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0년대 초반에 서점에서 <접시꽃 당신> 등 몇 권을 읽은 후로 처음 접하는 도종환 시인의 시집... 이 시집은 그가 지난 30년 동안 발간한 9권의 시집과 그 속의 시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시 61개를 골라 시선집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그 시 구절의 바탕에, 시들의 사이에 송필용화백의 어울릴만한 그림들을 그려넣었다.
 
몇 개 맘에드는 시를 소개하면,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방하착 / 제가 키워 온, /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나무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시인이 결국 사람이 언제,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답게 불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버리기 어려웠던 것들을 버림으로써...
 
"직장인 100만 명이 뽑은 내 인생의 시 한 편" 2009년 한국경제신문이 직장인 103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이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시가 도종환 시인이 쓴 [담쟁이]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남들이 모두 절망하고 포기할 때, 서두르지 않고 한 사람씩 시작하여 주변의 사람을과 함께 나아가면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결국 한 사람부터 시작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그마한 사안들부터 그 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시작할 때부터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박노해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연상시킨다.
 
[여백]에서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것은 나무들 뒤에서 조용히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기에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백이 없는 사람,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 이 '여백'이란 무엇일까...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에서는 살아오면서 지나온 모든 길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술회한다. '가지 않은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고,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던 길'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로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눈시울 젖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길들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또 다시 가지 않을 수 없다.
 
작년(2010년) 8월 김해 가야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 강연 도중, 도종환 시인은 소통을 먼저 말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언어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했다. "꽃이 말을 하지 않을까요? 짐승은요? 모든 사물은 그들 언어로 소통합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저는 꽃이 항상 향기와 빛깔로 말을 건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잠시라도 멈춰 만끽해보라고 했다. 예쁜 게 있으면 보고, 좋은 냄새가 나면 맡고, 즐거운 소리가 울리면 들어보라고 했다. "여러분은 너무 바쁘죠. 공부하고, 학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하지만, 한 번쯤 멈춰보세요. 시인은 멈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그렇게 썼다고 했다. 코스모스인 줄 알았던 꽃이 주황색이었고, 주황색 코스모스는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다가가니 흔들리지 않는 꽃이 없고, 젖지 않는 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시는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로 끝난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면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면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겉보기에 아름답기만 한 꽃들도, 새들도, 나무들도 모두가 자연으로부터 흔들리고 젖고 상처받으며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사람들도 자연에서, 사회에서 온갖 비바람과 상처를 받으면서 자라고 성장한다. 그런 비바람과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삶은,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으려 하는 삶은 아름다워지기는 커녕 정상적인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 2011년 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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