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사람의 길 - 上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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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 번 꼭 읽어봐야지"하고 벼르던 '사서삼경' 중에서 <논어(論語)>에 이어 <孟子>까지 읽었다. 모두가 세미나 팀 덕분이다. 혼자 읽고 해석하면 인터넷을 뒤지면서 끙끙 앓았을텐데,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세미나에서 질문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니 내 생각이나 해석과 다른 의견도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 더군다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맹자>에 대한 번역과 해설은 머리 속에 팍팍 꽂힌다. 대단한 재야학자라 할 수 있다.
도올은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맹자>라는 텍스트를 21세기 한국어, 그리고 한국인의 일상적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재구성해놓았다. 그 재구성이란 결국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이는 맹자라는 인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을 위해서는 맹자가 산 BC 4세기 전국시대의 상황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 작업은 <맹자>라는 텍스트 하나의 해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도올은 <논어>, <사기>, <전국책>, <국어>, <상군서>, <관자>, <열자>, <장자>, <회남자>, <한비자>, <순자>, <여씨춘추>, <묵자> 등의 고전을 <맹자>와 더불어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폭 넓게 공부할 수 있다.  
 
맹자는 BC 372년에 태어나 BC 289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40세 전후부터 약 15년간 전국의 난맥상을 한 몸에 체현하면서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의한 통일을 이룩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말하는 '왕도의 통일'은 진시황의 무력통일이 아니었다. 도덕에 의한 자발적 통일이었는데, 맹자의 이상이 실현되었다면 중국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맹자는 현실적으로 패도(覇道)에 파묻히고 말았지만 자기가 추구했던 왕도의 이상을 제자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책으로 남겼다. 전국시대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부분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보다도 <맹자>의 내용이 훨씬 더 정확하다.
 
"흉년이 들어 사람이 죽어가는데, 개 돼지가 사람이 먹어야 할 것을 먹고 있는데도 그것을 단속하지 않고, 길거리에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는데도 진휼곡식창고를 열 생각을 아니 하고, 사람이 죽으면 말하기를, '내 잘못이 아니야! 세월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야!' 라고만 말한다면, 이것은 칼로 사람을 찔러죽이고 나서,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칼이 잘못한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세월에게 죄를 묻지 아니 하시고 근원적인 왕도정치 개혁을 당장에라도 행하신다면 천하의 백성이 몰려들게 될 것이외다."(p.115)
 
"항산(恒産,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서도 항심(恒心, 항상스러운 도덕적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선비(교양을 갖춘 사士)만이 가능하다. 그렇지 아니한 일반백성 대중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항심고 없어지고 맙니다."(p.164)
 
<맹자> 속에 살아 숨쉬는 실제 맹자는, 우리세대가 중,고등학교 재학시 국어, 고전, 국사 시간에 '수박 겉?기'로 배운 맹자와 전혀 다르다. 그리고 맹자의 사상은 공자를 이어받으면서 공자와도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맹자>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본주의' 또는 '민본주의'라 할 수 있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제후국 군주들에게 민생경제를 토대로 왕도정치를 실현해야 만이 소국(小國)이라 하더라도 국가의 안위를 도모할 수 있고 나아가 천하를 통일할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는 민심을 거스르고 패악을 일삼는 군주는 '군주'가 아니라 '도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도적은 권좌에서 ?아낼 수 있다는 '혁명'을 주장했다. 우리도 인류의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혁명사상을 서구의 역사와 텍스트에서만 찾아보려는 미망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일컫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일컫습니다. 잔적(殘賊)의 인간은 '한 또라이 새끼'라고 일컫지 임금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왕이 한 또라이 새끼 주(紂)를 주살(誅殺)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나이다."(p.198)
 
"민(民)이 가장 귀한 것이요, 그 다음이 사직의 하느님이다. 군(君 제후국 군주)은 가장 무게가 없는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뭇 백성 구민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天子)가 되는 것이요,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요, 제후의 신임을 얻는 자가 대부(大夫)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후가 무도하여 그 국가 사직을 위태롭게 만든다면, 그 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그리고 또한 사직 제사 지내는데 쓰는 희생을 살찌우게 하고, 제기에 담는 정성도 정결하게 하고, 또한 제사도 때에 맞추어 거르지 아니하고 정성을 다했는데도, 한발이나 수해가 계속된다면 그 사직의 하느님을 갈아치워야 한다. 그러나 민은 갈아치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역대 군주들에게 <맹자>라는 서물이 탄압을 받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군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민중에 의해서 옹립되어야 한다는 존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공맹사상은 우리가 국사 시간이나 여러가지 책에서 귀동냥 하듯이 봉건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다만 조선시대 등 과거 학자들이 공맹의 텍스트를 통치자의 입맛에 맞도록 해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올은 "인류역사에서 순결한 도덕주의, 진정한 인문주의는 모두 맹자에 근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양의 도덕은 결국 신화적, 종교적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21세기, 도덕의 회복을 외친다면 누구든지 <맹자>를 읽어야 한다. <맹자>는 일방적인 말씀의 모음집이 아니라 치열한 쌍방적 대화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기록 속에는 맹자와 그 제자들의 투쟁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맹자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눈물, 회한과 절규가 절절이 배어있다.
조선왕조는 '맹자'로 흥기하였고 <맹자>로 유지되었다. 고려 말, 삼봉 정도전은 <맹자>를 읽음으로써 새로운 혁명왕조의 구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민본(民本)을 부르짖는 <맹자>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유별나게 <맹자>를 사랑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교육(敎育). 호연지기(浩然之氣), 대장부(大丈夫), 사단(四端), 인정(仁政), 학교(學校), 선생(先生), 인의(仁義), 혁명(革命) 등의 어휘들은 한국인의 일상적 가치의 기저가 되었다. 맹자는 군주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백성이 왕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백성에게 예속된다고 확언한다. "백성의 갈망을 구현하지 못하는 왕은 하시고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자에는 민주주의 제도는 없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요즈음의 선거제도보다 더 치열한 형태로 표출되어 있다. 한국인의 대의(大義)를 존중하는 지사적 기질, 권력에 불복하는 혁명적 기질은 모두 맹자에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위엄의 원형이 모두 <맹자> 속에 들어가 있다.
 
이 책 <맹자>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번역과 해석으로 인하여 더 가치가 빛난다. 특히 <맹자>라는 텍스트를 기초로 21세기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지적하고 질타하는 내용은 바로 옆에서 도올 선생의 '호된 소리'가 들리는 듯 한다. 예를 들어 전국시대에 소국이었던 등나라의 군주가 대국들 사이에서 끼어 어떻게 외교적 처세를 해야 할까를 묻는 질문에 맹자가 '해자를 백성과 함께 깊게 파십시오. 성을 백성과 함께 높이 쌓으십시오. 백성과 더불어 성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백성들과 더불어 같이 죽을 각오를 하신다면 백성들은 왕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의 살길이 보입니다.'라고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이 해설을 덧붙인다.
"'천안함'과 같은 애매한 소리를 하지 말고 자주국방에 힘쓰고, 미국에 대해서도 큰소리 친다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미,일을 포함한 세계우방국가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뒷구멍을 빨 것이 아니라 미국의 머리를 쓰다듬을 줄 아는 아량과 역량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층은 이러한 이야기를 현실감각 없는 택도 없는 이야기라고 빈축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미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세계전략 요충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우수한 두뇌, 그리고 피땀 흘려 쌓아올린 경제적 힘, 그리고 군사력을 자주적 호위와 동고동락하는 국민일체감의 바탕 위에서 활용한다면 미국은 오히려 우리에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의 진로를 단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이다. 정치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부패하여 도덕성을 상실했기 대문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내면의 뱃심이 없기 때문이다."(p.218)

그리고 공자의 <논어>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맹자>를 읽으면서 중국과 한국의 정치문화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춘추시대의 공자와 전국시대의 맹자는 제후국 군주들 면전에서나 제자들 앞에서 군주들과 고관대작들에게 심한 비판을 했고, 여러 제후국 다니면서 군주들에게 조언하고 다녔음에도 생명이나 상해의 위험을 그리 겪지 않았다. 그만큼 언론이 자유롭고 학문과 사상의 논의가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나 조선, 대한민국에서는 왕이나 군주, 최고위층에게 비판적인 말 한마디만 하면 당사자를 직접 죽이거나, 심하면 가문과 삼족을 멸하기도 하고, 정치적 유배를 보내거나 감옥에 쳐 넣고, 그렇지 않으면 부당하게 일자리를 빼앗았다. 21세기인 지금에도 그런 짓을 대놓고 저지르고 있다. 어떤 차이일까... 
 
[ 2012년 9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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