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소설 전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
루쉰 지음, 김시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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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자..." <광인일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식인(食人)사회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소설의 마지막에 남긴 말...
 
"틀림 없어요! 틀림 없이 나을 거요. 그렇게 뜨거울 때 먹었으니. 사람의 피를 묻힌 만두는 어떤 폐병이든 즉효야!" <약>
찻집 주인의 친척이 찻집 주인에게 '인육만두'의 효험을 장담하면서 하는 말...
인육만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아들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 첫 번째의 보영활명환은 쟈씨네 제세 약방에만 있는 겁니다." <내일>
죽어가는 아들을 데려온 엄마에게 한약방 의원에게 데려갔을 때, 의원이 처방전을 주면서 다짐하는 말...
결국 아이는 죽었고 아이의 엄마는 가지고 있던 모든 돈과 패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인력거꾼은 그 노파의 말을 듣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여인의 팔을 부축하여 한 발짝식 파출소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작은 사건>

내가 그 인력거꾼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이 별것 아닌 머리털 때문에 괴로움과 수난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는지 알 수가 없네!" <머리털 이야기>
신해혁명 이후 중국 내에서 변발을 자르냐 마냐를 두고 소위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이 교대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발을 두고 민중들을 괴롭힌 것을 말한다...
 
"명절이 지나면? ....... 여전히 관리 노릇이나 해야지...... 내일 가게 주인이 돈 달라고 오거든 초여드렛날 오후에 오라고만 해" <단오절>
지방관리인 주인공은 지방정부의 재정부족으로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괴롭다. 부인이 이를 하소연하면서 신문이나 서점에 글을 써서라도 생활비를 구해오라고 말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리고 중얼중얼 [상시집](중국 최초의 현대시집)을 읽는다.
 
"나는 더는 가르치러 갈 생각이 없네. 여학교라는 게 도대체 어떤 꼴로 되어 갈지 모르겠어. 우리같이 단정한 사람은 확실히 함께 어울릴 수가 없어...." <까오 선생>
교사 자격을 취득한 후 처음 지방의 여학교에 들어온 까오 선생은 여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여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세상 풍속을 걱정한다.
 
"사랑 없는 인간은 사멸하고 만다" "나는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나는 진실로 마음의 상처를 깊이 감추고 묵묵히 전진하려고 한다. 망각과 거짓말을 나의 길잡이로 삼고서...." <죽음을 슬퍼하며>
둘이 사랑하여 여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시작했지만, 빈곤과 실업으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주인공은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고 여자는 가족에게 돌아간 후 죽는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난 후 주인공이 내뱉는 말...
 
 
지난 8월 개인적으로 루쉰 소설 선집을 읽은 후, 10월 독서모임에서 루쉰 소설에 대해 세미나를 하기로 논의가 되었다. 9월에 이 책 [루쉰 소설 전집]을 구하여 읽었다. 참가자들이 여러가지 바쁜 사정으로 11월 초로 연기되면서 며칠 전에야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루쉰 소설 전집]은 여러가지 번역서 중에서 서울대 중문과 김시준 교수가 번역,해설한 것으로 골랐다. 이 전집에는 루쉰이 1918년 발표하여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인정받는 <광인일기>부터 1935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죽은 자 살리기>까지 총 33편이 실려있다.
 
이 책은 루쉰이 일생 동안 발표한 소설들을 엮은 소설집 [납함], [방황], [고사신편] 등 3권에 수록된 33편을 번역한 완역본으로, 중국의 유교적인 가족 제도가 지니는 병폐와, 예절이라는 이름의 굴레가 인간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미친 사람(狂人)을 통해 들춰 보인 처녀작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 온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 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도 수록되어 있다.
 
루쉰은 강렬한 민족의식에 기반을 둔 작품을 통해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 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역자는 루쉰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포용하는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이다고 평가한다.
 
그의 소설은 중국이 봉건주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통하던 과도기에 중국인들이 체험하였던 고통과 혼란과 방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2천여 년간 쌓이고 쌓여 왔던 봉건주의 전통 사회의 거대한 탑이 붕괴되는 현상은 중국인들로서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루쉰은 봉건주의라는 전통 사회의 미망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문학 작품을 통해 계몽하여 봉건 윤리라는 미신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앞장서서 중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그의 대표작 <아Q정전>이 신문에 연재되었을 당시 중국의 많은 지식인 독자들이 마치 자신들의 심장을 향해 비수가 날아오는 것을 보듯이 전율했다고 평한다. 루쉰은 문학의 위대함을 국민들에게 일깨워주었으며 그의 문학사상의 위대함 또한 이것에 있다고 하겠다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 천두슈는 근대화 과정의 필수요소를 ‘과학’과 ‘민주’라고 했다. 그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주의의 도입을 근대화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이에 호응하여 나온 것이 후스의 문학 혁명이다. 그의 문학 혁명은 ‘백화문’의 보급이다. 그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근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근대화의 필수 조건인 문학 혁명을 실천하고 성공으로 이끈 것이 루쉰이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작품에 대한 역자의 해설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평을 읽어 보면 이구동성으로 루쉰이 대단히 뛰어난 작가였다고 애기한다. 나는 루쉰의 몇몇 작품을 여러번 읽었지만 그들의 감상만큼의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이 작품을 보는 '눈'이나 '마음'의 차이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20세기 초반의 중국사회나 역사, 그리고 다른 작품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루쉰의 작품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미신과 미몽에 빠져있는 중국인들의 모습, 격동하는 중국 근대사의 물결 속에서 당황하고 절망을 느끼는 중국인들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구체적인 단편소설 속에서 표현하여 중국인 일반에게 보여주려 했던 루쉰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느낀 현실은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얼추 오버랩될 수 있다. 사교육이라는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학생들, 스펙과 일자리,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 실업과 비정규직,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청장년층, 방황하는 노년이라는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도 서울시장 투표율이 50%를 조금 넘었다는 결과를 보면...
 
[ 2011년 11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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