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부터 -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김두관 지음 / 비타베아타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안철수 원장에 이어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통합당 후보 중 첫 번째로 김두관 경남지사의 생각을 글로 읽었다. 뒤이어 손학규 전대표와 문재인 의원의 책도 읽었다. 정세균 전대표의 책을 읽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정 전대표가 지나온 정치 경력과 행보가 대통령 후보에 나설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내 자신의 판단 때문이다. 진보정당에서 후보가 출마할 경우 대권 후보의 책을 추가로 읽을 계획이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책을 대선 전까지 읽을 생각이 없다.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 자체가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와 한 몸으로 이 땅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모두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물론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때가서 읽을 생각이다. 박후보 스스로가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공약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이미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유언이다. 올해는 그 유언 만큼이나 시민들이 많이 깨어난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이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개인적으로 절반이 넘는 숫자는 민주통합당 조직에서 확보한 기존 선거인, 당원 명부와 여타 방계조직의 명단일 것이지만, 수 십만 명은 시민된 자격으로 스스로의 생각으로 신청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대해 항간에 여러 가지 소문과 주장이 많다. 그런 소문과 주장이 일축되려면 정당이 모바일 경선의 시스템과 절차, 관리체계를 좀 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정당이 조직하는 숫자보다 유권자 스스로 신청하는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올해 대통령 선거가 지난 대선과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독특한 유권자들의 열망과 후보 양상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권 후보들이 모두 자신의 대권 출마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정치철학, 정책, 현안에 대한 입장, 미래비전 등을 일찍 책으로 출간하여 유권자들에게 약속하고 검증하고 소통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 나라의 정치가 발전하는 데 아주 고무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미리 정책을 밝히고,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후보의 선택에 영향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가 자신이 책으로 약속한 바를 지키는지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정착되면 적어도 정치가 예측 가능하고, 정치에서 거짓말과 위선이 곧바로 드러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번 대선이 정당 간 대결보다 인물 간 대결로 치우쳐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소신, 비전과 입장, 정책 등을 제시하는 것이 어쩌면 유권자에 대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과 더불어 안철수 원장의 <안철수의 생각>과 손학규 전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 그리고 문재인 의원의 <사람이 먼저다>를 읽었다. 그리고 적어도 책에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 각 후보들의 철학과 주장, 정책과 비전 등을 알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이나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일목요연하게 각 후보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직업이 언론 기자나 전문가, 학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김두관 지사가 대선에 출마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그가 직접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건 아닌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김두관 지사의 경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보이는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내 생각이 그다지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하게 성장한 인물이다.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 전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노무현 전대통령보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렇듯이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그렇고 그런 학벌을 갖추었다. 그리고 서른 살에 고향 마을의 이장으로 시작해 군수와 장관, 도지사를 엮임했다. 노무현 전대통령보다 더 굳굳하게 영남지역의 두터운 지역주의 장벽에 도전했고, 경상남도 도지사로 당당하게 선출되었다. 그가 책 속에서 밝힌 두 번의 남해 군수 활동은 모범적이고 헌신적이었다. 도지사 역할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도지사로서 검증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남해 군수에 재선한 것처럼 경남 도지사에 재선한 후 대통령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 도지사를 중도에 그만두고 대선에 출마한 것은 원칙적으로 유권자인 도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전국 유권자의 검증도 마치지 않았다. 60년 넘게 굳어진 지역주의 장벽은 그렇게 쉽게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유권자들은 과거처럼 무지몽매하지 않다. 자질과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출신과 학벌과 지위를 묻지 않고 지지하고 열광한다. 그것은 과거에 노무현 전대통령을 통해, 최근 안철수 원장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김두관 지사가 성공적으로 경남 도지사 임무를 수행하고, 재선에 성공하면 아마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대권 후보 대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토대 없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의욕은 오히려 자만심과 과욕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후자로 보았다.(차기 대권의 징검다리로 생각하여 이번에 출마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책 속에서 나타나는 김두관 지사의 개인적인 소신과 자질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의 어머니가 물려준 "언덕은 내려다 봐도 되지만 사람은 절대로 낮춰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그의 사람을 대하는 기본 자세를 갖추도록 이끌었다면, "입은 평소에는 닫혀 있지만 귀는 항상 열려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경청의 정치인이 될 자질을 갖추어준 것이다. 정치는 서민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듣고 챙기는 것에서 시작되며, 정책 또한 서민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결국 99%를 위한 정치와 정책,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국가운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아래에서부터>로 정하고 자신을 '서민대통령'으로 제시한 것 같다.
그가 책 속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정책으로 과거에 실행했거나 앞으로 제시하는 것들도 매우 참신하고 타당해 보인다. 남해 스포츠파크, 공원묘지, 주치의제도 등이 그것이다. 연대와 협력, 소통에 대한 그의 자세와 성공사례도 우리 정치권에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남해 군수와 경상남도 도지사로 일할 때 대부분의 지방의회가 여소야대이었음에도 끈질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무난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김두관 지사는 이 책의 부제로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를 붙였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도 서민들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자신의 롤 모델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으로 제시할 만큼 그가 서민을 위해 정책을 펴고자 하는 의욕과 방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 책 속에서 어떻게 신자유주의가 우리 나라에 밀어닥쳤는지, 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실패했는지, 정치권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민주주의와 복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제시하지 못한다. 엄청나게 꼬일대로 꼬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자리, 언론, 교육, 안보, 사회적 약자, 지방분권 등에 대한 해결대안이 제시하지 않았다. 왜 자신이이어야 하는지 명쾌하고 구체적인 주장이 불분명하다. 한 마디로 종합적인 정책, 즉 콘텐츠가 없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가 아직 공부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욕과 방향만 가지고 할 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텐데...
 
[ 2012년 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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