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심다 - 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희망과 나눔
박원순 외 지음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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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 그리고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사무처장... 이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박원순씨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인권변호사로서는 조정래 변호사를 더 기억하고 있었고 '참여연대'는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이끌었다는 기억과 재벌 독점의 고리를 끊으려고 노력하는 시민단체 정도로 기억하는 수준...
결국 그동안 나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지난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진행되어 오세훈 전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하고 곧이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안철수 원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더불어 한명숙, 박영선, 박원순씨등이 야권의 후보로 거론되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안철수 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신문기사나 인터넷 글,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문득 안철수 원장과 비교하여 박원순 변호사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고 있는 사람이 5% 지지율에 그친 사람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할까? 박원순 변호사의 어떤 점이 안철수 원장의 양보를 이끌어 냈을까? 박원순씨의 삶과 철학, 인생역정과 고민, 아이디어와 비전이 궁금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박원순 변호사에 관한 책을 두 권 구입하여 지난 추석 연휴에 읽었다. 이 책 [희망을 심다]와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동고동락을 함께해 보거나 여행을 함께 떠나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 가능한 것도 아니고 시간도 부족하니 책을 통해서 어느정도 박원순 변호사를 알고 싶었다.
(맨 처음에는 내가 박원순 변호사의 책을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책에 대한 소감과 책을 통해 알게된 박원순 변호사를 소개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책만 읽고 서평을 이제야 쓰게 된 것...)
 
아래는 이 책의 목차...
 
1장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깡촌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박원순
2장 석 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었어요 - 서울대생이 된 촌놈 박원순의 공부법
3장 검사 그만두고 공부하고 싶었어요 - 6개월 만에 사표 쓴 청년 검사 박원순
4장 구석구석에서 할 일이 쏟아지는 원순씨 - 인권변호사, 시대의 영웅들을 변론하다
5장 앞으로 나아간 2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 밖에서 본 한국, 밖에서 한 궁리
6장 맥주 구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대한민국 안 걸리는 데가 없는 '박변 주소록'과 참여연대
7장 나눔과 봉사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사람들
8장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며 - 희망을 나누는 희망제작소
9장 세상은 버린 만큼 얻는다 - 시민운동은 블루오션이다
10장 일하다 과로사하는 게 꿈입니다 - 즐겁게, 신나게 일하는 사회
 
원순C가 말하는 어린시절, 학생시절, 대학시절, 검사,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시절을 들어보면 가장 먼저 부모의 역할이 새삼스럽게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의 성실한 삶의 태도와 부지런함, 이웃에 대한 사랑과 정직한 모습이야말로 원순C의 성격과 태도,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원순C가 독서실, 입주과외, 전셋집, 고시공부, 유학생활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린 시절 부모님 곁에서 보고 느끼고 자란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들은 결코 가장하거나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하여 꾸준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고난의 내재화'라 말한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 그 농부의 일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p.5)"
 
군사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온 세상이 감옥이었던 시대, 차라리 고난의 길에 서 있는 수인들이 편을 드는 것이 마음 편했던 원순C였다. 검사 생활을 1년 만에 때려치우고 변호사로 개업한 원순C는 곧바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에 뛰어든 원순C는 1985년 미문화원점거사건, 1986년 부천서성고문사건과 보도지침사건, 건대사태,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구로구청부정선거사건, 풀빛출판사사건, 민족미학연구소사건, 서울대우조교성희롱사건 등 중요한 시국사건을 맡아 변호했다.
원순C는 스스로 당시에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사회적 통찰력을 가지고 법률을 통해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과 "그것을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세력을 연대시키면서 풀어가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양김씨의 분열은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 역시 이에 좌절했고 1989년부터 시작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으 몰락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 급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원순C는 조영래 변호사의 조언으로 1991년 영국으로 떠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강의도 하고 유럽의회, 함부르크의회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을 극복해내고 유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 도서관, 법대 도서관, 워싱턴의회 도서관, 미국국립문서보관서 등에서 자료를 복사하고 자료를 구하여 공부했다.
 
원순C는 귀국 후 사람들과 함께 참여연대를 설립했다. 이전 방식의 저항운동이 아닌 새로운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현 사회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던 사람들이 합류했다.
참여연대는 1994년 국민생활최저선운동,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7년 작은권리찾기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1999년 예산감시정보공개운동, 2000년 부적절한국회의원후보자에대한공천반대및낙선운동, 2001년 이동통신요금인하운동, 2002년 대선정치자금감시운동 등의 활동을 펼치며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진 시민단체로서 한국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역할과 한계를 아는 운동이 필요하다.(p.266)"
 
2002년 참여연대 내외부의 많은 이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원순C는 참여연대를 '폭력적'으로 정리한 후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갔다. 거기서 그는 "모금은 예술이고, 과학이다"라는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재단의 사례와 제도를 연구한 후 한국에 돌아와 '세상의 좋은 변화를 위해서 꿈꾸고 일하는 사람들을 좀 편하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아름다운재단을, 재활용과 사회적 기업의 모델인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했다.
아름다운재단은 한국사회에 "1% 나눔운동"을 통해 기부와 나눔 문화를 확산시켰고 공공의 장점과 기업의 장점을 결합시킬 수 있는 모델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아름다운가게는 7년 만에 전국 100여개 매장, 상근간사 300명, 자원봉사자 5,000명을 기록했다.
 
원순C는 2006년에 아름다운재단을 떠나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희망제작소를 '21세기 실학운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소프트웨어나 콘텐츠에 취악한 구조이며, 총론은 강한데 각론은 없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희망제작소는 '씽크탱크(think tank)'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작지만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데 주력하는 '두탱크(do tank)'를 지향한다. 또한 '지역사회가 붕괴되면 중심도 흔들린다'는 이론을 가지고 붕괴되어 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실증주의자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거대담론 과잉의 시대이고, 이념을 흑백으로 무모하게 분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각론과 디테일한 부분을 고민해야 하며, 같은 부분에서는 합의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조율해나가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 안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국가보안법을 존치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둘 다 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원순C가 인권변호사,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활동을 하는 과정은 활동가들 뿐 아니라 개인이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주도하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후 시대가 변했음을 깨닫고 자신이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야로 참여연대를 설립하여 새로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에서 10여년 정도 성공적으로 활동한 후,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과감하게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간 후 '나눔과 기부'를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했다. 또한, 아이디어와 창업, 참여와 사회적 기업 등을 사회활동으로 승격시키면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시민운동가나 직장인, 전문가라는 분야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 자리, 한 위치, 한 역할에서 10년 이상 꾸준하게 성과를 내고 스스로를 혁신하기가 무척 어렵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통이 어렵고 사고방식과 일처리 방식이 고루해지게 된다. 개인과 조직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개인들의 활력과 창의력은 억눌리며, 조직은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은 10년이 지나면 해외 유학을 보내주고 대학교수는 안식년 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은 새로운 역할이나 업종으로 재배치시켜준다. 물론, 시대의 흐름이나 환경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유학, 안식년, 재배치의 기회를 얻어도 그것을 자기 혁신과 새로운 가치 창출로 연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마저 생각하지 못하거나 얻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원순C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라고 미국 사람인데, 일본 홋카이도에서 교육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보이스, 비 앰비셔스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했죠. 앰비션 ambition이라는 것이 꼭 좋은 의미로만 해석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그런 앰비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잖아요. 좀 황당해도 좋으니까 젊은 시절에는 그런 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기에 그 말 한마디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우리 시대에 제가 그 역할을 충분히 못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그런 천박한 꿈이 아니라 정말 세상을 향해서 자기 일생을 한 번 바쳐보겠다는 꿈을 꿔봤으면 좋겠어요. 인생을 살다보면 마모되고 성숙되면서 결국 현실화되거든요. 청년 시절에는 무모한 꿈도 꿔봐야 합니다. 그게 그들의 특권이고 장기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시기잖아요. 세상을 살다보면 안 그래도 소시민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젊은 시절 그런 꿈이라도 꿔봐야 하지 않겠어요?(p.381)"
 
 
이 책을 읽고나서 원순C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야권단일후보 경선 때부터 서울시장 선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지난 10월 26일 원순C는 개표 결과 큰 표 차이로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시장 업무를 개시한 이래 지금까지 자신의 지지자들과 서울시민 대다수를 위해 좋은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일방주의가 아닌 소통으로, 토건행정이 아닌 복지행정으로, 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서울시정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준비해왔던 '희망'을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구호 아래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한 가지씩 정책을 실현시켜 새로운 정치와 행정의 모범을 실현시켜 나가길 기대해 본다.
 
[ 2011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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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나선 -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를 발견한 이야기 궁리하는 과학 1
제임스 D.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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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3년 세계 최고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지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논문을 발표하여 전세계적인 이목과 찬사를 받아 1962년 그 공로로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의 저서이다.

왓슨은 이 책의 서문에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크릭과 함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게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펴낸 것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서문이라기 보다 자신의 일기를 바탕으로 자서전 비슷하게 풀어쓴 글이다.

책 속에는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본심과 그에 따른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또한, DNA 구조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성격, 의욕, 능력, 경쟁심과 더불어 과학자들의 일상생활도 일반인들과 비슷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저자는 아주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겸손하게 책을 써내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저자는 아이작 뉴튼이나 스티븐 호킹의 말처럼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로잘린 프랭클린이라는 과학자의 능력으로 X선 회절법으로 DNA의 결정체를 촬영한 사진이 아니었다면, 라이너스 폴링이 단백질의 결정체를 일부라도 먼저 밝혀내지 않았다면, 모리스 윌킨스의 선구자적인 DNA 연구가 없었다면 저자에게 노벨상의 행운이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운 좋게 논문의 저자이름에서 맨 위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책을 발간하고 언론에 그렇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다면 "DNA=제임스 왓슨"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읽어온 수학자,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면 뛰어난 과학자들의 경우 수 많은 연구와 실패, 갈등없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적이 없었다. 아이작 뉴턴, 라이프니츠, 파스칼, 페르마, 칸토어, 가우스, 푸앙카레, 힐베라트, 괴델, 아인슈타인, 호킹 등등... 20세기에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 역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밝혀낸 앤드류 와일즈처럼 오랜동안 노력한 결과이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논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자가 무척 겸손하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노력한 정도나 저자가 발표한 논문이 앞 선 수학자,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왔던 노벨상의 권위가 논문의 뛰어남이나 역사적인 위대성보다 점점 이벤트나 형식으로 치부되고 인종차별적인 느낌까지 든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 정도의 노벨상을 취득한 과학자들도 없으니 국가적으로는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김대중 전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니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아야...^^)

어떤 측면에서는 이 책에 긍정적인 장점도 들어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과학자는 식음을 전페하고 골방에 처박혀 연구와 계산만 해대는 '괴짜'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인데, 저자는 매일 8시간~12시간 정도만 연구하고 토론하고도 노벨상을 탄 것이다. 저녁식사는 언제나 친구들, 지인들과 함께 하고 한 달에 몇 번씩 파티와 술자리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으니까...

세상은 어쩌면 노래말 그대로 '요지경'일 수도 있다...
 

[ 2010. 5.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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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소설 전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
루쉰 지음, 김시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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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자..." <광인일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식인(食人)사회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소설의 마지막에 남긴 말...
 
"틀림 없어요! 틀림 없이 나을 거요. 그렇게 뜨거울 때 먹었으니. 사람의 피를 묻힌 만두는 어떤 폐병이든 즉효야!" <약>
찻집 주인의 친척이 찻집 주인에게 '인육만두'의 효험을 장담하면서 하는 말...
인육만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아들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 첫 번째의 보영활명환은 쟈씨네 제세 약방에만 있는 겁니다." <내일>
죽어가는 아들을 데려온 엄마에게 한약방 의원에게 데려갔을 때, 의원이 처방전을 주면서 다짐하는 말...
결국 아이는 죽었고 아이의 엄마는 가지고 있던 모든 돈과 패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인력거꾼은 그 노파의 말을 듣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여인의 팔을 부축하여 한 발짝식 파출소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작은 사건>

내가 그 인력거꾼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이 별것 아닌 머리털 때문에 괴로움과 수난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는지 알 수가 없네!" <머리털 이야기>
신해혁명 이후 중국 내에서 변발을 자르냐 마냐를 두고 소위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이 교대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발을 두고 민중들을 괴롭힌 것을 말한다...
 
"명절이 지나면? ....... 여전히 관리 노릇이나 해야지...... 내일 가게 주인이 돈 달라고 오거든 초여드렛날 오후에 오라고만 해" <단오절>
지방관리인 주인공은 지방정부의 재정부족으로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괴롭다. 부인이 이를 하소연하면서 신문이나 서점에 글을 써서라도 생활비를 구해오라고 말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리고 중얼중얼 [상시집](중국 최초의 현대시집)을 읽는다.
 
"나는 더는 가르치러 갈 생각이 없네. 여학교라는 게 도대체 어떤 꼴로 되어 갈지 모르겠어. 우리같이 단정한 사람은 확실히 함께 어울릴 수가 없어...." <까오 선생>
교사 자격을 취득한 후 처음 지방의 여학교에 들어온 까오 선생은 여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여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세상 풍속을 걱정한다.
 
"사랑 없는 인간은 사멸하고 만다" "나는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나는 진실로 마음의 상처를 깊이 감추고 묵묵히 전진하려고 한다. 망각과 거짓말을 나의 길잡이로 삼고서...." <죽음을 슬퍼하며>
둘이 사랑하여 여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시작했지만, 빈곤과 실업으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주인공은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고 여자는 가족에게 돌아간 후 죽는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난 후 주인공이 내뱉는 말...
 
 
지난 8월 개인적으로 루쉰 소설 선집을 읽은 후, 10월 독서모임에서 루쉰 소설에 대해 세미나를 하기로 논의가 되었다. 9월에 이 책 [루쉰 소설 전집]을 구하여 읽었다. 참가자들이 여러가지 바쁜 사정으로 11월 초로 연기되면서 며칠 전에야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루쉰 소설 전집]은 여러가지 번역서 중에서 서울대 중문과 김시준 교수가 번역,해설한 것으로 골랐다. 이 전집에는 루쉰이 1918년 발표하여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인정받는 <광인일기>부터 1935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죽은 자 살리기>까지 총 33편이 실려있다.
 
이 책은 루쉰이 일생 동안 발표한 소설들을 엮은 소설집 [납함], [방황], [고사신편] 등 3권에 수록된 33편을 번역한 완역본으로, 중국의 유교적인 가족 제도가 지니는 병폐와, 예절이라는 이름의 굴레가 인간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미친 사람(狂人)을 통해 들춰 보인 처녀작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 온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 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도 수록되어 있다.
 
루쉰은 강렬한 민족의식에 기반을 둔 작품을 통해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 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역자는 루쉰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포용하는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이다고 평가한다.
 
그의 소설은 중국이 봉건주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통하던 과도기에 중국인들이 체험하였던 고통과 혼란과 방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2천여 년간 쌓이고 쌓여 왔던 봉건주의 전통 사회의 거대한 탑이 붕괴되는 현상은 중국인들로서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루쉰은 봉건주의라는 전통 사회의 미망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문학 작품을 통해 계몽하여 봉건 윤리라는 미신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앞장서서 중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그의 대표작 <아Q정전>이 신문에 연재되었을 당시 중국의 많은 지식인 독자들이 마치 자신들의 심장을 향해 비수가 날아오는 것을 보듯이 전율했다고 평한다. 루쉰은 문학의 위대함을 국민들에게 일깨워주었으며 그의 문학사상의 위대함 또한 이것에 있다고 하겠다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 천두슈는 근대화 과정의 필수요소를 ‘과학’과 ‘민주’라고 했다. 그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주의의 도입을 근대화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이에 호응하여 나온 것이 후스의 문학 혁명이다. 그의 문학 혁명은 ‘백화문’의 보급이다. 그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근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근대화의 필수 조건인 문학 혁명을 실천하고 성공으로 이끈 것이 루쉰이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작품에 대한 역자의 해설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평을 읽어 보면 이구동성으로 루쉰이 대단히 뛰어난 작가였다고 애기한다. 나는 루쉰의 몇몇 작품을 여러번 읽었지만 그들의 감상만큼의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이 작품을 보는 '눈'이나 '마음'의 차이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20세기 초반의 중국사회나 역사, 그리고 다른 작품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루쉰의 작품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미신과 미몽에 빠져있는 중국인들의 모습, 격동하는 중국 근대사의 물결 속에서 당황하고 절망을 느끼는 중국인들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구체적인 단편소설 속에서 표현하여 중국인 일반에게 보여주려 했던 루쉰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느낀 현실은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얼추 오버랩될 수 있다. 사교육이라는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학생들, 스펙과 일자리,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 실업과 비정규직,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청장년층, 방황하는 노년이라는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도 서울시장 투표율이 50%를 조금 넘었다는 결과를 보면...
 
[ 2011년 11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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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조셉 베일리 지음, 강현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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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그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된 듯한 기분일까?’ 
‘그는 나에게 전혀 시간을 주지 않아!’ 
‘더 이상 내게 꼭 맞는 짝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지만 단지 일상적인 것들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야.’

저자는 위의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 이 책과 딱 맞는 독자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오랫동안 커플 치료를 위한 상담을 해왔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펴낸 책으로, 연인관계나 부부관계에서 자주 일어나곤 하는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우리의 연애사 속에서 겉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인 갈등과 그 원인을 조망한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부터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까지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각,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열 가지의 이야기 속에 담아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총 17가지의 실제 사례 모음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이미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불혹'의 나이에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낯 간지럽기는 하지만, 저자 말대로 '사랑'이라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는 현상이고 언제 태동할 지 모르기에 나를 위해, 내 주변을 위해 저자의 관점을 들어보기로 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와는 달리, 처음 연애감정이 불타오를 때에는 상대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사랑을 불태우던 연인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저자는 매 순간 상대방의 새로운 매력을 보고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흘러가는 ‘시간’에서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사랑하는 비법을 소개한다. 저자의 명쾌한 통찰력은 우리가 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려주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부터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까지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각,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열 가지의 이야기 속에 담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총 17가지의 실제 사례 모음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사랑을 방해하는 감정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원래 사랑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사회적 조건에 길들여 있는 습득된 자아가 사랑과 행복의 조건을 상대방과 나의 본질적인 관계에서 찾지 못하고 명성, 권력, 성공 등 외부의 조건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자아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방해하는 제1의 요소이다. 그에 반면 우리 ‘본래의 자아’는 시간에 촉박하기보다는 여유로운 자아이다. 우리 본연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둔 순수한 자아이다.


저자는 사랑의 전제조건은 용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용서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부분이 ‘용서’라는 단어를 ‘비난하고 있는 대상이나 당신이 알고 있는 잘못들을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용서 안에는 우월감이 숨어있다. 저자는 자신도 그러한 거짓 용서를 진정한 ‘용서’라고 착각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제 진정한 용서가 어떤 의미인지 재조명한다. 상대방의 행동은 그 순간 자신이 아는 전부를 동원하여 대처한 것일 뿐이며 그를 비난하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판단 없이 상대방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 등의 깊은 통찰을 통해 진정한 용서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현재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영감으로 가득한 또 다른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외적인 현실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지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에 머무르는 것은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비법 가운데 하나이다.

 
용서란 아무런 판단 없이 다른 사람의 순수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229p)

진정한 용서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자각의 변화이자, 과거나 관계에 대한 이해의 변화이다. (231p)

진정한 용서는 처음부터 용서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용서하는 사람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왜곡된 자아의 믿음체계에 따라 정당한 행동을 했으며,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고 믿어주는 것을 뜻한다. 믿음체계는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231p)

용서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사람이다. (240p)

협상방식은 우리 본래의 자아의 손상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당신의 진실한 느낌이 당신의 안내체계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때로 당신의 진실한 느낌을 무시하고 협상해야 한다고 배웠다면, 당신은 더 많은 시간을 갈등 속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289p)

 

[ 2010년 5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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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2011년 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우리 세대의 청춘과는 너무도 다른 지금의 20대... 
농사꾼의 자식으로, 공장 노동자의 자식으로, 장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돌보는 사람 없이 동네에서 끼리끼리 친구들과 '방목'되어 자라던 이들이 대부분의 우리 세대일 것이다.
그렇게 자란 우리 세대는 20대에 30년 가까이 이어온 군사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사회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왔고 세계적인 경제호황기를 맞이하여 큰 어려움 없이 직업을 선택했고 상당수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를 향유했다.
 
요즘의 20대들은 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그들이 태어난 시기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 1만 달러이고 한창 고도성장기였기에 노동력이 부족하여 '실업'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집안의 아이들도 평균 1~2에 불과하여 우리들 세대와 달리 아주 '귀한' 자식들이었기에 과잉보호되어 자랐고 도시화의 발달로 아이들끼리 어울리기 보다 대부분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또한, 사교육과 부동산 투기에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디어나 일부 학자들은 그 20대들의 차별성 때문에 'Y세대'나 'Z세대'로 분류하거나, 20년만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경험한 '촛불세대'로 분류하지만 그들은 우석훈씨의 정의대로 '88만원 세대'이기도 하다.
 
외형적인 기준이나 잣대로 지금의 20대를 분석하거나 분류시킬 수 있으나, 실제 그 20대들이 그러한 외적인 환경, 가족의 구성,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얻기가 힘들다.
 
이 소설은 그러한 20대들에 대해서 다뤘다.
이 책은 IMF 이후 변화된 사회의 문제들을 혼자의 몸으로 뚫고 온 혹은 뚫고 가고 있는 청년 세대에 바치는 소설이다. 성공한 삶이라고 주변에 얘기할 수 있는 그때,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에게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청년들은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대해 최선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이 세계를 헤쳐 나갈 것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그리는 슬픈 비망록이 펼쳐진다.
 
저자는 요즘 세대를 이른바 '표백 세대'라 지칭한다. '표백 세대'란 너무 완벽해서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흰색 같은 세상에 순응해야만 하는 요즘의 청춘들을 말한다.
저자는 섬?할 정도로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다.
또한 자살선언문의 성격을 가진 유언적 잡기(雜記)와 주인공의 현실 세계를 번갈아 배치하여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몰입하도록 만든다.
이 책이 던지는 차갑고도 절박한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은 7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서 상위 10개 대학의 뒤쪽에 위치한 A대학에 입학해서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다. 그는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든 편입시험을 보든 더 상위권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어떤 것을 시작해도 이미 늦어버린 나이라고 생각하며,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지만 딱히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 후에 전교적으로 유명한 ‘21세기 지도자 장학생’인 세연, 경영학과 동기인 휘영, 후배 병권, 세연의 친구 추윤영 등과 어울리게 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친구들을 설득하며 5년 후에 자살할 것을 강요하며, 자신이 가장 주목받는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 죽는다. 5년 후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며 표백되고 있던 주인공과 친구들은 우연찮게 한 사이트(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친구들은 5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후에 자살을 한다고 선언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옴짝달싹 할 수밖에 없게 된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고 칭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것을 보탤 수도 보탤 것도 없는 흰 그림인 ‘완전한 사회’에서 청년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회에 표백되어 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며, 와이두유리브닷컴(www.whydoyotlive.com)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리고 24시간 후에 자살한다.
현실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이나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의 고달픈 일상과 정해진 채 다가올 미래와 표백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보여주면서 면밀하고 명확하게 우리 사회를 그려낸다.

 
젊은 세대들이 자살하는 세태를 정확하게 그려내며 현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삶과 일상이라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한 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자살 사이트나 자살 동호회 회원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75년생인 작가가 다룬 20대의 모습이 실제 20대의 고민과 갈등과 선택을 반영하고 있다면, 20대들이 보여주고 있는 탈정치, 탈구조, 탈공동체의 태도는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늘어만 가는 중고등학생들의 자살, 뚜렷한 이유없는 자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에밀 뒤르켐은 19세기 말 [자살론]에서 '사회적 응집력의 부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 현대의 자살현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표백세대'의 좌절... 그것은 현실세계를 '무궁무진하게 변화가능한 세계'로 인식시켜주지 못하는 사회(가정,학교,정부등)에 대한 그들의 심리적 좌절, 인식상의 좌절이 아닐까?
 
 
* 책 속의 문장 :
-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p.77~78)

- 마르크스는 공산 혁명을 주장했지만, 공산 혁명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과 이 세대의 운명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넓은 의미의 선언자다. 누군가가 와이두유리브닷컴을 '부모 덕택에 고생 모르고 자란 배부른 녀석들의 복에 겨운 헛소리'라고 매도하려 들 때 '그 방식은 과격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라고 맞서며 우리의 논리를 그 자리에 소개한다면 당신은 선언자다. 우리 세대가 하루하루 좌절에 빠지는 이유가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와 같은 편이다.(p.182)

-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p.199)

- 자살을 꿈꿔본 적이 없냐고? 왜 없겠어. 그런 건 누구나 밤마다 생각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밤마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창문을 깨고 원룸에서 뛰어내리는 공상을 한다고. 때로는 분노에 차서, 때로는 사는 게 허무해서. 세연이 쓴 선언문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외길로 몰아간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일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선언문 덕에 위안을 받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왜지?). 그러나 내가 그 선언문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었다. 설사 선언문의 내용에 내가 찬성한다 해도, 그 선언문과 실행 지침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좌절했을 때 자살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행 지침에선 자살을 하려거든 삶의 중요한 성취를 이뤘을 때 하라고 했는데, 나는 적어도 업무에서 다른 사람이 인정할 만한 성취는 앞으로 영영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p.241)

-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p.332)  

 
[ 2011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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