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 루쉰문고 3
루쉰 지음, 공상철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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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루쉰 저, 공상철 역 < 외침 吶喊 >을 읽고 / 2011. 07., 216쪽, 그린비


왕스징이 출간한 <루쉰전>(2007 다섯수레)와 함께 읽었다. <광인일기> 등 작품 속에 들어있는 단편소설은 거의 대부분 작년에 읽은 <루쉰 소설 전집>(2008 을유문화사)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번 작품 <외침>은 루쉰의 인생역정과 반제반봉건 활동과정, 그리고 잡문과 격문 등을 <루쉰전>을 통해 알게된 후에 읽었기에 지난 번 작품과 다르게 다가왔다.

자신이 기대를 걸었던 신해혁명이 실패하고 이후 일본에 건너가 유학시절 동안 열성적으로 노력한 반일반봉건 활동마저 실패한 후에 루쉰은 처절하게 무너지면서 스스로 중국 역사와 중국 인민, 그리고 다른 세상의 이론 등을 공부했다. 몇 년 동안 누가 자신을 부르기 전에 스스로를 갈고 닦은 셈이다. 그런 연휴에 처음 쓴 작품이 <광인일기>였다는 것은 1910년대 말의 루쉰은 중국 인민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했음을 보여준다.

<외침>에는 1918~22년 사이의 소설 14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 단편소설들은 중화민국 시기에 중국인들이 체험한 고통과 혼란, 무지몽매한 민중의 모습을 보여 준다. 중국인의 삶을 해학적으로 푸는 루쉰의 소설을 통해 그의 생애에 걸쳐 나타나는 민중에 대한 애정과 번민, 자유를 향한 의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루쉰은 스스로 자신의 소설에 대해 “나는 병적인 사회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글의 제재를 많이 얻었다. 그 목적은 병의 원인을 드러내어 치료에 주의하도록 각성시키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예컨대 <광인일기>는 식인(食人)의 공포 속에 사로잡힌 광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광인은 “30여 년 미몽(迷夢) 속을 헤매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5000년 식인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근대의 함정을 발견하고, 오랫동안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식인의 고리를 깨기 위해 움직인다.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하며.

루쉰은 중국인을 각성시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무지몽매한 민중을 형상화하고 있다. ‘식인’의 공포 속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광인, 문자를 쓸 줄 알지만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는 쿵이지, 화(火)가 금(金)을 억누르고 있다 하여 결국 죽게 되는 아기의 엄마 단씨댁 <내일>, 변발을 자른 것으로 심리적 고초를 겪는 N과 칠근 <두발 이야기>와 <야단법석>, 애들은 줄줄인데 흉년과 기근, 가혹한 세금으로 신음하는 룬투(<고향>), 권세와 혁명에 일희일비하는 군중들 <아Q정전>. 이들은 모두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는 중국인, 치료를 받아야 할 병리적 모습의 중국인을 보여 준다. 루쉰은 이렇게 병적 현실을 드러내어 중국 민중의 ‘각성’을 희망하였던 것이다.

출판사는 루쉰이 '중국 현대문학의 기원'이라고 평한다. 나는 중국 근대문학도 현대문학도 잘 모르기에 출판사의 평가에 선뜻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광인일기>, <쿵이지>, <아Q정전>, <고향> 등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 작품들이 중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정도의 작품은 될 것임을 느낀다. 
그리고 루쉰은 문학의 틀을 넘어 현실에 대한 과감한 비판, 권력에 대한 풍자, 약자를 향한 희망을 보임으로써 20세기 초반 식민지 봉건사회였던 중국의 어두운 시기에 중국 지식인들과 인민들에게 구원의 등불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물론 중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의 운동가들과 민중들에게 있어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 2013년 3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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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전 -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 개정판
왕스징 지음, 신영복.유세종 옮김 / 다섯수레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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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왕스징(王士菁) 저, 신영복/유세종 역 < 루쉰전,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 >를 읽고 / 2007. 09., 471쪽, 다섯수레


루쉰의 작품은 나 머리 속 깊이 남아 있다. <광인일기>의 '식인'과 <아큐정전>의 '정신승리'는 차갑고 똑똑히 각인되었다. 다른 작품 역시 비록 작품의 배경은 중국 근현대사였지만, 나에게는 21세기에 접어든 한국사회에 적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활동한 때로부터 100년이 지났지만 루쉰은 이미 시대를 달리하고 공간을 달리해서 후세대들에게 끊임없이 읽히고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루쉰은 중국 뿐 아니라 전세계 문학계에서 <아큐정전>과 <광인일기> 등 충격적인 작품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저자 왕스징은 그가 천재적 문학성과 민중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1920~30년대 중국의 암흑기를 정면에서 감당하며 자기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고 간 ‘실천적 지식인의 초상’이라 평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루쉰의 유년기를 부드럽게 묘사하고, 루쉰의 생존 당시 중국 사회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생생한 뉴스처럼 전달하며, 개인적 좌절과 사상 변화 과정을 성실하게 분석한다. 왕스징을 통해 작품으로만 상상하던 루쉰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함으로써 그런 작품이 어떤 과정에서 창작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옮긴이의 글'에 루쉰의 아들이 왕스징의 책을 여러 루쉰 평전 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이라한 말을 덧붙였다. 목차를 보면 5부 제목이 '한 사람이 조국과 민중을 위해 얼마나 일할 수 있는가'이다. 이 표현은 한 인간에 대한 그리고 한 혁명가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아무래도 루쉰의 장점만 다루었거나 일방적으로 호의적인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룬 평전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로 신경쓰면서 읽어야하는 부담도 있었다.(작년에 읽었던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위화가 제시한 '열 개의 단어'에 루쉰이 포함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중국 근현대사에서,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루쉰이 '교조화' '우상화' 되어 오히려 당시 학생들이 루쉰에 대한 좋지않은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다소 부풀려진 평가를 제외하더라도 루쉰의 삶은 전세계 위대한 혁명가나 사상가에 못지 않은 것 같다. 한국 현대사로 보면 함석헌 선생이나 리영희 선생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절망 같은 어둠 속에서도 늘 '희망'을 꿈꾸고 애기했다. '어둠 속을 밝히는 한 줄기 빛'처럼...

루쉰은 중국 인민들이 이뤄낸 최초의 혁명인 신해혁명(1911~2년)이 고스란히 위안스카이 군벌정부에 넘어갔을 때, 좌절감과 외로움을 느끼며 ‘무쇠로 지은 방’에 대해 말한다. ‘무쇠로 지은 방 안에서 잠을 자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굳이 깨워서 고통 속에 죽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는 혁명의 열매를 군벌의 손에 가볍게 넘겨준 민중들에 대한 절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루쉰은 결코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신념을 지켜나간다. 앞날의 희망을 위해 루쉰은 자신의 무기, 붓을 들기로 결심하고,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했다. 이 글을 통해 루쉰은 낡은 예법과 도덕에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어 ‘사람을 잡아먹는’ 봉건사회의 추악한 전통을 고발하면서, 민중들에게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5·4운동의 대오에 적극 동참하기를 호소한다. 그 자신도 어둠 속에서 전투의 빛을 발하는 비수 같은 ‘잡문’들을 통해 조금도 주저함 없이 신문화운동에 참가한다.
당시에 소설 속에 담긴 그의 마음은 나에게도 깊이 기억된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길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루쉰이 잡문에 발표한 글 중에서 또 인상적인 것은 혁명이나 대의의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나 문화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문장을 집단주의, 당위주의 문화가 강한 21세기 한국 사회의 진보정당이나 진보진영, 시민사회운동 단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이 희생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권리도 없다. (중략) 희생을 선택하는 이 문제는 개인에 관련된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도둑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다 도둑이라고 의심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루쉰을 "평생을 전선의 앞이 아닌 뒤에서 하지만 전선의 맨 앞에서 전진하는 전사처럼 살다갔다"라고 표현한다. 그런 루쉰에게 긴장을 풀어주는 벗은 ‘청년들’이었다. 루쉰이 수많은 잡문을 통해 연설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들 중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와 닿는 한 단어는 ‘희망’이다. 루쉰은 그 희망을 청년들에게서 발견하고, 스스로 희망이자 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일생을 새겨놓았다. "아이가 밥을 헛되이 땅에 버렸다고 해서 농부가 그것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루쉰의 잡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는 쌀쌀하게 눈썹 치켜세워 응대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머리 숙여 소가 되리라(橫眉冷對千夫指, 俯首甘爲孺子牛)." (루쉰의 시 <자조(自嘲)>에서)
왕스징은 청년들에 대한 루쉰의 헌신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샤먼에서, 광저우에서 상하이에서, 베이징에서 루쉰이 청년들과 나눈 우애는 나이를 초월한 헌신적 만남이었다. 특히 1923년부터 1926년까지 루쉰이 살던 베이징 집은 당시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들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본래 가로등 하나 없이 적막하고 쓸쓸하던 골목이었는데, 루쉰이 이사 온 뒤로 날이 갈수록 많은 청년들이 찾아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 루쉰은 손수 남포등을 들고 나가서 그들을 맞았다. 루쉰은 ‘호랑이 꼬리’라고 부르는 서재에서 현대평론파를 향해 날카로운 잡문을 쓰거나 청년들을 접대했는데, 몇 시간씩 계속되는 대화에도 청년들은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청년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것은 루쉰이 평생 동안 하고자 한 중요한 일이었다. 청년들이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으면 루쉰은 그들에게 무슨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긴 것 아닌가 하고 불안해했다고 한다.


왕스징은 초기에 진화론에 입각해 청년들을 바라보던 루쉰의 의식이 1927년에 광저우에서 벌어진 ‘피의 유희’로 인해 서서히 변화해간다고 설명한다. "다 같은 청년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투서로 밀고하고 관원을 도와 사람을 체포하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치열한 계급투쟁이 루쉰의 머릿속에 있던 소박한 진화론적 세계관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리하여 1927년 이후, 루쉰은 변화된 현실과 혁명 세력의 구국운동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진화론자로부터 혁명적 계급론자로 완만하게 옮겨갔다고... 

전해진 기록에 따르면, 루쉰은 평생에 걸쳐 청년들 500여 명을 친히 접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2,200여 명의 청년들이 보내온 편지를 손수 읽어보고 3,500여 통의 답장을 썼다. 소설 3권, 산문회고록 1권, 산문시 1권의 합계가 약 35만 글자에 이르고, 잡문 16권이 650편에 135만 자에 이른다고 한다. 그 이외에 중국 고전문학 작품 연구저작, 외국 작품 번역, 희곡 2권, 문예이론서 9권, 단편 논문 50편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구체적인 작품의 권 수와 글자 수까지 따지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루쉰이 평생에 걸쳐 청년 5백 명을 만나 이야기하고 2천2백 명의 청년과 편지를 교류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런 수치와 작품의 양이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과 중국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후 중국 현대 문학계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이 없다. 
따라서 나는 저자 왕스징이 중국 현대문학과 혁명운동에 대한 루쉰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부풀리기 위해 무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 속에는 문학작품들과 더불어 논적의 심장부를 향하는 비수와도 같은 잡문들이 등장한다. 몇 가지를 예를 들어보면, 1925년에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사건이 계속 확대되고 전국 각지에서 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제국주의자들은 총칼로 시위에 나선 군중들을 쓰러뜨렸으며 제국주의와 봉건군벌 편에 선 부르주아 문인들은 그들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이때 루쉰은 몹시 격분해 그들을 규탄한다. 
"상하이의 영국 경찰이 시민들을 학살하는데도, 중국의 총을 가진 계급 중에 이를 항의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 ……감히 말하건대 중국 사람 가운데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음흉한 눈길로 성실한 청년들을 노려보는 자들이 있다. ……중국을 좋게 만들려면 다른 일도 해야 할 것이다!"

베이징여사대의 치열한 투쟁이 각계각층 사람들에게 폭넓은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마침내 학생들의 승리로 끝나자, ‘온화’하고 ‘공정’한 얼굴로 교육 당국이 이미 패배한 마당에 ‘물에 빠진 개를 때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문인들이 있었다. 루쉰은 이에 대해 ‘물에 빠진 개를 끝까지 때릴’ 것을 완강하게 주장했다. 
"혁명당에도 온통 새로운 풍조가 나타났는데, ……우리더러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말고 그것들이 제멋대로 기어 올라오도록 내버려두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놈들은 기어 올라왔고, 민국 2년 하반기까지 숨어 있다가 2차 혁명시기에 갑자기 뛰어나와 위안스카이를 도와 숱한 혁명가들을 물어 죽였다. 그리하여 중국은 날로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 때문에 그 뒤 각성한 청년들이 암흑에 반항하기 위해 더 많은 기력과 생명을 허비하게 되었다."

1924년 2차 내전 뒤에 우위를 차지한 돤치루이 군벌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펑위샹의 국민군을 공격하면서 통치기반을 유지하고자 한다. 1926년 3월 18일 제국주의에 무력하게 대처하는 행정부에 맨손으로 청원하러 간 군중과 청년 학생들에게 돤치루이는 사격을 명령한다. 순식간에 국무원 문 앞에는 붉은 피가 낭자했고, 그 자리에서 40여 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민국 이래 가장 캄캄한’ 이 날에 루쉰은 더없는 분노를 느끼며 붓을 들었다. 
"범과 이리가 중국을 제멋대로 뜯어먹어도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는다. 상관하는 사람은 몇몇 나이 어린 학생들뿐이다. 만약 당국자들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끝내 그들을 학살하고 말았다. ……지금 벌어진 일은 한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한 사건의 시작이다. 먹으로 쓴 거짓말은 결코 피로 쓰인 사실을 덮어버리지 못한다. 피로 진 빚은 반드시 피로 갚아야 한다. 빚이란 오래 미룰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 2013년 3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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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실무 - 개정판
김용한.하재은 지음 / 지식공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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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용한, 하재은 저 < 협동조합 시대 : 설립과 운영 실무 >를 읽고 / 2012. 09., 286쪽, 지식공감


먼저 책을 읽은 결론을 밝힌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돈 낭비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 책은 어떤 공부모임의 추천 도서였거나 그냥 인터넷에서 협동조합 관련 도서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다. 둘 다일 수도 있고...
아무튼 책을 구하는 단계에서도 선택을 할 지 망설였다. 출판사의 책 소개와 저자 두 사람의 이력이 뭔가 찜찜해서였다.
저자 김용한은 경영학 박사에 경영지도사, 기술지도사, 기술거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고 무슨 전략연구소 소장이자 사단법인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이사로 기재되어 있다. 그 이외에도 시장경영진흥원이라는 전통시장 경영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자문위원, 상인대학 강사이자 심의위원,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상담위원, 서울 희망설계아카데미 겸임 교수, 하이서울창업스쿨 담임교수 등 일반 명함에는 모두 적어 넣을 수도 없는 직책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저자 하재은 역시 비슷하다. 경영학 박사에 경영지도사, 품질경영산업기사라는 타이틀과 몇 개 대학의 강의, 그리고 신한경영법인이라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김용한씨와 같은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부회장이다. 그리고 사단법인 한국창업경영컨설팅협회 이사, 국제컨설팅협회협의회 운영위원, 시장경영진흥원 자문위원, 상인대학 강사, 서울희망설계아카데미 강사, 하이서울창업스쿨 강사,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컨설팅 위원이며 과거에 전통시장특성화시장육성사업단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은 수준 이하다. 두 저자가 협동조합기본법의 시행(2012년 12월)에 앞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의욕적으로 발간한 이 책은 거의 폐기처분해야 할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부 [협동조합의 이해]에서 저자들은 협동조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저자 본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장 [왜 협동조합인가?]에서 두 사람은 기존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협동조합 관련 도서도 읽지 않은 수준을 드러낸다. 서구사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 등에 대해서도 무지를 드러내고 있고, 한국의 협동조합 역사와 사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통제하에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농협을 대표적인 협동조합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기존 협동조합의 재정 원칙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제2장 [협동조합, 도대체 무엇인가?]에서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 규정하는 협동조합의 정의와 가치, 원칙 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고, 협동조합의 특징과 다양한 유형, 사례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하거나 연구하지 않은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점, 협동조합의 조직과 운영, 자본조달, 배당 등에 대해서도 '상식' 수준에서 나열하고 있다.
제3장 [협동조합 기본법 알아보기]에서는 협동조합 기본법의 각 조항과 규정을 책 속에 베끼면서 그다지 의미 없는 짤막한 해설을 추가했을 뿐이다. 족수를 늘리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그리고서 책의 후반부에 '부록'으로 동일한 협동조합기본법을 또 한번 그대로 옮겨 놓았다.

제2부 [협동조합의 설립, 운영 실무]에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전공'과 '전문성'을 살리려고 시도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제4장 [협동조합의 설립 실무]에서는 저자들이 협동조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실제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에, 엉뚱한 이야기만 남발한다. 기존에 시행되는 '생활협동조합법'을 끌어와 짜집기를 시도한다.
제5장 [협동조합의 운영 실무]에서는 사업계획서 작성, 경영전략 수립, 마케팅, 경영관리 등을 나열하는데,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연구와 경험이 태부족한 관계로 기존 주식회사의 운영 실무 원론을 나열하고 만다.
제6장 [협동조합의 성공적 도입 및 활성화]에서는 협동조합의 주요 도입분야를 제시하고, 전통시장이나 상점에의 도입방안, 사회적 기업에의 도입방안, 소비자 분야에의 도입방안 등을 설명하지만 이 부분 역시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설명에 그치고 만다.

저자들이 답답하고 한심한 것은 자신들의 이름을 걸어 놓고 이런 수준의 책을 발간했다는 점이다. 책의 초안을 작성해 놓고 자신들의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정말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책 한 권을 발간하는데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다른 저자의 책을 읽지도 않았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일 뿐이다. 전문가로서의 자격도 없다고 본다. 협동조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용하여 책장사를 한 '장사치'일 뿐이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검증하고 느낀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의 이름에 내거는 타이틀이 많을수록, 거창할수록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온갖 직위에다가 직책, 경력을 나열해 놓았지만 내용이 거의 없을 뿐이다.
다른 또 하나는 기존에 정부부처나 지자체, 연구단체나 법인 등에서 세금을 투입하여 진행된 각종 '경영컨설팅'이나 '창업컨설팅', '전통시장 활성화' 등의 프로젝트들이 세금만 낭비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두 사람만 보아도 노동부나 기재부, 지경부, 서울시 등에서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타내서 자신들의 수익과 경비에 지출했을 것이고, 그 자리에 경영이나 지원을 바라고 참석한 수 많은 경영자들, 예비경영자들, 상인들, 예비창업자들을 골탕먹였을 것이다. 이렇게 실력이 없으면서도 세금과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십중팔구 학연과 지연을 동원하고 공무원들에게 로비와 뇌물이 오고갔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일어난다.
더 우울한 것은 이런 이들이 지금까지 정부와 민간의 예비사업가들의 창업이나 경영, 그리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컨설팅해 왔으니 한국사회의 경영과 창업, 재래시장이 점점 더 악화되고 경쟁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독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서평을 쓰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처럼 잘 모르는 누군가의 소개로 또는 출판사의 허황된 추천으로 책을 구해서 읽을지도 모르는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책을 끝까지 읽고 이렇게 서평을 남긴다.

[ 2013년 0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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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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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저, 김은령 역 < 침묵의 봄 Silent Spring >을 읽고 / 2011. 02, 398쪽, 에코리브르


1950년대의 미국은 20세기 말, 21세기 초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이 때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소련과 동서 냉전을 시작한 시기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메카시즘이라는 반공주의의 일방적 마녀사냥이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휩쓸고 지나갔다. 과학과 기술, 개발과 발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숭배'가 정점에 달했다.
그런 미국의 사회문화는 생명체와 인간에게 끔직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었다. 도시는 커녕 농촌에서도 새와 곤충이 사라지고, 인간과 가축과 농산물은 병들어 갔다. 강물과 샘물도, 논과 밭도, 숲과 나무도 병들고 죽어 갔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재앙'이었다. 화학물질이라는 저자의 경고는 미국 지배층과 주류 언론, 학자들에게 무시와 냉대를 받았고, '불순분자'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으며 "기업의 생산활동을 막는' 행위라고 비난받았다.


그럼에도 저자 레이첼 카슨은 이 책을 통해 당시 미국인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미국인들과 그들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 경고했다. 인간이 자연을, 생명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지르는 '위험한 장난'이 어떻게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행하게도 저자가 과학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저자가 문학적인 소질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이 책은 많은 시민들과 언론들에게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인류는 아직 거대한 우주를 알지 못했듯이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미한 세계 역시 알지 못한다. 아니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 대해 과학자들이 '안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찬바람을 쏘이면 감기에 걸린다."는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찬바람만이 감기의 원인은 아니다. 감기를 없애겠다고 찬바람을 영원히 없애겠다고 나서는 행위를, 그 이후의 상황을 인간이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카슨은 인류의 끔찍한 행위 중 '화학물질'에 국한하여 다루고 있다. 당시에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핵과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과 공포는 당시 미국 내에서 이미 논쟁이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인들의 화학물질과 화학약품에 대한 관심과 우려를 촉발시켜 환경관련 법규가 도입되고 정부부처가 신설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독성 화학물질은 미국 내에서도 유통이 금지되었을 뿐 수출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미국산 DDT 등이 언제까지 사용되었을까?
그가 지목하는 독성 화학물질은 수십 가지다. 염화탄화수소류계, 유기인산계, 비소, 비산나트륨, 비산칼륨, 벤젠, 우레탄, DDT, DDD, 파라티온, 클로로데인, 디엘드린, 린데인, 엔드린, 헵타클로드, 아미노트라이아졸, 말라티온, 다이나트로페놀, 펜타클로로페놀, 파라다이클로로벤젠,  2,4-D,  메톡시클로르, 페노티아진, 알드린, 머스터드 가스, 카르바민산염, 벤젠헥사클로라이드 BHC, 톡사인 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유해 제품으로는 유해 상품 : 살충제, 제초제, 진드기 제거제, 곰팡이 제거제, 살균제, 방향제, 합성세제, 표백제 등을 말한다.
한국은 아직도 이런 물질을 생산, 이용하고 제품을 판매하며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해당기업은 기업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는다.


이 책은 가장 먼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꼭 읽어야 한다. 기성 세계를 지배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지구의 벗이자 생명체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야 하고 기성세대의 잘못을 감당해야 하는 세대이다.
그 다음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환경부나 보건복지 업무 관련 공무원들이 아니라 언론인, 사법부, 경찰과 검찰 공무원이다. 이 지구와 생명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순환하는 지 알고서 아는 척도 해야 하고, 무언가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다른 행정부, 입법부, 지자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공기업 직원들이다.
교육, 과학, 농식품, 환경, 해양수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들에게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그들은 당연히 알아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이 없었다면, 저자가 주장한 바가 없었다면 관련 업무도 부처도 일자리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부처는 승진과 업무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정부의 사업방식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 바로 세금으로 계획하여 진행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 공기업의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사업'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사업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감시, 감독, 평가할 수 있는 적정 비율의 예산을 함께 편성, 집행토록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인물, 세상을 변화시킨 책" 저자와 이 책에 대해 붙여진 최고의 찬사다. 하지만 저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카슨이 지목한 독성 화학물질은 이름과 화학식이 바뀐 채 2012년 노동부에서 지정된 프로탈레이트, 프탈레이트, 수산화나트륨 등 186종의 발암물질(사진)로 등장한 상태다. 한 달에도 한두번 씩 그 발암물질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뉴스는 말해주고(사진, 구글 뉴스)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윤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인 경제제도이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건강과 "함께살기(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집단 이기주의와 부도덕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연대하는 사회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 2013년 2월 23일 ]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


세금이 투입되어 진행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 공기업의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사업'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사업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감시, 감독, 평가할 수 있도록 적정 비율(본 예산의 5% 정도)의 비용을 사업예산에 함께 편성, 집행토록 하는 것입니다.


카슨이 이 책을 썼던 1960년대 초반의 미국은 현재의 한국보다 선의의 자원봉사자가 많고 정치성을 띄지 않는 학자,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실시하는 살충제, 제초제 등의 살포작업에 대해 조사, 연구, 분석비용이 거의 배정되지 않아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피해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야생 미생물과 동식물 뿐 아니라 가축, 인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멸종과 살육과 피해를 입은 후에야 (그것도 카슨이 이 책을 발간하여 여론이 들끓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DDT 등 화학물질 살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죠.


한국의 경우에도 4대강 사업이나 강정해군기지, 핵발전소 건립과 운영, 각종 SOC 사업 뿐 아니라 비정규직법이나 정리해고법, 의약품의 유해판정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늘 논란이 많았음에도 객관적이고 대중적인 조사, 분석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논리나 진영논리로 왜곡되기도 하지만 공공사업에 대한 감시, 감독, 조사, 평가 주체가 감사원이나 국회로 제한된 것도 큰 구조적 한계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업들이 특정 집단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정당과 여론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작동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그럼에도 특정 정치세력이나 경제주체가 해당 사업의 결정을 주도했는지 상관없이 세금이 투입되거나 납세자에게 경제적, 문화적, 신체(건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했던 상대방측에서 사업기간 동안 사업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자격과 예산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야당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이나 과거 새누리당이 반대했던 무상급식 사업의 경우, 시업이 결정된 이후 상대방이 추천한 시민단체, 학자, 전문가가 과반수가 넘는 감시 및 조사단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업기간 중 그리고 사업 종료 후 정부(공공기관)측 사업평가와 비정부기관측 사업평가를 교차해서 제츨하여 공청회, 언론 등을 통해 비교. 검토하여 사업 자체가 일방적으로 진행되거나 거짓과 꼼수와 낭비가 없이 가급적 엄정하게 평가되도록 하는 것이죠.
물론 제 생각만큼 그렇게 분명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초기에는 비정부기구마저 정치적 입김에 따라 큰 편차나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국회와 행정부의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340조원이 넘는 예산을 임의로 펑펑쓰고 국회가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는(못하는) 현재 시스템을 보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결정하고 감시하는 주체가 늘어날수록 몰래 세금을 축낼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 테니까요.
'참여하는 시민'... 납세자가 내는 세금의 적절한 집행 여부를 행정부와 입법부 대리인을에게만 맡겨서는 점점 악화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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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 평전
쉬딩바오 지음, 양휘웅 옮김 / 돌베개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서평] 쉬딩바오(徐定寶) 저, 양휘웅 역 < 황종희 黃宗羲 평전 >을 읽고 / 2009. 02., 656쪽, 돌베개


공부모임 교재로 알게된 17세기 중국 정치사상가 황종희에 대한 중국인의 평전이다. 공부모임에서 이 교재를 선택한 배경이 아마도 평전의 주인공 황종희가 살던 혼란한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평전 안에 ‘천붕지해(天崩地解)’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점령하는 시대적 상황이 260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명나라를 '세계의 전부' 또는 '조국'으로 생각한 이들로서는 당연한 표현일 것이다. 요즘 한국식으로 말하는 '멘붕'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단어일 것이다. 세미나 참가자들이 작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이후 앞으로 어떤 자세와 태도로 5년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황종희의 일대기가 궁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제가 교재 선택에 참여하지 못해서...^^)

하지만 이 책은 공부모임 참여자들의 기대와는 조금 어긋난다. 저자는 19세기 황종희가 서구사회에서 민주정치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장 자크 루소보다 1세기나 앞서 중국에서 '주권재민'을 제시했다는 것으로 책의 전반적인 방향이나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종희는 몰락한 왕조 명(明)의 ‘유민(遺民)’으로서 청(淸) 왕조에 출사를 끝내 거부하면서도 지식인으로서 할 말과 할 일을 다 했다고 전해진다. '천붕지해' 즉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던 때. 명나라가 망하고 청 왕조가 들어서던, 그 시대를 살았던 황종희는 당대의 정치, 역사, 경제에 대해 그리고 정치인과 지식인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황종희라는 이름이 21세기 중국사회에 다시 등장한 이유가 있었다. 10년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도 입고 다닌다 해서 중국인 사이에 청렴결백한 정치가로 알려진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가 명말청초의 유학자 황종희에 심취해 있다는 내용이 중국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 중국사회에서 삼민주의로 유명한 손문(孫文)은 일본 망명 시절 혁명 단체인 '흥중회'를 결성하면서 이 책을 선전 팸플릿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사상가 양계초(梁啓超)는 <중국근삼백년학술사>에서 이 책을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비유하고 황종희를 중국의 루소라 불렀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황종희가 나름 역사적인 인물인 셈이다.

황종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의 부친 황존소는 동림당(東林黨)이라는 학문적, 정치적 붕당의 일원으로, 소년시절에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모진 탄압으로 옥사했다. 이런 성장 환경 탓에 명 말기의 극도로 불안한 정국 속에서 황종희의 삶과 사상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청년이 된 그는 문학 결사인 '복사'(復社)에 참가하고 정의로운 선비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청군이 침입하자 그는 향리의 자제들을 규합하여 항전했지만 실패했고, 그후에도 반청 운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청 왕조의 중국 지배가 확립되고 명 왕조가 부활할 가능성이 사라지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끝까지 명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려고 강희제가 탁월한 선비들을 회유하기 위해 마련한 박학홍유(博學鴻儒 황제의 정치자문 역할)로 추천되었으나 거절했고 명사관(明史館 명나라 역사 저술을 책임지는 직책)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았다.
부친의 유언에 따라 유학자 유종주(劉宗周)의 학문을 개인적으로 연구하여 양명학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공리공론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을 중시했다. 또한 사학에도 전심하여 경학과 사학을 함께 연구하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풍을 개발하여 청대의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저서로 <명이대방록 明夷待訪錄>, <명유학안 明儒學案>, <송원학안 宋元學案>, <역학상수론 易學象數論> 등이 있고, 그가 창시한 '절동학파(浙東學派)'에서 중국 근현대 사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는 만사동(萬斯同), 전조망(全祖望), 장학성(章學誠) 등의 우수한 역사학자가 나왔다.
역자는 황종희의 사상과 학문적 흔적이 조선 후기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이 중국에서 들여온 물품 중 '경세치용'과 '실사구시'를 담은 개혁 서적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많은 글과 저작 속에서 황종희는 전통적인 봉건정치체제에 대해 깊이 반성했으며, 봉건정치체제의 부패와 죄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격렬한 규탄을 가했다. 그러나 분명히 봉건적인 군주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황종희가 반대하고 질책한 것은 군주제도 내의 전제적인 형태와 군권의 남용과 집중이었지, 결코 군권 자체의 합리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황종희는 군주제도에서 군권이 운영되는 정상적인 질서를 수립하려 노력했다. 그는 이를 통해 주권이 백성에게 있다는 의식, 정치체제를 감독하려는 의식, 공업과 상업이 모두 근본이라는 의식 등 근대의 민주계몽의 색채를 띤 일련의 정치적 주장을 제기했다. 저자는 봉건적인 전통체제에 대한 그러한 황종희의 반성이 거대한 사상적 가치를 드러내고, 그로 인해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내가 평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쨎든 황종희는 260년 역사의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는 와중에 격렬하게 반청 군사행동을 했으면서도 나중에 '청나라의 지배'라는 현실을 인정했고, 국정에 협력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학문과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청나라 황제와 정부는 그런 황종희의 존재와 삶을 인정했다. 중국의 땅 떵어리가 한국과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사회문화나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쩌면 그런 정치와 문화, 역사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유지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 2013년 0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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