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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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꾸다 히데오의 작품은 2008년 11월에 <남쪽으로 튀어> 1,2권을, 2010년 3월에 <GIRL>을 읽은 적이 있다. <남쪽으로 튀어>는 전공투 세대이자 아나키스트가 된 아버지가 정부나 제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타협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아들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GIRL>은 직장여성인 주인공들이 회사에선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눈치가 보이고 남자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만 같고 결혼보다 일이 좋아 독신을 택했는데 자꾸만 밀려드는 외로움을 주체할 길이 없을 때, 긍정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환하게 웃게 만든다. 두 개의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 문학과 소설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지만, 그 뒤로 히데오의 작품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 책은 올해 읽고 싶은 문학 분야를 고르던 중 저자의 작품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주 초에 소설이라 가볍게 읽은 것인데, 우연하게도 엇그제 공부모임의 주제와 관련된 심리치료 의사가 주인공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그 뿐 아니라 공부모임 중에 이 책을 참석자들에게 소개도 해주었다. 책을 꾸준히 읽음에도 주로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그리고 경제경영 분야를 주로 읽다보니 간간히 미소를 짓게 하거나 웃음 소리가 나게 하는 문장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진지한 책들이다. 이 책 <공중그네>는 책을 읽는 중에 여러번 나도 모르게 크게 웃게 만들어 주었다(눈물이 쏙 빠질만큼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인 것 같은...^^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소설 책이라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주인공과 조연급의 캐릭터를 엽기적이고 독특하게 설정하여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주인공인 신경정신과 의사는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서 처음 방문하는 환자를 결박해놓고 다짜고짜 주사부터 찌르고 보는 단순무식 치료부터 시작한다. 사극에 나오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내고 혼자서 몇 인분의 식욕을 자랑한다. 게다가 환자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하마 같은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칼부림이 예사로 일어나는 야쿠자들의 담판 현장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갖은 훈수를 두기도 하며, 일탈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기투합하여 육교에 기어 올라가 이정표를 슬쩍 고쳐놓기도 한다. 간호사는 항상 D컵 가슴이 드러나도록 상의를 입고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서 환자들의 눈과 주의를 분산시킨다.  
 
책 속에는 5명의 환자와 의사의 5가지 증상과 이야기로 구성된다. '고슴도치'에서는 이쑤시개만 눈앞에 보여도 오금을 펴지 못하는 야쿠자 중간보스가, '공중그네'에서는 걸핏하면 공중그네 묘기에서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가, '장인의 가발'에서는 장인이자 병원 원장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정신과 의사가, '3루수'에서는 꽃남 신예 선수의 등장으로 갑자기 악송구를 남발해버리는 10년차 프로야구 선수가, '여류작가'에서는 자신의 작품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기 작가가 등장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치료 효과는 놀랍다. 도무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환자들의 강박증은 난리법석 끝에 기적처럼 치유되어버리고, 독자들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가슴이 환해지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언뜻 보아 이 작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별난 인간들이 무더기로 등장해서 한판 난리법석을 피우다 사라지는 단순한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곱씹다 보면 별난 인물들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요, 그 얼토당토않은 해프닝들이 현대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작가는 스스로의 증상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일상에 파묻혀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무기력한 태도나 일탈충동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우울증과 강박증에 빠지고 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위트와 풍자로 포착해낸다. 그리고 앞뒤 재지 않는 낙천성으로 삶을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주인공의 기행을 통해 독자들이 지친 삶에서 치료를 받는 생각으로 읽어도 될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우리는 어떤 보이지 않는 강박증과 우울증을 안고 있는지, 그 해결책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야쿠자 일이라는 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은 거잖아.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런 일은 누구든 지치게 마련이니, 그 반대급부로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한 물건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됐는지도..." (고슴도치, p.30)
- "파괴충동은 다시 말하면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심리니까, 보상행위를 찾아내면 의외로 쉽게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장인의가발, p.142)  

 
-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 (여류작가, p.306)
-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옮긴이의 말, p.307)
 
[ 2011년 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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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혁명 -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최선의 돈 프리라이더 2
선대인 지음 / 더팩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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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4월 18일)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에 "0.03% 배 불린 법인세 감면'이란 제목으로 이명박 정부가 2010년에만 4~5조원의 법인세를 감면해 주었는데 그 혜택이 거의 대부분 대기업에 돌아갔다는 결과를 보도하였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이명박 정부들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고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를 국민의 세금으로 매년 수 조원씩 지불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 백억에서 수 조원씩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재벌 대기업에게 세금감면의 혜택을 돌리는 것은 국민과 유권자의 피땀으로 재벌을 살찌우는 파렴치한 짓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은 저자가 작년 말에 발간한 <프리라이더>와 더불어 한국 정부의 세금과 재정에 대해 분석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두 번째 책이다. <프리라이더>가 잘못된 세금과 재정정책을 주로 분석한 것이라면 이 책은 어떻게 세금정책과 재정정책을 펼쳐야만이 전체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프리라이더>에서 저자가 후속 출간 서적을 예고한 바 있어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 목요일 [평화나눔아카데미]에 저자가 강사로 나와 강연할 예정이었기에 서둘러 읽게 되었다. 저자는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으로 국내외 경제 전반과 부동산, 세금, 재정 등에 대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여러 곳에서 강연하고 있으며, 동시에 페이스북에서 [세금혁명당]이라는 온라인 모임을 구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글과 말로써 먹고만 사는 '책상물림'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과 비전을 현실사회에서 실천하는 행동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각종 발간자료, 출간 서적, 언론 인터뷰 등에서 지금까지 정부의 세금징수 정책과 정부재정 집행정책이 국가 전체의 경제사정과 소득에 따라 공평하게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적나라하게 공개한 바 있으며, 이 책의 발간과 더불어 앞으로 한국정부의 세금과 재정정책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에 대해 일반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부.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돈]에서 저자는 브라질의 빈곤을 퇴치한 룰라 대통령의 마법이라 불리는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 세계 경쟁력 1위인 핀란드에서 세금을 사용하는 정책, 브라질이나 핀란드와는 달리 한국의 일반 국민들이 세금혜택을 누릴 수 없는 이유,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돈이 없어 의무급식'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실체, 관료와 재법이 주무르는 국민의 돈의 실제 모습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우리들의 선택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고 오세훈 시장의 이름뿐인 '디자인 서울'이 아니라 실제 문화정책을 잘 바꾸면 문화로 숨 쉬는 서울을 만들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저자가 일반 국민들이 취해야 할 선택이란 다름 아닌 '올바른 정치인'을 뽑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예전 드라마 <시티홀>을 예로 들면서 드라마의 주인공 '데이브'와 '신미래'와 같은 정치인을 가려내어 유권자들이 선택할 때만이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흐름을 올바르게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우리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무상(의무)급식'을 선택은 교육감을 뽑았고 그 결과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대폭적으로 증가하여 학보모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는 수고와 스트레스와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2부.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교육 혁명]에서 저자는 현재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사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승자 독식 교육, 즉 '다단계 돈 지르기' 교육으로 규정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교육과학기술부, 사학재단과 대학, 일선 교육청, 입시학원들이 주도, 공모하여 사립학교를 활개치게 하고 입시 경쟁을 부추기고 있음을 말한다. 덕분에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초스피드로 올랐음을, 미국, 일본 대학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대학 등록금의 어떻게 허구적인지,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유에 대해 분석한 후 교육 혁명을 이루기 위해 '1석 3조'로 세금을 잘 쓰는 법을 제안한다.
 
그 방안이라 함은,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국공립 대학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고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되 그 재원의 대부분을 지방 국공립대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방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대폭 인하시켜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여 '등록금 안정화 장치'로 작동시키고 이름뿐이 아닌 실질적인 산학연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책의 시행을 전후하여 국공립대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사학재단의 비리를 척결하고 학사운영이 부실한 곳을 구조조정해야 하고 막연한 대학 졸업이 아닌 직업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기관, 공기업부터 시작하여 대학 졸업장이 아닌 실력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하는 것 등을 제시한다.
 
3부. [재정 분식회계와 공공 부채 쓰나미]에서 저자는 이명박 정부들어 폭증하는 공공 부채로 인해 대한민국이 빚더미에 올라 '부채공화국'이 되었고 부동산을 부양하려다가 국가 채무가 급증한 일본의 사례를 들어 현재의 국가-은행의 채무위기 상황을 진단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있음을 고발한다. 분식회계 수법으로는 1. 공기업에 빚 떠넘기기, 2. 민자 사업으로 후손들에게 빚 떠넘기기, 3. 국가 재산 헐값에 팔아먹기를 예로 든다.
 
4부.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에서 저자는 희망조차 빼앗긴 20대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 향후 인구 감소가 불러올 삼중 충격 - 생산 경제 위축, 복지 지출 증가, 자산 시장 충격, 미국과 일본 사례로 본 고령화 충격과 복지지출 상황, 복지 논쟁과 무상의료 정책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예고된 재난'으로 불리우는 고령화 충격에 대해 저자는 아직 해법이 있음을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고령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실행해야 할 다섯 가지와 청년 세대가 해야 할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1. 하루라도 빨리, 전방위적으로 대처하라. 한 두개 부처가 아니라 관련부처를 모두 모아서, 향후 30~50년 정도의 시야를 확보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간에 들리는 이야기처럼 "공무원과 공기업의 재택근무를 늘려서 출산을 장려"하는 방식의 웃기지도 않는 대응자세로는 오히려 반발을 일으킬 뿐이다.
2. 구조적인 틀을 바꾸라. 단순히 재정 지출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야 함을 주장한다. 한국의 저출산은 높은 주택 가격, 높은 보육비와 교육비, 양질의 일자리 부족, 직업 안정성 저하,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 취약한 사회복지 인프라, 남성 우월주의적 사회문화 등 복합적인 문제로 발생하기 때문에 해결방안 또한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3. 국민연금 개혁,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현재의 국내 연금 제도가 잘못 설계되어 급격한 고령화 과정에서 잠재 채무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면서 저소득 계층이나 취약 계층의 노후 생활은 조세 방식에 의해 국각가 필요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되, 나머지 소득계층은 각자 자율적 선택에 따라 개인연금 제도를 활용하는 구조로 바꾸야 한다고 역설한다.
4. 재정 지출,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하라. 이는 저출산 고령화 같은 장기적 문제의 재정적 영향을 분석, 평가하여 이를 조세 및 재정 지출 계획에 반영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장 지금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가 쓸 재원을 탕진해서는 안된다.
5.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청년 세대와 미래 세대에 투자하라. 교육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려야 한다.
5+1. 젊은이들이여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라. 새로운 개혁 과제들을 기성세대와 기존 정치권에 맡겨 둘 경우 개혁이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각종 산적한 문제의 최대 이해당사자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현재의 젊은 청년 세대가 미래 세대를 대표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는 것...
"88만원 세대가 88% 투표하면 세상은 88% 개선된다" (조국 교수)
 
5부. [대한민국 가계부의 재구성]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1960~80년대 기간 동안의 개발연대 때 구축된 시대착오적인 조세 구조와 재정 지출 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원 씩, 100조 원의 추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50/50 전략'이다.
 
이를 위한 세부적인 과제로 저자는 20개 항목을 제시한다.
 1. 망국적인 토건 개발 포퓰리즘을 끝내는 것, 2. 국토해양부를 해체하고 LH공사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 3. 교통시설 특별회계 폐지, 4. 에너지 환경세 부활과 교통세 폐지, 5. 토건형 특별회계와 국민주택기금 개혁, 6. 실적 공사비 적산제도를 도입하여 예산 거품 빼기, 7. 턴기사업-대안사업-민자사업의 남발을 막고 경쟁입찰제 확대, 8. 반갑 공공 임대주택 사업 추진, 9. 건설산업 전반에 대하나 구조 개혁 실시, 10. 제2의 국세청인 소득조사청 신설, 11. 비과세 및 감면 혜택을 일괄 정리, 12. 예결위를 상임위로 전환하고 국회 예산정책처의 위상 높이기, 13.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 14. 청와대에 한국판 OMB(Office of Management and Buget : 예산관리처) 신설, 15. 정부부처 중복 사업 정리 및 정부 시스템 개혁, 16. 시대착오적인 공기업 개혁, 17. 공무원 월급 현실화, 18. 지자체에 과세권과 예산권 대폭 확대, 19. 미국 수준으로 예산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 참여 유도, 20. 납세자 소송법 도입 등이다.
 
또한, '납세자의 행동수칙 10가지'도 제시했다.
1. 시민단체를 후원하라, 2. 토건족 정치인들에게 노(NO)라고 말하라, 3. 지자체 예산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제기하라, 4. 필요하다면 모임을 조직하라, 5. 지자체장과 정치인들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라, 6. 전시성 행사의 유치 또는 추진을 반대하라, 7. 인터넷에 관련 글과 정보를 올려라, 8. 최대한 현금 사용을 피하라, 9. 관행으로 포장된 탈세를 피하라, 10. <프리라이더 1,2>를 읽고 토론하라...^^
 
이 책을 읽고 나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유권자로서, 납세자로서 내가 해야 할 크고 작은 일이 무척 많게 되었다...^^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우리보다 좀 더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세대들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리라. 평소 하지 않던 일들이니 습관을 들이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 책 속의 책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앨버트 레시먼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대통령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정광모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 책 속의 문장
- 울산시 울주군은 '축구장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하다. 12개 읍·면 중 5곳에 국제 규격 축구장 8개가 지어져 있고 4곳에 추가로 4개가 건설된 예정이다. 전체 인구가 19만 8000여 명에 불과한 지역에 축구장이 이렇게 많은 곳은 전국에서 울주군이 유일무이하다.(p.45)

- F1 그랑프리 대회의 경우, 전라남도는 첫회 대회에서 70억원 가량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4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모자라는 돈은…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1,980억 원을 조달했는데, 당초 계약에 따라 모든 지분과 채무 1,000억 원 가량을 전라남도가 모두 떠맡아야 한다.(p.50~51)

- 창조적 계급의 부상으로 경제지리학 분야에서 크게 주목을 받는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경영대학 교수는… 창조 경제의 진면목을 이해하지 못한 도시 개발 정책이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도시 발전을 저해한 사례로 미국 미츠버그를 들었다. 피츠버그는 1980년대 철강, 알류미늄, 전기 산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다. 하지만 1990년도 철강 산업의 쇠퇴와 함께 빠르게 몰락했다. 쇠퇴 원인 중의 하나가 '과도한 재개발'로 뽑혔다. 대규모 재개발을 실시해 "도로가 밀집된 교통 순환선으로 둘러싸인 밋밋한 쇼핑몰 유형의 단지로 대체"했고 결국 "그 지역의 창조적 공동체는 정체성이 모호한 소규모 집단 주거지로 쪼개지고 분열되었다."(p.80)

- 한국 초중고 학생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학업 성취도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문제 풀이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이 아닌 소모적이고 아이들을 지치게 만드는 고비용 저효율 교육이라는 것이 문제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한국의 대학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래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교육비 지출과 관련한 OECD 국가별 GDP 대비 교육비 지출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은 공공(정부) 및 민간 교육비 합계가 GDP 대비 7.2%로 OECD 30개국 중 3위로 상대적으로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공 교육비 지출은 4.3%로 OECD 평균 4.6%보다 낮으며, 민간의 교육비 지출은 2.9%로 OECD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기형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p.112)

-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0년까지 90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1998년과 1999년 외환위기 사태 때보다 두 배가량 많은 규모다.(p.174)

- 국민연금 1,460조 원, 국민건강보험 252조 원으로 두 곳에서만 1,712조 원의 잠재 채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공공 부분의 확정 채무와 잠재 채무를 합하면 모두 2,900조 원에 이른다.(p.177)

- 2010년에는 2명의 청년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면 되지만 지금은 청년들이 40~45세가 되는 2030년에는 2명의 청년이 3명의 노인을 책임져야 한다. …가계 경제력및 교육 서비스의 질 대비 세계 최고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청년들과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치솟는 등 청년층이 받는 사회경제적 고통과 부담이 매우 크다. (p.261)

- 경제 활동인구 감소와 1인당 생산성 증가 둔화로 인해 경제 성장률이 2015년 중반에는 2~3%대, 2020년에는 1~-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p.271)

- 연령대별 투표율은 19세 47.4%, 20대는 41.1%, 30대는 46.2%로 나타났다. 물론 결코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40대 이상 투표율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같은 선거에서 40대 투표율은 55.0%, 50대는 64.1%, 60세 이상은 69.3%로 집계됐다. …조국 교수의 표현대로 "88만원 세대가 88%투표하면 세상은 88% 개선된다."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p.319)
 [ 2011년 4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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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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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그리고 <개혁의 덫>에 이어 장하준교수의 최근 저서를 읽게 되었다.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작년에 선물로 받고서 계속 읽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공짜(?)라서 그랬나보다...^^
 
저자는 이제 한국 경제분야의 명필가 중 한 사람으로 우뚝 솟아오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4개월째 경제분야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어 전체 도서 판매 순위에서도 여전히 손가락 안에 꼽혀있다. 사무실 근처 서점에서도 쇼윈도우 속의 10권의 추천 도서에서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저자는 작년부터 ’일부’에서 불황이 끝났다고 성급히 단언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실제 경기가 회복될 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고삐 풀린 자유금융 거래에 대한 개혁은 시작하기는 커녕 주요국이 합의에 이르지도 못한 상태이고 2009년부터 각국이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경기침체를 막고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정책으로 인해 세계 금융계에 새로운 거품이 일어나고 있는 반면 실물경제에서는 돈줄이 막혀있다. 이 거품이 터지는 날에는 세계경제가 다시 불황으로 들어가는 ’더블딥’ 현상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연속해서 읽은 The Economists의 <2011 세계경제대전망>과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전망 2011>, 그리고 김광수경제연구소의 <2011 Global Report>가 비교된다.)
 
’일부’에 해당하는 측은 미국 써머스 백악관 경제고문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제정책 담당자들과 The Economists 같은 언론들, 버냉키 FRB 의장과 같은 금융계 인사들, 위기를 조장하고 예측하지도 못한 멍청한 경제학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명박정권과 기획재정부 윤증현장관, 한국은행 김중수총재, 멍청한 조중동과 KBS/YTN, 국내 경제학자들일 것이고... ’재정 및 통화정책’이라 함은 한국의 경우 이명박정권이 집권 2년만에 350조에 이르는 국공채를 발행하여 부동산 폭락을 끌어안은 것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인플레이션이 눈 앞에 보이는데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사방에서 목을 억누르는데 주가지수가 대책없이 솟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 일본의 금리가 바닥을 치고 각국이 재정적자와 통화팽창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돈’들이 갈때가 없어 한국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이 유지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고... 그렇다면 자산거품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인데 그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다만 그 시기가 되면 전세계에서 경기침체로 아비규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 속에서 최대의 희생자는 중하층 서민들...
 
저자는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이고 그 범죄자들은 자유 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고 선고한다. 이러한 사태를 30년간 이끌어온 그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이 책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후속격으로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그에게 쏟아진 일반 독자의 경제 및 현안에 대한 궁금증을 모아 이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조언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결정에 우리가 희생되지 않기 위한 경제학적 혜안을 선사한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경제 문제 23가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주변 사례를 가지고 그 이면을 짚어 준다. 기업은 소유주 이익만 고려하면 되는 걸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올까? 미국에서 보듯이 경영자들의 보수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그만 한 생산성을 보이기 때문일까?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은 국가 경제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정부의 시장 개입과 복지 확대는 경제 발전을 저해할까? 교육을 많이 시키면 나라가 더 부유해질까? 탁월한 경제학자가 없으면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세울 수 없는 걸까? 등의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질문들 속에는 지금의 잘못된 자본주의가 아닌 ’진짜 자본주의’에 대해 알려 주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앞서 몇 권의 저자가 발간한 책을 읽어보았음에도 이 책은 다시 한 번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벗겨내야 할 유령이자 악마임을 알려준다. 

장하준교수의 여러 저작을 읽을 때마다 몇 가지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 아쉬움 중 가장 큰 것은 장하준교수의 경제학에 속에는 국가경제는 다루어지지만 국가경제 내 경제주체에 대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벌경제의 장점을 옹호하고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괜찮지만, 한국에서 재벌경제의 나쁜 측면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재벌경제가 한국사회에 필요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라면 재벌경제의 단점과 폐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개선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하준교수의 눈에는 한국에서의 재벌들이 수 십년 동안 뇌물과 로비로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를 망치고 독점과 불공정거래로 한국 경제구조 전반을 망가뜨린 점이 보이지 않는걸까?
 
그리고 계속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그것은 과연 ’성장’만이 능사인가? 서구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자유시장이 아닌 착한 자본주의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그 구조에 경제위기와 부익부인익빈, 공동체의 파괴, 자연파괴, 기아와 범죄증가, 인간성 파괴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이다...   
  
 
--------------------- 류동민교수의 독후감 ----------------------------------------------------------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 교수
 
경제학 관련 서적이 한국에서 (이 글을 쓰는 현재) 20만 부 넘게 팔렸다면, 이것은 하나의 신드롬을 넘어 도대체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무엇을 읽고 싶어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얘기다.

언젠가 제법 알려진 경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 함께한 적이 있다. 흔히 최근의 주류 경제학이 신자유주의니 시장만능주의니 하는 비판은 많이 있어왔고 나 자신도 그 비판의 대열에 때로 끼곤 했지만, 그렇게 많은 시장중심적 사고를 가진 경제학자들의 실물( ! ) 틈에 앉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공짜밥은 먹었으되 먹는 내내 그 비싼 밥값을 능가하고도 남는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그들에게 시장은 무슨 문제를 들이대더라도 ‘경쟁’과 ‘효율성’을 통해 가볍게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었다. 그날 들은 얘기 중 최악은 1천만원을 내고서라도 최고의 대우로 맹장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면서 의료 민영화를 지지하는 논리였다. 그나마 덜 놀라웠던 것은 비인기 학과를 졸업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자라면서부터 무한 경쟁에 노출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하고, 스펙 중 으뜸인 ‘좋은 대학’에 가려면 ‘좋은 고등학교’, 심지어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하며, ‘좋은 학원’이 있는 ‘좋은 동네’로 이사해야 한다. 이런 스펙쌓기의 모든 비용과 부담, 그리고 그 성공과 실패에 따른 대가는 온전히 개인 또는 그 확장된 형태인 가족의 몫이다.  


극단적 자유주의가 장하준 신드롬 불러
누구나 남들(의 아이)보다 자신(의 아이)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위치를 확보하고, 더 쉽고 편하게 잘살고 싶어하는 것은 뿌리칠 수 없는 욕망이다. 시장만능주의 경제학자들의 기본 입장은 이런 욕망에 기초한 경쟁이 자유롭게만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효율성과 경쟁력 향상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 철학적 근거 중 하나는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이 경제학 교과서의 가정과는 달리, 때로는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최소한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등의 연구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시장이 ‘공정한 사회’는 고사하고 ‘효율성’조차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는 상황이 충분히 많다는 것 또한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들이다. 이를테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주류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촌철살인의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재벌계 연구소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실패’도 시장에 맡겨두면 해결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제시한다. 심지어 전경련 이름으로 간행된 미국 교과서의 편집·번역본에서는 ‘시장의 실패’ 단원만 빠트리는 실수(?)를 범한 예도 있다. 스펙쌓기가 결국 질 좋은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여기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일정 부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이다. 그러나 스펙쌓기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그 책임과 의무를 철저하게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최근 10여 년 사이에 한국의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절망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만든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경제학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 탓으로 돌리느냐 아니면 사회적 구조에서 찾느냐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컨대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분배 이론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한계생산력설은- 시장이 완전경쟁적이라거나 생산함수가 1차동차(투입 규모에 대한 수익 불변)라는 등 경제학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제약 조건하에서- 결국 ‘네 소득이 적은 이유는 네가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그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한 달에 1억원가량의 높은 수입을 로펌에서 받아 문제가 된 고위 공직자 후보가 사퇴의 변에서조차 우리 사회가 그 정도의 차이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을 기억해 보라!  그렇지만, 심지어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급여나 고용의 안정성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런 이론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등장하는 부자 나라가 생산성이나 기업가 정신이 높아서 가난한 나라보다 잘살거나, 부자들이 생산에 더 많이 기여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보다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명제들은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거나 겪을 가능성이 있는 독자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러므로 감히 예상해보건대,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도록 만든 것은, 현재와 같은 시장중심적 자본주의가 최선의 상태는 아니며 무엇인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장하준은 학술 논문이나 대중적 발언에서 좌파 또는 우파, 진보 또는 보수라는 단순한 틀로 재단하기에 쉽지 않은 학자다. 그러나 <사다리 걷어차기>나 그 대중적 버전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구성상 좀더 진보적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마르크스의 명제들도 몇 차례에 걸쳐 활용되고 있으며,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주장들로 이 책을 다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시장은 그 출발에서부터 정치적 권력을 필요로 한다(Thing1.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2.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Thing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3.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으로 대표되는 비생산적 부문은 경제 전체의 이윤 생산에는 기여하지 못하며, 오직 생산적 부문에서 생산된 이윤에 기생할 따름이다(Thing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Thing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4. 어느 사회에서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을 구분하는 것은 생산성 등 객관적 차이 못지않게 사회구조적 요인, 심지어 이데올로기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Thing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5. 이윤을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 등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Thing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6. 자본에 이익이 되는 것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것은 다르다(Thing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7.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는 무역 등을 통해 가치의 불평등한 이전이 발생한다(Thing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장하준이 마르크스를 인용하는 방식은 다소 편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국가가 ‘부르주아계급의 집행위원회’라는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적 명제를 ‘개별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가 산업 부문 전체의 집단적 이익, 나아가 나라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262쪽)고 해석한다. 마르크스의 의도는 국가가 중립적으로 공익을 지킨다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총자본으로서 사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물론 마르크스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계급성을 지적하는 명제가 ‘나라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데에는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필요하다.

자신의 전공인 발전경제학의 이슈를 다루었던 장하준의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대립 구조를 기본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 성장에 도움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그것은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가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입만 열면 포퓰리즘이나 복지망국론을 들먹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보수적 입장에 대한 일차적인 반박으로서는 의미를 지니지만, 자칫하면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입증책임을 떠안을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면 복지를 포기해야 하는가?
 
성장 담론에 말려들 위험 내포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에 대한 장하준의 긍정적인 평가는 마치 최근 서구의 진보적 학자들이 중국에 대해 갖는 환상적 기대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자유도 없이 굶어 죽는 것은 최악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인권이나 자유주의적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경제성장은 결코 바람직한 것일 수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진전 없이는 경제성장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가령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인정해주고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자던 몇 년 전 장하준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재벌의 내·외부적 전횡을 견제할 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무기력한 요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역사적 반례를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논리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 대안이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출현은 금융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산업자본이나 노동-자본의 협력을 중시하던 이른바 케인스주의가 위기에 처한 결과였음에 주목한다면, 신자유주의로부터 모종의 케인스주의로의 귀환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출퇴근 시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환승역(신도림역이라도 좋고 교대역이라도 좋다!)을 생각해보자. 개인의 입장에서 압사당하거나 다치지 않으려면 그저 인파 속에 파묻혀 전체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 또는 몇 명만 방향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하나의 올바른 방향으로 빨리 전진하는 것이 목표라면 어깨를 맞대고 좁은 간격으로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이 틀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장하준의 논의는 비유하자면, 환승역 구내의 수많은 사람들을 더 적절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주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조건하에서 그것이 가능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치르는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국가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상투적인 얘기지만 정권이든 재벌이든, 또는 그 무엇이든 간에 살아 있는 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기 위한 성숙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그런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데 유용한 지침임이 틀림없지만, 지금은 한국 사회가 성장 담론을 벗어나 민주주의와 복지를 새롭게 사고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rieudm@cnu.ac.kr    

[ 2011년 2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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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0년대 초반에 서점에서 <접시꽃 당신> 등 몇 권을 읽은 후로 처음 접하는 도종환 시인의 시집... 이 시집은 그가 지난 30년 동안 발간한 9권의 시집과 그 속의 시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시 61개를 골라 시선집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그 시 구절의 바탕에, 시들의 사이에 송필용화백의 어울릴만한 그림들을 그려넣었다.
 
몇 개 맘에드는 시를 소개하면,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방하착 / 제가 키워 온, /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나무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시인이 결국 사람이 언제,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답게 불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버리기 어려웠던 것들을 버림으로써...
 
"직장인 100만 명이 뽑은 내 인생의 시 한 편" 2009년 한국경제신문이 직장인 103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이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시가 도종환 시인이 쓴 [담쟁이]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남들이 모두 절망하고 포기할 때, 서두르지 않고 한 사람씩 시작하여 주변의 사람을과 함께 나아가면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결국 한 사람부터 시작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그마한 사안들부터 그 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시작할 때부터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박노해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연상시킨다.
 
[여백]에서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것은 나무들 뒤에서 조용히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기에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백이 없는 사람,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 이 '여백'이란 무엇일까...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에서는 살아오면서 지나온 모든 길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술회한다. '가지 않은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고,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던 길'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로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눈시울 젖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길들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또 다시 가지 않을 수 없다.
 
작년(2010년) 8월 김해 가야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 강연 도중, 도종환 시인은 소통을 먼저 말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언어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했다. "꽃이 말을 하지 않을까요? 짐승은요? 모든 사물은 그들 언어로 소통합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저는 꽃이 항상 향기와 빛깔로 말을 건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잠시라도 멈춰 만끽해보라고 했다. 예쁜 게 있으면 보고, 좋은 냄새가 나면 맡고, 즐거운 소리가 울리면 들어보라고 했다. "여러분은 너무 바쁘죠. 공부하고, 학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하지만, 한 번쯤 멈춰보세요. 시인은 멈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그렇게 썼다고 했다. 코스모스인 줄 알았던 꽃이 주황색이었고, 주황색 코스모스는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다가가니 흔들리지 않는 꽃이 없고, 젖지 않는 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시는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로 끝난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면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면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겉보기에 아름답기만 한 꽃들도, 새들도, 나무들도 모두가 자연으로부터 흔들리고 젖고 상처받으며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사람들도 자연에서, 사회에서 온갖 비바람과 상처를 받으면서 자라고 성장한다. 그런 비바람과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삶은,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으려 하는 삶은 아름다워지기는 커녕 정상적인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 2011년 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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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사람들 법정 스님 전집 1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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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여섯 번째로 읽었다. 이 책은 1978년 봄 초판이 발행되었고 법정스님이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쓴 글을 모은 것이다. 그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1972년 유신을 필두로 시작된 한 층 더 암울했던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한국 사람들 전체가 누구도 할 말을 할 수 없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숨막힌 때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기간 중에 법정스님은 세속을 떠나 송광사 불일암에 정착하셨다.
 
스님은 불교적 세계관에 뿌리내린 불교 본연의 가르침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소재들에도 남다른 통찰력과 깊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이 책에서 그 깊이와 단단함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스님이 이 책을 발간한 이유와 책의 제목을 <서 있는 사람들>로 정한 이유는 서문에 나와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둘레에는 '서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차 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제자리에 앉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똑같은 자격으로 차는 탔어도 자리가 없어 자신의 두 다리로 선 채 끝도 없이 실려가고 있다. 서 있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들이다. 오염된 근대화의 공기를 마시면서 갈수록 구겨져만 가는 이 시대의 풍속권 안에서 함께 앓고 있는 선량한 시민이다. 그들의 체질은 유달라, 이웃이 겪는 고통을 모른체 하지 않고 같이 신음하면서 앓는다. 앉은 자가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차마 앉을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눈매에는 달무리 같은 우수가 깃들기도 한다."

즉, 이 책은 마땅히 자리잡고 있어야 할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방황하고 절망하는 현대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책이다. 1970년대 개발, 독재시대에 집필된 이 책은 당시의 억압적 상황,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오는 자연 파괴와 인간성 상실에 관한 사색의 글이 특징이다. 비겁한 지식인의 허상, 불신사회, 물질만능주의, 부도덕한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연 친화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될 뿐 아니라 종교인이면서도 이념과 현실을 뛰어넘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늦추지 않은 스님의 구도자로서의 자세도 돋보인다.
 
[서울은 순대속(1977)]이라는 글에서 스님은  도로 체증, 택시 잡기의 어려움, 정류장마다 늘어선 긴 줄, 출퇴근 시간대의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서 서울이란 곳이 갈데 없는 순대 속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 시민들이 순대 속처럼 되었다고 느낀다. 당시 박정희정부가 검토하던 '임시행정수도'를 만들겠다고 한 구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 때로부터 어언 35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 모습도 비슷하다. 서울의 면적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서울은 순대속이고 사람들은 너무 많이 모여 산다. 많은 것은 귀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시민들은 집단으로부터, 서로 간에 귀하게 대접받지 못한다.
 
[무관심(1975)]에서 스님은 당시 버스 안에서의 안내양과 라디오 소음이 승객들을 피곤하고 짜증스럽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운전기사에게 아무 말 없이 내버려두는 무관심을 지적한다. 승객들이 홀로 생각 잠길 수 있는 출퇴근 시간에 소음으로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면서 멍들고 머리가 비게 된다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버스 안의 냉난방은 강력해지고 안내양이 지르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라디오 소음은 여전하다. 대신 승객들은 너도 나도 MP3와 핸드폰에서 이어폰을 귀에 연결한다. 음악을 듣는 사람, TV를 보고듣는 사람, 가만히 창밖을 응시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무관심은 생각과 소통 대신 기술의 발달과 상품의 대중화로 개별적인 관심으로 바뀌었다.
 
[외화도 좋지만(1973)]에서 스님은 박정희정부의 외화벌이의 폐해를 지적한다. 당시에 일본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늘어나 숫자상의 관광수지가 큰 흑자를 보았음에도 그 관광객들 대부분이 '기생파티'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 잘 살아야 함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아무 기준도 없이 양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고 당당하게 잘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당시 박정희정부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한면서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임을 내세우지만 버젖이 행해지는 기생파티를 알면서 모른체하는 세태를 질타한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겠다고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은행과 기업을 헐값에 매각하려 하고 있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지자체는 수백억을 경쟁적으로 낭비하고 있다.
 
[90도의 호소(1973)]에서 스님은 당시 국회의원 합동연설회에 나선 입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90도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보다는 비웃음을 보낸다. 그들이 평소에 하는 행동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서 한나라당 이재오의원이 생각났다. TV에서 그 특유의 90도 인사를 보면서 그 사람이 MB정권의 실세 중 한사람으로서 집권 이후 지금까지 소통을 거부하고 국민들의 뜻과 요구를 저버리고 강압적이고 무단으로 정치과 정책을 집행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그렇게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우리 시대를 추하게 하는 것들(1973)]에는 3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시대를 추하게 하는 것들이 만연함을 알 수 있다.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할 인간끼리 물고 뜯으며 싸우는 전쟁이, 분배의 불균형이,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인간의 유대를 끊어 놓는 것이, 정치권력의 횡포가 우리를 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질만능의 풍조, 서로에 대한 불신 풍조, 비겁한 지식인의 모습이 또한 추하게 한다. 물질 만능의 폐해를 읽으면서 이반 일리히의 <성장을 멈춰라>가, 비겁한 지식인의 모습을 읽으면서 리영희선생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이외에도 [제비꽃을 제비꽃답게]에서는 각자의 개성 있는 삶을, [그 눈매들]에서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눈을, [혼돈의 늪에서]에서는 사회 내의 대화와 소통을, [말없는 언약]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을, [공동체의 윤리]에서는 인간 회복과 생명 존중에 대한 종교의 기능을, [무공덕]에서는 달마대사를 통한 종교인의 자세를, [선문답]에서는 구도에서의 자유의 길을 말씀하신다.
 
 이렇듯 우리는 한 글자 한 글자의 압축된 절제미와 상징적인 표현들을 따라 읽다보면,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읽어도 당시의 가르침과 메시지가 퇴색하지 않고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외형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숨겨진 억압이나 산업화가 가져오는 소외감, 정체성의 혼돈이 더욱 심화된 요즈음, 스님의 글은 조금도 바래지 않은 청정한 목소리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스님은 특유의 곧고 또렷한 음성으로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우리 바깥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 풍경에 있음을 일갈하고 있다.   
  
[ 2011년 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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