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기에 사는 즐거움 - 시인으로 농부로 구도자로 섬 생활 25년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 / 도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 중 [비노바 베베]에 이어 14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일본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아웃도어>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수필이자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미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다. 18세기부터 전지구의 구석구석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산업화'와 '경쟁지상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산업생산양식과 신자유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일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의 인류의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다국적 기업 뿐 아니라 삼성이나 현대 등 한국식 다국적 기업, 즉 재벌들이 내세우는 구호다. 하지만 그 구호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구 곳곳에 팔아먹기 위해 다국적 기업이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가증스럽게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다짐까지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 차용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 * 야마오 산세이는 누구인가? -----------
야마오 산세이는193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현대문명에 대항하여 원시 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1973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팔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였고, 1975년부터 도쿄에 호빗토 마을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였다. 1977년에 온 가족이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의 한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며, 그곳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한없이 자기를 초극해 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사는 한편 농사일 틈틈이 시와 글을 쓰는 문필 활동을 하며 살다가 2001년 8월에 그의 영혼의 별인 ‘오리온의 세 별’로 돌아갔다. 지은 책으로는 <성스러운 노인> 게리 스나이더와의 대담집 <하나로 이어진 성스런 지구>,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물이 흐른다>, 시집 <비파잎 모자아래서>등이 있다. ----------
이 책은 21개의 짧은 수필을 엮어낸 것이다.
각 수필의 제목은, "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 석기문화를 즐기다 / 야생 사슴과 함께 사는 길 /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 아웃도어 라이프 / 서부 숲길 /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 토란 / 우수 / 숲은 바다의 연인 / 지구 크기로 생각한다 / 천사백만 년이라는 시간 / 내 별 내 나무 내 바위 / 햇살이 아프다 / 물의 길 / 아난다처럼 울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 내 집 짓기의 즐거움 /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 끝없는 여행"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1977년부터 일본 규수 섬의 가고시마 현 아래에 위치해 있는 '야쿠 섬'으로 이사했다.
그는 야쿠 섬에 살면서 하루 중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화학비료 대신에 음식 쓰레기, 똥오줌, 나뭇재를 밭에 낸다. 잡초는 베어 낸 다음 그대로 밭에 덮는다. 잡초는 끝도 없이 나지만, 그는 잡초를 미워하지 않고 잡초는 베어서 땅에 덮으면 마침내 비료가 되기 때문에 밭에 잡초가 무성해 있으면 실은 비료가 무성해 있는 셈이라고 한다.
그의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 놓은 밭 같다.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벤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는 일 이외는 하지 않는다.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는 일 외에는 비료도 하지 않는다.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는 ‘풀 두고 가꾸기’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저자 가족의 생활양식은 그보다 150여년 전 앞서 자연 속의 삶을 실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모습, 농부철학자였던 50여년 전 프랑스의 피에르 라비, 영국의 '핀드혼 공동체'를 떠오르게 한다.(물론,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전기도 끌어다 쓰고 자동차도 이용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동물들과 이웃하여 공생하면서 살고 있다. 야쿠 섬에서는 사슴과 원숭이의 피해가 심하다. 그냥 두면 과일과 야채는 모두 그들의 차지가 돼 버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 철책을 치지만 그는 버려진 그물을 이용하거나 사슴과 원숭이가 손을 대지 않는 토란, 아스파라거스, 자소와 같은 작물을 택해 그들과의 공생을 꾀한다. 왜냐하면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푸른 풀들은 우리의 생명의 조상이자 고향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제자매이기도 하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마치 제임스 러브룩의 '가이아'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가이아'적 삶을 현실에 맞도록 야쿠 섬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석기문화, 혹은 석기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문화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다.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되찾아야 문화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 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낚시,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그 충동을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 충동이라 부르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였는지 어땠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는 여기서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램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는 그런 작업을 통해 생의 근원적인 충동(석기시대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는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 우리는 카메라의 눈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밖에 지구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가미란 무엇인가?
야마오 산세이에게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가미다. 가미란 무엇인가?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다. 그러나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신을 가미라고 표현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가미란 우리를 초월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깊고 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고, 깊고 강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미라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연인이 가장 리얼한 가미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이가 가미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만물은 절로 가미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가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그는 그것을 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가미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자연 또는 가미에 가 닿게 되고 거꾸로 자연 혹은 가미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 이른다고 그는 말한다.
야마오 산세이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는 암석이나 강이나 우주 그 자체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안쪽에는 영성, 혹은 영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며, 우리는 모두 친화력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과 깊이 이어져 있음과 동시에 자기 외의 수많은 나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면 행복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산에 대해서나 강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친화력으로 깊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이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을 신애니미즘이라 부르며, 자연 환경을 어떻게 지키고 되살릴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가 된 현대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희망으로 신애니미즘을 제시하고 있다.
법정스님은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이 책에는 그가 일생을 걸고 일관되게 꿈꾸며 바라 왔던 평화로운 세계를 조용하게 그리고 깊게 실천해 가기 위한 방법이 쓰여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아내의 글을 빌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여기에 사는 슬픔'이자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비록 지금 당장 보따리를 싸고서 야마오 산세이의 가족처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야마오 산세이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거창한 무슨무슨 '주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인간이 '인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 공기와 나무, 풀과 동물, 물고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모든 존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와 입자, 의미와 정령이 한데 어우러져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나만을 위한 삶, 우리만을 위한 삶, 인간만을 위한 삶은 오히려 머지않아 나와 우리, 인류를 해치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인류가 없는 원시시대의 지구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경쟁 위주가 아닌 공생 위주'의 삶만이 그 해답일 것이다.
[ 2011년 8월 0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