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에밀 뒤르켐 지음, 황보종우 옮김, 이시형 감수 / 청아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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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 주 공부모임 주교재다. 지난 번 공부모임에서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에 대한 세미나가 사뭇 진지하여 그 여세를 몰아 다음 번 공부의 주제도 유사 분야로 정했고 참가자들이 추천하는 책 중에서 이 책이 부교재로 <사회란 무엇인가?>가 부교재로 선정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진정한 목적은 공부모임의 취지와는 약간 달랐다. 물론, 책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다시피 책의 소재와 주제는 19세기 후반 서구사회에서 ’자살’이 일어나는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지만, 당초 저자가 책을 집필한 궁극적인 동기는 그것보다 ’자살’을 주제로 하여 사회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학문으로써 사회학을 어떻게 연구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다음 주 부교재인 <사회란 무엇인가?>를 읽은 다음에야 저자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다음 주 공부모임 토론 주제가 조금 애매해지긴 했고...)
 
비록 내가 사회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저자가 19세기 후반에 사회학을 학문으로 일으켜내기 위해 도입한 사회에 대한 정의와 개념, 사회학의 연구방법론은 아마추어의 시각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1880년대 초반에 이 고전을 발간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에 프랑스, 그리고 서구에서 사회와 국가의 변동흐름을 읽어내고 사회학을 위해 여러 국가의 통계를 이용해 분석해내고 그 데이타로부터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밝혀내는 저자의 학문적 능력은 대단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학계에서 저자를 ’사회학의 창시자’로 예우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인터넷에서는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의 사망원인 중 하나인 자살에 관한 궁금증을 설명한 책"이라거나 "사회문제가 아닌 현대인의 질병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자료와 통계를 분석하여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낸다."라는 설명이 있다. 첫 번째 설명은 이 책이 단순히 ’자살의 궁금증’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자살의 원인을 사회의 변동과 연관하여 분석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고, 두 번째 설명은 완전히 거꾸로 설명한 것으로 무지와 오해의 극치다. 저자는 자살이 개인들의 질병이 아닌 사회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적 응집력/통합정도가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 자살이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19세기 말 프랑스와 프로이센, 작센, 함부르크(모두 현재 독일연방 지역), 스웨덴,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의 정부자료를 이용하여 가난과 고통, 권태와 우울증, 혹은 명예를 위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원인과 연령과 지역, 기후와 건강, 결혼의 유무에 따른 자살률의 변화와 자살 방지법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저자는 그 자료들을 활용하여 자살을 선택할 만큼 그 이유가 정말 괴롭고 힘든 것인지, 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지, 비슷한 상황이어도 자살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을 통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이를테면 신경쇠약 등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이 자살을 할 것이라든지, 자살을 막으면 그 폭력성이 살인으로 연결된다거나, 경제 부흥보다는 경제 위기 때 훨씬 자살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 등을 엄격한 자료의 비교와 분석을 통해서 사회적 원인을 규명해낸다.(책 속에서 저자는 자살의 유형을 이기적인 자살, 이타적인 자살, 아노미적 자살로 구분한다.) 공부모임에서 정확한 개념을 정리한 바로는, 사회공동체의 규범과 같은 방향에서의 자살은 이기적 자살로, 다른 방향에서의 자살은 이타적 자살로 정의했다.
 
저자의 결론은, 개인이 그보다 큰 도덕적 실체, 즉 집단적 실체(사회를 의미함)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국민들은 사망율보다 더욱 확고한 자살률을 보인다. 하루, 한 달, 한 해에 따라 나타나는 자살률의 변화는 사회생활의 리듬을 반영한다는 것. 결혼, 이혼, 가족, 군대, 종교 등의 제도는 명확한 규칙(법칙)에 따라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자살의 결론을 통하여 저자는 사회라는 제도를 실재하고 살아 있는 능동적인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런 제도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통해서 제도들이 개인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임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저자는 사회학이 왜 객관적일 수 있으며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분명해짐을 밝힌다. 사회학은 심리학이나 생물학과 마찬가지고 명확하고 실질적인, 사회라는 실체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살을 줄이고 방지하기 위하여 ’조합’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당시 유럽사회가 중세적인 가족제도와 장원제도, 그리고 종교가 지위와 역할, 사회적인 통합, 커뮤니케이션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하였고 국가 역시 그 역할을 대신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업과 교류시간, 통합력과 소통가능성을 고려하여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가기 시작한 ’조합’이 그런 기능들을 대신해야 하고 따라서 ’조합’을 더욱 확대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21세기 한국으로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관점과 제안이지만, 저자가 ’조합’을 유력한 대안으로 내세운 이유들을 심사숙고하면서 지금의 한국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공부모임 토론 중,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모 참석자는 당시 사회학계와 튀르켐은 노동분업과 그에 따른 조합이 사회적 통합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책이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자살을 사회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회적인 원인으로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도 그런 경향이 강하지만, 한국사회 역시 자살을 개인적인 나약함이나 개별적인 조건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자살은 사회(종교,가족,국가,정치등)가 응집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응집력의 요소는 의사소통, 감정교류, 세대간 단절, 급격한 가족해체, 이해와 공감, 도덕적 규제 등의 문화적인 것과 사회적 안전망 부족, 급속한 빈부격차 확대, 예기치 않은 실직과 부도 등의 제도적인 것이 모두 포함된다. 사회가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있다고 애기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사망율, 자살율 통계가 20세기와 21세기에도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라는 언론 보도를 통하여 우리사회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저자의 분석과 결론을 통해 현대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면, 결국 21세기 한국사회가 객관적으로 엄중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크게 기대하기 힘든 정부와 정치권, 기존 학계에게 기대하거나 기다리기 보다는 외부에서 시민 각자가, 관심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연구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면서 방향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1월 뉴스자료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자살방지를 위해 법규에 반영한 것이 고작 ’자살방지센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열심히 홍보하면 자살이 줄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

자살을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살의 원인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 국가,정치적으로는 제도적인 정비를 서둘러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각종 소통과 공감의 조직과 문화가 활성화 되어야 하며(종교도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고), 가족간의 해체를 줄이고 복원시킬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2011년 2월 17일 ]
 
 
-------------------------------[ 자살 관련 통계치와 관련 뉴스 ]-----------------------------------------
 
1. 통계청 사이트 공식 자료
 
한국의 사망 통계와 자살 통계가 궁금한 사람들은 첨부한 통계청의 보도자료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통계청이 데이터를 ’마사지’한다는 정황이 강하다는 것...
한 가지 예를 들면, 2006년 통계자료에서는 자살수치가 10만명 당 23.0명인데, 2007년 자료에서는 21.8명으로 바꾸어져 있다.

2009년 통계청 발표자료에서는 10만명 당 무려 42명이다. 한국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30년간 자살 증가율이 무려 400%에 달한다는 것이다.
 
 
2. DAUM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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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살률, 2년 연속 세계 1위"’장기 내수불황’으로 5년째 자살 급증, 20~30대 사망원인 1위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5년 연속 높아지며 작년 10만명당 26명을 기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년연속 1위를 차지했다.

자살률 5년째 상승, 하루 평균 6백73명 사망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10년전인 1995년의 11.8명의 2배가 넘는 26.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자살률은 1999년 16.1명에서 2000년 14.6명으로 일시적으로 낮아졌다가 2001년 15.5명, 2002년 19.1명, 2003년 24.0명, 2004년 25.2명에 이어 작년까지 5년 연속 수직상승했다. 자살자 급증은 ’장기 내수불황’과 아파트값 폭등으로 ’양극화’가 극심히 진행된 시기와 일치하는 현상이어서, 극심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확산 등 경제난에 따라 자살율이 급증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OECD 기준인구로 국가별 연령구조 차이를 표준화한 자살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작년 10만명당 24.7명으로 2004년에 이어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고, 헝가리가 22.6명(2003년 기준), 일본이 20.3명 등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영국(6.3명), 이탈리아(5.6명), 스페인(6.7명) 등은 자살률이 10명을 밑돌았다.

특히 20~30대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해, 차세대의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률과 더불어 나라 앞날을 어둡게 하는 먹장구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에 따른 자살은 사회적 타살 성격이 짙다"며 "자살 원인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총체적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40대 이상은 암이 사망원인 1위

한편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망자 수는 24만5천5백11명으로 하루 평균 6백73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보다 평균 1.2배 정도 높았으며, 50대 남자의 사망률은 여자의 2.85배에 달해 가장 높았다. 40대와 50대 남자의 간질환 사망률은 여자보다 각각 7.45배와 7.26배 높았고 자살률도 여자의 2~3배로 높았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3.9배, 운수사고가 2.8배, 자살이 2배 수준으로 높았다. 여자는 고혈압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남자보다 1.8배 정도로 높았다.

연령별로는 20대 미만은 운수사고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았고, 20~30대는 자살이, 40대 이상은 암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사망 원인별로는 통계조사가 시작된 1983년 이후 22년째 1위를 차지한 암 사망자가 작년에도 전체의 26.7%인 6만5천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뇌혈관질환 12.7%((3만1천명), 심장질환 7.9%(1만9천명) 순으로 이들 3대 사망원인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7.3%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으로는 1백79명이 암으로, 86명이 뇌혈관질환으로, 53명이 심장질환으로, 33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자살로 인한 사망자와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각각 1만2천명에 달했으며,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AIDS)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해 70명이었다.

사망률 별 증가 사인으로는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1995년 110.8명에서 작년에는 134.5명으로 23.7명 증가해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암 종류별 사망률은 폐암(28.4명), 위암(22.6명), 간암(22.5명), 대장암(12.5명) 순으로 높았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9.5명, 대장암이 6.7명, 전립샘암이 2.5명씩 늘어난 반면 위암은 3.9명,
자궁암은 0.6명 감소했다.

반면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률은 작년 16.3명으로 10년 전보다 22.4명이나 줄었고 고혈압성 질환은 9.0명, 뇌혈관 질환은 15.4명, 간질환은 12.1명 감소했다.

/ 김홍국 기자 (
archomme@views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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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0 21:55 | 출처 : 본인작성 , [카페] ★가슴~빨★ (가슴성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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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살 관련법 개정 뉴스
 

"세계 최고 자살국 ’한국’ 자살방지대책센터 설치 추진"

 
입력 2011-01-09 15:15 글자확대글자축소인쇄뉴스퍼가기
 
[경제투데이]
세계 최고 자살국가란 불명예를 떠안는 현실에서 자살예방과 방지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자살방지대책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김영선 의원은  최근 이러한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고 9일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9년 한해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총 1만4413명으로 하루 평균 42.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률 세계1위 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2000년부터 10년간 자살사망률이 2.38배로 급증하고 있어 사회적 심각성이 날로 높아지는 실정이다. 1990년부터 2006년까지 OECD회원국 대상 자살증가율 조사한 결과 회원국 자살률은 평균 20.4% 감소한 반면 한국은 17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국가적 품격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개정 법률안 발의와 관련,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있는 국가가 나서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예방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살방지 교육과 자살방지대책센터를 설치해 국민의 자살대책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보람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법률안은 김영선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김기현, 김정권, 김태원, 김호연, 손범규, 신영수, 안효대, 유승민, 이인기, 이종혁 의원이 공동발의했다. 

http://eto.co.kr/news/view.asp?Code=2011010915155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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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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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르켐 & 베버 :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식인마을 19
김광기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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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 주 공부모임의 부교재(주교재는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다. 공부모임에서는 <자살론>과 이 책으로 ’사회란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학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사회&사회학의 개념과 구성원리, 사회의 작동원리를 함께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출판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의 하나인 ’사회란 무엇인가’를 서구에서 출현한 사회학의 두 거장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를 비교하면서 풀어낸다. 저자는 사회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출현한 시점을 중세시대가 붕괴하기 시작한 프랑스 혁명으로 본다.(저자의 생각은 곧 현대 사회의 주류 사회학계가 그렇게 인정한다는 뜻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기존의 사회체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는 혼란 속에서 사회학은 탄생했다. 기존의 사회체제의 붕괴는 더 나아가 기존에 당연시되던 모든 것들의 정당성과 도덕성이 도전을 받고 의문시 되었다. 인류는 생각의 자유를 얻었지만, 대신 생각해야 할 의무와 피곤함을 안게 되었다. 중세의 붕괴 이후에는 세상과 사회,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 종교가 제공하던 생각의 틀과 질서를 인간들 스스로가 세워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일반인 뿐 아니라 지식인,학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들어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 사회학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철학, 신학, 과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학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사회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찾아내려는 사회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밀 뒤르켐은 사회학의 창시자라 불린다. 그는 사회를 "그것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실체를 이루는 현상"으로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를 학문으로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한 개인의 심리상태나 유전, 또는 질병이 아닌 사회적 통계의 분석을 통한 사회적 원인을 찾은 것이다.(그 원인은 사회의 응집력이었다) 현대 사회학에서는 ’사회’의 중요한 특성을 - 1) 인간 개개인의 외부에 당당히 존재하는 외재성, 2) 사회가 인간들의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알고 있는 객관성, 3) 사회는 외부에 존재하면서 오히려 개별 인간들을 강제할 수 있는 강제성, 4) 도덕적 권위를 갖는 정당성, 5) 개별 인간이나 집단보다 오래된 역사성 - 이라 한다. 그리고 에밀 뒤르켐은 종교에 대한 독특한 정의를 통해 사회는 종교와 결코 다르지 않으며, 종교와 마찬가지로 ’믿음’과 ’제사(행위)’로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뒤르켐은 종교현상을 일종의 ’집단적 광풍’으로 보았고 그 광품을 구성하는 것이 믿음과 제사였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체계의 출현을 개신교의 윤리와 접목시켜 인과적으로 설명한 막스 베버는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아가 베버는 현대사회를 오랜 기간 역사 속에서 추앙받아온 기존 종교의 절대성이 쇠퇴하고 대신 다양한 가치들이 모두 신의 반열에 올라 그 우열을 가늠하게 되는 이른바 가치의 다신교적 상황의 도래로 묘사했다. 그는 사회 현상에서 인간들의 ’행위의 규칙성’을 찾아 인간의 행위에 담겨있는 의미를 팡가하는 식의 사회(과)학 방법론을 세웠다.
 
막스 베버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부분은 베버가 자신의 사회학을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 끈질기게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 칼 마르크스였다고 한다. 흔히 이를 두고 비평가들은 "베버가 마르크스의 망령과 부단히 씨름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베버가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현대사회(당시 기준으로)의 자본주의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고 마르크스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저작과 추종자들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의 필연적인 단계로 자본주의를 규정하고 전인류가 속한 모든 사회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볍칙으로 보았지만, 베버는 인류의 일반적인 발전단계는 존재하지 않았고 서구자본주의의 발전은 서유럽과 미국에서만 전개되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종교를 포함한 정치, 예술, 문화 등을 ’상부구조’라 규정하고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보았지만, 베버는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식으로 인식하였다.
 
저자는 이처럼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는 사회의 본질을 규명하려 했던 두 명의 지식인 뒤르켐과 베버의 논의를 통해 현재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말미에 키르키즈스탄의 신붓감 납치 문화와 에티오피아 수르마족 여인들의 입술에 구멍내기 문화, 한국의 황우석사태와 월드컵 응원문화는 "사회란 모두가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정상과 비정상은 사회적 정의定義 문제"라고 결론을 내린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사회는 집단적으로 미쳐있음을 인정하면서 사회와 집단이 주어진 모든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면 살아왔던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태도와 이념,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계기를 가져야 함을 주장한다. 

사회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실제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 대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직접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뒤르켐과 베버의 이론과 결론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단초와 계기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출판사가 2006년에 기획하여 시작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동서양의 대표 지식인 100인의 사상을 소개한 것이다. 이 기획은 분야별, 시대별로 지식인들의 대립, 계승, 영향관계를 비교하여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카이스트 출신으로 동덕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장대익박사가 시리즈를 주도했으며, 현재 37권까지 출간되어 있다. 일반인들이 주요 사상가와 이론가들의 핵심을 엿보는데 유익한 교양서가 될 듯 하다. 
 
[ 2011년 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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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학 몸의 철학 마음의 건강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0
이창일 지음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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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난 4월 7일 [평화나눔아카데미] 3회차 강좌에서 강연한 바 있고 이 책은 저자가 강연시 활용한 교재였다. 강좌 전에 강연을 조금이나마 쉽게 알아듣기 전에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원 논문으로 쓴 이제마의 사상체계를 다시 책으로 발간한 것인데, 저자는 그 이후에도 이제마의 문집 초고인 <동무유고>와 <동의수세보원> 등 이제마의 글을 재정리하여 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의학적 측면으로만 논의되어 왔던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 즉 유가사상과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사상의학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인간의 생리학적 구도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숫자 '4'의 의미와 전통 유학의 범주인 천인天人과 성명性名의 관계, 사상인의 특성이 형성되는 원리,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어떻게 개인의 재능과 능력에 영향을 주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제마는 1837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유지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흥은 조선 왕조 개국 성씨인 전주 이씨 지역이고 개항기에 외국 세력과 접촉했던 원산항과 더불어 중요한 문호이기도 하여 어느 정도 개화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제마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므로 서출이었다. 이제마 출생에 대한 태몽으로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집안의 장남 노릇을 했던 이제마는 그의 나이 열 세살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연이어 잃고 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이제마는 조선 반도 뿐 아니라 만주나 연해주까지 유람한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 유학과 주역을 비롯한 많은 학문을 익히고 견물을 넓히고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서른 아홉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쉰넷에 관직에서 물러나고 예순넷이던 19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동무東武 이제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남긴 의서 <동의수세보원>에 실린 "사상의학"에 대한 호기심의 연장이며, 이것은 사람들의 건강에 관한 극도의 관심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라 하여 사람의 체질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한 후 그에 맞는 건강관리법 및 병의 치료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단순히 몇 가지 체질구분 방법인 체형이나 심성 등으로만 체질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해 및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동무 이제마의 철학적 배경은 유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맹자>의 유교사상을 핵심으로 두고 있다. 즉, 그가 말한 사상(四象)은 맹자의 사단(四端)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와 거의 같다. 쉽게 말해서 이재마의 사상의학은 맹자의 유교철학을 의학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이란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사양지심과 시비지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학생시절에 맹자의 사단을 '인의예지(仁義禮志)'로 간단하게 배운 바 있다. 맹자는 이에 대해 "사람에게 이 사단이 있는 것은 사체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으니, 사단을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 인의예지를 행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요. .... 무릇 우리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넓혀서 채울 줄 안다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능히 채우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부모도 족히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상의학에서 핵심은 인간의 마음에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치료할 때 비로소 완전한 치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학에 관한 입장은 현재의 서양의학과 전통 한의학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 의학이라고 하면 서양의학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의 핵심은 징후학이며 구체의학 이라는 것이다. 즉, 병이 발생하고 나면 이것을 병으로 간주하고 치료를 하고(병이 발생하기 전 부조화는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몸의 전체를 통합적으로 연관하여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발생한 부위에 한정하여 직접적인 치료를 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현재의 주류 한의학의 개념은 이러한 서양의학과는 다른 통합적 치료와 병이 생기기 전의 신체의 부조화까지도 병이라 규정하고 이것에 대한 본질적인 치료를 행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하여 주류 한의학에서는 병이 발생한 곳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이 있는 다른 장기까지도 치료하여 병의 본질적인 파해를 추구한다.
 
천인(天人) : 천기와 인사
- 천기 : 지방, 인륜, 세회, 천시  --- 눈, 코, 입, 귀 -----------  
              ㅣ     ㅣ      ㅣ    ㅣ                                     ㅣ  애哀, 노怒, 희喜, 낙樂  -> 사해
- 인사 : 거처, 당여, 교우, 사무  --- 폐, 지방, 간, 신장 -----
 
사해(四海)
- 눈, 코, 입, 귀 -> 이해, 막해, 혈해, 정해 -> 의意, 여廬, 조操, 지志
- 폐, 비, 간, 신 -> 진해, 고해, 유해, 액해 -> 신神, 영靈, 혼魂, 백魄
 
성명(性名)
- 성 : 텩, 가슴, 배꼽, 아랫배 - 주책, 경륜, 행검, 도량 - 의려조지
- 명 : 머리, 어깨, 허리, 볼기 - 식견, 위의, 재간, 방략 - 신령혼백
 
사상인(四象人)
- 태음인의 턱은 마땅히 교만한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어깨는 사치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태음인의 턱에 교만한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주책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태음인의 어깨에 사치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대인의 위의가 반드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 소음인의 가슴은 뽐내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머리는 마땅히 빼앗으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소음인의 가슴에 뽐내는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경륜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소음인의 머리에 빼앗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대인의 식견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 태양인의 배꼽은 우쭐거리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엉덩이는 마땅히 도적질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태양인의 배꼽에 우쭐거리는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행검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엉덩이에 도적질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대인의 방략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 소양인의 아랫배에는 자랑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허리는 마땅히 게으른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소양인의 아랫배에 자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도량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허리에 게으른 마음이 없다면 대인이 재간이 반드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p.123)

이러한 서양의학과 주류 한의학과의 차이와는 다르게 분명 사상의학 또한 한의학의 한 지류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한의학과는 또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일단은 기존의 한의학과 유사하게 병의 통합적 치료를 강조하고 있지만, 몸과 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및 장부를 이해하는 방식이 주류 한의학과는 다르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오장(五臟)의 하나인 심장을 바라보는 개념의 차이일 것이다. 주류 한의학에서는 심장은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이해하며 나머지 4개의 장과 비슷한 위상을 지니는데,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심장은 다른 네 가지 장의 중심에 있는 핵심 장부로 이해한다. 즉, 심장이 다른 장기와는 독립되어 사고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철학적 배경인 맹자의 마음에 관한 이해를 심장과 동일시하면서 <심장=마음>이다라는 새로운 접근을 하게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상의학은 곧 마음의 의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이다. 여기에 체질의 태생적 구분을 전제로 하여 태양인, 태음인, 소음인, 소양인의 네 가지로 구분하고 이 체질에 맞는 병의 근원적 이해 및 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차이로 인하여 기존 한의한과는 다른 약재의 사용이 나타나게 된다(몸의 대한 이해와 약재에 대한 이해가 다르므로). 또한 주류 한의학에서 침술이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사상의학에서는 침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강연에서 “사상의학은 단순한 질병 치료의 의학이기에 앞서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 인간의 길인가’라는 인류의 오랜 물음에 답하고자 했던 새로운 철학이자 인간학”이라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면서 사상의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근대의학과 약물에 맡겨 놓았던 우리 몸과 마음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기 중심과 인간 중심의 사고체계, 즉 자기 인식의 틀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먼저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인간관계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철학적, 종교적으로도 많은 분들이 만한 바 있고 동양철학의 밑바탕이기도 할 것이다. 동양철학은 현재 서양과학으로 불리우는 가위손에 의해 철저하게 난도질당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이분화하고 구체화하면서 우리의 인식 또한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근대의 서구철학은 이분법을 특징으로 한다. 마르크스-레니주의 또한 그 본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나마 21세기를 전후하여 서구 철학과 과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원론과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서구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다행이지만...
 
이 책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정리한 책이라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 유학과 주역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들의 경우, 사상인이나 사상의학까지 나아가기 전에 책을 덮어버리고 말 것이다. 앞으로 이제마 개인의 삶의 역정에 대해,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과 내용에 대해, 사상인과 사상의학에 대해, 주류 한의학과 사상의학의 비교에 대해 각각 연구 결과가 나와 독자들에게 제공되기를 바란다.
 
유학도 익히지 못했고 주역도 읽어보지 못했기에 150쪽을 읽는데 며칠이 걸렸다. 그리고도 금세 머리 속이 하얗게 지워지곤 한다. 차분히, 천천히 동양철학과 세계관을 배워나갈 생각이고 이 책이 조금 채찍질이 된 것 같다.
  
[ 2011년 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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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7:29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 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 Pamphlet 00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시인의 새로운 시집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읽으면서 이 책을 주문했다. 처음 이 책을 받은 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의 여운이 길고도 깊어 몇 번을 다시 읽은 후 이 책을 읽으려 했는데,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지난 주에 읽고 말았다.
 
내가 그동안 겉으로만 알고 있던 레바논. 아니 알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레바론은 그렇게 나에게 불쑥 다가왔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쫒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폭풍처럼 나를 아프카니스탄으로 던져 놓았듯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종교적 광기와 선민주의가 인간을,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짐승처럼, 아니 구제역에 노출된 소돼지처럼 취급하다니...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잃은 아이들의 순박한 눈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눈물은 레바론 아이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살았던 나에 대한, 내 존재 속에 방치되어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분통함의 눈물일 것이다. 작년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도 코 끝이 찡하고 말았는데...

 
2006년 7월 13일. 이스라엘군의 탱크는 남부 레바논 도시들의 민가를 향해 진격하고, 전폭기들은 농가의 하늘을 뒤덮었다. 무자비한 폭탄비에 쓰러져 간 것은 아무 죄 없는 아이들과 민간인들이었다. 그들은 피흘리고 쓰러지며 아무도 없느냐고 울부짖었다. 시인은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지금 여기 레바논에는...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라는 소리를 듣고 전쟁 직후의 레바논에 들어가 처절한 현장의 진실을 글과 시와 사진으로 담아왔다. 


시인은 레바논 북부 바알벡에서부터 남부 국경지대의 작은 마을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직접 만나 레바논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상처를 기록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재건과 복구에의 희망을 기록했다. 피해 주민의 아픔은 레바논 내부의 오랜 모순에 짓눌려 더욱 아팠고 왜곡된 정치체제와 뒤얽힌 국제관계는 명백한 전쟁의 진실마저 호도하고 있었다. 저널리즘을 망각한 서구의 언론들과 한국의 언론들은 취재는 커녕 사실마저 은폐하고 만 것이다.

 
시인이 직접 찍은 150여 장의 흑백 사진들과 곳곳에 수록된 시들은 레바논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어 텍스트가 미처 전하지 못하는 레바논의 깊숙한 진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내 언론에서도 거의 시도된 바 없는 헤즈볼라와의 심층 인터뷰이다. 레바논의 실체적 정부라고 할 수 있는 헤즈볼라가 한국군 전투병 파병에 대한 입장을 최초로 밝혔다. 헤즈볼라와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헤즈볼라를 움직이는 철학과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 대해서도 언급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레바논의 사회정치적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바논 내부에서는 레바논 정부의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공격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 의원이 테러로 살해되는 등 레바논 정국은 혼란과 내전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레바논에는 외국 군대가 필요치 않습니다! (중략) 파병된 한국군이 전투병이거나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시도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리자 역할을 맡게 된다면, 누구도 원치 않는 비극적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중략)  이 레바논 땅에서 레바논 민중과 헤즈볼라의 평화의지를 거스르며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그 어떤 군대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헤즈볼라 대변인의 이야기는 한국의 레바논 파병이 불러올 반향과 그 심각성에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다. 

 
박노해시인은 현재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
nanum.com)’를 이끌고 있다. 시인은 나눔문화 회원들의 성금과 8,700명의 거리 서명과 사진을 들고 레바논에 들어가 레바논 민중들에게 작지만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쳐 헌신했던 지난 혁명의 실패를 인정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한 사람으로서 다시 시작하여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나도 이제 무언가 몸으로 직접 해야 하기에 엇그제 이 단체에 가입했다.)

 
[ 2011년 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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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 <서있는 사람들>에 이어 일곱 번째 법정스님의 저서를 읽었다. 이 책은 1976년 봄 초판이 발행되었고 법정스님이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법정스님은 이 책에서부터 한국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당신의 사상과 철학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스님의 기본적인 설법 내용은 [무소유]다. [무소유] 사상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 역시 빈손으로,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떠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살다 보니 이것 저것 자신의 몫이 생기게 되었고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게 되었지만,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고 고통받게 된다. 무언가를 갖는 다는 것은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소유 관념이 때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하고 그래서 자신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스님의 [무소유]가 아예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잠시 맡아두고 있다가 떠날 때 보관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깃들어 있어야 주변으로부터의 소유에 따른 맘 고생과 분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간디의 생각 및 행동과 일치한다. 간디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소유]의 경지는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흙과 평면 공간]에서 스님은 1970년에 본격적으로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한 APT에 대해 크게 우려하신다. 일 때문에 APT에 한 달 남짓 생활하시면서 스님은 편안하게 사는 것이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신다. 우선 주거와 편의시설이 좁은 공간에 몰려있으면서 사람이 보행의 반경을 잃어버렸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이웃과도 단절되어 버렸다. 걷는 것이 단순히 몸 동작만이 아니라 탁 트인 시야에서 자연을 호흡하고 걷는 가운데 활발한 사고작용이 일어난다. 흙에서 벗어나면서 인간의 뿌리에서 멀어진다. 결국 불편을 극복해 가면서 사는 데에 건강이 있고 생의 묘미가 있다는 상식을 일깨워주신다.
 
[인형과 인간]에서 스님은 ’행동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배움과 지식이 쌓여가고 도처에 학자와 교수, 지식인들이 늘어나지만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행동이 없는 지식인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사이비요 위선자가 되고 만다. 가슴 뜨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작고하신 리영희선생님의 ’지식인상’이 생각난다...
 
[침묵의 의미]에서 스님은 1970년대 초반 ’침묵’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준다. ’침묵’의 진정한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된 말을 하기 위해서이지, 비겁한 침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에도 꺼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한 말을 할 수 있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폭압과 폭정에 대해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던 언론계, 학계, 종교계 인사들에 대한 질타였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지식인의 숫자는 오히려 숫자로는 2배 이상이 늘어나고 그 행위는 ’침묵’에서 넘어 ’동조’와 ’참여’로까지 파렴치하게 이어지는 것 같다.
 
[영혼의 모음]에서 스님은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대해 다소 길게 소감을 나타낸다. 여러번 읽으면서 스님은 늘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반추해보신다고 했다. (나도 다시 읽었지만 스님만큼 영혼을 일깨우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ㅠ.ㅠ;;)
 
스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나는 아직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듯 하다. 즉, 필요한 것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내가 지금 생각하는 '필요한'에 대한 생각도 관점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필요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주변에서 눈에 띄는 것만 보더라도 그동안 구해서 읽은 책만 해도 수 백권에 이르고 입지 않고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도 제법 많다. 언제쯤 되면 스님의 [무소유]의 참 뜻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을지...
 
[ 2011년 2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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