문에 맹자가 '해자를 백성과 함께 깊게 파십시오. 성을 백성과 함께 높이 쌓으십시오. 백성과 더불어 성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백성들과 더불어 같이 죽을 각오를 하신다면 백성들은 왕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의 살길이 보입니다.'라고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이 해설을 덧붙인다.
"'천안함'과 같은 애매한 소리를 하지 말고 자주국방에 힘쓰고, 미국에 대해서도 큰소리 친다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미,일을 포함한 세계우방국가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뒷구멍을 빨 것이 아니라 미국의 머리를 쓰다듬을 줄 아는 아량과 역량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층은 이러한 이야기를 현실감각 없는 택도 없는 이야기라고 빈축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미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세계전략 요충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우수한 두뇌, 그리고 피땀 흘려 쌓아올린 경제적 힘, 그리고 군사력을 자주적 호위와 동고동락하는 국민일체감의 바탕 위에서 활용한다면 미국은 오히려 우리에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의 진로를 단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이다. 정치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부패하여 도덕성을 상실했기 대문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내면의 뱃심이 없기 때문이다."(p.218)

그리고 공자의 <논어>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맹자>를 읽으면서 중국과 한국의 정치문화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춘추시대의 공자와 전국시대의 맹자는 제후국 군주들 면전에서나 제자들 앞에서 군주들과 고관대작들에게 심한 비판을 했고, 여러 제후국 다니면서 군주들에게 조언하고 다녔음에도 생명이나 상해의 위험을 그리 겪지 않았다. 그만큼 언론이 자유롭고 학문과 사상의 논의가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나 조선, 대한민국에서는 왕이나 군주, 최고위층에게 비판적인 말 한마디만 하면 당사자를 직접 죽이거나, 심하면 가문과 삼족을 멸하기도 하고, 정치적 유배를 보내거나 감옥에 쳐 넣고, 그렇지 않으면 부당하게 일자리를 빼앗았다. 21세기인 지금에도 그런 짓을 대놓고 저지르고 있다. 어떤 차이일까... 
 
[ 2012년 9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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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 - 문재인의 힘
문재인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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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의원은 어찌보면 안철수 원장과 같은 '정치 초보'라 할 수 있다. 본인 스스로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을 엮임한 후 2008년 낙향하여 변호사 활동에 전념했고,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작년 후반까지 활동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 스스로 책 속에서 밝혔듯이 정치활동이란 직업 정치인이 여의도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 누구나 개인으로서 생활 속에서 '시민 정치'를 해나가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여의도 바깥의 시민정치가 활성화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임은 누구나 이성적으로는 동의하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도 퇴임 후 수시로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후보는 그런 자신을 직업 정치의 일선으로 내몬 것은 이명박 정부라고 말한다. 마치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나선 것이 이명박 정부의 폭압정치 때문이라는 것과 비슷하다.
 
작년 민주당이 '혁신과통합'이라는 정치단체와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이 되었을 때 문재인 후보는 공식적으로 직업 정치인으로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부산에서 당선되었고, 6월 19일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이 책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후 자신의 철학과 이념, 비전과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막연히 행정부의 권력을 보수진영에서 되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통하여 정치가 바뀌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는 뜻이다. 책 속에서 그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여 사람이 먼저인 세상,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숨 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경쟁과 승자독식, 강자지배의 사회원리가 과거의 낡은 시대정신이자 방식이라면, 새로운 시대정신은 개방, 공유, 협동, 공생의 새로운 사회원리를 통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이했던 것은 3부 ‘참여가 힘이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즈음하여 국민들로부터 접수한 메시지들을 선별하여 담은 '듣고 싶습니다'와 문재인이 직접 올렸던 트윗을 골라 담은 '트윗 초보 문재인'이 실려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후보가 '소통'을 시대정신이나 주요한 정치철학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후로 유권자들에게 SNS를 통하여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에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그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트위터를 통해 '새정부에서 대통령 명령 1호'를 무엇으로 할지 의견을 묻는 등 SNS를 정치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에서 문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은 매우 포괄적이다. 정치 부분에서는 통합의 정치, 지역주의, 검찰개혁, 외교, 안보, 남북문제, 평화를 다루고 있고, 경제 부분에서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포용적 성장, 협력적 성장, 사회적 경제, 에너지, 과학기술, 국책사업, 통상, 농업, 금융, 하우스푸어, 세금, 균형발전을 다룬다. 사회 부분에서는 일자리 혁명, 노사관계, 언론, 공영방송, 복지, 주거복지, 고령화, 여성, 어린이, 교육과 학교, 창의력에 대한 정책을 제시한다. 손학규 후보처럼 자신의 지향하는 이념적, 이론적 정책노선을 제시하고 이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사항들은 모두 짚어내고 있다. 특히 하우스 푸어와 주거권, 고령화 사회, 학벌만능주의와 문화예술 창작분야에 대한 언급은 손학규 후보나 김두관 후보가 짚어내지 못한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내용대로 새정부가 정책을 펼친다면 '제2의 참여정부'라는 우려는 말끔히 해소될 것이고 2017년 정권을 재창출될 것이라 믿는다.
정책 부분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대연정' 같은 정치공학적인 시각에 그친 점이다. 그리고 역사인식에 근거한 국익 관점의 안보관이 보이지 않는 것, 경제민주화에 있어서의 논리적 연결성의 부족, 지역균형발전과 부동산 폭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문 후보를 지지하는 연구집단이나 학자들, 과거의 관료 출신들이 많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브레인 집단이 좀 엉성하거나 문 후보 스스로가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와 과오를 뛰어넘겠다"라고 다짐했다. 책 속에는 참여정부의 성과와 과오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고 각 챕터마다 필요할 때마다 거론하는 식이다. 그것들을 모아보면, 참여정부의 성과로는 정치의 민주화, 당당한 외교, 남북 평화와 경제협력, 국가 균형발전, 언론자유, 복지 등을 제시하고 있고, 참여정부의 한계와 과오로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너무 쉽게 휩쓸려 갔다",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 등 민생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검찰개혁 실패, 부동산 폭등 등을 말하고 있다.
그가 참여정부의 성과로 제시하는 부분 중에서 정치의 민주화, 국가 균형발전, 복지 등에 대해서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특히 나는 지역주의와 정당정치, 정치민주화와 관련하여 2003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비록 2004년 탄핵과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했지만 노 전대통령은 집권여당이 잘못된 길로 나가도록 하는데 크게 일조한 셈이고, 소수당이었던 집권여당을 붕괴시켜 버린 셈이었다. 그 여파는 노 전대통령 집권 내내 부담으로 작용했고, 참여정부의 정책이 힘을 받는데도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2007년 대연정 제안의 경우도 어처구니 없는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대연정은 정치민주화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노사모를 시민정치세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과 집권여당과 거리를 두면서 집권여당의 정당정치 강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은 큰 실책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도 청와대 참모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참여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했다. 하지만 그 방법론은 긍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행정부를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중심으로 지방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일부 긍정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하드웨어적 발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나 서울로 전국의 권력과 부가 모여드는 것은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이유로 발생한다. 그 중 교육과 문화, 일자리와 소득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 강화와 예산배분도 문제가 된다. 광범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설득과 동의를 통해서 균형발전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지 공무원이라 하여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고 강제로 행정부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균형발전이 4~5년에 끝날 것이 아니라면 차기 정부와의 연계성도 중요한데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행정도시와 기업도시, 혁신도시, 그리고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임대주택 공급부족은 참여정부 집권기간이 해방 후 부동산이 폭등한 시기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후보의 정책 중에서 김두관 후보나 손학규 후보보다 돋보이는 부분은 정치부분에 있어서 '소통과 참여'이다. 그는 "이제는 평상시에도 정치와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해서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 보다 한 발자욱 더 앞서가는 태도라 할 수 있다.(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 한미FTA, 해군기지 등의 소통 부족과 처리과정의 미숙함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ㅠ)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은 '소통과 참여'라는 화두를 던진 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치부분에서 소통과 참여를 이루어낼 것인지에 대한 복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SNS 행보를 지켜보면 'SNS를 통한 소통과 참여'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SNS가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결국 방법은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각계각층의 시민조직의 활성화라 할 수 있다. 특히 계파정치와 대의원 정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소속 정당인 민주통합당의 기층 조직 활성화를 통한 유권자와의 소통과 직업군에서 50%를 넘는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율 10%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 농민과 중소자영업자, 중소기업인, 실업자, 청년학생, 학부모. 문화예술인 등의 자발적인 조직화를 어떻게 유도하여 정치에 반영할지에 대한 장단기의 정책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SNS와 국민선거인단은 유권자의 참여부족에 대한 임시적인 방편이 될 수 있지만, 그런 방법이 계속되면 정당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자발적인 각계각층 조직 수준에서 어떻게 그 조직이 동일한 직업과 계층을 대변하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도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네덜란드 노사 교섭 방식처럼...)

나는 문재인 후보가 한국정치에 필요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으로 검찰개혁과 현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 '친노'로 불리는 노무현 전대통령 지지자들의 결집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본적으로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는 그 지지자들을 대변한다. 그 힘은 이번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07년 대선 실패와 2008년 총선 실패의 책임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의리'와 '청렴', '신뢰'와 '일관성'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나는 그것이 바로 '문재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한계도 분명하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으로 유권자들에게 일부 용서가 되었지만, 객관적으로 누가 뭐라 하더라도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였다. 그 실패로 인하여 이명박은 어부지리로 당선되었고, 지난 5년 동안 중산층과 서민들은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가 몸담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부 5년간 유권자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만큼 가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4.11총선에서 부산 낙동강 벨트에서 홀로 살아남았고 자신의 당 뿐 아니라 야권 전체가 패배했다. 한명숙 대표 - 이해찬 대표로 이어지는 '친노' 진영은 민주통합당 내부의 권력을 잡았지만, 그 권력을 토대로 광범위한 주변 세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고 소수세력과 중도층을 우산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과 서민들 역시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식으로 문재인 후보와 지지세력이 움직인다면, 후보 경선 과정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으로 나타나는 정치세력과 지지자들, 유권자들을 끌어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 단일화에서 참패하거나 대통령 본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할 수 있다. 그는 지지자들, 특히 열성 지지자들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에서 상생과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상생과 통합의 경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적대적이거나 마타도어 식으로 경선이 이루어지면 결국 문재인 후보 자신에게는 마이너스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경선 후에도 방법은 있다. 가진 것을 놓으면 된다. 만약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 측근들을 설득하여 대선 기구의 주요 직책을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야권단일후보 경선 과정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양보할수록 단일후보로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걱정하기 보다 '친노진영'이라는 집단을 경계한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독과점을 느끼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탄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 2012년 9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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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 손학규의 민생경제론
손학규 지음 / 폴리테이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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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영국정부의 복지정책 구호였던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스웨덴 사민당의 선거구호였던 '국민의 집'이 떠올랐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에 누군가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는데 충분히 공감이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짤리지 않기 위해, 밀려나지 않기 위해,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저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인들...
사실 한국의 역대 선거에서 이런 단순명료한 구호로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을 제시한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학규 전대표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지 못하거나 본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한국 선거에 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렇다면 손학규 전대표는 어떻게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물해줄 수 있을까? 그는 그 해결책을 '진보적 자유주의’의 기초 위에 세운 ‘공동체 시장경제’라고 제시한다. 우리사회는 1945년 해방 후 지금까지 오로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후 한국인, 한국의 상층인사들이 미국의 힘을 동경하고 미국식 번영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이끌어 왔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일반 국민들 역시 그런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더 이상 ‘미국의 길’은 아니다. 미국식으로 안된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일반 국민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유럽의 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까지 우리 나라에서 정당이나 후보가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 뿐이었다. 거대 정당인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역시 알맹이가 없는 반공민주주의니 대중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복지주의니를 외쳤을 뿐 그것을 합리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실제 정책은 보수주의에 다름 없었고 신자유주의였다. 나는 민주통합당의 역사에서 손학규 전대표가 최초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의 이론적 기초를 ‘진보적 자유주의’로 정의하고, 그 내용을 ① 정의, ② 복지, ③ 진보적 성장의 가치를 묶는 ‘공동체 시장경제’라고 말한다. 최장집 교수는 추천글에서 "반면에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가치를 말한다. 자유와 평등,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고, 거기에 덧붙여 정의와 공정함, 공동체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의 적극적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진보적 토대와 사회적 권리를 확대.강화하겠다는 분명한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는 주저하는 자유주의 혹은 보수적 자유주의의 내용을 가지면서 겉으로만 진보성을 과시하는, 그간 야당이 보여 준 전형적 패턴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p.8~9)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공동체 시장경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손 전대표는 책의 2부 '정의.복지.진보적 성장을 위한 실천 방안'에서 각각의 가치에 맞는 세부 목표와 정책 과제를 자세히 다룬다. '정의'의 가치는 재벌 개혁과 상생 경제, 그리고 노동 개혁으로, '복지'의 가치는 보편 복지와 생활 복지, 그리고 일자리 복지로, '진보적 성장'의 가치는 균형 성장과 혁신 성장, 그리고 평화 성장으로 설명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여야, 무소속의 어떤 후보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이론적 배경과 짜임새 있는 정책이 돋보인다. 가장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책에서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경제정책들을 단순하게 국민을 더 잘살게 하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방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런 경제정책들을 우리 사회가 기득권을 깨고 계층을 넘어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방안으로 보고 있으며, 정의로운 경제를 통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p.35)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 유럽의 경험을 강조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내지 언론들도 그런 가치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대부분은 미국적 범위 안에 있다. 일자리를 말하면서도, 그래도 노동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의 전횡을 비판하면서도, 그래도 자유 시장 원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서민을 강조하면서도, 그래도 도덕적 해이는 안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더 이상 미국의 길이 아니고 유럽의 길이다.’를 주장하는 그는 독특하다.
손학교 전대표는 바로 '유럽의 길'을 말한다. 그는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럽으로 정책 여행을 다녀왔다. 네덜란드에서는 '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스웨덴에서는 '복지'가 왜 성장과 함께 갈 수 있는 발전모델이 될 수 있는지, 핀란드에서 본 '교육'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하면서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 영국에서 본 '의료'는 복지국가의 틀 안에서 공적 의료체계가 가진 장점을 살리면서 비효율을 줄여갈 수 있었는지, 스페인에서는 '협동조합'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1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여정이었기에 그가 얼마나 속속들이 각 나라의 정책의 핵심을 얻어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을 위해 그 정책의 선진국으로 배우러 가는 자세는 인정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저녁이 있는 삶’이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노동단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구도를 반대하는 가치"이고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국민 행복 복원 프로젝트’다"라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 내가 잘살기 위해선 누군가는 못살아야 한다는 이분법, 내가 옳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는 이분법이 그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충분히 절감되는 이야기다.
강준만 교수가 민주통합당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왜 손학규 전대표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전체적으로 책 속에서 손 전대표에게 아쉬운 점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과거 및 현재 행보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에 자신이 몸담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본인도 두 번이나 당의 대표를 엮임했다. 그럼에도 그 정당은 지금까지 괄목한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유권자들에게 제대로된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수정당이라는 변명으로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지 못했고, 이렇다할 제도적 성과를 내오지도 못했다. 또한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승리한 후 집권한 지방정부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과 자신이 유권자에게 지지를 구하려면 미래에 대한 비전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반성, 사과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이 집권 후 어떻게 자신의 정책을 성과적으로 추진할 지에 대한 방법론이 부족해 보인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본과 노동, 수도권과 지방 등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는 정치사회 집단의 이분법을 해결할 것인지, 유권자들로부터 거의 절망에 가까운 불신을 받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유권자와 서민들의 희망과 참여를 어떻게 불러올 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이 많이 답답했다. 
 
[ 2012년 9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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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부터 -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김두관 지음 / 비타베아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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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에 이어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통합당 후보 중 첫 번째로 김두관 경남지사의 생각을 글로 읽었다. 뒤이어 손학규 전대표와 문재인 의원의 책도 읽었다. 정세균 전대표의 책을 읽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정 전대표가 지나온 정치 경력과 행보가 대통령 후보에 나설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내 자신의 판단 때문이다. 진보정당에서 후보가 출마할 경우 대권 후보의 책을 추가로 읽을 계획이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책을 대선 전까지 읽을 생각이 없다.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 자체가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와 한 몸으로 이 땅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모두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물론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때가서 읽을 생각이다. 박후보 스스로가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공약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이미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유언이다. 올해는 그 유언 만큼이나 시민들이 많이 깨어난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이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개인적으로 절반이 넘는 숫자는 민주통합당 조직에서 확보한 기존 선거인, 당원 명부와 여타 방계조직의 명단일 것이지만, 수 십만 명은 시민된 자격으로 스스로의 생각으로 신청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대해 항간에 여러 가지 소문과 주장이 많다. 그런 소문과 주장이 일축되려면 정당이 모바일 경선의 시스템과 절차, 관리체계를 좀 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정당이 조직하는 숫자보다 유권자 스스로 신청하는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올해 대통령 선거가 지난 대선과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독특한 유권자들의 열망과 후보 양상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권 후보들이 모두 자신의 대권 출마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정치철학, 정책, 현안에 대한 입장, 미래비전 등을 일찍 책으로 출간하여 유권자들에게 약속하고 검증하고 소통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 나라의 정치가 발전하는 데 아주 고무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미리 정책을 밝히고,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후보의 선택에 영향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가 자신이 책으로 약속한 바를 지키는지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정착되면 적어도 정치가 예측 가능하고, 정치에서 거짓말과 위선이 곧바로 드러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번 대선이 정당 간 대결보다 인물 간 대결로 치우쳐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소신, 비전과 입장, 정책 등을 제시하는 것이 어쩌면 유권자에 대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과 더불어 안철수 원장의 <안철수의 생각>과 손학규 전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 그리고 문재인 의원의 <사람이 먼저다>를 읽었다. 그리고 적어도 책에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 각 후보들의 철학과 주장, 정책과 비전 등을 알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이나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일목요연하게 각 후보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직업이 언론 기자나 전문가, 학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김두관 지사가 대선에 출마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그가 직접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건 아닌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김두관 지사의 경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보이는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내 생각이 그다지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하게 성장한 인물이다.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 전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노무현 전대통령보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렇듯이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그렇고 그런 학벌을 갖추었다. 그리고 서른 살에 고향 마을의 이장으로 시작해 군수와 장관, 도지사를 엮임했다. 노무현 전대통령보다 더 굳굳하게 영남지역의 두터운 지역주의 장벽에 도전했고, 경상남도 도지사로 당당하게 선출되었다. 그가 책 속에서 밝힌 두 번의 남해 군수 활동은 모범적이고 헌신적이었다. 도지사 역할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도지사로서 검증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남해 군수에 재선한 것처럼 경남 도지사에 재선한 후 대통령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 도지사를 중도에 그만두고 대선에 출마한 것은 원칙적으로 유권자인 도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전국 유권자의 검증도 마치지 않았다. 60년 넘게 굳어진 지역주의 장벽은 그렇게 쉽게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유권자들은 과거처럼 무지몽매하지 않다. 자질과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출신과 학벌과 지위를 묻지 않고 지지하고 열광한다. 그것은 과거에 노무현 전대통령을 통해, 최근 안철수 원장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김두관 지사가 성공적으로 경남 도지사 임무를 수행하고, 재선에 성공하면 아마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대권 후보 대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토대 없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의욕은 오히려 자만심과 과욕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후자로 보았다.(차기 대권의 징검다리로 생각하여 이번에 출마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책 속에서 나타나는 김두관 지사의 개인적인 소신과 자질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의 어머니가 물려준 "언덕은 내려다 봐도 되지만 사람은 절대로 낮춰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그의 사람을 대하는 기본 자세를 갖추도록 이끌었다면, "입은 평소에는 닫혀 있지만 귀는 항상 열려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경청의 정치인이 될 자질을 갖추어준 것이다. 정치는 서민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듣고 챙기는 것에서 시작되며, 정책 또한 서민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결국 99%를 위한 정치와 정책,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국가운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아래에서부터>로 정하고 자신을 '서민대통령'으로 제시한 것 같다.
그가 책 속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정책으로 과거에 실행했거나 앞으로 제시하는 것들도 매우 참신하고 타당해 보인다. 남해 스포츠파크, 공원묘지, 주치의제도 등이 그것이다. 연대와 협력, 소통에 대한 그의 자세와 성공사례도 우리 정치권에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남해 군수와 경상남도 도지사로 일할 때 대부분의 지방의회가 여소야대이었음에도 끈질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무난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김두관 지사는 이 책의 부제로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를 붙였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도 서민들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자신의 롤 모델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으로 제시할 만큼 그가 서민을 위해 정책을 펴고자 하는 의욕과 방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 책 속에서 어떻게 신자유주의가 우리 나라에 밀어닥쳤는지, 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실패했는지, 정치권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민주주의와 복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제시하지 못한다. 엄청나게 꼬일대로 꼬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자리, 언론, 교육, 안보, 사회적 약자, 지방분권 등에 대한 해결대안이 제시하지 않았다. 왜 자신이이어야 하는지 명쾌하고 구체적인 주장이 불분명하다. 한 마디로 종합적인 정책, 즉 콘텐츠가 없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가 아직 공부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욕과 방향만 가지고 할 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텐데...
 
[ 2012년 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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