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미래 - 부동산 패러다임 시프트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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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민간 싱크탱크 중 최근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올해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첫 번째 책은 동연구소의 부소장인 선대인씨의 [세금혁명]) 이번 책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미래에 대한 내용이다.
 
2000년대 중반에 한국사회에는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불패신화'를 처음 받들었던 사람들은 '영원한 부동산 투기자'들이었고 조중동을 비롯한 상업 언론들이 부동산 광고에 현혹되어 앞다투어 불패신화를 가공, 포장하여 보도하였다. 부동산 불패신화에는 굳건한 6각 동맹이 있었다. 동맹이자 부동산 거품의 창조사슬, 그리고 부패 사슬은 투기자 - 건설회사 - 고위 공무원, 국토부와 재정부 관료 - 상업언론 - 부패 정치인 - 부패 교수/학자로 이어진다. 뒤이어 일반 직장인들과 주부, 서민들도 이 대열에 합세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불패신화가 깨지며 이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혼돈의 시기에 봉착한 부동산 시장. ‘빚내서 집 사고 땅 샀던’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부동산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거시경제 분석과 국내 부동산 분야에 전문성을 인정받는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집필진들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분석방법에 입각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이야기한다. 우선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로 인해 금융권을 비롯한 전체 경제 시장에 미칠 영향과 앞으로의 시장 동향을 예상한다. 이밖에도 유럽과 미국, 일본 등 해외 부동산 시장의 분석을 통해 세계 시장의 흐름 또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국책연구소나 민간경제연구소와는 달리 유료회원들이 연구소 운영의 토대라고 한다. 연구소는 매주 4~5회에 걸쳐 유료회원들에게 '경제시평', '특집', '시사경제', '경제단신', '일본/중화/미국 경제동향' 자료를 메일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보다 조금 더 깊숙한 경제분석 결과물을 원할 경우에 해당하는 '경제보고서' 회원제도도 운영 중이다. 
민간 연구소의 비밀이기 때문에 회원에 대해서는 외부적으로 공개되지 않지만, 연구소가 운영중인 인터넷 다음 카페의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의 회원이 오늘 현재 95,572명인 점을 감안하면 내 추측으로는 10만 명 전후로 보인다. 카페 회원 중에서 카페에 들어오고 의견이나 댓글을 남기는 회원이 매일 5,000명이 넘어설 정도로 회원들의 참여도가 높다.
 
이 책은 연구소가 올해 초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한 '경제시평' 등 자료를 기초로 하여 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3~4월 연구소가 발송해준 이메일 자료 중 이 책과 관련있는 자료는 올해 3월 11일 특집 '수도권 주택시장 현황'을, 3월 21일 '경제시평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 상승의 원인(1)', 3월 24일 경제단신 '1,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둔 공공채 발행잔고', 3월 2일 특집 '투기에 취약한 지방 주택시장(1)', 3월 28일 특집 '전국 주택시장 동향 분석(1)'과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 상승의 원인(2)', 3월 31일 경제단신 '예금은행 대출로 본 지역경제 및 주택시장 동향', 4월 1일 특집 '전국 주택시장 동향 분석(2)' 등이다.
연구소는 이와 같은 식으로 매달 경제관련 자료를 회원들에게 발송해준다.
 
책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 : 5.1 부동산대책과 시급한 건설업계 구조조정 / 주택공급 부족론의 허구 / 파주운정3지구 사태와 LH 구조조정
- 1장에서는 건설업계 사정이 개선되고 주택 가격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정부와 관제연구소, 상업언론의 주장을 비판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건설업계에 퍼주면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미루어왔음에도 건설업계의 사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더 이상 정부 지원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수도권 및 전국에 아직까지도 남아돌고 있는 미분양 주택과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의 규모를 고려하면 '신규주택 공급 부족'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사기와 선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장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있는 대한민국 : 외환위기와 부동산투기의 시작 / 이명박정부의 부동산부양책 / 거품 붕괴에 대비하는 금융권
- 2장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거품의 불씨를 제공했고, 노무현 정부의 자기모순적 정책이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값과 건설업계 살리기를 공약으로 당선되었기에 당연하게도 부동산 경기부양과 건설업계 먹여살리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

3장 총체적 부실에 빠진 저축은행 : 저축은행 부실의 전조 / 참담한 저축은행의 현실 / 부동산 침체와 수익성 악화 / 저축은행 사태의 유일한 해법
- 3장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금융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축은행의 부실은 구조적이고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측면도 있다. 90년대 금융자유화 정책을 추진할 때, 그리고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저축은행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방치했다.

4장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 상승의 원인 : 전세 존재의 근거 / 전세가격의 형성 / 주택가격 상승시의 투기자 행태  / 주택가격 하락시의 투기자 행태
- 4장에서는 거품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전세가가 상승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전세대란'은 투기자들이 자신들의 투기실패에 따른 이자비용을 세입자들에게 전가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5장 전국 주택시장 동향 분석 : 수도권 주택시장 분석 / 광역시 주택시장 분석 / 지방 주택시장 분석
- 5장에서는 전국의 주택시장 동향을 분석한다. 거의 전국 모든 주택시장은 공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매매가 하락과 거래 실종, 시중은행의 대출 축소와 비은행 금융권의 대출 확대, 2009년을 전후하여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으로 인한 일시적인 가격 반등, 미분양 주택과 준공후 미분양의 잔류...

6장 해외 부동산거품 붕괴 사례 : 유럽발 위기의 근원: 부동산 거품 붕괴 / 더블딥 우려가 높아지는 미국 주택시장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 6장에서는 유럽과 미국,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사례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가부도와 채무불이행이 거론되고 유럽중앙은행과 IMF로부터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루투칼 그리고 PIIGS의 나머지 국가인 아이슬란드와 스페인 모두 200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재정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부동산이 한국경제와 한국민들에게 미치는 여파는 엄청난 수준이다.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부동산(주택)이 의미하는 바가 서구국가들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고 현실적으로 한국인들, 특히 중산층 이하 한국인들이 가계에서 지출하는 금액 중에서 부동산이 교육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서 대부분의 한국 중산층들은 부동산에 막대한 투자, 과투자를 감행했고 지금은 상당수 중산층들은 주택대출 이자로 고통받고 있거나 과도한 전세가와 임대료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 당장은 사람들이 물가인상과 반값 등록금,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최저임금과 세계적 재정/금융위기에 관심이 쏠려있고 보수언론 역시 부동산 문제가 보이지 않도록 이슈를 분산시키고 있지만 부동산은 언제 화산으로 분출될지 모르는 마그마처럼 대지 속에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연구소의 결론은 한 마디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 거품 붕괴"라 할 수 있다. 이미 한국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2007년에 최고조에 달하였고 그 해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 후 국가의 세금과 빚으로 거품 붕괴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3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부동산에 대한 공공부채 투입은 빠르면 이명박 정권 임기 내에, 적어도 다음 정권 임기 중에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루투칼처럼 '부메랑'이 되어 한국경제에 되돌아올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피해가 누구에게 닥칠 것인가? 이미 지난 과거에서 수 없이 나타난 것처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고 국민들이 뼈를 깍는 고통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제외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제외되는 계층은 이명박정권의 측근들, 재벌과 대기업, 기득권층, 정부관료, 정치인, 보수언론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부동산/건설시장 부양'과 '부자 감세'를 통해 부자들과 기득권층의 배를 불려준 뒤 그 피해를 일반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구조인 것이고 가장 힘 없고 빈곤한 계층일수록 그 피해는 파괴적인 수준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당연한 것일 뿐이고 다만 붕괴 시나리오에서 두 가지만 남아 있다. 하나는 시점이고 하나는 방식이다.
첫 번째 문제인 '시점'은 이명박 정권의 집권 이내에 닥칠 것인가 다음 정권으로 떠넘겨질 것인가이다. 이명박 정권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 위해 집권 초기부터 해왔던 대로 온갖 부양책을 남발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국내 부동산의 거품 붕괴를 저금리와 부양책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우울하게도 외부로부터 충격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신용위기 강등과 유럽 PIIGS의 재정위기가 앞으로 국제적인 금융위기로 전개된다면 국제경제, 특히 미국경제에 80% 이상 동조화되어 있는 국내경제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고 그 불똥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번질 수 있다.
두 번째 문제인 '방식'은 서서히 붕괴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처럼 대폭락할 것인가이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의 사례는 일본 사례와 비슷하면서도 더 심각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은 그리스와 아일랜드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고 4대강 죽이기 등 재벌건설업체를 먹여살리기 위해 투입한 수 백조원은 한국의 공공부문 부채비율을 PIIGS 수준으로 근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들은 2007년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사기당한 것이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 즉 경제학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는 시장이 왜곡된 수급 및 가격 불균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누적되어온 부동산 시장의 왜곡과 모순, 그리고 그로 인한 한국경제의 왜곡과 모순은 결국 시장의 힘에 의해 해소될 수 밖에 없다. "시장의 힘에 맡기는 것만이 경제의 성장 잠재력 훼손과 고통의 기간을 최소화하고 기회비용도 최소화하는 길이다"라는 것이 연구소의 '거품'에 대한 결론이다.
다만, 이 책은 부동산 시장이 '거품 붕괴'로 향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을 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연구소는 이 책 이외에도 [프리라이더]와 [세금혁명] 등 기존 발간 서적에서, 그리고 매주 발표하는 경제시평과 경제보고서 자료 등에서 대안과 정책방안을 계속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연구소가 아무리 적절한 정책을 제시한다고 해도 이명박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연구소의 정책방향과 같은 제안들을 '여론 호도'나 '유언비어', 또는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고 있을 뿐이다.
김광수소장이 다음 카페에서 현재의 정치권을 청년세대로 전면적으로 물갈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선대인 부소장인 '세금혁명당'을 조직하고 있는 모습이 연구소의 실망과 분노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품 붕괴 과정에서 정치권과 정부가 할 일은? 그동안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고 방치해온 원인과 구조들을 규명하여 제거하고 시장 경쟁력을 상실한 건설회사와 금융기관, 부동산 관련 업체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을 키우고 방조한 각종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고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기업이나 투기자들이 아니라 선량하고 성실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은 연구소도 지속적으로 강조한 바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임대차 주택의 안정화 제도 도입, 부동산 거래세 인하와 보유세 현실화, 각종 세금감면 취소, 임대사업 양성화 등이 될 것이다. '주거권'은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흥미를 가지고 볼만한 책이다. 아니 한국경제와 부동산, 개인들의 삶이나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걱정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책을 통해 조금씩 알고 인터넷이나 다른 자료를 통해 지식을 축적한 후 개인적인 의견과 입장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전파하여 국민들의 여론으로 만들어야 하고 정치권과 정부에 정당한 국민적 요구를 전달하고 강제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만이 사회와 국가는 올바르게 정의롭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 2011년 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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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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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은 50여년 전(1962년) 이 책 한 권으로 과학계에 충격을 주었고 그 이후 끊임없는 열광과 찬사, 비판과 논쟁을 낳았다.
쿤은 처음 이 책을 출간한 이래로 2회에 걸쳐 수정판을 발간하였고 세 번째 수정판을 발간을 준비하다가 1996년에 타계했다.

토머스 쿤과 이 책은 과학사를 대학과 학계의 전공으로 탄생시켰고 ’패러다임(paradigm)’과 ’과학혁명 Scientific Revolution)’이라는 단어가 과학 뿐 아니라 전분야에서 사용되도록 영향을 미쳤다.
한 마디로 근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변천 및 발전이 혁명적으로 이루어진다 것으로, 과학의 진보가 축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 책은 발간 이후 과학계 그 자체 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언어학, 사회학, 정치학 등 학문과 정치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자연과학, 과학사, 인문학, 사회과학, 문화를 연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되었다.
 
1922년 미국에서 태어난 토머스 쿤은 1943년 물리학 전공으로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과학개발연구소에서 2년간 일한 뒤, 모교 대학원 물리학과로 돌아가 학위 과정을 받았다.
쿤은 1948년 하버드 대학 ’신진 연구원(junior fellow)’ 기간과 1951년 하버드 대학 교양과정 및 과학사의 강사와 조교수 경력을 거치면서 과학 사상의 혁명적 변화들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했다.
10여년간 철학, 심리학, 언어학, 사회학 분야의 폭 넓은 독서와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쿤은 자신의 과학혁명의 이론의 틀을 조금씩 갖추게 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의 업적으로 학문적 역량을 널리 인정받은 쿤은 버클리 대학으로 옮겨서 과학사 과정의 개설을 주도한다.
그리고 2년 뒤 스탠퍼드 대학의 행동과학고등연구센터에서 사회과학자들과 생활한 것을 계기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의 창안에 이르게 된다.
 
언론이나 학자, 그리고 우리들 마저도 가끔 사용하는 단어,  ’패러다임(paradigm)’....
패러다임은 어떤 뜻인가?
백과사전에서 ’패러다임’의 정의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네이버)’, ’어떤 한 시대의 지식인들의 합의로 형성된 지식의 집합체들(다음/구글)’로 풀이된다.
보통 우리가 ’패러다임’이라 용어를 사용할 때 역시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일관된 사고방식을 뜻하게 되고 ’패러다임이 변했다’라는 식의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즉, 과거의 낙후되거나 잘못된 생각들과 사고방식들에 대한 비판과 변화를 촉구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언어 학습에서 사용되는 ’표준예(exemlar)’라는 뜻의 단어다. 즉, 언어학에서 나온 표현이다.
과학지식의 발전 이론에 이 용어가 도입된 것은 언어학의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쿤의 견해에 따르면, 학생들이 과학 교육에서 습득하게 되는 것은 흔히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인 과학적 개념의 정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용어들이 사용된 예제들을 푸는 표준 방법에서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과학 연구가 수행된다는 실제 과학의 특성에 주목함으로써, 과학 활동을 어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표준형으로부터 여러 가지의 변형들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비유하게 된 것이 ’쿤의 패러다임의 출현’을 낳았던 것이다.
 
쿤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이론을 역사적, 실제적으로 과학 활동이 어떻게 수행되는가에 대해서 경험적, 사회적 측면에서 타당한 설명을 제시한 다음에 규범적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쿤은 자신의 이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구체적이고 방대한 실증자료와 역사적인 고찰, 전공을 막론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관점과 이론을 도입한다.
그 속에는 수 많은 과학자들과 그들의 저서, 특정 과학적인 실험과 이론을 둘러싼 논쟁과 결론들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ca), 프롤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Almagest),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와 광학(Opticks), 프랭클린의 전기에관한실험과관찰기록(Experiments and Observations on Electricity), 라부아지에의 화학요론(Traite elementaire de kimie), 라이엘의 지질학(Geology),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프레넬, 다윈의 종의기원(Origin of Species), 캐번시티, 쿨롱, 볼타, 리히터와 프루스트 등등...
 
역자(김명자교수)는 저자의 표현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의역이 아닌 직역을 하였다고 소개한다.
그 대가로 나는 무지하게 난해한 표현과 문장으로 한 쪽 한 쪽 이해하고 넘기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상당한 집중력과 생각을 거듭하면서 여러번 앞뒤장을 다시 읽어야 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책을 모두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토머스 쿤과 이 책이 서구사회와 과학계에 미친 영향이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사회에도, 한국 과학계에도 ’패러다임’이 존재할까 생각해본다.
’패러다임’은 그 당시 시대에 맞는 과학적인 것이어야 하고 과학적이라는 의미는 합리적이고 열려있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과연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아니,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느 정도 기간이나 ’패러다임’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패러다임’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는 합리적이고 열려있는 사고가 필요한데, 한국 과학계는, 한국 지성계는 과연 그러한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기관에 의한 사찰이 횡행하고 있음에도???
 

[ 2010년 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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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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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공부모임에서 차기 세미나 교재 선택을 위해 논의하다가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선생의 [열하일기]로 결정했다. 여러 가지 [열하일기] 중에서 보리출판사에서 출간한 3권짜리로... 보리출판사 발간본은 북한문예출판사가 펴낸 <겨레고전문학선집> 시리지 중 하나로 북한 고전전문가인 리상호선생이 완역한 것이었다.
완역본이기 때문에 3권을 합하면 모두 1,500쪽을 넘었다. 인터넷에서 책 소개를 찾아보았더니 보리출판사의 완역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박지원선생의 [열하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고미숙씨가 번역한 책도 출판되어 있었다. 특히 고미숙씨가 편집,번역한 이 책은 초보자가 쉽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 들어있다고 소개되어 있어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선생과 [열하일기]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잠깐 아주 간략하게 소개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열하일기]를 접하지 못하다가 지난 2008년 소설가 김탁환씨의 '백탑파 시리즈'를 읽으면서 다시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김탁환씨의 '백탑파 시리즈'는 [방각본 살인사건] 상/하권과 [열녀문의 비밀] 상/하권, 그리고 [열하광인] 상/하권을 말한다. 세 가지 소설 모두 김탁환씨가 고전과 자료들을 고증하고 연구하면서 써낸 '팩션소설'이었다. 조선 정조시대 박지원을 비롯한 이덕무, 박제가, 홍대용, 백동수 등 실존인물과 함께 가공인물인 의금부 도사 이명방을 주인공으로 하여 당대의 사회상황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여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무식했던 것이 [열하광인]을 읽기 시작할 때까지 '열하광인'의 '열하'가 [열하일기]를 말하는 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굳이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인류가 호포사피엔스로 진화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록과 문화가 존재했고 인류는 자신의 가장 진화된 특성, 즉 과거의 기록과 문화를 통해 미래를 열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의 기록과 문화 중에서 '고전', 즉 인간사회의 보편성과 창조성을 보여주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영향을 끼친 학문이나 이론을 알기 위함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고전'으로 받아들인 만한 것이다. 한국 고전으로는 이미 유득공의 [발해고]를 읽은 바 있다.
 
연암 박지원선생은 1780년 청(靑)나라 건륭황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조선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동행했다. 음력 5월에 길을 떠나 6월 24일에 국경을 넘었고 북경(연경)과 열하를 거쳐 다시 북경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오는 장장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하룻밤에도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 사투와 2,300리에 이르는 여섯 달간의 대장정, 그리고 귀국 후 연암골에 틀어박혀 7년 동안의 각고 끝에 26권 10책에 이르는 [열하일기]가 완성되었다. [열하일기] 속의 기록은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의 여행기와 별도의 수필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자인 고미숙씨 등은 [열하일기]에서 여정 뿐 아니라 유머와 우정, 그리고 유목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하일기]는 역사상 세계 그 어느 여행기보다도 더 가치가 있고 뛰어난 여행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연암이 생각컨대 소(小)중화주의에 찌든 조선의 사대부들에겐 당시 청나라 문명의 풍요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화 문명을 보는 연암의 유일한 잣대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 그래서 그의 눈에 가장 눈부시게 다가온 것은 화려한 궁성이나 호화찬란한 기념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을 끌어가는 벽돌과 수레, 가마 등이다. 조선의 현실이 그만큼 열악했던 것이다.
오랑캐의 문물을 소개하며 현실을 바로 보자는 연암의 주장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뒤엎으려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명나라가 망한 지 100년이 넘은 시점에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연암이 옛 성터에서 눈물짓는 장면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은유와 역설, 그리고 종종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형식의 [열하일기]는 성리학과 중화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 한 당대 지식인들이 겪은 사상적 고투의 기록인 것이다. 

 



 
이 책은 사행단 구성과 여정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열하일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사행이나 비장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고전에 익숙지 않은 모든 이들을 위한 편집의 일환으로 다른 판본과는 차별화된 배치를 하고 있다.



 
 



 



 
 
[ 2011년 8월 10일 ]



 
------ *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누구인가? --------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문인이다. 호 연암(燕巖). 정조 4년(1780), 진하사 겸 사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가게 된 종형 박명원과 동행하여 북경 등지를 돌아다니며 이용후생(利用厚生)하는 청인들의 실생활을 보고 돌아와 쓴 기행문이 [열하일기]이다. 홍대용·박제가 등이 소속되어 있던 북학파의 거두로서 우리나라 실학 연구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문학에 있어서도 유려한 문장과 진보적인 사상으로 한문소설인 [양반전], [허생전], [호질],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등 여러 작품을 썼으며, 저서에는 [연암집],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등이 있다. ---------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 국경 출발부터 '산해관'까지의 여정이다.
< 도강록 > 도강록 서 / 6월 24일 / 6월 25일 / 6월 26일 / 6월 27일 / 6월 28일 / 6월 29일 / 7월 1일 / 7월 2일 / 7월 3일 / 7월 4일 / 7월 5일 / 7월 6일 / 7월 7일 / 7월 8일 / 7월 9일 / 요동 옛 성에 올라 / 요동의 백탑 / 관제묘 풍경 / 소묘 / 광우사 이야기 - 6월 24일 : 비장과 역관, 하인들의 옷차림을 설명한다. 수역 홍명복에게 "자네가 길을 아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6월 26일 : 마두 득룡이 금석산을 가리키며 명나라 말기 형주사람 강세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6월 27일 : 중국 봉황산의 전경, 사행단의 관례, 책문에서 청나라 관리들에게 예단 전달, 책문 내 시장의 전경을 기록했다.- 6월 28일 : 중국의 벽돌과 기와의 제작, 이용의 장점과 조선의 건축과 기와의 단점을 비교한다. 중국 변경 인근의 주택구조를 설명하고 한사군, 발해, 평양, 패수의 지리적인 혼란스러움을 지적한다. 중국 성과 성문, 누각을 설명한다.- 7월 1일 : 만주족 여인의 옷과 머리차림을 설명한다.- 7월 2이 : 중국의 벽돌가마와 조선의 기와가마를 비교,설명한다.- 7월 3일 : 중국의 결혼 행렬과 풍습을 설명하고 만주족 훈장과 필담을 나눈다.- 7월 5일 : 중국식 벽돌식 방고래/구들의 건축과 그 장점을 설명하고 조선의 그것과 비교한다.- 7월 7일 : 관제묘의 구조와 장식을 설명한다.- 7월 8일 : 요양의 백탑을 이야기하고 아이의 울음에 대해 설명한다. 요양의 드넓은 벌판을 마주하면서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라고 외치다.

< 성경잡지 > 7월 10일 / 7월 11일 / 예속재에서 만난 친구들 / 가상루에서의 아름다운 만남 / 7월 12일 / 7월 13일 / 7월 14일 / 성경의 사찰들 / 요동의 산과 강
- 7월 10일 : 작은 마을의 객점에 들어가 그 구조를 살피고 주인 부부와 필담을 나누다. 심양 가기 전의 불탑을 기록하고 심양에 도착하여 심양성의 내부를 살피다.
- 7월 11일 : 예속재에서 이귀몽, 배관, 비치, 전사가, 오복과 필담을 나누다.
- 7월 12일 : 여행 중 상가집에 우연히 들러 문상하게 되고 이도정에 도착하여 술가게에서 붓글씨를 뽐내다.
< 일신수필 > 일신수필 서 / 7월 15일 / 7월 16일 / 7월 17일 / 7월 18일 / 7월 19일 / 7월 20일 / 7월 21일 / 7월 22일 / 7월 23일 / 망부석이 된 맹강녀 / 장대에 오르내리기가 벼슬살이 같구나 / 산해관에 올라 고금의 역사를 생각한다.
- 7월 15이 : 일류/이류/삼류 선비론을 논하고 중국 수레구조를 설명하고 수레제도의 장점을 논하다. "사방이 수 천리나 되는 나라(조선)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가난한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 나라 안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양반들 잘못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p.244) 연희무대, 저자, 점방, 교량을 설명하다.- 7월 16일 : 북경 8경 중의 하나인 '계문연수'를 말하다.- 7월 17일 : 호행통관 쌍림의 인물됨에 대해 말하다. - 7월 18일 : 송행전투와 오삼계, 이자성의 난을 거쳐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가가 세워지는 과정을 논하다.- 7월 19일 : 영원성과 초가패루를 감상하다. - 7월 20일 : 청돈대의 해돋이를 감상하다. - 7월 22일 : 중국의 털모자와 조선의 은의 상거래 관계를 논하다.출판사는 고문(古文)의 고루함을 비웃었던 연암의 글이니 만큼, [열하일기]가 읽히지 않는 것은 죄악으로까지 규정한다. 이 책[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그러한 연암의 애초 의도와 문장론을 살리는 데 집중한 책이다. 풍부한 그림과 자료, 상세한 해설, 배경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이 연암의 문장을 타고 막힘없이 흐를 수 있도록 편집의 과정에서 최대한의 친절을 발휘했다.
원래 [열하일기]는 여정을 따라 가는 편년체 방식으로 쓰인 7편의 글들과, 여정과는 별도로 쓰인 기사체 글들이 공존하는 책이다. 기존의 배치대로라면 읽는 이들이 연암의 여정과 의식의 흐름을 밀도 있게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역자들은 각 여정 편들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사건들에 대해 적은 기사체 글들을 그 뒤에 두어 시간의 흐름을 따름으로써 이해와 감정의 효율을 최대치로 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열하일기]는 200년을 훌쩍 넘긴 고전이다. 나도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완역본 3권 중 두 번째 권을 읽고 있지만, 보통의 독자들이 읽기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역자들은 편집 과정에서 연암과 이국 친구들과의 길고 긴 밤샘 필담 부분은 희곡 형식으로 처리했다. “형식적 구속 때문에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다” 하여 시(詩)를 멀리했던 연암의 글답게, 형식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희곡으로 엮은 것이다. 그리하여 예속재와 가상루에서 연암이 나누었던 필담의 희곡버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박진감 넘치고 리드미컬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유머리스트’로서 연암을 파악하고 있는 역자들은 이 책에서 마치 연암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생생한 말투를 씀으로써, 연암이 보여준 기행(紀行) 속의 기행(奇行)과 그의 경쾌함을 거침없는 번역으로 표현하고 있다.


----- * 역자 고미숙, 김풍기, 길진숙은 누구인가? -------
<고미숙>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독문과를 졸업하긴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학원은 국문과로 ‘전향’해서 고전시가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내 일상의 대부분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이루어진다. ‘공부와 밥과 우정, 그리고 자전거’, 이것이 요즘 내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다. 지난 10년간 내 공부의 원천에 『열하일기』가 있었다면, 지금 나를 매혹시키는 건 루쉰과 『동의보감』이다. 『열하일기』가 그랬듯, 루쉰과 『동의보감』과의 마주침 또한 내 인생의 큰 변곡선이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에 휩싸여 있다. 그 동안 쓴 책으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이 있다. 내가 쓴 거라기보다 연구실이 내게 준 선물들이다.
<김풍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시작한 고등학교 교사생활은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 못했다. 내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이라곤 오직 책과 더불어 노니는 것뿐. 그러던 중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한문 공부를 하면서 오만과 허영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는 들뢰즈를 만나고 니체를 다시 만나고 스피노자와 원효를 만났다. 예전에 읽었던 책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혔고, 평범한 이야기도 경이롭게 들렸다. 그제야 비로소 고전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포착하려는 순간, 내 삶이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시마』 등을 지었고, 『누추한 내방』, 『옥루몽』 등을 옮겼다.
<길진숙> 고등학교 때 고전문학을 향한 무모한 애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에 들어갔고,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학력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점차 협소해지고, 사유는 날로 빈곤해져 갔다. 감동을 상실한 공부로 고민하던 차에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만났다. 이곳에서 나는 공부라는 드넓은 세계와 만났다. 여러 사람들과 『열하일기』를 함께 읽고 강독하면서 박지원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동아시아 고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지금은 18세기 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 명청시대의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양명학과 노자, 장자, 불교의 세계에 매료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전기 시가예술론의 형성과 전개』가 있다. -------- 


 
역자 고미숙은 조선 왕조 5백년에 더하여 한반도 5천년 역사를 통틀어 꼽는 단 하나의 텍스트로 [열하일기]를 들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오천 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이기 때문일까? [열하일기]를 읽어보면 연암은 자신의 지위에도, 머무는 곳에도 정착하지 않았던 진정한 ‘노마드’(유목민) 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고자 했던 삶과 그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꾸려가는 삶의 선택이나, 젊음의 특권인 용기를 상실한 21세기 한국인에게는 없는 그 믿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고리타분한 우리에게 230년 전 연암의 삶과, 여행과, 기록은 긴 시간을 초월하는 ‘색다른’ 고전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요동치면서 그 생명력을 자랑하는 [열하일기]를 새삼스럽게 지금 다시 불러온 이유는 바로 그것이 발산하는 다른 고전과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여행기를 읽다가 연암의 포복절도할 행각들에 잠시,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박지원’과 ‘이용후생’이 동급으로 암기되었단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수레와 수차, 도르레와 벽돌, 기와, 가마, 복식과 말 기르기 등에 대해 풀어 놓은 ‘실용적’ 입장에서의 관찰과 성찰을 읽고 있노라면, 비로소 그가 북학파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함께 길을 가다가 몰래 빠져 나와 남의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기록해 놓은 그의 호기심과 열정은, 이 책을 여타의 여행기들과는 차별되는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하게 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의 산물인 이 책에서 우리는 ‘18세기 그때 그시절 박물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구들과 중국식 구들인 ‘캉’(?)이 어떻게 다른지 시시콜콜하게 적어 놓고, 깨진 기와조각을 마당에 박아서 진창을 예방하는 데 쓰임을 발견하여 그 감탄을 적어 놓은 이 책은 연암의 ‘지식저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열하일기]를 읽는다는 것은, 연암이 발로 뛰며 채워 놓은 지식저장소를 가만히 앉아서 훔쳐보는 조금은 뻔뻔한 일이 된다. 말똥과 수레를 찬양한 연암, 저잣거리에서 이야기를 채집하는 연암, 점방 벽에 적힌 재미난 얘기를 밤새 베껴 썼기에 이 책이 "세계최고의 여행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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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의 반란 - 로버트 와인버그가 들려주는 암세포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5
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조혜성.안성민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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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 < 마지막 3분 >, <인류의 기원>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다섯 번째 책이다.
 
’암(癌, Cancer)’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다.
’암’은 다른 모든 인체 조직을 구성하는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내부의 반란자’다.
’암’은 정상 조직과 똑같은 구성 요소, 즉 인체의 세포를 이용해서 생물학적 질서와 기능을 제멋대로 파괴하는 해로운 세포 덩어리를 만들고, 이 세포 덩어리를 막지 못하면 인체라는 복잡한 구조물은 무너져 내린다.
 
모든 사람들이 알다시피, 인체는 ’세포(Cell)’라는 기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세포들은 언제 성장하고 언제 분열하며 다른 세포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뭉쳐서 조직과 장기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관한 분명하고도 고유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유전자 속에...)
따라서, 인체는 나름대로 자치적인 세포들로 구성된 대단히 복잡한 사회에 지나지 않으며, 각각의 세포는 완전히 독립적인 생명체의 속성을 상당 부분 지니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숨이 멎을 듯한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위험을 동시에 맞이한다.
 
대부분의 세포는 각각 독립적이지만, 놀랄 만큼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질서를 이룬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복제와 확산이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모든 세포들의 이익과 생존과 운명을 같이 하기에 세포는 생명체와 함께 지구상의 모든 조건을 헤쳐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700만년 전부터 수 십조 개의 세포에 의하여 인류라는 생명체로 진화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때때로 세포가 공익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조직이나 장기를 만들려고 할 때가 있는데, 이때 우리느 그렇게 두려워했던 혼돈 - 즉, 암 - 을 목격하게 된다.
불행한 사실은, 이렇게 자기만의 길을 선택한 세포가 10억 개 이상의 군집을 이룰 때까지 인체는 이러한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암’ 또는 ’종양’으로 불리우는 덩어리가 어떻게 시작할까?
모든 ’암’과 ’종양’ 덩어리는 단 한개의 세포에서 출발한다.
단 하나의 세포가 똑같은 사상과 규칙을 가진 후손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 세포들은 주위의 조직이나 생명체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으며, 조상과 마찬가지고 후손들도 한 가지 프로그램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성장, 복제 그리고 끝없는 확장이다.
 
이들이 초래하는 혼돈은 인체의 개별 세포에게 고유의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해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복잡한 생명체들은 지난 60억년 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여 왔다.
즉, 암이 일으키는 혼돈은 현대판 질병이 아니라, 고대부터 지금까지 모든 다세포 생명체들들이 감수해 온 위험에 불과하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수 십조 개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길고 긴 인생을 살면서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지 않은가?
 
현재까지 진행된 암 연구의 현 주소를 살펴보자.
 
부모에게 물려받아 인간 개개인이 보유하는 유전체는 약 30억 개의 DNA 염기서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의 유전자를 나타내는 7만~10만 개의 조각으로 나뉜다.
인체는 유전자들 중에 적지 않은 수의 ’원형 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 복제 불량, 발암물질 공격 또는 외부 바이러스의 침투에 의해 ’원형 암 유전자’는 ’암 유전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원형 암 유전자’ 1개가 ’암 유전자’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그 때부터가 시작이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암 유전자’ 하나 정도로 인체의 정상 세포를 암 세포로 전환시킬 수 없다.
인간의 DNA에는 유전자 복제 불량을 복구하는 유전자, 암 억제 유전자, 암 유전자를 파괴하는 유전자 등이 존재하여 마지막까지 암 유전자를 파괴하기 위해 싸운다.
다양한 조합의 암 유전자들이 실제 서로 협력해서 세포의 형질을 변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암 세포가 인체의 다양한 저항을 물리치고 나면 기하급수적으로 그 후손을 늘려가게 되고 인간의 조직과 장기에 몹쓸 세포 덩어리를 키운다.
그리고 혈관과 신경을 통해서, 효소와 단백질을 보내서 다른 장기와 조직에까지 암 유전자를 확산시켜 결국 인체가 무릎꿇게 하는 것이다.
 
’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현대 암 연구의 수준과 치료 수준으로 아직 ’암’은 불치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과 ’조기발견’일 뿐이다.
담배는 폐암에 직접 연관이 있으며, 식생활과 출산태도는 유방암과 자궁암에, 육류와 동물성 지방은 대장암에 치명적이다.
담배와 고지방, 고육류 식생활을 피한다면 현재의 ’암’ 중에 거의 절반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암 연구의 긍정적인 측면을 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10~20년 내에 암 연구는 모든 암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개별 인간의 유전자 연구를 통하여 암에 걸릴 확률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간파하지 못한 현실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막대한 자금을 들인 암 연구의 진단과 처방에 따른 비용이 어느 정도일까?
아마도 중산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려면 앞으로 적어도 30~50년이,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현재의 사회체제로는 어림없지 않을까 싶다...
 
결국, ’암’은 인체 신체구조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결론이고
인간이 주어진 생명과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함께 사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난 언제나 담배를 끊으려나...ㅉㅉㅉ
 
* 저자 소개 : 로버트 와인버그(Robert A. Weinberg)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 부설 화이트헤드 연구소 생물의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연구실은 정상 세포를 암세포를 바꾸는 암 유전자가 있음과 그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밝혀내 암 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와인버그는 이 연구 업적으로 미국 국가 과학 훈장 등 여러 과학상을 받았다.
 
-------------------------------------------------------------------------------------------[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암 진료환자 분석 보고서 ] 보도자료(2008. 12) 중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www.nhic.or.kr)이, 2007년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하여 발표한 『2007년 건강보험 암 진료환자 분석』에 따르면, 2007년도 신규 암 진료환자는 모두 13만9,660명으로서 2006년도 신규 암 진료환자 13만1,604명보다 8,056명(6.1%↑)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2007년 우리나라 건강보험 암 진료환자수는 49만3,584명이며, 이는 2006년도 암 진료환자 42만5,281명 보다 6만8,303명(16.1%)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2007년 건강보험 암 진료환자 49만 3천명에게 2007년 한 해 동안 지출한 보험급여비는 2조1,863억원으로 확인 되었으며, 이는 건강보험 적용항목(선택진료료, 병실료차액 등 비급여항목 제외)의 총진료비 2조4,633억원 중 88.8%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재정으로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암 진료환자 건강보험급여비(2조1,863억원)는 전체 건강보험급여비(24조5,600억원)의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년도인 2006년 암 진료환자 건강보험급여비(1조8,383억원) 보다 18.9% 증가한 것으로서, 건강보험 전체 급여비 증가율 13.8%(2006년, 21조 5,880억원 → 2007년, 24조5,600억원)보다 증가율 측면에서 40%나 높은 수준이다.
 
[ 건강보험 급여비와 암 진료 급여비 지출 추이 ]                             (단위 : 억원, 명)


2007년도 신규 암 진료환자 13만9,660명를 연령대별로 분석해 보면 65세 이상이 5만7,684명으로 41.3%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40~50대가 5만2,345명으로서 37.5%를 차지하고 있어, 2007년도 신규 암 진료환자중 90%가 40대이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암 유형별로 남자는 ①위암 15,086명 > ②폐암 10,771명 > ③대장암 10,101명 > ④간암 9,600명 > ⑤전립샘암 3,572명 이고, 여자는 ①갑상샘암 14,297명 > ②유방암 10,772명 > ③위암 7,405명 > ④대장암 7,282명 > ⑤폐암 4,367명 순으로 진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진료기준 인구 10만명당 건강보험 전체 암 진료환자수는 1,032명으로서 남자(1,017명)와 여자(1,047명)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도별로는 전남이 1,479명으로 최고이고, 인천은 822명으로 최저로 나타났는데, 2007년 신규 암 진료환자 분석에서도 전남이 474명으로 최고이고, 인천은237명으로 최저로 나타났다.

이것을 다시 시ㆍ도별로 연령표준화하여 분석하면 10만명당 건강보험 전체 암 진료환자수는 울산이 1,246명으로 최고이고, 강원도가 905명으로 최저로 나타났는데, 2007년 시?도별로 연령표준화한 신규 암 진료환자수는 광주가 360명으로 최고이고 울산은 349명으로 그 뒤를 이었으며, 강원도가 262명으로 최저로 분석되었다.

2006년 신규 암환자(131,604명) 기준으로, 암 진료환자 1명이 2007년 한 해 동안 사용한 건강보험진료비(비급여 제외)는 평균 1,175만원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89.5%인 1,052만원을 건강보험 보험급여재정에서 부담하였다.

특히, 암 유형별로는 백혈병이 환자 1인당 진료비 4,424만원 중 92.5%인 4,094만원을 건강보험에서 지급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다발성골수종 2,316만원, 비호지킨림프종(혈액암) 2,137만원, 뼈 및 관절연골암 1,904만원 순으로 급여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최근 우리나라 암 진료환자수 증가에 대하여 건강보험연구원 박일수 연구원은 “매년 신규 암 진료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조기검진에 의한 암진단과 의료기술 발달, 예방 및 치료기술 발달에 의한 치료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진단하면서 아울러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조기진단에 의한 암 진단 및 치료율 증가는 암 생존율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에 발표한 분석자료는 건강보험 또는 의료급여를 통해 암진료를 받은 사람을 대상자로 분석한 자료이므로, 중앙?지역암등록본부(보건복지가족부)의 국가암등록통계사업을 통해 발표되는 암발생통계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라고 설명했다.

 

[ 2010년 8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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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 - 시인으로 농부로 구도자로 섬 생활 25년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 / 도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 중 [비노바 베베]에 이어 14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일본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아웃도어>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수필이자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미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다. 18세기부터 전지구의 구석구석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산업화'와 '경쟁지상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산업생산양식과 신자유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일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의 인류의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다국적 기업 뿐 아니라 삼성이나 현대 등 한국식 다국적 기업, 즉 재벌들이 내세우는 구호다. 하지만 그 구호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구 곳곳에 팔아먹기 위해 다국적 기업이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가증스럽게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다짐까지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 차용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 * 야마오 산세이는 누구인가? -----------

야마오 산세이는193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현대문명에 대항하여 원시 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1973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팔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였고, 1975년부터 도쿄에 호빗토 마을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였다. 1977년에 온 가족이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의 한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며, 그곳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한없이 자기를 초극해 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사는 한편 농사일 틈틈이 시와 글을 쓰는 문필 활동을 하며 살다가 2001년 8월에 그의 영혼의 별인 ‘오리온의 세 별’로 돌아갔다. 지은 책으로는 <성스러운 노인> 게리 스나이더와의 대담집 <하나로 이어진 성스런 지구>,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물이 흐른다>, 시집 <비파잎 모자아래서>등이 있다. ----------
 
 
이 책은 21개의 짧은 수필을 엮어낸 것이다.
각 수필의 제목은, "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 석기문화를 즐기다 / 야생 사슴과 함께 사는 길 /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 아웃도어 라이프 / 서부 숲길 /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 토란 / 우수 / 숲은 바다의 연인 / 지구 크기로 생각한다 / 천사백만 년이라는 시간 / 내 별 내 나무 내 바위 / 햇살이 아프다 / 물의 길 / 아난다처럼 울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 내 집 짓기의 즐거움 /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 끝없는 여행"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1977년부터 일본 규수 섬의 가고시마 현 아래에 위치해 있는 '야쿠 섬'으로 이사했다.
그는 야쿠 섬에 살면서 하루 중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화학비료 대신에 음식 쓰레기, 똥오줌, 나뭇재를 밭에 낸다. 잡초는 베어 낸 다음 그대로 밭에 덮는다. 잡초는 끝도 없이 나지만, 그는 잡초를 미워하지 않고 잡초는 베어서 땅에 덮으면 마침내 비료가 되기 때문에 밭에 잡초가 무성해 있으면 실은 비료가 무성해 있는 셈이라고 한다.
그의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 놓은 밭 같다.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벤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는 일 이외는 하지 않는다.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는 일 외에는 비료도 하지 않는다.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는 ‘풀 두고 가꾸기’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저자 가족의 생활양식은 그보다 150여년 전 앞서 자연 속의 삶을 실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모습, 농부철학자였던 50여년 전 프랑스의 피에르 라비, 영국의 '핀드혼 공동체'를 떠오르게 한다.(물론,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전기도 끌어다 쓰고 자동차도 이용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동물들과 이웃하여 공생하면서 살고 있다. 야쿠 섬에서는 사슴과 원숭이의 피해가 심하다. 그냥 두면 과일과 야채는 모두 그들의 차지가 돼 버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 철책을 치지만 그는 버려진 그물을 이용하거나 사슴과 원숭이가 손을 대지 않는 토란, 아스파라거스, 자소와 같은 작물을 택해 그들과의 공생을 꾀한다. 왜냐하면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푸른 풀들은 우리의 생명의 조상이자 고향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제자매이기도 하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마치 제임스 러브룩의 '가이아'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가이아'적 삶을 현실에 맞도록 야쿠 섬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석기문화, 혹은 석기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문화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다.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되찾아야 문화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 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낚시,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그 충동을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 충동이라 부르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였는지 어땠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는 여기서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램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는 그런 작업을 통해 생의 근원적인 충동(석기시대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는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 우리는 카메라의 눈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밖에 지구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가미란 무엇인가?
야마오 산세이에게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가미다. 가미란 무엇인가?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다. 그러나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신을 가미라고 표현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가미란 우리를 초월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깊고 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고, 깊고 강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미라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연인이 가장 리얼한 가미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이가 가미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만물은 절로 가미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가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그는 그것을 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가미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자연 또는 가미에 가 닿게 되고 거꾸로 자연 혹은 가미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 이른다고 그는 말한다.
 
야마오 산세이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는 암석이나 강이나 우주 그 자체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안쪽에는 영성, 혹은 영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며, 우리는 모두 친화력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과 깊이 이어져 있음과 동시에 자기 외의 수많은 나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면 행복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산에 대해서나 강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친화력으로 깊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이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을 신애니미즘이라 부르며, 자연 환경을 어떻게 지키고 되살릴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가 된 현대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희망으로 신애니미즘을 제시하고 있다. 


 
법정스님은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이 책에는 그가 일생을 걸고 일관되게 꿈꾸며 바라 왔던 평화로운 세계를 조용하게 그리고 깊게 실천해 가기 위한 방법이 쓰여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아내의 글을 빌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여기에 사는 슬픔'이자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비록 지금 당장 보따리를 싸고서 야마오 산세이의 가족처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야마오 산세이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거창한 무슨무슨 '주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인간이 '인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 공기와 나무, 풀과 동물, 물고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모든 존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와 입자, 의미와 정령이 한데 어우러져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나만을 위한 삶, 우리만을 위한 삶, 인간만을 위한 삶은 오히려 머지않아 나와 우리, 인류를 해치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인류가 없는 원시시대의 지구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경쟁 위주가 아닌 공생 위주'의 삶만이 그 해답일 것이다. 

[ 2011년 8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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