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 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 Pamphlet 00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시인의 새로운 시집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읽으면서 이 책을 주문했다. 처음 이 책을 받은 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의 여운이 길고도 깊어 몇 번을 다시 읽은 후 이 책을 읽으려 했는데,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지난 주에 읽고 말았다.
 
내가 그동안 겉으로만 알고 있던 레바논. 아니 알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레바론은 그렇게 나에게 불쑥 다가왔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쫒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폭풍처럼 나를 아프카니스탄으로 던져 놓았듯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종교적 광기와 선민주의가 인간을,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짐승처럼, 아니 구제역에 노출된 소돼지처럼 취급하다니...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잃은 아이들의 순박한 눈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눈물은 레바론 아이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살았던 나에 대한, 내 존재 속에 방치되어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분통함의 눈물일 것이다. 작년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도 코 끝이 찡하고 말았는데...

 
2006년 7월 13일. 이스라엘군의 탱크는 남부 레바논 도시들의 민가를 향해 진격하고, 전폭기들은 농가의 하늘을 뒤덮었다. 무자비한 폭탄비에 쓰러져 간 것은 아무 죄 없는 아이들과 민간인들이었다. 그들은 피흘리고 쓰러지며 아무도 없느냐고 울부짖었다. 시인은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지금 여기 레바논에는...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라는 소리를 듣고 전쟁 직후의 레바논에 들어가 처절한 현장의 진실을 글과 시와 사진으로 담아왔다. 


시인은 레바논 북부 바알벡에서부터 남부 국경지대의 작은 마을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직접 만나 레바논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상처를 기록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재건과 복구에의 희망을 기록했다. 피해 주민의 아픔은 레바논 내부의 오랜 모순에 짓눌려 더욱 아팠고 왜곡된 정치체제와 뒤얽힌 국제관계는 명백한 전쟁의 진실마저 호도하고 있었다. 저널리즘을 망각한 서구의 언론들과 한국의 언론들은 취재는 커녕 사실마저 은폐하고 만 것이다.

 
시인이 직접 찍은 150여 장의 흑백 사진들과 곳곳에 수록된 시들은 레바논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어 텍스트가 미처 전하지 못하는 레바논의 깊숙한 진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내 언론에서도 거의 시도된 바 없는 헤즈볼라와의 심층 인터뷰이다. 레바논의 실체적 정부라고 할 수 있는 헤즈볼라가 한국군 전투병 파병에 대한 입장을 최초로 밝혔다. 헤즈볼라와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헤즈볼라를 움직이는 철학과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 대해서도 언급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레바논의 사회정치적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바논 내부에서는 레바논 정부의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공격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 의원이 테러로 살해되는 등 레바논 정국은 혼란과 내전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레바논에는 외국 군대가 필요치 않습니다! (중략) 파병된 한국군이 전투병이거나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시도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리자 역할을 맡게 된다면, 누구도 원치 않는 비극적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중략)  이 레바논 땅에서 레바논 민중과 헤즈볼라의 평화의지를 거스르며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그 어떤 군대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헤즈볼라 대변인의 이야기는 한국의 레바논 파병이 불러올 반향과 그 심각성에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다. 

 
박노해시인은 현재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
nanum.com)’를 이끌고 있다. 시인은 나눔문화 회원들의 성금과 8,700명의 거리 서명과 사진을 들고 레바논에 들어가 레바논 민중들에게 작지만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쳐 헌신했던 지난 혁명의 실패를 인정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한 사람으로서 다시 시작하여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나도 이제 무언가 몸으로 직접 해야 하기에 엇그제 이 단체에 가입했다.)

 
[ 2011년 2월 20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