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스웨덴 - 국민의 집으로 가는길
신필균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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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2010년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 해였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선거는 정치적인 이슈와 경제적인 이슈가 쟁점이었다. 한국의 정치구조는 수구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현재의 한나라당)과 그들을 반대하는, 보수야당으로 불리우는 정당(현재의 민주당)으로 크게 대별되어 대통령 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수준 낮은 정치적인 이슈와 '근거없는 경제성장'을 정책으로 내걸고 진행되었다.
하지만, 2010년 지자체 선거는 식상한 이슈를 벗어난 새로운 정책의제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무상급식'이었다. 물론, 그 전 선거에서도 소수 야당이자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은 꾸준하게 무상급식을 포함한 사회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다만 거대 여당과 야당에 가려, 그들만을 링 위에 올려놓는 기득권 언론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2010년 선거에서 사회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을까? 그것은 첫째, 유권자들이 더 이상 기존 정치권과 관료, 기득권 언론의 '여론 유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는 1997년 IMF 이후 10년 동안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고실업, 고물가, 비정규직, 자산감소, 소득감소, 부동산 거품, 빈부격차, 양극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유권자들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삶이 나아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누릴 권리와 행복할 권리, 그리고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오른 두 번째 이유는 작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유권자들을 설득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의 노력일 것이다. 그들은 꾸준히 유권자들에게 사회복지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득하고 한국이 '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했다.
 
2010년을 그렇게 겪으면서 지났지만, 해가 바뀌어도 복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정당이나 연구 집단의 복지 관련 비전 발표 및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복지 예산 증가율(2010년 8.9%, 2011년 6.2%)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은, 사람들의 빈곤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쟁점화되었다. 8.24 주민투표에서 다시금 유권자들의 의지가 확인되었음에도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 “망국적 무상 쓰나미” 및 ‘복지 포퓰리즘’이 공산주의보다 위험하다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 그리고 조중동 등 기득권 언론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한국 현실과 거리가 먼 ‘복지병’을 끌어와, 복지를 삶의 개선을 도모하는 실질적 정책 및 전망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치부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정치사회적으로 최우선 의제가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만 남았다.
2010년부터 삶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이에 특정 계층에게 선택적(시혜적) 복지를 제공하자는 주장과, 모두가 복지 수혜자가 되는 ‘보편적 복지’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에서는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한번 결정된 정책이 정권 교체와는 독립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과,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찾기 어렵다.  
 
보통 복지 정책을 이야기할 때 스웨덴 사례가 빠지지 않는데, 한국의 스웨덴 사회복지 관련 연구는 조세정책이나 연금 및 보험제도, 노동시장 정책과 다양한 복지 서비스 등 정책과 제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다. 이 책은 복지 정책이 도입되고 확대된 과정과 그 맥락을 개괄하면서, 정책에 담긴 가치와 비전, 이를 구현한 정당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회단체의 역할, 정책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게끔 뒷받침하는 스웨덴의 합의 문화 등을 살핀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과 관련해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의 구도를 넘어 기본적으로 논의되어야만 할 지점이기도 하다.

전세계에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원조' 국가이자 21세기 현재도 가장 강력한 '복지국가'임을 인정받는 스웨덴...
2010년 말 The Economist는 2011년 스웨덴의 예상 GDP를 4,490억달러, 경제성장율을 2.2%, 1인당 GDP를 47,300달러로 예상했다. 1인당 FDP로는 세계 5위 수준이다. 스웨덴을 포함한 세계 정상급 국가들의 또 다른 특징은 국가 내 빈부격차가 작다는 것이다. 심지어 '복지병'을 앓고 있다고 비판받았고 상당히 복지를 축소했다던 영국, 프랑스는 그럼에도 한국보다 1인당 GDP가 훨씬 높고 빈부격차도 크게 적으며 여전히 복지수준이 정상급이다.
한국 내에서 '복지병'이니 '복지 포퓰리즘'이니 하고 떠드는 사람들은 유럽의 복지국가 역사와 유럽의 사회복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상당한 효과,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알면서도 그렇게 떠드는 것은 국민이 '무지'하다고 생각하여 속이고 선동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복지국가'였을까? 스웨덴 국민들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세계 최강의 '사회복지'를 만들어 냈을까? 스웨덴의 역사는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스웨덴 복지국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난 공부모임에서 신필균씨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저자 신필균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했고 스웨덴 정부 장학생으로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쳤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책임연구원, 스톡홀름 광역시 정보 센터 컨설턴트, 스톡홀름 광역시의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 지구를 위한 세계운동(GAP) 한국본부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정책기획수석실 비서관, (노동부)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재는 여성 정치포럼 운영위원,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시민정치 포럼 공동대표, 녹색교통운동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웨덴 사회복지의 유형과 발전상'(공저, 1999), '에코가족'(공저, 1997), 역서로 '뺀드비치 할머니와 슈퍼 뽀뽀'(2009) 등이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대학과 관공서에 근무하면서 스웨덴의 복지 역사와 개념, 구조, 정책,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복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구현되는지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독자들에게 더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스웨덴의 역사와 정치 및 복지국가의 근간을 확립한 스웨덴 사민당의 리더십과 노동조합운동의 역할(제1부)과, 정권이 바뀌더라도 복지 정책의 근본이념을 유지하는 바탕인 스웨덴의 합의 문화(제3부)를 확인해 두면, 정책의 구체적 모습이 서술된 제2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 복지 정책의 핵심 정신이라고 할 만한 ‘국민의 집’ 이념은 브란팅과 한손, 에르란데르, 팔메로 이어지는 60년 남짓 동안 스웨덴 사민당 지도부가 한결같이 공유하고 실천했던 정치철학이다. 1976년 선거를 기화로 사민당의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고, 사민당과 보수정당이 교차 집권하는 추세는 2010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국가는 보수정당의 집권 시기에도 외형적으로는 시장 원리의 도입, 민영화 등의 변화를 거쳤을지언정 보편주의적 원리만큼은 훼손하지 않았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이미 스웨덴 국가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로 정착했으며 스웨덴 사민당의 성쇠와 무관한 사안이 되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보수정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조차 이들이 집권 이후에도 스웨덴 모델을 유지/발전시키겠다는 공약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합의에 도달한 데는, 소외되는 집단이나 계층 없이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크게 기여했다. 특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 민주주의의 정신은 공동체 내에서의 참여, 존중, 합의에 있다. 한손 총리는 스웨덴 사회에서 헌법에 의해 모든 사람의 기본권과 참정권은 마련되어 있으나 민주주의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계급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보편주의를 기반으로 한 스웨덴의 양성 평등 정책은 물론, 장애를 입은 자의 일상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자는 정상화 원칙 역시 시혜적 복지 서비스가 아닌 스웨덴이 지닌 민주주의적 복지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인의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올바른 지혜와 판단력을 구사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교육 정책, 건강상 문제가 또 다른 불이익을 낳지 않게 하는 보건 의료 정책, 사회적 주택 정책과 직업교육에 중점을 둔 노동시장 정책 및 지속 가능한 생태 환경과 자원 유지를 위한 환경 정책까지도 계층 간, 세대 간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자는 민주주의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스웨덴식 보편적 복지 정책은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민주주의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철학이며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국민의 집’ 이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무엇보다 분배의 형평성이 실현되는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평등과 연대 및 사회 통합에 기초한 사회복지 정책,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이나 사유재산 폐지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민의 집’을 함께 건설하자는 연대성 강조는 비사회주의정당이나 농민, 중산계층들과의 정치적 대화와 협조를 가능하게 했다. ‘국민의 집’은 빈곤층과 노동계급만을 위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전 국민을 아우르는 포괄적이며 보편주의적인 복지 제도를 마련해 스웨덴 특유의 복지국가 모델을 이루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진보정당과 좌파정당이 눈 여겨 보아야할 대목이다. 얼마전 한국의 어느 진보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념은 해석이고 오직 푸른 것은 민중의 삶이다"라고...
 
 
스웨덴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국과 다른 국가였다. 그들은 종족간 내란도 없었고 나라가 분단된 경험도 없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이념적 갈등을 겪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더 힘들고 어려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와 쓰레기장처럼 방치된 서울에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방랑하는 빈민들의 모습은 18세기 스웨덴 도심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수 백년에 걸친 봉건 왕조의 학정과 착취, 급작스러운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 집회와 시위와 파업과 충돌의 역사는 스웨덴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복지국가'를 향한 대장정에 막 나서기 시작한 한국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준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 그냥 '북유럽 부유한 남의 나라 일'이라도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부터 극심한 빈부격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내재한 수 많은 '문제'를 생각하고 우리의 미래,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책 속에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스웨덴의 역사, 구조, 사회복지를 일구는 과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세부 복지정책, 정치인과 학자들, 정당과 단체들에 대한 것은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스웨덴 노동자의 조직율(2010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85%)과 다당제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부러워하면서 그것이 '복지국가 스웨덴'이 가능한 핵심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웨덴의 노동자 조직율이나 다당제가 19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스웨덴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봉건 왕조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 속에서 배워야하는 스웨덴의 근원적인 장점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한국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찾아낸 몇 가지 교훈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15세에서 65세까지 스웨덴 국민들 중에서 1주일에 책 한 권 이상 읽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이 무려 50%에 달하고 남성도 조금 낮기는 하지만 30%에 달한다. 2009년 한국 성인들의 독서율 평균은 1년에 11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이 채 되지 않는다. 성인들 중 약 30%는 1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2010. 01.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조사')
독서는 일종의 문화다. 책을 읽게 되면 스스로 생각하고 남의 생각이나 삶,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이다. 자신이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데 따른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문학과 과학, 이론과 사실 등에 대해 지식을 넓혀가면서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작게는 가정에서, 크게는 사회 전체적으로 이성적인 대화를 가능케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대화와 협상과 합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스웨덴인들이 처음부터 책을 그렇게 많이 읽게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웨덴이 지금과 같은 복지수준과 문화수준을 이룩하는 과정에는 책을 읽는 사람의 수와 문화가 확대되는 과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성인들이 갑자기 책을 많이 읽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얻고 생활과 실천을 통해 책을 검증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자신의 주관과 근거를 마련하고 책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10년, 50년 후의 한국의 밝은 미래에 희망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스웨덴인들의 조직화 수준과 공동체주의 문화다. 우리가 서구인들이라고 생각할 때 늘 선입견에 빠지는 것들 중 하나가 '서구인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른 유럽국가들도 다소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스웨덴의 경우 개인들이 적어도 1개 이상의 정당이나 정치조직,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이익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 뿐 만 아니라 동네모임, 지역모임, 학부모모임, 독서모임, 봉사단체, 합창단 등 문화단체 등에 상당한 비율이 가입되어 있다. 단적인 사례로, 1,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스웨덴의 전국합창단협회 소속 합창단의 500여 개나 된다. 교회합창단은 6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서구인들의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긍정적인 개인주의인 것이다. 이러한 조직과 단체, 문화는 당연하게도 '공동체주의'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화와 협의, 토론과 합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인권의 향상이 사회적인 가치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스웨덴인 대부분이 매일 조직이나 모임에 참여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시간에 한국 남성들은 야근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고 여성들은 함께 야근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가족을 챙기고 있는게 아닐지...
 

셋째는 당 지도부의 청빈한 삶으로 대별되는 '사회적 모범'이다. 책의 서문에 거론된 '야스플링 장관'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당 서기 14년, 장관직 14년, 평생동안 국회의원을 거쳐 73세에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저자가 1980년대 후반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초라한 임대아파트'에서 부인과 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당 서기와 장관, 국회의원, 국회상임위 위원장 활동을 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이나 가족, 친지, 지인들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기는 커녕)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사용하지도 축재하지도 않았고 오직 스웨덴 국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이 또한 한국의 정치인들이 느끼고 배워야 할 '모범적인 공직생활'이다. 이런 훌륭한 사람이 정치인, 지도자로 수 십년간 일했으니 어찌 청소년, 청년, 성인들이 배우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 하나 하나를 이루기 위해 100년 이상 끊임없이 싸워온 스웨덴인들의 노력이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1889년, 노동조합평의회는 1898년에 설립되었다. 사민당이 하원 의원을 처음 배출한 것은 7년 만인 1896년이었고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형성하고 입각한 것은 28년 만인 1917년이었다. 노조가 처음 총파업을 단행한 것은 1909년이었으며 4개월만에 참패하여 대량해고와 노조원 감소(50%가 줄어 8만명)를 겪었다. 1931년에는 공장폐업에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군대가 발포하여 5명이 죽기도 했다. 중앙정부가 유치원 운영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스웨덴인들이 싸움을 거쳐 완전한 보평,평등 선거권을 획득한 것은 1918년. 사회보험에 적용되는 여성들이 출산휴가와 휴가비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37년이고 보험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출산휴가비가 지급된 것은 1940년. 이 때 아동연금도 지급되기 시작했다. 노령연금제도는 1913년 처음 도입되었고 1935년 지급액과 대상이 확대되면서 기초연금법으로 변경되었다. 1944년부터 유치원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 1950년부터 9년제로 확대된 의무교육이 시작되었고 1976년부터 6세 아동에 대한 취학전 교육이 실시되었다. 대학 등록금은 전액 무료이고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학업보조금을 지원하고 대출해주기도 한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상병수당과 함께 1955년 본격 시작된다. 1935년부터 자발적 실업보험에 국가보조금이 투입되기 시작되었고 실업급여는 소득의 80%, 최장 14개월(18세 미만의 자녀가 있으면 5개월 추가), 상병급여도 있다. 임대주택은 전체의 55%, 그중 공공임대가 22%, 조합 임대가 15%이다. 모든 사회복지의 방향은 '보편주의'다.
스웨덴 국민들이 싸움을 통해 평등 선거권부터 공동임대주택까지 하나씩 마련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100년이 걸렸다. 한국의 경우 '사회복지'를 명확하게 요구로 내걸고 국민들이 싸운 것은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현실에는 수 많은 빈곤과 절망이 존재하지만 '복지국가'를 한꺼번에 서둘러 끌어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편주의'라는 방향성이다.
 
 
* 책 속의 문장 : 이 책은 소개할 좋은 내용이 생각보다 많다. 이 서평을 다 읽느니 차라리 책 한 권을 구해서 스스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 스웨덴 국가와 사회는 어느 세력이나 개인이 절대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관습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극소수 부유층에 실질적으로 정치사회적 권력이 집중되는 데 반해, 스웨덴은 이를 법률이 아니라 사회적 균형에 의해 해결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어느 정당도 다른 정당의 협조 없이 정책을 관철,지속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스웨덴의 선거제도가 어느 한 정당에 의한 다수 지배를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p.72~73)

- 1960년 '아동돌봄법'이 제정되면서 이미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 수요만을 충족하는 데 급급했던 ‘처방적 복지’ 대신, ‘예방적 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다. 여기에는 자녀 부양 가족을 안정시키기 위한 예방적 처방의 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과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 연극, 스포츠 등 방과 후나 휴일을 이용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이 전국적으로 실효성을 거두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1960년대 말 모든 코뮨이 이를 시행하여 보편적 아동 정책을 완성했다.(p.92)

- 가족 정책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의 빈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문제와 1930년대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스웨덴 가족 정책에서는,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이나 해결 방식이 포괄적이고 통합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출산을 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모두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의 조화와 역할 분담 문제로 본다.(p.103~104)

-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스웨덴 노인 정책이 월등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인에 관한 문제를, 사회복지 정책이 논의되던 19세기 말부터 가족 내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개인의 ‘생애 주기’적 관점에 그치지 않고, ‘가족’의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 좀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노인 문제 해결책을 시도했다. 스웨덴의 노인 정책은 한편으로 노인의 경제 문제, 서비스 문제, 거주 문제와 같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다른 한편 광역 정부와 기초 정부의 상호 보완적 행정 체계를 통해 포괄적인 효과성을 도모해 왔다.(p.116)

- 스웨덴빈곤가족돌봄협회는 노동문제를 제외하고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든 생활 문제를 다루었다. 당시 이들은 ‘빈곤’의 개념을 ‘사회적 질병’으로 정의하고 결코 개인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이 병은 심지어 사회적 강자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고, 이미 빈곤 상태로 전락한 시민들은 또 다른 시민에게 이를 전염시킬 수 있어서 결국 전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라며 사회적 책임론을 강하게 피력했다.(p.120)

- 스웨덴의 연금 개혁 이후 스웨덴이 지금까지 지녀 온 주요 복지국가 원칙들, 즉 소득 보장 원칙과 보편주의적 분배 정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기초 연금이 폐지되어 보편주의가 약화된 점과, 프리미엄 연금제도가 도입되어 연금제도 성격이 사회보장의 의미에서 개인 보험으로 바뀐 점 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개혁 제도는 구제도가 안고 있었던 남녀 차이 및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전문직 노동자 사이에서 빚어졌던 불공정성을 해소해 재분배 원칙을 강화했다. 그 결과 30년 이상 저임금을 받아 왔던 노동자와 시간제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는 새 제도 덕분에 연금 급여가 상승했다. 그리고 각종 사회보장 급여가 소득으로 간주되어 기여금이 적립되는 점은, 특히 출산휴가와 관련해 남녀의 기회 평등을 장려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p.155)

- 스웨덴에서 공교육 개념은 국가가 재정을 부담하는 것을 기본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교육 자료와 급식 및 그 밖의 모든 부수적인 비용에 대해서 학부모가 일체의 부담을 지지 않음을 뜻한다.(p.210)

- 스웨덴 대학의 특징은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대학 수준의 편차가 없으며, 학비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생이 되면 부모로부터 자립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독립적으로 조달하는 문화가 있다. 정부는 학생보조중앙위원회를 두고 소득이 없는 학생들이 원활히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정액의 학비 지원금을 대출해 준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이내에 대학 진학의 길을 선택하는 수는 전체 졸업생의 3분의 1이 조금 넘는 43퍼센트에 불과하다.(p.226~227)

- 유념할 만한 가장 중요한 점은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추진했다고 해서 환자의 부담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과,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합하면 스웨덴 의료 개혁은 공급의 효율성 측면에 중점을 두고, 1차 의료 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면서, 종합병원의 비용 절감을 유도했다. 동시에 추가 비용의 투입 없이도 의료 체계의 질적 향상, 관료가 아닌 환자 중심의 행정, 병원 경영의 합리화가 이루어졌다.(p.244)

- 스웨덴 주택 유형의 특성 가운데 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찍이 주거권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비자 조합이 주택 건설 회사를 운영해 주택에 관한 조사 연구와 주택 공급을 통해 소비자가 정책과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정부가 시민의 주거 문제를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삶의 터전 마련을 도와주는 주거 복지 차원에서 주택 건설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주택 정책의 이름을 “모두에게 주택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p.264)

- 코뮨이 공급하는 주택의 종류에는 일반 임대 아파트 외에 수요자의 특성에 따라 원룸 학생 아파트, 학생 가족 아파트, 노인들을 위한 특수 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공급한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임시로 주거지를 찾는 청소년과 여성 등을 위해 가구가 갖추어진 호텔형 아파트도 운영한다. 그 외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주거 시설의 개보수 공사를 맡아 한다.
임대 아파트는 신청 순번대로 분양되는데, 도심지에 가까울수록 기다리는 기간(1~15년)이 길다. 행정 당국은 자녀가 있는 경우나 의학적 사유에 의한 상황을 참작하여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정부는 부족한 임대 아파트의 입주 대기 기간을 줄이기 위하여 민간 건축 회사가 제공하는 새 건축 임대 아파트의 3분의 1을 코뮨 임대주택 중개소 목록에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여 민간 임대주택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p.268)

- 공공 주택이나 민간 회사의 임대료 책정은 기본적으로 제도적 장치에 의해 집 주인(건물 소유자)과 세입자 조합 간에 지역 단위의 단체 협상으로 결정된다. 지역 단위에서 협상이 결렬될 경우에는 중앙 차원에서 재협상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협상 주체로 참여하는 기관은 세입자전국연합과 SABO이다. 민간 임대주택일 때는 건물소유자연합이 참여한다. 임대료를 책정하는 기준은 당연히 주택의 질적 수준(가치)이며, 일반적으로 ‘동급의 아파트에 동일한 집세’라는 법 원칙을 준수한다. 이런 사회적 원칙은 세입자 주거권 보호로 이어지며 공공 주택의 임대료 수준은 민간 임대주택의 임대료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p.269)

- 한국 삼성연구소는 2010년 5월 선진화 지표를 중심으로 OECD 30개국을 조사한 결과 스웨덴을 가장 선진화가 잘 이뤄진 국가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23위였다. 조사 기준은 역동성을 중심으로 자부심,자율성,창의성,호혜성,다양성,행복감 등 7대 지표를 사용했다. 그리고 2006년 유엔개발지수조사는 스웨덴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발표했고, 2004년에도 '뉴스위크'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로 꼽혔다. '뉴스위크'는 그 이유로 보건 의료 제도의 발달과 혁신, 연구가 뛰어나다는 것을 들고 있다. 조사와 평가 자료에는 유엔 개발 지수, 국제경쟁력 지수, 세계 경제 안전 지수, 교육 및 문맹 지수, 청렴성 지수 등이 사용되었다.(p.330)

- 한 국가의 운영 체계와 국민의 실생활이 천국과 지옥을 그리 쉽게 넘나들지 않는다는 것은 웬만한 지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스웨덴은 천국도 아니지만, 복지 제도가 실패한 나라도 아니다. 1936년에 한 미국 저널리스트는 “주식회사 스웨덴의 성공은 기꺼이 적응하고 타협하려는 스웨덴 사람의 성향에 있으며 스웨덴 사람들은 사회질서의 성공적 작동 가능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궁극적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p.331)

- 산업화 초기부터 스웨덴은 보편적 기초 연금에 관한 합의(1935년), 살트셰바덴 합의(1932~38년), 소득 연금 개혁(1957년), 원자력발전소 증축 문제(1980년), 유럽연합 가입(1994년) 등에서 보듯이 중대하고 복잡한 정책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낸 전통이 있다. 많은 국가들은 이와 비슷한 문제나 사안에 관한 정책 결정을 두고 오랜 진통을 겪고도 해결하지 못하거나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사후에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p.332)

- 스웨덴에서의 커피 타임은 직장 문화의 하나다. 일과에서 오전과 오후 두 번은 개인별이 아니라 집단별로 함께 휴식을 취한다. 이 시간에 주고받는 이야기는 잡담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사무적인 일과 관련이 있다. 스웨덴 국민은 신문이나 정보지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독서율도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일반 상식이 풍부하고 소신이 강해 커피 타임에 나누는 대화는 정보를 얻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검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토론되는 국가적 사안도 직장에서의 커피 타임 주제가 된다.(p.334~335)

-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나 합의 자체의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합의’는 다양성에 대한 자극과 도전을 약화하거나 창의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지적된다. 합의되었기 때문에 그저 따르면 된다는 태도가 지닌 수동성 때문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소모하면서 이루어진 합의는 실행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합의’의 절대적 장점은 결정 단계?과정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정된 사항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또한 구성원의 헌신과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갈등 탓에 발생하는 지체와 불안정을 사전에 예방해 장기적으로 더욱 큰 이익을 가져온다.(p.335)

- 스웨덴은 결코 지상에 실현된 낙원도 아니며 행복한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통 복지국가를 하나하나 허물며 세계화 물결 속에 동참하는 국가는 더욱 아니다. 스웨덴은 자유/연대/복지/환경과 같은 근대적 이상을 향해 현실이라는 거친 여로에서 오늘도 좌우를 더듬으며 느리지만 쉬지 않는 달팽이의 행로를 계속하고 있다. 어찌 보면 순하고 부지런한 이 달팽이의 행로에서 21세기 인류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큰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p.357)  

 
[ 2011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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