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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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화(余?) 저, 김태성 역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China in Ten Words>를 읽고 / 2012. 09., 358쪽, 문학동네


오늘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면 십중팔구 이명박 정권이 망쳐버린 중국측과의 외교를 복원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전혀 다른 현대사를 거쳐오고 있는 중국, 북한에 무시할 수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현재 모습이 어떤지 알아야 새 정권의 중국 외교나 경제협력, 교류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 터, 밖에서 들여다보는 중국이 아니라 중국인의 목소리로, 그것도 비판적 지식인의 목소리로 듣는 중국사회의 이야기는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열 개 단어 속의 중국(十個詞彙中的中國)’이다. 저자는 인민, 영수(領水),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등 열 개의 단어 속에 중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열 개의 단어를 열 쌍의 눈으로 삼아 열 개의 방향에서 중국을 응시하는 책’이다. 더불어 그는 이 책에서 “끊이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당대 중국의 삶의 모습을 열 개의 단어 속에 축약하고자” 했다. 저자는 이 책을 일러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굴지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 사회의 “뿌리와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 사회가 경험한 대단히 빠른 변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인관관계가 전도된 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벌떼처럼 모여드는 결과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을 찾는 일에는 무척 소극적이다. 그래서 지난 30여 년 동안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각종 사회갈등과 사회문제가 초고속 경제발전이 가져다준 낙관적인 정서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휘황찬란해 보이는 오늘의 결과에서 출발하여 어쩌면 오늘의 불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p.17)

첫번째 글 "인민"에서 저자는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개혁개방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 급작스레 중국 전역을 뒤흔든 민주화 운동인 1989년 6월 톈안문 사건을 회고하며, 그것이 중국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어떤 전환점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톈안문 사건을 통해 “문화대혁명 이래로 누적되어온 정치적 열정이 마침내 깨끗이 발산”되었으며 “그 뒤로는 부(富)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정치적 열정을 대신했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돈을 버는 데 집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90년대의 경제적 번영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열정을 목격하며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톄안문 사건을 전후하여 나타난 중국사회의 변화는, 나에게 1987년 6월 항쟁과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변화된 한국사회의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사회 역시 알게 모르게 두 번의 계기를 거치면서 수 십년 동안 "부자되세요"라는 말에게 지배당해 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0년이란 세월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하지만 역사의 기억은 결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나는 1989년의 톈안문 시위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오늘 어떤 입장에 서 있건 간에, 어느 날 갑자기 지난 일들을 회고하게 될 때 자신의 가슴과 뼈에 깊이 새겨진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내 가슴과 뼈에도 깊이 새겨진 바로 그 느낌이 나로 하여금 ‘인민’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p.36)

"영수"에서 ‘영수’는 다름 아닌 현대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이다. 이 글에서 위화는 오늘날 중국 사회 한편에서 불고 있는 마오쩌둥 부활 움직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심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마오쩌둥 사상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전 세계에 갈수록 그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며 “전 세계 수많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마오쩌둥이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래와 같은 해석을 내린다.
이 단락은 한국사람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한국(남한)의 경우 마오쩌뚱같은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씨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영도자'가 아니라 '독재자'를 상대해 왔다. 심지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후보에 등록해 당선이 유력한 상태이다. 

"2009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빈에서 성대한 가두행진을 벌였다. 그들은 손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를 높이 들고 있었다. 이와 유사한 광경이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끊임없이 벌어졌다. 어쩌면 ‘마오쩌둥 부활’이 중국 본토화의 사회심리일 뿐만 아니라 지구화의 사회심리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답은 세계가 병들어 혁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체에 병이 나면 염증이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p.59)

"독서"는 문화대혁명 시절 성장기를 보낸 위화의 자전적 체험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 있는 글이다. 마오쩌둥 어록 말고는 변변한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 저자의 책 읽기 경험이 잔잔히 재미를 준다. 특히 수많은 사람이 몰래 돌려가며 읽어 앞뒤 부분이 뜯겨나간 문학책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상상력 훈련을 했다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작가 위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하나의 단초가 되어준다.
이 부분도 한국인들이 공감하기 쉽지 않다. 물론 6.25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저자와 차이가 있다면, 저자는 배고픔에 대한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읽을 책이 없어 곤란을 겪었고 한국의 전쟁세대는 읽을 책은 커녕 하루 세 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글쓰기"는 작가 위화의 문학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글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발치사(拔齒師) 생활을 하며 한편으로는 소설을 써서 끊임없이 잡지사에 투고하던 시절의 이야기, 작가로 데뷔하기까지의 에피소드 등이 당대 중국 사회의 풍경과 함께 소개된다. 이 글에서 위화는 자신의 초기 단편들이 폭력의 이미지로 가득한 이유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현대 중국의 작가에게 끼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루쉰"에는 현대 중국의 대문호 루쉰에 대한 위화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다. 문화대혁명 시절 위대한 작가 루쉰의 ‘위대한 독자’는 다름 아닌 마오쩌둥이었다. 당시에는 마오쩌둥과 루쉰의 말이 인민들 사이에선 곧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청년 위화에게 루쉰의 작품은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위화는 평생 루쉰을 좋아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작가 루쉰임에도 저자가 학생 시절의 경험 때문에 50살이 넘어서까지 싫어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너무 강렬한 일방적 경험은 당사자가 장기간에 걸쳐 환멸을 느끼고 외면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차이’는 오늘날 중국 사회를 규정하는 중요한 단어다. "차이"에서 위화는 오늘날 중국이 “현실과 역사의 거대한 차이 속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커다란 꿈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발전 등 해결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은 장밋빛 중국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중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한국사회의 주된 문제 역시 '차이'고 '차이'를 너머 '차별'이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 영세상인에 대한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 무수히 많은 차별이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러한 '차이'와 '차별'을 구조적,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대다수 민중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혁명"에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 과정에서 무수히 벌어진 문화대혁명식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혁명의 이름으로 미화되는 일은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도 만연해 있고, 그로 인한 민간의 불만 정서와 사회갈등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다. 위화는 문화대혁명 당시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한 홍위병의 이야기 끝에 아래와 같이 말한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과 국방군이 공방을 거듭하던 지역에서 고스란히 나타났을 모습이다. '혁명'이나 '해방', '노동'이나 '정의', '혁신'이나 '진보', '운동'이나 '이념'등의 단어와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단어와 주장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함을 느끼게 준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내 과거 기억 속의 해답은 온갖 주장들로 뒤죽박죽이었다. 혁명은 우리의 삶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채웠다. 한 사람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하늘을 날았고 어떤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추락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유대도 혁명을 따라 수시로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오늘까지 혁명의 전우였던 사람이 내일은 계급의 적이 될 수 있었다."(p.252)

"풀뿌리"는 중국의 경제기적을 이루어낸 장본인들, 상술과 처세로 일확천금을 벌어들인 하층민 출신의 중국 신흥 부호들에 대한 글이다.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그들이 오늘날 중국 경제의 주축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위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경제발전의 조류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법률을 위반하거나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전혀 서슴지 않고 과감하게 시도했다. (…) 이들 풀뿌리들은 어떤 유형의 기적이라도 창조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엄청난 담력을 갖고 있었고 뭔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일도 없었다. (…) 중국의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맨발인 사람은 신발 신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고,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프롤레타리아인 그들이 잃을 것은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였다."(p.271)

"산채"(山寨 가짜 혹은 모조품)에서는 오늘날 중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자리 잡은 산채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산채 스타, 산채 TV 프로그램, 산채 유행가 등이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위화는 이러한 산채 현상에 대해 “풀뿌리문화가 엘리트문화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민간이 정부에 던지는 도전장, 그리고 약자집단이 강자집단에 던지는 도전장”의 의미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중국 사회의 혼란상을 드러내는 명확한 지표라고 말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과 개인들이 '산채'라는 단어의 뜻과 사회적 의미를 모르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상당수 고전했을 것이다. 중국산 '짝퉁'이 엄청나게 존재하는 현상이 중국정부의 방치나 방임도 한 몫을 하겠지만, 실제 저자의 설명이 기본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채 현상은 중국 사회의 단편적 발전이 부른 필연적인 결과로서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 오늘날 중국 사회의 도덕성 상실과 시비의 혼돈이 산채 현상을 통해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회생태에 기초하여 ‘산채’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틀어박혔다. 표절과 모방, 악의적 조롱, 비방 등 원래는 불법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간주된 행위에 존재 이유를 제공하고, 사회여론과 사회심리적인 측면에서 점차 합리적인 지위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산채’는 오늘날 중국인 사이에서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단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p.306)

이 책의 마지막 글인 "홀유"(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뭔가를 덮어씌우는 일)는 산채와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의 일상에서 하나의 처세 방식으로 자리 잡은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이야기다. 위화는 “산채가 모조품과 해적판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준 것처럼 홀유는 속임수나 헛소문 같은 단어에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입혀주었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에는 민간, 정부 할 것 없이 홀유를 활용하여 사회적, 경제적 이득을 노리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위화는 중국 사회에서 '홀유'가 의미하는 바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홀유(忽悠)"라는 단어는 빠른 속도로 전국을 풍미하면서 산채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중국 사회의 윤리 및 도덕성 결핍과 가치관의 혼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중국 사회가 최근 30년 동안 지속해온 단편적 발전의 후유증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홀유 현상이 사회의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진 정도는 산채 현상을 크게 능가한다. 이처럼 홀유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지하지 못한 사회, 또는 원칙이 중시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p.344)


이처럼 이 책에는 불과 30여 년 만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한 중국 사회의 이면에 감춰진 온갖 부조리를 보여준다. 저자는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도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깊은 연민과 단단한 연대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모국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고통으로 치환하여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우리는 위화 문학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화의 휴머니즘은 어쩌면 이 책에서 그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미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10여 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고 한다. 중국어판은 2011년 1월 대만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현재까지 출간이 불가능한 상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중국 정부 당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만의 한 기자가 저자에게 “<형제>와 이 책 두 권 모두 상당한 비판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어째서 전자는 중국에서 출판이 가능하고 후자는 불가능한 건가요?”라고 묻자, 저자는 허구와 비허구의 차이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주제가 둘 다 오늘날의 중국이긴 하지만 <형제>는 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우회적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출판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비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판이 불가능하다."('p.07)

저자 위화는 서구 사회에서 현재 중국어권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저자가 처음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장편소설 <형제>였고, 이 책은 <형제> 이후 4년 만에 쓴 것이다. 그는 <형제>에서 보여준 중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이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했다고 하니, <형제>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 2012년 1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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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 퓰리처상 수상 기자가 밝힌 입학사정관제의 추악한 진실
대니얼 골든 지음, 이기대 옮김 / 동아일보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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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 후반기이고 2007년 6월 교육부에서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인 2009년 대학입시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실시 초기부터 교육계와 한국사회 전체에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교수 ·교사 10명 중 7명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공정사회와 안맞아” 한국교총은 2009년 10월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한국행정학회 소속 교수·학자 203명과 일선 초·중·고 교사 7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수·학자 61.6%와 교원 70.4%는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특혜 시비 등의 우려가 있어 공정한 사회와 배치될 수 있다’고 답했다. 2009년 9월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문이 일면서 입학사정관제가 선발 과정에서 고위층 자녀, 교직원 자녀, 특정학교 인맥 등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나오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 불을 붓듯 한 교육업체 대표가 트위터에 “내 아내가 입학사정관인데 덕 좀 보시죠”란 내용을 올려 파문이 커지자 결국 해당 입학사정관은 업무가 정지됐고, 소속 대학교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같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현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가 ‘과연 공정한 입시’인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후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지껏 흐지부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의 실태는 어떨까?

 

"부자 백인에 대한 미국 명문대학의 부정한 특혜 입학조치는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MIT대, 컬럼비아대, 다트머스대, 듀크대, 미시간대, 노트르담대, 브라운대 등 모든 아이비리그에 공통적이다."
"명문대학 특혜 입학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예일), 앨 고어 부통령(하버드),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프린스턴대), 존 케네디와 지미 카터(브라운대) 등 유명 정치인과 가족들이 주도했다."
"명문대학은 비영리기관으로서 정부로부터 세금 보조를 받으며, 비과세 혜택에다 수 십억 달러의 정부기금과 연구 장려금을 챙기면서도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굴하고 세공해야 하는' 사립학교의 사명을 외면한다."

 

2년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이 책를 쓴 대니얼 골든에 의하면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문 대학이 신분 상승과 균등한 기회 부여라는 미국인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행 미국 입시제도는 소수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바늘구멍만한 합격의 문의 열고 있는 반면 특권층 자녀들은 손쉽게 명문대학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심지어 졸업 후 기업과 정부기관의 높은 자리까지 갈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준다.”고 폭로하고 있다. 그는 입학사정관제가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가를 설명하며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경쟁률이 높고, 권력과 풍요로움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100여 곳의 사립대학들이 부유하거나 연줄 있는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입시제도의 이중 잣대를 폭로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지연입학deferred admission이나 편입 등의 제도를 이용해 ‘특별대우’라는 이름의 옆문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입학처장과 직접 대면하는 특권을 누리면서 일등석에 앉아 대학 입시라는 고된 여정을 편안하게 여행한다. 그들은 다른 지원자들이라면 곧바로 낙방할 만한 사안인 서류접수 마감일 경과에서부터 음주운전까지도 용서 받는 능력도 지녔다.
정상권의 대학들은 가난한 학생들도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기에 입학이 어렵지 않다며 이른바 니드 블라인드(Need-blind,학생 선발 시 학생의 재정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제도) 떠벌린다. 그러나 그들이 부富에까지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대학들은 사립 인문계고교 출신을 주로 합격시키고, 테리 샌포드 총장 시절의 듀크 대학처럼 학생 모집관에게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을 유치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단기적으로 선물(기부금)의 유혹에 휘둘리고, 장기적으로는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들을 너무 많이 뽑을 경우 가난한 동문 계층이 형성되어 결국 기부금이 줄게 될까 두려워한다. 

 

"하버드대학의 입시 경쟁율은 10:1이 넘으며, 신입생 90%가 고교 상위 10%에 속한다. 그러나 주요 기부자의 자녀 합격율은 50%가 넘는다. 거액기부자 모임인 자원위원회 회원의 자녀는 90% 이상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에는 'Z명단'이 있다. 이것은 동문과 기부자들의 '덜떨어진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입학사정 원칙을 조정하여 옆문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는 하버드대의 지연입학 정책을 뜻하는 용어다."
"듀크대의 1,2차 신입생 선발결정 후 일부 지원서류는 골판지상자에 담아 총장에게 가져간다. 총장은 직접 서류를 선별하여 가능성 높은 학생이 아니라 합격만 시켜주면 대학에 거액을 던질 기부자의 자녀를 선택한다."
"정재계 유명인사나 헐리우드 스타급 연예인의 자녀들은 브라운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할 필요 없다. 브라운대가 함량 미달의 '있는 집' 자제들을 위해 입시제도를 수정해 '특별학생'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학이나 다른 명문대학에서 동문특혜를 실시하는 것은 부유한 집안의 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교육수준이 쇠퇴하는 것을 막아주는 보험 역할이다. 마치 영국 귀족들이 상원 세습으로 대를 이어가듯이.."
"명문대학의 체육특기생은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펜싱, 승마 등 귀족스포츠를 통해 기금조성 가능성부터 따진다. 이들은 실력을 따지는 감독의 의견보다 입학처의 강력한 입김으로 부드럽게 입학한다."

 

SAT만점자는 탈락하고, 성적 미달인 앨 고어 3세는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리슨 프리스트나 앨 고어 3세와 같은 수천 명의 상류층 자녀들은 매년 실력이나 다양성과는 무관하게 소리 없이 명문 대학에 들어간다. 즉, 이들은 ‘특권층에 대한 특혜’의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대학입학 안내책자나 입학설명회, 대학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무시하거나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만, 특권층에 대한 특혜는 경쟁이 간발의 차이일 때 조금 눈감아주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지원자를 실력 있는 학생 위에 올려놓으며, SAT 평가에서 수백 점이나 되는 점수 차이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그들보다 훨씬 우수한 중산층이나 서민층 자녀들의 합격률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대학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정도보다도 훨씬 심하다.”
입시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백인의 숫자는 우대정책의 지원을 받는 소수인종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명문대학 입학생의 최소 3분의 1, 그리고 명문 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입학 과정에서 우대 대상이라는 인식표를 달고 합격했다. 일반적으로 전체의 15% 정도를 소수인종 출신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부유한 백인들이 체육특기생(전체의 10~25%), 동문자녀(전체의 10~25%), 기부입학자(전체의 2~5%), 유명인사이나 정치가의 자녀(전체의 1~2%), 교수 자녀(전체의 1~3%) 등 특혜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어떤 지원자에게는 복수 특혜도 적용되는데, 예를 들면 동문자녀이면서 동시에 운동선수인 경우이다. 결국 일반 지원자들은 전체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그나마 위의 추정치는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한번은 버클리의 로버트 버지노Robert Birgeneau 총장이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한 대학의 전체 정원에서 일반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 본 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고백했다. 어떤 특혜도 없이 지원하는 학생은 단지 전체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버지노 총장은 또한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동문자녀 입학 사례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동문의 손자 손녀는 동문자녀 통계로 잡지도 않고 있는데, 동문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뒤에 기부금을 내면서 입학처에 큰 입김을 불어 넣는데도 통계는 그런 식으로 집계한다는 것이다.

 

"명문대학들에서 일반 지원자들의 대학 합격률은 19%인데, 동문 자녀는 50%로 매우 높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교직원 자녀의 합격률이 70%나 된다는 것이다. 등록금까지 면제..."
"미국 국세청은 미국 납세자들이 교수 자녀의 등록금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그 혜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결속력이 강한 대학들은 번번이 로비로 막아냈다."
"현재 미국 대학 입학문에서 가장 소외되는 계층은 소수인종 특혜를 받는 흑인,남미계나 기부입학, 동문특혜, 체육특기생이 아닌 실력이 있는 저소득층 아시아계와 실력있는 백인 중산층이다."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학생들 대부분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이들은 고급 기숙학교나 외국인 국제학교 출신으로, 이들 학교는 사업가나 외교관, 상류층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두둑한 수입을 챙긴다."
"미국사회에서 동문 특혜 세습을 놓고 여론이 거센데도 대학과 정치인의 동문특혜 거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동문특혜 철폐를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 법조인들 대부분이 동문특혜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특례입학으로 인해 지난 반세기 동안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의 소득격차를 심화됐고 미국 사회의 특징이라고 정의됐던 사회적 이동성은 이제 길거리의 공중전화 부스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그 피해는 미국 스스로가 지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인재를 배제하고 특권층의 무능한 자녀를 선택하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비리그의 부당한 특례 입학 없이도 대학의 우수한 실력과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칼텍과 쿠퍼 유니온대, 버리어대를 소개하고, 특례입학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은 학생 선발시 아이비리그와 달리, 순수하게 학업성적만을 고려한다. 부유한 동문을 육성하거나 거액의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입학기준을 낮추지도 않는다."
"칼텍은 기부입학이나 동문 특혜, 체육특기생 없이도 2005년 기준 14억 달러의 기금을 모금하여 학생 1인당 기금순위에서 MIT보다 높은 18위를 기록했다.
칼텍, 쿠퍼 유니온대(뉴욕), 버리어대(켄터키)는 상류층 특혜도 귀족스포츠팀도 기금조성 작전도 없는 미국 내 유일한 대학이다. 저소득층의 실력과 가능성 있는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칼텍과 쿠퍼유니온(예술/건축), 버리어대(진보가치)의 공통점은 학교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성과를 통해 대학의 명성을 높인다. 입학결정에 교수가 참여한다. 기부자에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보상한다."

 

미국의 대학 입학 사정관제의 추악한 진실을 알고 나면, 입학사정관제 등 대학측에 대학입학 선발의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혹시 교육부와 기득권층에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특례입학임을 미리 알고 추진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무조건 미국의 제도를 추종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수준과 실정과 문화에 맞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한경쟁 대학입시의 비인간성과 부실한 관리실태, 수능 줄세우기, 대학서열화와 학벌만능주의, 공교육 투자비 저조, 최종 결과인 공교육 붕괴를 먼저 혁신적으로 바꾼 후에 입학사정관제든 다른 제도든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 2012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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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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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법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정치개혁, 경제개혁 실패라 할 수 있다. 경제개혁 실패의 상징적인 사안은 바로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양산과 재벌개혁, 특히 삼성의 불법과 비리를 묵인한 것이다. 사법개혁의 실패는 검찰의 정치화와 이기주의와 권력화, 상당수 판사들의 정치화와 기득권 편향을 가져왔다.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불법과 비리를 묵인한 결과는, 오히려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이 정치권과 사법부, 검찰, 언론, 관료, 학계를 불법 뇌물로 매수하여 '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별 분야의 개혁실패는 서로 작용하여 한국의 기득권 집단과 권력층은 총체적인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버렸다.
이 책은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과 재무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김용철 변호사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MB정부에 이르기까지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이 어떻게 조작과 불법행위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횡령, 배임, 탈세 등을 저지르고 공직자들과 언론 등을 매수했는지, 주식회사를 몇 프로의 지분으로 장악하여 계열사를 동원한 후 사익 추구에 이용했는지, 이건희가 아들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상속시키기 위해 어떤 불법행위를 일삼았는지 고발했다.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은 삼성이라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기업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가을부터 한국 사회를 떠들석 하게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양심 선언과 고발,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졌던 검찰 수사와 특검과 재판...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 양심 선언 전후의 과정과 심정, 검찰과 특검의 어처구니 없는 수사와 기소, 법원의 허무맹랑한 판결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시 고발하고 있다.

 

이미 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우리는 다시 '삼성을 생각'해야 한다. 범죄행위를 일삼았던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 그들로부터 뇌물과 대가를 받고 편의를 봐준 관련자들이 지금도 버젓이 인도 위를 걸어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몸으로 지금도 공직자의 지위에 남아 공직사회를 흐리고 있고, 명예와 부귀를 얻고 있고, 또 다른 불법행위를 자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떵떵거리고 살기 때문에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직장인과 노동자들이 로비를 하고 연줄을 찾는 등 온갖 부정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하려는 모습에 대해 따끔하게 말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범죄를 덮어버리면 미래에도 동일한 범죄를 해도 괜찮다고 인정해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미 친일매국노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과거로 인하여 오늘날에도 뼈아픈 고통과 후회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에게 검찰과 사법부만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고발하는 이들은 대부분 검사와 판사들이다. 그 이외에 삼성 구조본의 다른 임직원들이 '관리'한 정치인, 언론인, 관료, 학자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을 볼 때,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이 삼성 이건희의 더러운 돈으로 검게 오염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처음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이 이건희 일당의 범죄행위를 양심 고백했을 때가 참여정부 마지막 임기인 2007년이었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결사적으로 양심 고백을 막으려 했고, 무시했고, 회피했다. 검찰 뿐 아니라 조준웅 특검 역시 '삼성 장학생'이라고 믿게끔 스스로 행동했다. 검찰과 사법부가 삼성 비자금 사건을 (참여정부에 대한)박연차 게이트 수준으로 수사하고 판결했다면 이건희와 이재용은 지금 감방에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수 십년간 콩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과 관료, 법조인 수십 명과 함께...,

 

"2007년 천주교사제단과 김용철변호사가 삼성 이건희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았다고 공개한 임채진 검찰총장, 이정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중수부장을 참여정부는 내버려두었다.(그들은 MB정부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 ..... 참여정부가 삼성 특검을 수용하기 전, 김용철변호사를 찾아와 특별검를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정권을 물어뜯지 않을 사람'이었다. 조준웅 특검은 그렇게 탄생했다."
"삼성 이건희가 한나라당만 관리했으리라는 생각은 순진한 오해다. 참여정부 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삼성이 만들어 낸 것이다. 2005년 '안기부 X파일'이 논란이 될 때, 첨여정부는 국정원 최고정보책임자에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를 임명했다"
"2007년11월 청와대 이용철 비서관이 2004년 삼성전자 법무팀 이경훈으로부터 현금500만원을 택배로 받았던 사실을 증거까지 첨부해 양심고백했으나, 수사도 징계도 없이 유야무야되었다. .... 조준웅 특검은 섬성비자금에 대해 아무런 수사를 하지않았다. 삼성화재 등 계열사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확인했으면서도 비지금이 없다고 허위발표했다. 정치,관료,법조계에 대한 불법 로비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 조준웅 특검은 중앙일보 위장분리, 계열사 대형 분식회계 등 특검 수사 권한 밖의 삼성비리에 대해 멋대로 무혐의라 발표했다. 삼성 특별검사가 아니라 삼성특별변호사를 자청한 셈이다. .... 감용철변호사 양심선언 후 검찰도 특검도 2개월 반동안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아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주었다. 그래서 삼성증권은 고객증권계좌 신청서를 무려 43만개 폐기했다.(이 애긴 저도 삼성증권 출신에게 직접 들었죠) .... 조준웅 특검은 제보에 따라 삼성화재를 압수수색하여 미지급 보험금과 렌터카비용을 차명계좌로 빼골려 구조조정본부에 전달하고 로비로 사용한 것을 밝혀냈음에도 사장 개인의 횡령으로 짜맞추었다. .... 조준웅 삼성 특검의 최대 성과는 이건희 일가가 훔친 돈, 즉 절도장물을 피해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훔친 자에게 갖도록 한 것이다. 이건희는 하루아침에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되었다"(이런 특검은 할 필요가 없다...)"
"2008년에도 사제단은 삼성 이건희의 뇌물 관리대상을 추가-이종찬,김성호,황영기 등-로 공개했지만, 이들은 국정원장, KB금융지주 회장 등이 되었다. 현 정부 내내 삼성 관리대상은 승승장구했다"
"삼성 비자금 비리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경제사건 담당인 형사합의 24,25부가 아니라 평소 삼성이 무죄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던 23부 민병훈에게 배당했다. 당시  재판 배당실무는 허만 판사, 지법원장은 신영철이었다. .... 허술한 삼성 특검에 더하여 2008년 민병훈 판사는 기존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어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에 대해 이건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월급쟁이 사장 허태학,박노진은 유죄판결이었다. .... 삼성SDS BW 헐값매각 사건의 이건희에 대해 1심 민병훈 판사와 2심  서기석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2009년 유죄로 판결했다.(MB, 이건희, 신영철도 만능은 아니죠..^^) ....
"삼성특검이 이건희 등을 1,128억의 조세포탈로 기소했음에도 민병훈 판사는 465억만 인정하고, 연간 세금포탈이 10억을 넘으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의 법조항도 무시하고 징역3년,유예5년을 선고하여 자유롭게 해줬다. .... 민병훈 판사는 이학수에게 조세포탈 형량을 징역 2년 6개월짜리 두 건으로 나누어 판결했다. 그래서 이학수가 징역 3년 이상이면 집행유예할 수 없다는 법조항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도록 해주었다."
"삼성SDS BW 헐값발행으로 227억 배임죄응 저지른 이건희는 특경법 상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져야 하는데, 김창국 고등법원 판사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낮다'며 형량을 추가하지 않았다"(대다수 시민은 비난했는데...!!)
"국세청 고위직 출신에게 삼성이 검사들에게 뿌리는 돈이 생각보다 적어서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국세청 직원에게 가는 돈은 '0'이 하나 더 붙는다'라고 말했다. 양심고백 당시 검사 명단 전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다"
 
한국 사법부의 마지막 보루인 대법원 역시 삼성 이건희 일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건희 일가의 삼성 에버랜드 CB(전환사채) 헐값 발행과 삼성 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이재용에게 회사 재산을 불법적으로 넘긴다는 본질이 같은 것이나 대법원은 다른 논리를 적용하여 에버랜드건에 무죄를 안겨줬다"
"삼성에버랜드 주주배정 방식으로 CB를 헐값발행할 때 이사회도 열지 않은 것은 명백한 절차상 하자임에도 대법원 판사 6인은 이 사항을 무시했다."(이들이 삼성 불법 비자금으로 관리되었다는 의혹이 충분하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과 이건희 일당이 법과 제도와 상식을 벗어나 얼마나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운영되는지 세밀하게 알려 준다. 누가 삼성을 '세계 최고기업'이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최고 '범죄기업'이면 모를까...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비리에 관한 검찰수사가 안건으로 올라오면, 사장들이 일제히 충성맹세를 한다. 자신들이 회장을 대신해서 감옥에 가겠다는 것이다. 범죄영화의 조폭집단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 삼성 이건희는 불법 비자금, 뇌물, 조세포탈, 배임, 횡령 등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이학수, 허태학, 박노빈, 황태선, 김승언등을 모두 승진시키고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등 막가파 경영을 일삼고 있다"
"이건희는 재판 과정에서 법원에 에버랜드와 SDS에 968억, 1539억을 상환하겠다고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각 법인의 회계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이건희가 사기쳤거나 삼성이 회계조작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과 구조본 팀장들 중에는 자신들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에는 관심도 없었다.(범죄자들일 뿐...) .... 이학수와 김인주 등은 오직 이건희의 사적이익과 안전만이 관심사였다. 그들 언어로 표현하면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는 일'이다. 사실상 비자금을 관리하고 불법행위를 세탁하는 일이다. 회사 이익과 회장 이익이 부딪히면 후자가 우선했다."
"참여정부에서 한미FT"삼성 이건희는 냉장고 판매실적에서 LG에게 뒤졌다는 보고를 받은 후 "반도체에서 한 2조쯤 빼서 전국 모든 가정에 새 냉장고를 사줘라"고 말했다. 보통사람이 이렇게 애기했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 1999년 삼성 구조본 김인주가 중앙일보 주식의 비밀명의신탁계약을 이건희와 홍석현 사이에 체결토록 했다. 2007년 얌심선언 후 주식은 홍석현 소유로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중앙일보는 이건희에게 매주 정보보고를 올린다"
"내가(김용철) 삼성 구조본 법무팀에서만 일했다면, 삼성 비자금이나 뇌물에 대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본 재무팀에서 4년간 일했기 때문에 삼성 내부사정을 잘 알 수 있었다"
"2000년 이재용이 주도한 'e삼성' 사업은 계열사에게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망했다. 계열사들이 'e삼성'의 주식을 사주어 이재용의 원금을 회수해주었다. 구조본이 주도한 이 실패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나는 삼성에서 이건희 일가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을 너무 자주 봤다.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법을 우습게 여기는 모습을 너무 자주 봤다. 그들은 보통사람과 신분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명품애 관한 이건희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삼성이 뛰어들었다가 망한 사업은 흔했다. 독일의 명품카메라사인 '롤라이'를 1천억에 인수했다가 1백만원에 팔았다. 하이앤드 오디오를 위해 회로도를 100억원에 매입 후 실패했다. .... 이건희가 추진한 삼성의 자동차사업은 1년 만에 3조7천억의 손실을 봤다. 국가세금 투입과 6만명의 감원으로 손실을 메웠고, 책임은 바지사장이 뒤집어썼다. 이건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았다. .... 일본의 유니온광학, 럭스맨등을 인수하여 헐값에 매각하거나 청산하였고, 유럽의 롤라이, 피케레등을 인수하였다가 헐값에 매각, 국내 대도제약, 이천전기를 인수하였다가 포기하였다. .... 이건희의 '무노조 경영'은 반인권, 불법적일 뿐만 아니라 노조를 막기위한 비용이 노조와 상생하는 비용보다 막대하다. 무노조 경영은 삼성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할 뿐이다. .... "삼성에서 우대받는 사람은 경영을 잘하거나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건희를 신처럼 떠받들고,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계조작과 뇌물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재용의 지분을 늘리는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의 이사회는 열리지 않았다. 구조본 가신들이 이사회 의사록을 나중에 허위로 만들었다. 의사록에 있는 기명 날인도 모두 엉터리였다."
"삼성 자동차 파산 사례는 이건희의 독선적 결정을 제어하지 못하면 한국사회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내버려 두면 비극은 다시 일어나고, 피해는 삼성의 노동자들과 전국의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 삼성자동차 다음의 큰 손실은 미국의 망해가는 컴퓨터회사 AST를 인수하여 1조3천억을 날린 것이다. 이건도 삼성 계열사와 노동자, 주주들에게 피해가 전가되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삼성 이건희 일당에게 얼마나 농락당했는지, 무능했는지 말해주는 대목도 많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수 십년간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한국경제를 건강하고 투명하며 경쟁력 있게 육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삼성 이건희 일가 등 재벌과 대기업에 대해 수 많은 특혜와 이권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비대한 재벌-대기업들과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생존력을 빼앗긴 중소기업, 그리고 최하층 바닥에 노동자들이 깔려버렸다.


"한미FTA를 추진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옮긴 후,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만 추진한 인물답다"
"1997년 이건희 일가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당혹해했다. 그러나 김인주가 큰소리 친대로 이건희의 뇌물로 김대중 정부를 장악하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와 골프를 치던 민주당 정계 인사들 중 상당수가 감옥에 갔다. .... 1997년 이재용은 삼성전자의 CB를 헐값인수하여 5개월만에 주식으로 전환, 수천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시민단체가 배임과 변칙증여로 고발했으나, 사법부는 3심까지 이재용의 손을 들어주었다"(이 사건이 애버랜드와 SDS 범죄의 전주곡이었다) .... 공정위가 부당 내부거래 혐의로 'e삼성'에 대해 조사하자 구조본은 서류를 조작하고 폐기했다. 공정위는 구조본이 전달한 자료와 진술을 근거로 삼성에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2000년 곽노현 교수들이 삼성애버랜드 CB 헐값인수 사건을 고발했지만, 김대중 정부의 검찰은 에버랜드의 접대를 받으면서 수사를 미루었다. 수사는 2003년 기소할 무렵에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 2003년 대선자금 수사를 원칙대로 하던 중수부 남기춘검사는 삼성 구조본 압수수색과 이학수의 구속을 시도했지만 참여정부와 검찰 수뇌부는 거절했다. 그가 특수부로 옮기자 특수부가 담당하던 에버랜드 CB사건이 금융조사부로 이관됐다. .... 부당대출로 금융기관이 손실을 보자, 삼성자동차에 대해 예금보험공사가 조사했다. 회사가 파산할 때, 직원들이 회사를 점거하고 서류를 태웠는데 잿더미 속에서 분식회계 서류가 발견되었지만 끝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 이루어진 재벌수사, 즉 정몽구 현대 회장, 박용성 두산 회장 등이 연루된 비리사건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삼성에 대한 수사도 미적거렸고 일선 검사의 수사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 삼성 SDS BW 헐값 발행사건에 대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검찰은 무려 여섯 번이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2009년 대법원은 이 사건을 배임죄로 판결했다. 그 뒤 어느 누구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2009년 대법원의 에버랜드 CB 헐값사건 무죄 판결에 대해서도 참여정부가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이 사건 1심 변호인으로 활동하던 이용훈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게 노무현 전대통령이었다."
 
삼성 이건희 일당의 범죄행위를 제대로 수사하여 처벌하는 방법은 뭘까? 김 변호사는 기존에 국세청이나 검찰에서 확보한 자료가 많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특별검사로 일할 뜻도 비쳤다.


"국세청에는 재벌계열사에 대해 지분이동 조사를 가끔씩 한다. 그래서 국세청 조사국에는 삼성계열사의 실질 지분 이동자료가 다 있다. 이런 자료만 잘 분석해도, 경영권 승계과정의 불법행위를 쉽게 알 수 있다. .... 국세청은 삼성의 불법행위와 탈세혐의를 밝힐 자료를 가지고도 활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성지리에 대한 수사를 가로막았다. 삼성특검의 자료협조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삼성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이다, 비자금이 없었다면, 삼성이 권력을 매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비자금은 결국 삼성 임직원들이 뿌린 땀의 대가를 빼돌린 것이다. 빼돌린 돈으로 권력자들을 매수한 것이다. .... 삼성 구조본 관재부서의 30대 초중반 과장들(주로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은 프랑스제 여행용 가방에 들어있는 현금을 수시로 본관 지하주차장에서 27층 비밀금고로 날랐다. 이런 친구들이 미래의 삼성 계열사 사장감인가? .... 삼성의 사장단, 고위 임원, 구조본의 핵심보직의 임직원등은 거의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차명계좌가 있다. 명백히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문서 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조세포탈 등의 범죄행위이다
"2001년 제정된 자금세탁방지법은 몇천만원이 넘는 거래 및 현금 입출금을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삼성의 수상한 자금조성 및 비자금은 그 정보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확인,조사할 수 있다. .... 2008년 삼성비자금 및 차명계좌애 동원된 금융기관은 10개에 이른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불법, 부당행위에 가담한 금융기관을 조사하지도 징계하지도 않았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일가를 압박하고 처벌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일가가 삼성 자본을 해외로 옮길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는 한 마디로 부정한다. "삼성은 본사를 해외로 옮길 수 없다. 독과점에 철저히 내수 위주인 금융 및 소비재 사업, 중소기업에 대한 비용 떠넘기기, 정부의 다양한 지원 등 국내에서 누리는 이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또한 스웨덴의 유명 재벌그룹과 정부, 노조의 대타협을 애기하면서 삼성 등 재벌의 그룹 장악을 허용해야 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가장 먼저 스웨덴의 재벌과 한국의 재벌은 속성과 문화와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재벌과 삼성 이건희 재벌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발렌베리 계열사는 삼성과 달리 독립경영이 원칙이고, 후계자는 부모 도움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등 유럽 명문 재벌가의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보여주어야만이 경영자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이나 이부진 등 이건희 자제들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한국사회의 두터운 부정부패 고리를 알면서도 왜 양심 고백를 했을까?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의가 늘 이긴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고록 방치하는 게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이건희 일가와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자세한 증언을 삼성측은 부정한다. 하지만 사적인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여러 차례 공개되거나 밝혀진 사항이다. 이 내용들은 직접 차분히 읽어보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렵다. 그냥 '뜬소문'이나 '전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려니 하면서도 실제 책을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무능하고 허술하고도 부당한 방식으로도 삼성전자와 기타 계열사들이 운영되면서도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물론 그 이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범죄에 끼어든 이들은 삼성 그룹 전체 임직원의 0.1%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삼성의 임직원들은 국내 최상위급 인재들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은 국내 최고 인재를 최고 대우로 뽑아 업무를 맡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경제가 그동안 이어온 산업분야에서의 재벌 독점과 재벌 그룹 내 계열사끼리의 부당 내부거래, 뇌물과 로비와 하도급사 착취를 통해서 국내 대기업은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법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기업 경영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고, 이건희 일가의 무능하고 불법적인 경영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손실을 줄여서 임직원과 하도급사와 주주들의 이익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 왔다. 수십년간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에게 관리되어온 검찰, 사법부, 언론, 정치권, 관료들을 쇄신해야 하는 것이 2012년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숙제다. 나는 1% 기득권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그동안 안주해온 박근혜 후보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없다. 그는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과 능력 뿐 아니라 감성과 태도 면에서도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되지 않는다. 다만 수 십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 집단들의 '이권 정치'와 이데올로기 조작에 의해 '대리 후보'로 나선 것 뿐이라 생각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문제는 야권 후보들이다.
'경험이 없다'와 '부채가 없다'가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인 안철수 후보는 재벌과 대기업의 불법,불공정 행위에 대한 심판과 척결 의지를 여러번 표시했다. 그러나 재벌들의 구체적인 범죄행위, 특히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삼성 백혈병 환자들의 탄원서에 서명도 거부한 바 있다. 그래서 안철수 후보가 '삼성 범죄행위 척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사실상 '삼성에 포위되었다.' 참여정부는 재벌, 대기업과 관련하여 MB정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상당수 정책과 사안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삼성의 범죄행위,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한미FTA, 강정해군기지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사안들에 참여한 참여정부 관료, 정치인 출신이 대거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 포함되어 있다. 문재인 후보의 재벌 개혁 및 삼성 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도 약하다.
김용철 변호사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두 후보를 비판했다. "재벌개혁에 관한한 박-문-안 3자는 큰 차이가 없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57734.html"

 

야권 단일화를 통해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후, 차기 정부에서는 지난 날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반드시 검찰과 사법권력을 개혁해야 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검찰과 법원, 삼성에 대한 개혁의 내용은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정책까지도 필요 없다. 판사들이 헌법의 취지를 그대로 살려서 사건들을 판단하면 된다. '유전무죄'가 아니라 부가 많고 권력이 많은 자일수록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회적 책임의 강도를 높여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 검찰도 정치화를 방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을 해체하면 된다. 삼성 개혁도 마찬가지다. 대표이사, 등기이사가 아닌 자가 주식회사의 경영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엄정하게 제도를 적용하면 된다. 잘못된 수사와 재판을 재개하고 진실과 정의를 되살리면 된다. 불법행위를 한 자들이 다시는 경영권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하면 된다. 사면권 남발하지 말고...
김용철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 비리에 대해 다시 수사할 경우, 자신이 특별검사로 활동할 의사를 피력했다. 10년 넘게 검찰 특수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삼성의 구조와 관행과 핵심을 잘 알기 때문에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 2012년 11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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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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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지 없는 방>과 함께 '삼성 백혈병 시리즈'를 이룬다. <먼지 없는 방>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민웅씨와 아내 정애정씨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마찬가지로 반도체 공장에 다니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다.
 
"꽃이 질 때쯤 되면 최고의 향이 나거든.사람도 똑같애.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늙을수록사람 냄새가 나는 거야." 황상기 씨의 말이다. 황상기 씨는 사람도 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만의 향기를 가진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귀기울일 줄 알고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딸을 잃게 만든 그곳, 삼성에서는 자기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이들이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바로 그 한 가지, '사람 냄새'가 없기 때문이다.
황상기 씨의 딸 황유미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열아홉 나이로 삼성반도체 공장에 들어갔다. 삼성에 입사한 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집에 왔다. 그런데 일을 한 지 2년이 지날쯤부터 딸은 몸이 아프다고 했다. 백혈병이란다. 딸의 병을 치료하면서 같은 병원에서 백혈병에 걸린 삼성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나려고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딸과 같은 조를 이뤄 일한 동료 직원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혹시 딸은, 삼성에서 병을 얻은 것이 아닐까?
 
삼성에서 사람들이 왔다. 황유미씨의 병가 기간이 다 지났기 때문에 사직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황상기씨는 사직서를 쓰기 전에 산재 처리를 요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세요?”였다. 산재 처리를 포기하고 나머지 치료비를 요구했다. 삼성은 치료비(1억)를 대줄 테니 이 일로 회사에 이유를 달지 말라고 했다. 딸의 치료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원하는 대로 백지사직서에 사인을 했다. 돌아온 건 유미 병의 재발과 500만 원 뿐이었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교활했다. 고 황민웅씨나 정애정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삼성전자는 중소 도시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세상 물정 모르는 부모 슬하의 선남선녀'를 가장 위험한 반도체 공장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반도체 공장의 위험에 대해서도, 노동자로서의 기초적인 권리에 대해서도 아무런 통지도 교육도 하지 않는다. 일하다가 아프면 무조건 개인의 잘못이나 지병으로 돌린다. 그리고 협박과 회유를 하고, 그것이 안되면 법으로 응수한다.
 
황상기씨는 딸의 병을 알리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정당과 방송국을 찾았다. 정당, 방송국은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증명서를 삼성에서 떼어 오라는 말뿐이었다. 산업재해 신청을 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돌아온 대답은 “삼성에다 산재 신청을 어떻게 합니까?”였다. 황유미씨 병의 진실을 알고 싶지만 삼성이 쳐 놓은 단단한 울타리에 부딪쳐 메아리로 맴돌뿐이었다. 언론은 이 문제를 쉽게 다루지 못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에 공문을 보내 산업재해 불승인 취소 소송에 삼성 변호사를 보조참가인으로 지원받았다. 삼성은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어두운 돈을 내밀며 회유를 하려고 한다. 황상기 씨는 딸이 죽은 진짜 원인을 밝혀 내기 위해 ‘반올림’에서 또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삼성과 싸우고 있다.
 
김수박 만화가는 독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적절히 엮어 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황상기씨의 이야기와 더불어 삼성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함께 담아 냈다. 한 아버지가 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려고 할 때,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인 삼성은 무엇을 외면하고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보여 준다. 언뜻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삼성의 비리 및 3세 승계 문제는 함께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두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해 넣으면서 한국 사회에 녹아 있는 삼성 문제를 하나로 묶어 냈다. 국민 기업 삼성이 진정한 일류 기업이 되려면 이제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인권을 이야기하고, 상식을 이야기하고,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산업안전과 정의를 이야기하려면 삼성 백혈병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참된 지식인이라면 삼성 백혈병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정치인이 스스로를 '민중의 충복'이라고 말하려면 삼성 백혈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거에 거대 기업 삼성의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뇌물을 받았다 하더라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다음 나서야 한다.
 
[ 2012년 11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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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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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이 '인연'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실감날 때가 많다. 내가 매달 후원하는 단체 중 하나는 '나눔문화연구소(www.nanum.com)'이라는 비영리 시민단체가 있다. 정부나 대기업의 협찬을 받지 않고, 언론에 홍보하지 않으면서 '생명, 평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소규모 단체다. 재작년부터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통해 알게된 후 매달 조금씩 후원하고 있고, 봄 가을에 실시되는 '평화나눔아카데미'라는 강좌도 신청하여 강연을 듣곤 한다. 몇 주 전에 그 아카데미에서 '나는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공유정옥씨의 강연을 들었다. 공유정옥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단체에 주요 참여자 중 한 명이다. 공유정옥씨를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과 관련한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물론, 나눔문화 홈페이지에는 몇 년 전부터 연구원이나 대학생들이 삼성전자 백혈병 인정을 위해 꾸준히 일인시위도 하는 등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게을러서 '그런가 보다'하고 자세하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유정옥씨로부터 직접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백혈병에 걸렸으며, 회사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어떤 식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지 들었을 때, 내 감정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강연을 받고 그 자리에서 서울행정법원의 산재 인정 탄원서에 서명을 했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알리기 위해 이 책과 <사람 냄새>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두 권의 만화책은 삼성 백혈병에 대해 '두 개의 시선'을 보여준다.

 

올해(2012년) 3월까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http://cafe.daum.net/samsunglabor)’에 제보된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수는 155명이고, 그 가운데 이미 사망한 사람은 62명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는 138명에 이른다. 하지만 삼성은 이들의 병이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개인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적극적으로 찾아 그 피해를 밝혀내고, 재해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재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감독하고 관리해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무기력하게 방관만 했다. 공단은 몇 년 동안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4월 10일 처음으로 반도체공장 직업병에 대해 산재 승인을 했다.
전자산업 분야의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이는 택시 기사 황상기 씨다. 그리고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1년 동안 일해왔던 정애정 씨도 이 싸움에 함께 하고 있다. 황상기 씨의 딸 황유미씨는 백혈병에 걸려 병원으로 이송 중 아버지가 몰던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황유미씨의 그 때 나이가 꽃다운 나이 23세였다. 정애정 씨의 남편 황민웅 씨 역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둘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했다는 점이다. 정말 삼성의 말대로 이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 질병일까?
 
이 만화책은 삼성이 가리고 싶어 하는 백혈병의 진실을 파헤친다. '청정산업'이자 한국의 '미래산업'으로 홍보되는 반도체 산업. 한국 내 제조업 중에서 노동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알려진 삼성전자. 불법 비자금과 정관계 뇌물 로비, 그리고 불법 경영권 승계로 얼룩진 삼성전자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부정부패는 끝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도청하고 납치하고 협박하는 삼성전자의 경영진과 하수인들이 과연 반도체 공장에서는 인간적으로, 합리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을까?
 
정애정씨는 삼성반도체 공장에 들어가 처음으로 반도체를 만났다. 기름때와 어두운 색깔의 작업복으로 생각되는 일반적인 공장과는 달리, 반도체 공장에서는 티끌 같은 먼지 하나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하얀색 방진복과 방진모, 마스크를 쓰고 ‘에어 샤워’까지 한다. 공장 안은 특수 배기시스템을 통해 먼지가 걸러진 공기가 흐른다. 공장 안에서는 모든 것이 깨끗해야 한다. 먼지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람도, 물건도 공장의 청정수칙에 따라 다뤄진다. 반도체는 먼지에 아주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을 '클린룸이라 부른다. 그러나 정말 깨끗할까? 큰 설비와 수많은 기계에서는 기계 소리가 계속 났다. 공장 안에 들어서면 항상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직원들 사이에서 누구는 아들을 못 갖는다는 둥 뜬소문이 돌았다. 여성 작업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생리불순이나, 하혈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생기는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심지어 종종 들리는 유산 소식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돌려졌다. 그 누구도 공장의 환경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깨끗한지 묻지 않았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던 정애정씨는 삼성에서 남편을 잃었다. "내 고막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었습니다. 삼성에 희망을 걸고 내 꿈을 키운 대가 치곤너무 무섭다고. 난 그렇게 죽어라 일한 죄밖에 없다고." 정애정 씨는 열아홉 살에 삼성반도체 공장에 들어갔다. 엄마 품을 떠나 독립을 했다는 것이 좋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삼성에 입사한 것도 좋았다.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을 했고, 그곳에서 남편 황민웅 씨를 만났다. 첫째아이로 아들을 낳고 둘째아이를 가졌을 즈음에 남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둘째아이의 출생신고를 손수 마치고 골수이식 수술을 기다리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애정씨는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혼자서 키우기 위해 11년 동안 일했던 반도체 공장을 그만뒀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해외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병이 공장의 근무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남편이 죽은 진짜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고 황유미 씨 아버지인 황상기 씨의 문제 제기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싸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도 삼성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말을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무재해 사업장 삼성을 상대로 첫 산재 승인을 이끌어냈다.(현재 근로복지공단은 어처구니 없게도 삼성측의 도움을 받아 서울행정법원에 항소를 한 상태다. 며칠 전인 11월 초에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법원은 대통령 선거 뒤인 12월 27일로 판결을 연기했다. 삼성의 장학생이 드글드글한 법원, 그리고 헌법과 법률과 양심과 이성 보다 승진과 상사와 권력과 자본에 더 약한 한국 사법부의 현실은 까마득하다.)

 

이 책은 유명 작가의 만화책은 아니지만, 어느 장면 하나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작가는 비록 이 책이 얇은 만화일 뿐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펼쳐 보이는 묵직한 역사가 될 것이라 믿으며 장면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담아 그렸다.
김성희 작가는 자료조사 더불어 끊임 없는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한 번도 제대로 공개된 적 없는 반도체 공장을 만화로 그려 냈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자제품에 필수로 들어가는 반도체가 무엇인지, 그 반도체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느 한 기업을 질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는 한 기업을 나쁜 기업으로 매도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모르는 일반 독자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는 것과 더불어, 반도체 공장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와 연대를 구하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큰 의미 중 하나다.
 
[ 2012년 11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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