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1년간) 시대에 접어든 지도 몇 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저부터 시작하여 대다수의 국민들이 2만불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도 일일당 2만불이 되는 개인과 가족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가족만 하더라도 4명의 년간 소득은 3~4천만원에 불과합니다. 일인당으로 계산하면 1천만원, 즉 1만불 밖에 되지 않습니다. 4인 가족이면 평균으로 8만불이 되어야 하는데 4만불이 되지 않는 것이니 소득으로만 보면 '하류층'에 속하는 가족이 되는 셈입니다.

그나마, 부모님이 젊었을 적에 피땀흘려 열심히 일하셔서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대출 없는...)를 장만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 정도면 밑바닥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저와 우리 가족의 자산과 소득에 턱없이 낮은 개인과 가족이 대한민국에 수 없이 많이 존재할 것입니다.

 

방치되어 있는 노인세대, 중하층 이하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기초연금 월 9만원(이걸로 어떻게 살라는 건가요?), 엄마들과 가족에게 떠맡겨진 육아와 보육, 청년실업과 50%가 넘는 비정규직, 아파트 대출잔액 800조원과 수없이 많은 '하우스 푸어', 등록금에 술집 알바를 뛰는 대학생들, 사교육에 끌려다니는 부모들, 죽지 못해 버티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중소기업들...

IMF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사회적 양극화와 빈부격차, 일자리 감소와 중소기업 진흥정책,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정책을 펴지 못해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했습니다.

뒤이어 나타난 이명박정부는 수구기득권층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고 있고 그나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최소한 만들어놓은 복지정책과 균형발전정책 마저 파괴하고 있습니다. 복지는 커녕 오히려 민주주의마저 후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이명박정권이 잘못한 게 뭐냐는 말은 생략... 굳이 애기 안해도 모두를 생각하는 것이 있을테니...)

 

지난 주에 신필균씨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모든 분들이 스웨덴이 현재 지구상 최고,최대의 복지국가이자 상위 10위권에 드는 고소득 국가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이민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정말이지 한국인이면 대다수가 스웨덴으로 가서 살고 싶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웨덴의 근현대사는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스웨덴은 북유럽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제1,2차 세계대전의 참상도 피해갔고 대신 유럽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19세기 말까지 여타 다른 유럽의 국가들처럼 빈곤과 쓰레기, 가혹한 노동조건과 아동 노동착취까지 존재하던 나라였습니다.

톰 튀크베어 감독의 영화 [향수]에 나오는 시골과 도시의 장면을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주연 : 벤 위쇼, 더스틴 호프만 2007년)



 

스웨덴의 근현대사와 복지국가가 실현되는 과정을 읽어보면서 크게 한 번 다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스웨덴 역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복지국가를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피와 땀이 없이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웨덴의 노동자, 농민, 사무직 노동자, 중산층, 서민, 빈민, 여성 등 모든 계급, 계층에서 각각의 분야에서 복지를 쟁취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고 싸움을 전개했습니다. 그 싸움은 작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에 걸친 모진 과정이었습니다.

그나마 스웨덴이 한국보다 나은 점은 내전과 이념갈등이 존재하지 않아 자본과 노동(농민,빈민,서민등 포함)의 타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물론, 그 타협도 오랜 기간 동안의 조직화와 싸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즉, 이 책이 저에게 주는 시사점은 국민이든, 민중이든, 시민이든 자신들에게 절대적인 요구인 복지사회를 정치인과 정당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주인인 국민들이 주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대리인(정치인,관료등)에게 맡긴채 나몰라라 했던 지난 66년 동안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 관료, 기득권자가 좌지우지해버린 상태입니다.

 

2012년, 내년은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모두들 느낌으로 아실  것입니다.

2009년 지자체 선거에서부터 차츰 분출되기 시작한 국민들의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는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일명 오세훈의 나쁜투표)와 한진중공업 해고를 둘러싼 비정규직 투쟁, 반값 등록금 투쟁 등를 통해 다시 한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마저 2012년 어느정도라도 복지를 정책으로 내걸고 '복지 박근혜'를 구호로 내세우지 않으면 대통령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박근혜식 복지 정책'을 가다듬고 있는 상황입니다.(그럼에도 한나라당 내의 수구파는 '복지 포퓰리즘'을 내세우며 복지에 대해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죠...)

그리고 실제로 복지정책을 펼쳐 중산층 이하 서민,빈민들과 실업자, 비정규직,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살아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머지 않아 내부 기반과 소비력 약화, 바닥층 붕괴로 경제의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고 일본처럼 장기간의 0% 성장율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국민소득은 일본의 절반도 안된 상태에서...)

더 최악은 실업자와 청년, 빈민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폭동이 일어나 공동체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이미 한국보다 나은 영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 최근 도심에서 거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반대로 그런 분위기를 편승하여 파시즘이 도래할 수도 있죠...

 

대선이 1년도 더 남은 시점에 자본과 기득권층은 MB와 한나라당, 조중동을 앞세워 복지국가의 시대적 대세와 대다수 국민들의 복지 열망을 꺽으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와 정당이 없이 수구정당과 이념지향적 꼴통만 존재한 상황입니다. 그들은 여론조작과 기존 권력으로 강압적으로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요구를 물리적으로 탄합하면서 한국사회의 균형발전과 평균적 소득향상, 살맛나는 사회와 미래의 희망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땅히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의 제1야당인 민주당은 13년째 전문성도 조직도 정책도 제대로 없이 좌충우돌 여론조작과 민심에 휘둘려 갈팡질팡하고 있고 그나마 올바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진보정당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져 내부싸움에 진을 빼고 있습니다.(다행히 최근 진보정당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지만 진보신당 내  독자파의 거부로 거국적인 통합은 불가능해졌고 시간은 지연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은 그 실체와 의미와 정책이 일반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10년 가까이 국민들의 지지가 10%를 전후하여 답보상태에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주 세미나를 진행한 뒤에 참여연대에서 사회복지위원회 소속 일꾼들이 참석하여 최근 참여연대에서 논의, 추진 중인 복지국가 관련 계획을 발표해 주었습니다. 발표 주제는 "복지국가 정치동맹과 사회연대운동"입니다. 발표문 중 하나를 첨부합니다.

현재의 복지국가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한국의 상황과 정당들의 모습, 국민들의 흐름, 시민단체와 '행동하는 시민'들의 활동방향 등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정책이나 방향에서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모두가 읽어 보시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했으면 합니다.

 

관련 문서를 첨부하였으니 많이 공감하시게 되면, '시민정치운동'과 '사회연대운동'에 참여하시기를 적극 권합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기존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후보'로 나선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 지원, 참여하는 것도 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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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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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애 책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방식-전기(傳記)와 소설의 결합-을 실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전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저명하거나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쓴 전기작가와는 서로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대개의 경우가..) 대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도식화해버리는 전통적인 전기 집필의 규범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기를 써보려고 도전한 작품이다.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등 저자는 그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주로 써왔다. 저자가 평범한 한 젊은 여성의 전기를 써보겠노라고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은 사랑에서 왔다. 글 내용에서 여자친구의 가혹한 비난과 함께 실연을 경험한 주인공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한 여성과 만난다. 멀리서 일별하고 나서 그렇고 그런 뻔한 여자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가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물론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젊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공개하고 그 공개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한 독자들은 작가와 주인공들과의 성공적인 피드백의 결과로 우리는 위트 넘치고 사려 깊은 한 젊은 여인의 전기와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목인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사람, 한 여성의 40여년 일대기를 전기의 형태로 저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나는 저자가 책에 왜 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주인공 '이사벨'의 입을 통해 쓰여진 일대기와 작가와 이사벨과의 구체적인 대화와 관계, 그리고 앞의 두 가지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하고 철학과 이성으로 분석하는 세 가지 구성으로 엮어진다. 전기는 한 사람을 깊이 있는 장르이다. 이 소설은 이사벨이라는 한 젊은 여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읽어낸다. 이사벨이라는 텍스트를 읽어가는 저자는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따지고 분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사벨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완벽히 설명될 수도 없고 온전히 이해되기도 힘든 살아 있는 인간, 젊은 여자다. 결국 저자가 사랑했던 건 이사벨이라는 텍스트였지 울고 웃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살아 있는 인간 이사벨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사벨의 주장처럼 한 사람의 삶은 당사자도 왜 그러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전 세계 50억명 가까운 사람들 중에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러한 인간들이 군데군데 모여 집단을 이루고 서로 이야기하고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이 지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말은 선입관을 가지고 누군가를 규정짓고 판정을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애기와 같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인간을 인간답게,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각각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이해하기 이전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시작할 수는 없을까??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절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157쪽)

 

[ 2010년 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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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스웨덴 - 국민의 집으로 가는길
신필균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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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2010년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 해였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선거는 정치적인 이슈와 경제적인 이슈가 쟁점이었다. 한국의 정치구조는 수구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현재의 한나라당)과 그들을 반대하는, 보수야당으로 불리우는 정당(현재의 민주당)으로 크게 대별되어 대통령 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수준 낮은 정치적인 이슈와 '근거없는 경제성장'을 정책으로 내걸고 진행되었다.
하지만, 2010년 지자체 선거는 식상한 이슈를 벗어난 새로운 정책의제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무상급식'이었다. 물론, 그 전 선거에서도 소수 야당이자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은 꾸준하게 무상급식을 포함한 사회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다만 거대 여당과 야당에 가려, 그들만을 링 위에 올려놓는 기득권 언론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2010년 선거에서 사회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을까? 그것은 첫째, 유권자들이 더 이상 기존 정치권과 관료, 기득권 언론의 '여론 유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는 1997년 IMF 이후 10년 동안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고실업, 고물가, 비정규직, 자산감소, 소득감소, 부동산 거품, 빈부격차, 양극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유권자들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삶이 나아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누릴 권리와 행복할 권리, 그리고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오른 두 번째 이유는 작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유권자들을 설득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의 노력일 것이다. 그들은 꾸준히 유권자들에게 사회복지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득하고 한국이 '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했다.
 
2010년을 그렇게 겪으면서 지났지만, 해가 바뀌어도 복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정당이나 연구 집단의 복지 관련 비전 발표 및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복지 예산 증가율(2010년 8.9%, 2011년 6.2%)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은, 사람들의 빈곤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쟁점화되었다. 8.24 주민투표에서 다시금 유권자들의 의지가 확인되었음에도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 “망국적 무상 쓰나미” 및 ‘복지 포퓰리즘’이 공산주의보다 위험하다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 그리고 조중동 등 기득권 언론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한국 현실과 거리가 먼 ‘복지병’을 끌어와, 복지를 삶의 개선을 도모하는 실질적 정책 및 전망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치부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정치사회적으로 최우선 의제가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만 남았다.
2010년부터 삶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이에 특정 계층에게 선택적(시혜적) 복지를 제공하자는 주장과, 모두가 복지 수혜자가 되는 ‘보편적 복지’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에서는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한번 결정된 정책이 정권 교체와는 독립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과,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찾기 어렵다.  
 
보통 복지 정책을 이야기할 때 스웨덴 사례가 빠지지 않는데, 한국의 스웨덴 사회복지 관련 연구는 조세정책이나 연금 및 보험제도, 노동시장 정책과 다양한 복지 서비스 등 정책과 제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다. 이 책은 복지 정책이 도입되고 확대된 과정과 그 맥락을 개괄하면서, 정책에 담긴 가치와 비전, 이를 구현한 정당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회단체의 역할, 정책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게끔 뒷받침하는 스웨덴의 합의 문화 등을 살핀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과 관련해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의 구도를 넘어 기본적으로 논의되어야만 할 지점이기도 하다.

전세계에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원조' 국가이자 21세기 현재도 가장 강력한 '복지국가'임을 인정받는 스웨덴...
2010년 말 The Economist는 2011년 스웨덴의 예상 GDP를 4,490억달러, 경제성장율을 2.2%, 1인당 GDP를 47,300달러로 예상했다. 1인당 FDP로는 세계 5위 수준이다. 스웨덴을 포함한 세계 정상급 국가들의 또 다른 특징은 국가 내 빈부격차가 작다는 것이다. 심지어 '복지병'을 앓고 있다고 비판받았고 상당히 복지를 축소했다던 영국, 프랑스는 그럼에도 한국보다 1인당 GDP가 훨씬 높고 빈부격차도 크게 적으며 여전히 복지수준이 정상급이다.
한국 내에서 '복지병'이니 '복지 포퓰리즘'이니 하고 떠드는 사람들은 유럽의 복지국가 역사와 유럽의 사회복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상당한 효과,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알면서도 그렇게 떠드는 것은 국민이 '무지'하다고 생각하여 속이고 선동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복지국가'였을까? 스웨덴 국민들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세계 최강의 '사회복지'를 만들어 냈을까? 스웨덴의 역사는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스웨덴 복지국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난 공부모임에서 신필균씨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저자 신필균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했고 스웨덴 정부 장학생으로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쳤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책임연구원, 스톡홀름 광역시 정보 센터 컨설턴트, 스톡홀름 광역시의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 지구를 위한 세계운동(GAP) 한국본부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정책기획수석실 비서관, (노동부)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재는 여성 정치포럼 운영위원,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시민정치 포럼 공동대표, 녹색교통운동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웨덴 사회복지의 유형과 발전상'(공저, 1999), '에코가족'(공저, 1997), 역서로 '뺀드비치 할머니와 슈퍼 뽀뽀'(2009) 등이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대학과 관공서에 근무하면서 스웨덴의 복지 역사와 개념, 구조, 정책,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복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구현되는지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독자들에게 더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스웨덴의 역사와 정치 및 복지국가의 근간을 확립한 스웨덴 사민당의 리더십과 노동조합운동의 역할(제1부)과, 정권이 바뀌더라도 복지 정책의 근본이념을 유지하는 바탕인 스웨덴의 합의 문화(제3부)를 확인해 두면, 정책의 구체적 모습이 서술된 제2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 복지 정책의 핵심 정신이라고 할 만한 ‘국민의 집’ 이념은 브란팅과 한손, 에르란데르, 팔메로 이어지는 60년 남짓 동안 스웨덴 사민당 지도부가 한결같이 공유하고 실천했던 정치철학이다. 1976년 선거를 기화로 사민당의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고, 사민당과 보수정당이 교차 집권하는 추세는 2010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국가는 보수정당의 집권 시기에도 외형적으로는 시장 원리의 도입, 민영화 등의 변화를 거쳤을지언정 보편주의적 원리만큼은 훼손하지 않았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이미 스웨덴 국가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로 정착했으며 스웨덴 사민당의 성쇠와 무관한 사안이 되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보수정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조차 이들이 집권 이후에도 스웨덴 모델을 유지/발전시키겠다는 공약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합의에 도달한 데는, 소외되는 집단이나 계층 없이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크게 기여했다. 특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 민주주의의 정신은 공동체 내에서의 참여, 존중, 합의에 있다. 한손 총리는 스웨덴 사회에서 헌법에 의해 모든 사람의 기본권과 참정권은 마련되어 있으나 민주주의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계급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보편주의를 기반으로 한 스웨덴의 양성 평등 정책은 물론, 장애를 입은 자의 일상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자는 정상화 원칙 역시 시혜적 복지 서비스가 아닌 스웨덴이 지닌 민주주의적 복지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인의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올바른 지혜와 판단력을 구사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교육 정책, 건강상 문제가 또 다른 불이익을 낳지 않게 하는 보건 의료 정책, 사회적 주택 정책과 직업교육에 중점을 둔 노동시장 정책 및 지속 가능한 생태 환경과 자원 유지를 위한 환경 정책까지도 계층 간, 세대 간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자는 민주주의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스웨덴식 보편적 복지 정책은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민주주의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철학이며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국민의 집’ 이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무엇보다 분배의 형평성이 실현되는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평등과 연대 및 사회 통합에 기초한 사회복지 정책,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이나 사유재산 폐지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민의 집’을 함께 건설하자는 연대성 강조는 비사회주의정당이나 농민, 중산계층들과의 정치적 대화와 협조를 가능하게 했다. ‘국민의 집’은 빈곤층과 노동계급만을 위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전 국민을 아우르는 포괄적이며 보편주의적인 복지 제도를 마련해 스웨덴 특유의 복지국가 모델을 이루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진보정당과 좌파정당이 눈 여겨 보아야할 대목이다. 얼마전 한국의 어느 진보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념은 해석이고 오직 푸른 것은 민중의 삶이다"라고...
 
 
스웨덴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국과 다른 국가였다. 그들은 종족간 내란도 없었고 나라가 분단된 경험도 없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이념적 갈등을 겪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더 힘들고 어려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와 쓰레기장처럼 방치된 서울에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방랑하는 빈민들의 모습은 18세기 스웨덴 도심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수 백년에 걸친 봉건 왕조의 학정과 착취, 급작스러운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 집회와 시위와 파업과 충돌의 역사는 스웨덴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복지국가'를 향한 대장정에 막 나서기 시작한 한국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준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 그냥 '북유럽 부유한 남의 나라 일'이라도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부터 극심한 빈부격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내재한 수 많은 '문제'를 생각하고 우리의 미래,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책 속에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스웨덴의 역사, 구조, 사회복지를 일구는 과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세부 복지정책, 정치인과 학자들, 정당과 단체들에 대한 것은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스웨덴 노동자의 조직율(2010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85%)과 다당제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부러워하면서 그것이 '복지국가 스웨덴'이 가능한 핵심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웨덴의 노동자 조직율이나 다당제가 19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스웨덴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봉건 왕조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 속에서 배워야하는 스웨덴의 근원적인 장점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한국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찾아낸 몇 가지 교훈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15세에서 65세까지 스웨덴 국민들 중에서 1주일에 책 한 권 이상 읽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이 무려 50%에 달하고 남성도 조금 낮기는 하지만 30%에 달한다. 2009년 한국 성인들의 독서율 평균은 1년에 11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이 채 되지 않는다. 성인들 중 약 30%는 1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2010. 01.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조사')
독서는 일종의 문화다. 책을 읽게 되면 스스로 생각하고 남의 생각이나 삶,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이다. 자신이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데 따른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문학과 과학, 이론과 사실 등에 대해 지식을 넓혀가면서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작게는 가정에서, 크게는 사회 전체적으로 이성적인 대화를 가능케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대화와 협상과 합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스웨덴인들이 처음부터 책을 그렇게 많이 읽게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웨덴이 지금과 같은 복지수준과 문화수준을 이룩하는 과정에는 책을 읽는 사람의 수와 문화가 확대되는 과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성인들이 갑자기 책을 많이 읽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얻고 생활과 실천을 통해 책을 검증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자신의 주관과 근거를 마련하고 책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10년, 50년 후의 한국의 밝은 미래에 희망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스웨덴인들의 조직화 수준과 공동체주의 문화다. 우리가 서구인들이라고 생각할 때 늘 선입견에 빠지는 것들 중 하나가 '서구인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른 유럽국가들도 다소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스웨덴의 경우 개인들이 적어도 1개 이상의 정당이나 정치조직,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이익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 뿐 만 아니라 동네모임, 지역모임, 학부모모임, 독서모임, 봉사단체, 합창단 등 문화단체 등에 상당한 비율이 가입되어 있다. 단적인 사례로, 1,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스웨덴의 전국합창단협회 소속 합창단의 500여 개나 된다. 교회합창단은 6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서구인들의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긍정적인 개인주의인 것이다. 이러한 조직과 단체, 문화는 당연하게도 '공동체주의'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화와 협의, 토론과 합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인권의 향상이 사회적인 가치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스웨덴인 대부분이 매일 조직이나 모임에 참여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시간에 한국 남성들은 야근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고 여성들은 함께 야근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가족을 챙기고 있는게 아닐지...
 

셋째는 당 지도부의 청빈한 삶으로 대별되는 '사회적 모범'이다. 책의 서문에 거론된 '야스플링 장관'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당 서기 14년, 장관직 14년, 평생동안 국회의원을 거쳐 73세에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저자가 1980년대 후반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초라한 임대아파트'에서 부인과 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당 서기와 장관, 국회의원, 국회상임위 위원장 활동을 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이나 가족, 친지, 지인들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기는 커녕)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사용하지도 축재하지도 않았고 오직 스웨덴 국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이 또한 한국의 정치인들이 느끼고 배워야 할 '모범적인 공직생활'이다. 이런 훌륭한 사람이 정치인, 지도자로 수 십년간 일했으니 어찌 청소년, 청년, 성인들이 배우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 하나 하나를 이루기 위해 100년 이상 끊임없이 싸워온 스웨덴인들의 노력이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1889년, 노동조합평의회는 1898년에 설립되었다. 사민당이 하원 의원을 처음 배출한 것은 7년 만인 1896년이었고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형성하고 입각한 것은 28년 만인 1917년이었다. 노조가 처음 총파업을 단행한 것은 1909년이었으며 4개월만에 참패하여 대량해고와 노조원 감소(50%가 줄어 8만명)를 겪었다. 1931년에는 공장폐업에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군대가 발포하여 5명이 죽기도 했다. 중앙정부가 유치원 운영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스웨덴인들이 싸움을 거쳐 완전한 보평,평등 선거권을 획득한 것은 1918년. 사회보험에 적용되는 여성들이 출산휴가와 휴가비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37년이고 보험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출산휴가비가 지급된 것은 1940년. 이 때 아동연금도 지급되기 시작했다. 노령연금제도는 1913년 처음 도입되었고 1935년 지급액과 대상이 확대되면서 기초연금법으로 변경되었다. 1944년부터 유치원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 1950년부터 9년제로 확대된 의무교육이 시작되었고 1976년부터 6세 아동에 대한 취학전 교육이 실시되었다. 대학 등록금은 전액 무료이고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학업보조금을 지원하고 대출해주기도 한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상병수당과 함께 1955년 본격 시작된다. 1935년부터 자발적 실업보험에 국가보조금이 투입되기 시작되었고 실업급여는 소득의 80%, 최장 14개월(18세 미만의 자녀가 있으면 5개월 추가), 상병급여도 있다. 임대주택은 전체의 55%, 그중 공공임대가 22%, 조합 임대가 15%이다. 모든 사회복지의 방향은 '보편주의'다.
스웨덴 국민들이 싸움을 통해 평등 선거권부터 공동임대주택까지 하나씩 마련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100년이 걸렸다. 한국의 경우 '사회복지'를 명확하게 요구로 내걸고 국민들이 싸운 것은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현실에는 수 많은 빈곤과 절망이 존재하지만 '복지국가'를 한꺼번에 서둘러 끌어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편주의'라는 방향성이다.
 
 
* 책 속의 문장 : 이 책은 소개할 좋은 내용이 생각보다 많다. 이 서평을 다 읽느니 차라리 책 한 권을 구해서 스스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 스웨덴 국가와 사회는 어느 세력이나 개인이 절대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관습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극소수 부유층에 실질적으로 정치사회적 권력이 집중되는 데 반해, 스웨덴은 이를 법률이 아니라 사회적 균형에 의해 해결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어느 정당도 다른 정당의 협조 없이 정책을 관철,지속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스웨덴의 선거제도가 어느 한 정당에 의한 다수 지배를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p.72~73)

- 1960년 '아동돌봄법'이 제정되면서 이미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 수요만을 충족하는 데 급급했던 ‘처방적 복지’ 대신, ‘예방적 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다. 여기에는 자녀 부양 가족을 안정시키기 위한 예방적 처방의 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과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 연극, 스포츠 등 방과 후나 휴일을 이용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이 전국적으로 실효성을 거두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1960년대 말 모든 코뮨이 이를 시행하여 보편적 아동 정책을 완성했다.(p.92)

- 가족 정책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의 빈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문제와 1930년대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스웨덴 가족 정책에서는,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이나 해결 방식이 포괄적이고 통합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출산을 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모두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의 조화와 역할 분담 문제로 본다.(p.103~104)

-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스웨덴 노인 정책이 월등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인에 관한 문제를, 사회복지 정책이 논의되던 19세기 말부터 가족 내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개인의 ‘생애 주기’적 관점에 그치지 않고, ‘가족’의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 좀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노인 문제 해결책을 시도했다. 스웨덴의 노인 정책은 한편으로 노인의 경제 문제, 서비스 문제, 거주 문제와 같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다른 한편 광역 정부와 기초 정부의 상호 보완적 행정 체계를 통해 포괄적인 효과성을 도모해 왔다.(p.116)

- 스웨덴빈곤가족돌봄협회는 노동문제를 제외하고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든 생활 문제를 다루었다. 당시 이들은 ‘빈곤’의 개념을 ‘사회적 질병’으로 정의하고 결코 개인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이 병은 심지어 사회적 강자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고, 이미 빈곤 상태로 전락한 시민들은 또 다른 시민에게 이를 전염시킬 수 있어서 결국 전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라며 사회적 책임론을 강하게 피력했다.(p.120)

- 스웨덴의 연금 개혁 이후 스웨덴이 지금까지 지녀 온 주요 복지국가 원칙들, 즉 소득 보장 원칙과 보편주의적 분배 정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기초 연금이 폐지되어 보편주의가 약화된 점과, 프리미엄 연금제도가 도입되어 연금제도 성격이 사회보장의 의미에서 개인 보험으로 바뀐 점 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개혁 제도는 구제도가 안고 있었던 남녀 차이 및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전문직 노동자 사이에서 빚어졌던 불공정성을 해소해 재분배 원칙을 강화했다. 그 결과 30년 이상 저임금을 받아 왔던 노동자와 시간제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는 새 제도 덕분에 연금 급여가 상승했다. 그리고 각종 사회보장 급여가 소득으로 간주되어 기여금이 적립되는 점은, 특히 출산휴가와 관련해 남녀의 기회 평등을 장려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p.155)

- 스웨덴에서 공교육 개념은 국가가 재정을 부담하는 것을 기본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교육 자료와 급식 및 그 밖의 모든 부수적인 비용에 대해서 학부모가 일체의 부담을 지지 않음을 뜻한다.(p.210)

- 스웨덴 대학의 특징은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대학 수준의 편차가 없으며, 학비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생이 되면 부모로부터 자립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독립적으로 조달하는 문화가 있다. 정부는 학생보조중앙위원회를 두고 소득이 없는 학생들이 원활히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정액의 학비 지원금을 대출해 준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이내에 대학 진학의 길을 선택하는 수는 전체 졸업생의 3분의 1이 조금 넘는 43퍼센트에 불과하다.(p.226~227)

- 유념할 만한 가장 중요한 점은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추진했다고 해서 환자의 부담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과,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합하면 스웨덴 의료 개혁은 공급의 효율성 측면에 중점을 두고, 1차 의료 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면서, 종합병원의 비용 절감을 유도했다. 동시에 추가 비용의 투입 없이도 의료 체계의 질적 향상, 관료가 아닌 환자 중심의 행정, 병원 경영의 합리화가 이루어졌다.(p.244)

- 스웨덴 주택 유형의 특성 가운데 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찍이 주거권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비자 조합이 주택 건설 회사를 운영해 주택에 관한 조사 연구와 주택 공급을 통해 소비자가 정책과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정부가 시민의 주거 문제를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삶의 터전 마련을 도와주는 주거 복지 차원에서 주택 건설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주택 정책의 이름을 “모두에게 주택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p.264)

- 코뮨이 공급하는 주택의 종류에는 일반 임대 아파트 외에 수요자의 특성에 따라 원룸 학생 아파트, 학생 가족 아파트, 노인들을 위한 특수 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공급한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임시로 주거지를 찾는 청소년과 여성 등을 위해 가구가 갖추어진 호텔형 아파트도 운영한다. 그 외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주거 시설의 개보수 공사를 맡아 한다.
임대 아파트는 신청 순번대로 분양되는데, 도심지에 가까울수록 기다리는 기간(1~15년)이 길다. 행정 당국은 자녀가 있는 경우나 의학적 사유에 의한 상황을 참작하여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정부는 부족한 임대 아파트의 입주 대기 기간을 줄이기 위하여 민간 건축 회사가 제공하는 새 건축 임대 아파트의 3분의 1을 코뮨 임대주택 중개소 목록에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여 민간 임대주택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p.268)

- 공공 주택이나 민간 회사의 임대료 책정은 기본적으로 제도적 장치에 의해 집 주인(건물 소유자)과 세입자 조합 간에 지역 단위의 단체 협상으로 결정된다. 지역 단위에서 협상이 결렬될 경우에는 중앙 차원에서 재협상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협상 주체로 참여하는 기관은 세입자전국연합과 SABO이다. 민간 임대주택일 때는 건물소유자연합이 참여한다. 임대료를 책정하는 기준은 당연히 주택의 질적 수준(가치)이며, 일반적으로 ‘동급의 아파트에 동일한 집세’라는 법 원칙을 준수한다. 이런 사회적 원칙은 세입자 주거권 보호로 이어지며 공공 주택의 임대료 수준은 민간 임대주택의 임대료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p.269)

- 한국 삼성연구소는 2010년 5월 선진화 지표를 중심으로 OECD 30개국을 조사한 결과 스웨덴을 가장 선진화가 잘 이뤄진 국가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23위였다. 조사 기준은 역동성을 중심으로 자부심,자율성,창의성,호혜성,다양성,행복감 등 7대 지표를 사용했다. 그리고 2006년 유엔개발지수조사는 스웨덴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발표했고, 2004년에도 '뉴스위크'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로 꼽혔다. '뉴스위크'는 그 이유로 보건 의료 제도의 발달과 혁신, 연구가 뛰어나다는 것을 들고 있다. 조사와 평가 자료에는 유엔 개발 지수, 국제경쟁력 지수, 세계 경제 안전 지수, 교육 및 문맹 지수, 청렴성 지수 등이 사용되었다.(p.330)

- 한 국가의 운영 체계와 국민의 실생활이 천국과 지옥을 그리 쉽게 넘나들지 않는다는 것은 웬만한 지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스웨덴은 천국도 아니지만, 복지 제도가 실패한 나라도 아니다. 1936년에 한 미국 저널리스트는 “주식회사 스웨덴의 성공은 기꺼이 적응하고 타협하려는 스웨덴 사람의 성향에 있으며 스웨덴 사람들은 사회질서의 성공적 작동 가능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궁극적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p.331)

- 산업화 초기부터 스웨덴은 보편적 기초 연금에 관한 합의(1935년), 살트셰바덴 합의(1932~38년), 소득 연금 개혁(1957년), 원자력발전소 증축 문제(1980년), 유럽연합 가입(1994년) 등에서 보듯이 중대하고 복잡한 정책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낸 전통이 있다. 많은 국가들은 이와 비슷한 문제나 사안에 관한 정책 결정을 두고 오랜 진통을 겪고도 해결하지 못하거나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사후에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p.332)

- 스웨덴에서의 커피 타임은 직장 문화의 하나다. 일과에서 오전과 오후 두 번은 개인별이 아니라 집단별로 함께 휴식을 취한다. 이 시간에 주고받는 이야기는 잡담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사무적인 일과 관련이 있다. 스웨덴 국민은 신문이나 정보지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독서율도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일반 상식이 풍부하고 소신이 강해 커피 타임에 나누는 대화는 정보를 얻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검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토론되는 국가적 사안도 직장에서의 커피 타임 주제가 된다.(p.334~335)

-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나 합의 자체의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합의’는 다양성에 대한 자극과 도전을 약화하거나 창의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지적된다. 합의되었기 때문에 그저 따르면 된다는 태도가 지닌 수동성 때문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소모하면서 이루어진 합의는 실행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합의’의 절대적 장점은 결정 단계?과정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정된 사항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또한 구성원의 헌신과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갈등 탓에 발생하는 지체와 불안정을 사전에 예방해 장기적으로 더욱 큰 이익을 가져온다.(p.335)

- 스웨덴은 결코 지상에 실현된 낙원도 아니며 행복한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통 복지국가를 하나하나 허물며 세계화 물결 속에 동참하는 국가는 더욱 아니다. 스웨덴은 자유/연대/복지/환경과 같은 근대적 이상을 향해 현실이라는 거친 여로에서 오늘도 좌우를 더듬으며 느리지만 쉬지 않는 달팽이의 행로를 계속하고 있다. 어찌 보면 순하고 부지런한 이 달팽이의 행로에서 21세기 인류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큰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p.357)  

 
[ 2011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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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심 - 상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고를 때 적지 않게 고민했다.
그 이유는 이 소설도 전에 읽었던 작가의 백탑파 시리즈-방각본 살인사건, 열하문의 비밀, 열하광인-처럼 상,하 2권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출판사의 욕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프랑스로 ’팩션 기행’을 떠나면서 <중앙일보>에 연재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 것도 원인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상술’의 주체가 출판사이지 작가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중앙일보>에 기행문을 연재했는지 구체적인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그 건은 보류하리라 마음먹었다.
’소설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구입한 후, 먼저 읽지 않고 여자후배에게 먼저 읽기를 권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친구는 소설의 다 읽지 않았고 상,중,하권 중 중권까지 읽다가 덮었다고 한다.
그 후배는 역사학과 출신이기에 역사의식에 대한 자신의 고민이 많았던 친구다.
글도 곧 잘쓰는 친구인데 무엇이 그 친구에게 독서를 중단시켰는지는 내가 모두 읽은 후에 물어봐야 하겠지...
 
작가의 소설은 ’치밀한 고증’이 특징이다.(물론, 다른 소설가들이 고증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큰 갈림길이 되었던 조선 후기 ~ 말기에 대한 작가의 글이 여전히 궁금했다.
이 소설 역시 작가가 고증을 위해 나름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는 下권에 자신이 파리와 마르세이유, 탕헤르에서 리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과정을 설명한다.)
 
리심(梨心)은 19세기 말 개화기 조선의 실존 인물로 프랑스 외교관과 사랑에 빠졌던 궁중 무희다. 초대 그리고 3대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그녀의 연인이다. 리심은 1893년 5월 빅토르 콜랭을 따라 조선 여성 최초로 프랑스에 발을 디뎠다. 1894년 10월 플랑시가 모로코 대사로 부임하면서 역시 최초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조선 여성이 되었다. 1896년 플랑시를 따라 귀국한 후 궁중 무희로 복직했으나 금조각을 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리심에 대한 기록은 2대 프랑스 공사였던 프랑뎅의 회고록 『한국에서(En Cor?e)』을 통해 전한다. 프랑뎅에 따르면 리심은 “유럽인의 눈으로 봐도 정말 아름다웠고”, “폭넓은 정신과 예술적 자질”을 지닌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저자 김탁환이 리심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소설을 쓰기 2년 전 우연히 프랑뎅의 회고록 <한국에서(En Cor?e)>를 읽다가 “리심은 자신이 관찰한 놀라운 서양 문물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록해 두었는데, 나는 언젠가 그 기록들을 꼭 출판하려고 다짐하고 있다.”라는 대목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이 문장에서 착상을 얻은 저자는 리심이 기록해 두었으나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처음 예상한대로 이 소설이 단순한 ’애정소설’은 아니다. 궁중 무희와 외국 외교관과의 애절한 Love Story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작가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다. 그리고 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120년이 지난 21세기 한반도에 여전히 비슷한 상태로 남아있지 않나 싶다.

 

-------[ 중권 ] -------

이 소설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나아갈 진(진) : 궁녀로서의 삶, 과거의 아픈 기억, 고종과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과의 만남으로 인해 조선을 떠나는 운명이 나타난다.
두번째는 흐를 류(류) : 빅토르 콜랭을 따라 일본, 프랑스, 모로코 탕헤르, 사하라 사막, 마르세이유를 여행하며 다양한 서구 문화와 사람들과의 관계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번째는 돌아올 회(회) : 조선의 외교관으로 돌아온 빅토르 콜랭을 따라 돌아오지만 고종과 빅토르 콜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다시 궁중의 무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고종 황제 즉위식 특별 공연에서 자신의 마지막 춤을 추고 이승에서 사라진다.

<상권> 주인공 리심의 어머니 월선은 "야소교(천주교)"에 빠져 신부와 함께 리심을 버리고 도망간다. 그 때문에 리심은 관가에 잡혀서 혹독한 관기 생활을 시작한다. 어머니를 닮아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던 리심은 어떤 관리의 추천을 받아 궁궐에 약방 기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궁에 들어가서도 의술을 익히고, 춤을 익힌다. 또한 밤에는 상궁(’큰아줌마’)의 도움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을 읽으며 나름대로는 세상을 배워 간다. 그러다가 중간에 큰아줌마와 김옥균이 궁궐에 난입하는 사건(갑신정변)이 발생한다. 리심은 사건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조사받다가 중전(명성황후)가 살려준다. 중전의 발을 씻기고 중궁전 앞마당에 온종일 서있는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다시는 춤과 노래, 의술, 서책을 가까이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리심은 밤에 몰래 장악원에서 춤을 익혀서, 사람들로 하여금 귀신이 살고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중전은 리심이 춤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던 중, 왕실에서 외교관들을 모두 불러 놓고 베푼 축하연에서 리심은 선모(춤꾼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프랑스 공사인 빅토르 드 플랑시는 리심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원래 선모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발목을 삐어 리심에게 자리를 내어준 영은이나, 함께 춤을 추었던 지월, 빅토르, 그리고 고종 모두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만, 정작 리심의 입장에서는 어떤 행동을 어떤 의도로 했는 지,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리심이 한 일이 진짜인지, 그들의 편견에서부터 온 것인지 아무것도 해명이 되지 않는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리심은 어린 소녀에서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다. 

<중권> 리심이 외교관인 빅토르를 따라 세계를 물 흐르듯 돌아다니는 내용이 나온다. 본문에서도 외교관은 "흐를 류"자와 닮아있다고 빅토르가 말하는 구절이 있다. 두번째 권에서는 리심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일이 벌어진다. 빅토르 콜랭은 일본을 거쳐 파리로 돌아간다. 일본에서 리심은 김옥균을 만난다. 빅토르는 파리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파리에 도착해서도 몇 개월간 병원에 입원한다. 리심은 파리에서 ’파리지엔’으로서 삶을 하나씩 배우고 적응한다. 그러던 중 동양인을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여 유산하면서 우울한 삶이 된다. 파리에 도착한지 1년 후 빅토르는 모로코 탕헤르에 파견가게 되고 리심을 빅토르를 따라 탕헤르에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을 만난다. 리심은 사하라사막을 구경하고 싶어 빅토르를 졸라 사하라사막을 건너기 시작하지만 서양인을 거부하는 베두인들에게 약탈당하고 사막폭풍을 맞아 외톨이가 된다. 리심이 착한 사막의 베두인들에게 구출되고 그들에게서 깨달음을 얻을 때 빅토르는 프랑스군과 함께 닥쳐와 리심을 도운 베두인들을 모두 살해한다.

<하권> 리심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공화주의자가 되어 빅토르와 함께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조선은 중전이 시해당하고(을미사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고 있는 상황(아관파천)이었다. 그 와중에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고 있고, 각국 외교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 리심은 조선에서도 프랑스에서 입던 복식으로 생활한다. 리심은 이제 조선여자도 아니고 프랑스여자도 아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그냥 "리심"일 뿐이다. 사랑은 믿을 수 없고,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서로간의 교류일 뿐이었다. 리심은 빅토르에게 일순간 실망했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고종은 프랑스의 도움을 빌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싶어한다. 거기에 과격한 홍종우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빅토르는 그들에게 쉽게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한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프랑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리심은 다시 궁중으로 잡혀가 춤을 익히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마련한 축하연에서 다시한 번 빅토르와 고종 앞에 선모로 선 자리에서 자살한다.

<프랑스 외교관 프랑댕 (Frandin)의 회고록에 남아있는 동료 외교관(플랑시를 칭함)과 궁중 무희의 사랑에 대한 기록>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890년대 초기의 일이다. 당시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관의 대리공사 (Charge d’affaires ? Collin de Placy)가 왕궁 소속의 어느 무희(danseuse)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 여인과 서양인 사이의 최초의 사랑이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이들은 함께 프랑스로 와서 결혼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무희가 프랑스에 왔다 간 최초의 한국여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왕궁에 예속된 무희들 가운데 인물이 빼어나게 예쁜 무희가 있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보아도 두말 할 여지가 없는 미인이었다.
어느 젊은 프랑스 대리공사(‘콜랭 드 플랑시’를 일컬음)가 ? 그 분이 아직도 살아 있으므로 이름을 밝힐 수 없다 ? 이 젊은 여인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었다. 대리공사가 고종 황제(이희)에게 이 여인을 요구하자 황제는 너그럽게도 그녀를 (선물로) 하사했다. 무희는 근본이 노비 출신이므로 저항없이 새 주인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럽으로 돌아가게 된 대리공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이 젊은 한국 여인의 지적인 우수성에 끌리게 되었다. 그녀와 떨어질 수 없게 되자 그녀를 프랑스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 나(저자, 프랑댕)는 대리공사의 집에서 문제의 그 무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 고유의 옷을 입은 미녀를 보고 나도 감탄해 마지 않았다.

프랑스 공사가 한국을 떠나는 날, 작별 인사를 할 때 그녀가 우아한 빠리지엔느 같은 의상을 차려입은 것을 보고 놀라,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불안한 예감마저 들었다. 법썩 가운데서도 ‘Li Tsin ? Fleur d’ame’ 이라 (‘리화심, 李花心’ 또는 ‘리심, 李心’ 을 표기한 것) 이름한 이 무희의 깊고 맑은 눈 만은 반짝였고, 그녀의 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동료이자 친구인 외교관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그녀와 결혼하겠습니다. 당신은 리심의 마음이 얼마나 고운지 모르실 겁니다. 한국에서는 여신이 될 만한 미인이며, 프랑스에서는 천사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유럽에 도착하자, 그는(플랑시 공사) 약속대로 ‘노비’와 결혼하였고, 그의 아내가 된 리심에게 각종 개인 교수를 대어 주었으며 지도교수들은 모두 이 한국 여인의 적응 능력과 예술적인 본능을 인정했다. 천재적인 이 여인은 프랑스의 관습, 카톨릭 교리에 감탄하였으며, 아름다운 서구 언어에도 곧 친숙해 졌다. 그녀는 보고 느낀 것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썩 잘 썼는데, 언젠가는 그녀가 쓴 것을 발표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나친 지적 감수성 때문인지, 오래지 않아 리심은 날마다 접촉하는 유럽 여인에 비해 신체적인 열등감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심에 잠겼다. 남편의 부드러운 사랑에도 불구하고 날로 수척해 갔다.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우수(brumes, 근심)가 동양의 뜨거운 태양에 거슬린 그녀의 이마를 덮고 떠나지 않았다.
가련한 작은 한국여인은 하도 야위어서 소파에 깊이 앉아있는 것을 보면, 우스개 말로, 원숭이에게 여자 옷을 입힌 것과 같이 보일 정도였다. 폐병으로 기침을 하기 전, 리심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할 때, 리듬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기우려 황홀하게 듣곤했다. 리심은 멋진 말을 골라 장면을 묘사하면서 색채를 가미했다.

여러 달이 흘렀다. 휴가가 끝나 대리공사는 부인을 혼자 집에 두게 되었으며, 부인을 위해 한국식 안방을 꾸몄다. 그 후, 어느 날, 대리 공사는 다시 서울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 사실이 궁녀출신의 그의 부인에게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짐을 꾸려 그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서울에는 리심의 적이 있었는데, 어느 고관이었다. 아무리 숨어있다 해도 그녀가 서울에 돌아왔다는 사실은 곧 알려지게 되었다.
외국인과 결혼했다 하여 노비의 신분을 면하는 것이 아니었다. 왕 자신이 한 여인의 신분을 해방시켜 주고 싶어도 못하는 사회였다. 전 주인이 리심을 데려간 것이다. 그녀는 저항해 보지도 않고 되는대로 자신을 내맡겼다. 왕립 무희단(college)에도 강제 편입되어 다시 궁중무희로 옛 직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인권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고 서양문화를 접했던 리심은 사슬에 매인 육신에 다시 멍이 들기 전에 금 조각(feuille d’or)을 삼키고 자살하고 말았다.
나(저자, 프랑댕)는 ‘야만인들’ 가운데 방황한 이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을 이길 수가 없었다. 먼 후세의 개화한 한국 사회에 살아야 될 이 여인이, 신의 의지로, 너무 일찍 조선에 태어났던 것이다.
 

-----[ 하권 ] --------

저자의 역사소설, 팩션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 역시 기록으로만 보아서는 아마도 리심이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 가본 여성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여 전개한다.
갑신정변-갑오개혁-을미사변-아관파천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역동적인 근대사 와중에 살았던 리심이었기에 저자는 절묘하게 그 시대적인 격변 속에 리심이 자리잡게 하여 소설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궁녀 -> 파리 공사관의 아내(?) -> 궁녀로 이어지는 그녀의 인생은 천당과 지옥을 오고갔다.
조선시대 궁녀는 ’관비’, 말 그대로 관의 노비일 뿐이며 왕의 소유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은 프랑스 공사에게 궁녀를 선물로 ’하사’했고 다시 필요할 때가 되어 선물을 돌려받았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궁중 무희로 돌아간 리심은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그 사실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일본, 청나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과 외교적인 협상을 위해 리심을 이용한 것으로 줄거리를 전개한다.
 
물론 조선왕조시대, 전근대적인 사회체제에서 서구 문화를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수많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사대부 집안의 여인들마저 유교문화 속에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
여성으로, 그것도 궁중의 노비라는 처지를 벗어나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문화에서 받았을 충격...
각종 행사와 무도회, 거리의 모습, 에펠탑과 대극장, 상점과 식당 등...
1년 이상 프랑스에 머물르고 나름대로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익힌 상태에서 리심은 자의식과 자존감을 키웠을 것이고 다시 지옥같던 궁중무희로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과거의 리심이 아닌 상태...
그런 상황에서 리심에게는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리심을 통해 19세기 말 조선 말 근대여성들의 희망과 절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나마 당시 수 많은 조선의 여성들에 비해 리심은 잠시나마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조금 소설적 요소로 인정하기에 어려운 부분은 몇 가지...
먼저, 리심이 갑신정변에 연루된다는 설정...
상궁이었던 ’큰아줌마’가 리심을 어머니처럼 돌봐주었다 하여 갑신정변과 같은 큰 거사에 리심을 끌여들였다는 설정도 그렇고 갑신정변에 연루된 리심을 중전이 살려둔다는 설정도 약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둘째는 김옥균과 관련된 일화들..
일본에서 김옥균과 마주치던 상황을 왜 설정했는지 조금 의아하다.
셋째는 고종이 리심과 잠자리했다는 설정...
당시 고종은 조선의 왕이었기에 굳이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리심은 궁녀이기 때문에 리심이 파리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공화주의자로서의 리심의 설정...
20년 가까이 조선에서 궁녀로 살았던 리심이 1년 넘게 서구의 책을 읽고 토론한다 하여 공화주의를 이해하고 공화주의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 2010년 6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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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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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버스, 배, 비행기, 기차, 전철에서부터 마차, 인력거, 자전거와 같이 인류가 만들어낸 '이동 수단'은 종류가 많다. 마차나 인력거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동수단도 있고 고속철도와 같이 새로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물론,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같이 수 억년 전부터 자신의 몸으로 이동해 왔다.
인간에게 '발' 이외의 이동수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자동차를 주차장에 버려두고 일상생활에서 '걷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 '악센트'를 운전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 11월이니 약 10년 간 자동차가 주요 이동수단이었 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10년 간 자동차를 이용한 일상생활과 업무진행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기름값, 자동차세, 보험료, 주차료, 과태료 등 '걷기' 및 대중교통과 비교도 되지 않을 뿐더러 출퇴근 시간에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교통사고 위험성에 늘 긴장해야 했으며, 운동부족과 스스로 나태함이 늘어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2000년에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할 때 조금 '편했던 것'과 1년에 몇 차례 긴급하게 이동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는 도움을 받았다.
 
자동차는 내가 어떤 태도와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 때 사업을 벌였을 때는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회사의 이미지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기도 했고 심지어 몇 개월간 기사를 두기도 했다. 미팅을 하거나 식사약속을 할 때 주차가 가능하거나 발레파킹이 되는 곳을 찾게 되면서 그 대가로 비싼 음식점과 호텔 커피숍에서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야근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막히는 도로가 싫어서 일부러 자정을 넘겨서 퇴근하여 스스로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걷기'를 이동의 주요 수단으로 결심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이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생각보다 걸어다니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은 무척 편리했고 밤 늦은 시간까지 운영되어 있었다. 대중교통은 여름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이 잘 이루어졌고 환승시스템도 좋았다.
걷게 되면서 기초적인 운동량이 받춰주었다. 평일 하루에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이 넘게 걷게 되었고 주말에는 2~3시간씩 걷기도 한다. 걸어 다니니까 좋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책은 제목대로 '걷기'를 찬양하기 위해 쓴 것이다. 즉,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걷기'를 다각도에서 예찬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걷기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한 책이라면 그게 여행서든 인문서든, 소설이든 죄다 인용하고 끌어다 댄다. '걷기'를 통해 본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불행해진 것은 속도전의 광풍에 휘말려 이 '걷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첫 걸음, 시간의 왕국, 몸, 짐, 혼자서 아니면 여럿이?, 상처, 잠, 침묵, 노래부르기... 이런 소제목만 보아도 걷는 즐거움이 얼마나 다양한 지 알 수 있다. 저자는 혼자서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가만히 서서 쇼윈도를 바라보아도 '왜?'라고 묻는 사람도 없고, 사색에 빠지기에도 너무 좋다는 것...
그리고 저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과 숲 속에서 걷는 것 뿐 아니라 '도시에서 걷기'에 대한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기처럼 걷기를 즐긴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 키에르 케고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세갈렌, 피에르 쌍소, 랭보, 니체,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 등이 있다. 이들은 여행을 즐겼으며, 걷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내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좆아 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라고 어느 편지에서 썼다.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 몫을 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루소에게 있어 걷기는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의 무한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찬 길을 행복하게 즐기는 행위였다.
그들은 운동 차원에서의 '걷기'를 말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 '걷기'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의 걷기,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걷기, 몸이 베푸는 혜택으로서의 걷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고 생명의 예찬이며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기존에 펴낸 저서만 보더라도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위험의 열정], [살아있는 몸],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몸이여 안녕] 등 '몸'과 관련한 것들이 많다.
 
 
이 책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셈이다. 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추천한 50권 중에서 15번 째로 읽은 것이다. 법정스님은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에 와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면서 직립보행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 자동차로 인해 행동반경은 넓어졌지만 내 다리로 땅을 딛고 걸을 때의 그 든든함과 중심 집합이 소멸되어 가는 듯 싶다. ...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당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걷기 시작하면서 나의 '걷기'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저자가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설득력있게 들려주는 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사실 어제 밤에는 모처럼 친구와 함께 15km 이상을 함께 걸었다. 추석 연휴 내내 '이유없이 구속되어 보이지 않던 보름달'이 어제 밤에는 구름 사이로 석방되어 나왔다. 안양천 뚝방길을 걸으니 강아지풀과 코스모스가 한창이었고 은은하게 달빛을 세례받은 듯한 풀과 꽃과 작은 길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달 빛 속에 친구와 나란히 걸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사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런 것이 '걷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걷고 싶다...^^
 
[ 2011년 9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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