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그리고 <개혁의 덫>에 이어 장하준교수의 최근 저서를 읽게 되었다.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작년에 선물로 받고서 계속 읽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공짜(?)라서 그랬나보다...^^
 
저자는 이제 한국 경제분야의 명필가 중 한 사람으로 우뚝 솟아오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4개월째 경제분야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어 전체 도서 판매 순위에서도 여전히 손가락 안에 꼽혀있다. 사무실 근처 서점에서도 쇼윈도우 속의 10권의 추천 도서에서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저자는 작년부터 ’일부’에서 불황이 끝났다고 성급히 단언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실제 경기가 회복될 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고삐 풀린 자유금융 거래에 대한 개혁은 시작하기는 커녕 주요국이 합의에 이르지도 못한 상태이고 2009년부터 각국이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경기침체를 막고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정책으로 인해 세계 금융계에 새로운 거품이 일어나고 있는 반면 실물경제에서는 돈줄이 막혀있다. 이 거품이 터지는 날에는 세계경제가 다시 불황으로 들어가는 ’더블딥’ 현상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연속해서 읽은 The Economists의 <2011 세계경제대전망>과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전망 2011>, 그리고 김광수경제연구소의 <2011 Global Report>가 비교된다.)
 
’일부’에 해당하는 측은 미국 써머스 백악관 경제고문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제정책 담당자들과 The Economists 같은 언론들, 버냉키 FRB 의장과 같은 금융계 인사들, 위기를 조장하고 예측하지도 못한 멍청한 경제학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명박정권과 기획재정부 윤증현장관, 한국은행 김중수총재, 멍청한 조중동과 KBS/YTN, 국내 경제학자들일 것이고... ’재정 및 통화정책’이라 함은 한국의 경우 이명박정권이 집권 2년만에 350조에 이르는 국공채를 발행하여 부동산 폭락을 끌어안은 것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인플레이션이 눈 앞에 보이는데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사방에서 목을 억누르는데 주가지수가 대책없이 솟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 일본의 금리가 바닥을 치고 각국이 재정적자와 통화팽창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돈’들이 갈때가 없어 한국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이 유지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고... 그렇다면 자산거품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인데 그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다만 그 시기가 되면 전세계에서 경기침체로 아비규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 속에서 최대의 희생자는 중하층 서민들...
 
저자는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이고 그 범죄자들은 자유 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고 선고한다. 이러한 사태를 30년간 이끌어온 그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이 책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후속격으로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그에게 쏟아진 일반 독자의 경제 및 현안에 대한 궁금증을 모아 이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조언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결정에 우리가 희생되지 않기 위한 경제학적 혜안을 선사한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경제 문제 23가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주변 사례를 가지고 그 이면을 짚어 준다. 기업은 소유주 이익만 고려하면 되는 걸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올까? 미국에서 보듯이 경영자들의 보수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그만 한 생산성을 보이기 때문일까?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은 국가 경제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정부의 시장 개입과 복지 확대는 경제 발전을 저해할까? 교육을 많이 시키면 나라가 더 부유해질까? 탁월한 경제학자가 없으면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세울 수 없는 걸까? 등의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질문들 속에는 지금의 잘못된 자본주의가 아닌 ’진짜 자본주의’에 대해 알려 주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앞서 몇 권의 저자가 발간한 책을 읽어보았음에도 이 책은 다시 한 번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벗겨내야 할 유령이자 악마임을 알려준다. 

장하준교수의 여러 저작을 읽을 때마다 몇 가지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 아쉬움 중 가장 큰 것은 장하준교수의 경제학에 속에는 국가경제는 다루어지지만 국가경제 내 경제주체에 대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벌경제의 장점을 옹호하고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괜찮지만, 한국에서 재벌경제의 나쁜 측면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재벌경제가 한국사회에 필요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라면 재벌경제의 단점과 폐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개선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하준교수의 눈에는 한국에서의 재벌들이 수 십년 동안 뇌물과 로비로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를 망치고 독점과 불공정거래로 한국 경제구조 전반을 망가뜨린 점이 보이지 않는걸까?
 
그리고 계속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그것은 과연 ’성장’만이 능사인가? 서구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자유시장이 아닌 착한 자본주의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그 구조에 경제위기와 부익부인익빈, 공동체의 파괴, 자연파괴, 기아와 범죄증가, 인간성 파괴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이다...   
  
 
--------------------- 류동민교수의 독후감 ----------------------------------------------------------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 교수
 
경제학 관련 서적이 한국에서 (이 글을 쓰는 현재) 20만 부 넘게 팔렸다면, 이것은 하나의 신드롬을 넘어 도대체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무엇을 읽고 싶어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얘기다.

언젠가 제법 알려진 경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 함께한 적이 있다. 흔히 최근의 주류 경제학이 신자유주의니 시장만능주의니 하는 비판은 많이 있어왔고 나 자신도 그 비판의 대열에 때로 끼곤 했지만, 그렇게 많은 시장중심적 사고를 가진 경제학자들의 실물( ! ) 틈에 앉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공짜밥은 먹었으되 먹는 내내 그 비싼 밥값을 능가하고도 남는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그들에게 시장은 무슨 문제를 들이대더라도 ‘경쟁’과 ‘효율성’을 통해 가볍게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었다. 그날 들은 얘기 중 최악은 1천만원을 내고서라도 최고의 대우로 맹장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면서 의료 민영화를 지지하는 논리였다. 그나마 덜 놀라웠던 것은 비인기 학과를 졸업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자라면서부터 무한 경쟁에 노출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하고, 스펙 중 으뜸인 ‘좋은 대학’에 가려면 ‘좋은 고등학교’, 심지어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하며, ‘좋은 학원’이 있는 ‘좋은 동네’로 이사해야 한다. 이런 스펙쌓기의 모든 비용과 부담, 그리고 그 성공과 실패에 따른 대가는 온전히 개인 또는 그 확장된 형태인 가족의 몫이다.  


극단적 자유주의가 장하준 신드롬 불러
누구나 남들(의 아이)보다 자신(의 아이)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위치를 확보하고, 더 쉽고 편하게 잘살고 싶어하는 것은 뿌리칠 수 없는 욕망이다. 시장만능주의 경제학자들의 기본 입장은 이런 욕망에 기초한 경쟁이 자유롭게만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효율성과 경쟁력 향상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 철학적 근거 중 하나는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이 경제학 교과서의 가정과는 달리, 때로는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최소한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등의 연구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시장이 ‘공정한 사회’는 고사하고 ‘효율성’조차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는 상황이 충분히 많다는 것 또한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들이다. 이를테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주류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촌철살인의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재벌계 연구소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실패’도 시장에 맡겨두면 해결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제시한다. 심지어 전경련 이름으로 간행된 미국 교과서의 편집·번역본에서는 ‘시장의 실패’ 단원만 빠트리는 실수(?)를 범한 예도 있다. 스펙쌓기가 결국 질 좋은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여기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일정 부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이다. 그러나 스펙쌓기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그 책임과 의무를 철저하게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최근 10여 년 사이에 한국의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절망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만든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경제학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 탓으로 돌리느냐 아니면 사회적 구조에서 찾느냐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컨대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분배 이론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한계생산력설은- 시장이 완전경쟁적이라거나 생산함수가 1차동차(투입 규모에 대한 수익 불변)라는 등 경제학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제약 조건하에서- 결국 ‘네 소득이 적은 이유는 네가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그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한 달에 1억원가량의 높은 수입을 로펌에서 받아 문제가 된 고위 공직자 후보가 사퇴의 변에서조차 우리 사회가 그 정도의 차이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을 기억해 보라!  그렇지만, 심지어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급여나 고용의 안정성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런 이론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등장하는 부자 나라가 생산성이나 기업가 정신이 높아서 가난한 나라보다 잘살거나, 부자들이 생산에 더 많이 기여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보다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명제들은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거나 겪을 가능성이 있는 독자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러므로 감히 예상해보건대,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도록 만든 것은, 현재와 같은 시장중심적 자본주의가 최선의 상태는 아니며 무엇인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장하준은 학술 논문이나 대중적 발언에서 좌파 또는 우파, 진보 또는 보수라는 단순한 틀로 재단하기에 쉽지 않은 학자다. 그러나 <사다리 걷어차기>나 그 대중적 버전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구성상 좀더 진보적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마르크스의 명제들도 몇 차례에 걸쳐 활용되고 있으며,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주장들로 이 책을 다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시장은 그 출발에서부터 정치적 권력을 필요로 한다(Thing1.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2.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Thing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3.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으로 대표되는 비생산적 부문은 경제 전체의 이윤 생산에는 기여하지 못하며, 오직 생산적 부문에서 생산된 이윤에 기생할 따름이다(Thing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Thing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4. 어느 사회에서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을 구분하는 것은 생산성 등 객관적 차이 못지않게 사회구조적 요인, 심지어 이데올로기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Thing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5. 이윤을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 등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Thing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6. 자본에 이익이 되는 것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것은 다르다(Thing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7.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는 무역 등을 통해 가치의 불평등한 이전이 발생한다(Thing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장하준이 마르크스를 인용하는 방식은 다소 편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국가가 ‘부르주아계급의 집행위원회’라는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적 명제를 ‘개별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가 산업 부문 전체의 집단적 이익, 나아가 나라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262쪽)고 해석한다. 마르크스의 의도는 국가가 중립적으로 공익을 지킨다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총자본으로서 사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물론 마르크스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계급성을 지적하는 명제가 ‘나라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데에는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필요하다.

자신의 전공인 발전경제학의 이슈를 다루었던 장하준의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대립 구조를 기본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 성장에 도움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그것은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가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입만 열면 포퓰리즘이나 복지망국론을 들먹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보수적 입장에 대한 일차적인 반박으로서는 의미를 지니지만, 자칫하면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입증책임을 떠안을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면 복지를 포기해야 하는가?
 
성장 담론에 말려들 위험 내포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에 대한 장하준의 긍정적인 평가는 마치 최근 서구의 진보적 학자들이 중국에 대해 갖는 환상적 기대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자유도 없이 굶어 죽는 것은 최악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인권이나 자유주의적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경제성장은 결코 바람직한 것일 수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진전 없이는 경제성장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가령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인정해주고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자던 몇 년 전 장하준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재벌의 내·외부적 전횡을 견제할 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무기력한 요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역사적 반례를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논리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 대안이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출현은 금융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산업자본이나 노동-자본의 협력을 중시하던 이른바 케인스주의가 위기에 처한 결과였음에 주목한다면, 신자유주의로부터 모종의 케인스주의로의 귀환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출퇴근 시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환승역(신도림역이라도 좋고 교대역이라도 좋다!)을 생각해보자. 개인의 입장에서 압사당하거나 다치지 않으려면 그저 인파 속에 파묻혀 전체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 또는 몇 명만 방향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하나의 올바른 방향으로 빨리 전진하는 것이 목표라면 어깨를 맞대고 좁은 간격으로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이 틀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장하준의 논의는 비유하자면, 환승역 구내의 수많은 사람들을 더 적절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주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조건하에서 그것이 가능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치르는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국가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상투적인 얘기지만 정권이든 재벌이든, 또는 그 무엇이든 간에 살아 있는 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기 위한 성숙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그런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데 유용한 지침임이 틀림없지만, 지금은 한국 사회가 성장 담론을 벗어나 민주주의와 복지를 새롭게 사고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rieudm@cnu.ac.kr    

[ 2011년 2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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