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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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버스, 배, 비행기, 기차, 전철에서부터 마차, 인력거, 자전거와 같이 인류가 만들어낸 '이동 수단'은 종류가 많다. 마차나 인력거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동수단도 있고 고속철도와 같이 새로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물론,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같이 수 억년 전부터 자신의 몸으로 이동해 왔다.
인간에게 '발' 이외의 이동수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자동차를 주차장에 버려두고 일상생활에서 '걷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 '악센트'를 운전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 11월이니 약 10년 간 자동차가 주요 이동수단이었 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10년 간 자동차를 이용한 일상생활과 업무진행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기름값, 자동차세, 보험료, 주차료, 과태료 등 '걷기' 및 대중교통과 비교도 되지 않을 뿐더러 출퇴근 시간에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교통사고 위험성에 늘 긴장해야 했으며, 운동부족과 스스로 나태함이 늘어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2000년에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할 때 조금 '편했던 것'과 1년에 몇 차례 긴급하게 이동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는 도움을 받았다.
 
자동차는 내가 어떤 태도와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 때 사업을 벌였을 때는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회사의 이미지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기도 했고 심지어 몇 개월간 기사를 두기도 했다. 미팅을 하거나 식사약속을 할 때 주차가 가능하거나 발레파킹이 되는 곳을 찾게 되면서 그 대가로 비싼 음식점과 호텔 커피숍에서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야근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막히는 도로가 싫어서 일부러 자정을 넘겨서 퇴근하여 스스로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걷기'를 이동의 주요 수단으로 결심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이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생각보다 걸어다니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은 무척 편리했고 밤 늦은 시간까지 운영되어 있었다. 대중교통은 여름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이 잘 이루어졌고 환승시스템도 좋았다.
걷게 되면서 기초적인 운동량이 받춰주었다. 평일 하루에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이 넘게 걷게 되었고 주말에는 2~3시간씩 걷기도 한다. 걸어 다니니까 좋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책은 제목대로 '걷기'를 찬양하기 위해 쓴 것이다. 즉,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걷기'를 다각도에서 예찬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걷기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한 책이라면 그게 여행서든 인문서든, 소설이든 죄다 인용하고 끌어다 댄다. '걷기'를 통해 본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불행해진 것은 속도전의 광풍에 휘말려 이 '걷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첫 걸음, 시간의 왕국, 몸, 짐, 혼자서 아니면 여럿이?, 상처, 잠, 침묵, 노래부르기... 이런 소제목만 보아도 걷는 즐거움이 얼마나 다양한 지 알 수 있다. 저자는 혼자서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가만히 서서 쇼윈도를 바라보아도 '왜?'라고 묻는 사람도 없고, 사색에 빠지기에도 너무 좋다는 것...
그리고 저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과 숲 속에서 걷는 것 뿐 아니라 '도시에서 걷기'에 대한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기처럼 걷기를 즐긴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 키에르 케고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세갈렌, 피에르 쌍소, 랭보, 니체,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 등이 있다. 이들은 여행을 즐겼으며, 걷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내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좆아 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라고 어느 편지에서 썼다.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 몫을 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루소에게 있어 걷기는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의 무한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찬 길을 행복하게 즐기는 행위였다.
그들은 운동 차원에서의 '걷기'를 말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 '걷기'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의 걷기,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걷기, 몸이 베푸는 혜택으로서의 걷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고 생명의 예찬이며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기존에 펴낸 저서만 보더라도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위험의 열정], [살아있는 몸],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몸이여 안녕] 등 '몸'과 관련한 것들이 많다.
 
 
이 책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셈이다. 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추천한 50권 중에서 15번 째로 읽은 것이다. 법정스님은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에 와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면서 직립보행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 자동차로 인해 행동반경은 넓어졌지만 내 다리로 땅을 딛고 걸을 때의 그 든든함과 중심 집합이 소멸되어 가는 듯 싶다. ...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당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걷기 시작하면서 나의 '걷기'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저자가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설득력있게 들려주는 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사실 어제 밤에는 모처럼 친구와 함께 15km 이상을 함께 걸었다. 추석 연휴 내내 '이유없이 구속되어 보이지 않던 보름달'이 어제 밤에는 구름 사이로 석방되어 나왔다. 안양천 뚝방길을 걸으니 강아지풀과 코스모스가 한창이었고 은은하게 달빛을 세례받은 듯한 풀과 꽃과 작은 길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달 빛 속에 친구와 나란히 걸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사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런 것이 '걷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걷고 싶다...^^
 
[ 2011년 9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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