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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학 몸의 철학 마음의 건강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0
이창일 지음 / 책세상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지난 4월 7일 [평화나눔아카데미] 3회차 강좌에서 강연한 바 있고 이 책은 저자가 강연시 활용한 교재였다. 강좌 전에 강연을 조금이나마 쉽게 알아듣기 전에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원 논문으로 쓴 이제마의 사상체계를 다시 책으로 발간한 것인데, 저자는 그 이후에도 이제마의 문집 초고인 <동무유고>와 <동의수세보원> 등 이제마의 글을 재정리하여 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의학적 측면으로만 논의되어 왔던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 즉 유가사상과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사상의학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인간의 생리학적 구도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숫자 '4'의 의미와 전통 유학의 범주인 천인天人과 성명性名의 관계, 사상인의 특성이 형성되는 원리,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어떻게 개인의 재능과 능력에 영향을 주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제마는 1837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유지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흥은 조선 왕조 개국 성씨인 전주 이씨 지역이고 개항기에 외국 세력과 접촉했던 원산항과 더불어 중요한 문호이기도 하여 어느 정도 개화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제마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므로 서출이었다. 이제마 출생에 대한 태몽으로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집안의 장남 노릇을 했던 이제마는 그의 나이 열 세살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연이어 잃고 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이제마는 조선 반도 뿐 아니라 만주나 연해주까지 유람한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 유학과 주역을 비롯한 많은 학문을 익히고 견물을 넓히고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서른 아홉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쉰넷에 관직에서 물러나고 예순넷이던 19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동무東武 이제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남긴 의서 <동의수세보원>에 실린 "사상의학"에 대한 호기심의 연장이며, 이것은 사람들의 건강에 관한 극도의 관심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라 하여 사람의 체질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한 후 그에 맞는 건강관리법 및 병의 치료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단순히 몇 가지 체질구분 방법인 체형이나 심성 등으로만 체질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해 및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동무 이제마의 철학적 배경은 유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맹자>의 유교사상을 핵심으로 두고 있다. 즉, 그가 말한 사상(四象)은 맹자의 사단(四端)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와 거의 같다. 쉽게 말해서 이재마의 사상의학은 맹자의 유교철학을 의학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이란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사양지심과 시비지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학생시절에 맹자의 사단을 '인의예지(仁義禮志)'로 간단하게 배운 바 있다. 맹자는 이에 대해 "사람에게 이 사단이 있는 것은 사체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으니, 사단을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 인의예지를 행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요. .... 무릇 우리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넓혀서 채울 줄 안다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능히 채우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부모도 족히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상의학에서 핵심은 인간의 마음에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치료할 때 비로소 완전한 치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학에 관한 입장은 현재의 서양의학과 전통 한의학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 의학이라고 하면 서양의학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의 핵심은 징후학이며 구체의학 이라는 것이다. 즉, 병이 발생하고 나면 이것을 병으로 간주하고 치료를 하고(병이 발생하기 전 부조화는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몸의 전체를 통합적으로 연관하여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발생한 부위에 한정하여 직접적인 치료를 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현재의 주류 한의학의 개념은 이러한 서양의학과는 다른 통합적 치료와 병이 생기기 전의 신체의 부조화까지도 병이라 규정하고 이것에 대한 본질적인 치료를 행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하여 주류 한의학에서는 병이 발생한 곳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이 있는 다른 장기까지도 치료하여 병의 본질적인 파해를 추구한다.
천인(天人) : 천기와 인사
- 천기 : 지방, 인륜, 세회, 천시 --- 눈, 코, 입, 귀 -----------
ㅣ ㅣ ㅣ ㅣ ㅣ 애哀, 노怒, 희喜, 낙樂 -> 사해
- 인사 : 거처, 당여, 교우, 사무 --- 폐, 지방, 간, 신장 -----
사해(四海)
- 눈, 코, 입, 귀 -> 이해, 막해, 혈해, 정해 -> 의意, 여廬, 조操, 지志
- 폐, 비, 간, 신 -> 진해, 고해, 유해, 액해 -> 신神, 영靈, 혼魂, 백魄
성명(性名)
- 성 : 텩, 가슴, 배꼽, 아랫배 - 주책, 경륜, 행검, 도량 - 의려조지
- 명 : 머리, 어깨, 허리, 볼기 - 식견, 위의, 재간, 방략 - 신령혼백
사상인(四象人)
- 태음인의 턱은 마땅히 교만한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어깨는 사치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태음인의 턱에 교만한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주책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태음인의 어깨에 사치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대인의 위의가 반드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 소음인의 가슴은 뽐내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머리는 마땅히 빼앗으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소음인의 가슴에 뽐내는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경륜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소음인의 머리에 빼앗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대인의 식견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 태양인의 배꼽은 우쭐거리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엉덩이는 마땅히 도적질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태양인의 배꼽에 우쭐거리는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행검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엉덩이에 도적질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대인의 방략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 소양인의 아랫배에는 자랑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허리는 마땅히 게으른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소양인의 아랫배에 자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절세의 도량이 거기에 있을 것이며, 허리에 게으른 마음이 없다면 대인이 재간이 반드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p.123)
이러한 서양의학과 주류 한의학과의 차이와는 다르게 분명 사상의학 또한 한의학의 한 지류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한의학과는 또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일단은 기존의 한의학과 유사하게 병의 통합적 치료를 강조하고 있지만, 몸과 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및 장부를 이해하는 방식이 주류 한의학과는 다르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오장(五臟)의 하나인 심장을 바라보는 개념의 차이일 것이다. 주류 한의학에서는 심장은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이해하며 나머지 4개의 장과 비슷한 위상을 지니는데,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심장은 다른 네 가지 장의 중심에 있는 핵심 장부로 이해한다. 즉, 심장이 다른 장기와는 독립되어 사고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철학적 배경인 맹자의 마음에 관한 이해를 심장과 동일시하면서 <심장=마음>이다라는 새로운 접근을 하게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상의학은 곧 마음의 의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이다. 여기에 체질의 태생적 구분을 전제로 하여 태양인, 태음인, 소음인, 소양인의 네 가지로 구분하고 이 체질에 맞는 병의 근원적 이해 및 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차이로 인하여 기존 한의한과는 다른 약재의 사용이 나타나게 된다(몸의 대한 이해와 약재에 대한 이해가 다르므로). 또한 주류 한의학에서 침술이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사상의학에서는 침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강연에서 “사상의학은 단순한 질병 치료의 의학이기에 앞서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 인간의 길인가’라는 인류의 오랜 물음에 답하고자 했던 새로운 철학이자 인간학”이라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면서 사상의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근대의학과 약물에 맡겨 놓았던 우리 몸과 마음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기 중심과 인간 중심의 사고체계, 즉 자기 인식의 틀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먼저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인간관계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철학적, 종교적으로도 많은 분들이 만한 바 있고 동양철학의 밑바탕이기도 할 것이다. 동양철학은 현재 서양과학으로 불리우는 가위손에 의해 철저하게 난도질당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이분화하고 구체화하면서 우리의 인식 또한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근대의 서구철학은 이분법을 특징으로 한다. 마르크스-레니주의 또한 그 본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나마 21세기를 전후하여 서구 철학과 과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원론과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서구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다행이지만...
이 책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정리한 책이라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 유학과 주역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들의 경우, 사상인이나 사상의학까지 나아가기 전에 책을 덮어버리고 말 것이다. 앞으로 이제마 개인의 삶의 역정에 대해,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과 내용에 대해, 사상인과 사상의학에 대해, 주류 한의학과 사상의학의 비교에 대해 각각 연구 결과가 나와 독자들에게 제공되기를 바란다.
유학도 익히지 못했고 주역도 읽어보지 못했기에 150쪽을 읽는데 며칠이 걸렸다. 그리고도 금세 머리 속이 하얗게 지워지곤 한다. 차분히, 천천히 동양철학과 세계관을 배워나갈 생각이고 이 책이 조금 채찍질이 된 것 같다.
[ 2011년 4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